소이부답(笑而不答), 웃으며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소이부답(笑而不答), 웃으며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 홍기확
  • 승인 2022.06.27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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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40>

나는 공무원이다.

처음 직장을 기업으로 시작하고, 여타 회사생활을 하는 많은 이들의 로망처럼, 대기업을 그만두고 안정을 좇아 공무원이 되었다. 물론 공무원 생활도 순탄하진 않았다. 공무원으로만 4번째 행정기관이다. 공무원으로 사표를 3번 쓴 현직 공무원은 극히 드물 것이다. 공무원 시험은 닥치는 대로 본지라,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지금까지 대략 20번 정도 본 듯 싶다. 수많은 불합격의 좌절도 맛봤고, 간간이 합격의 기쁨도 느껴 보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엇보다 기억나는 점은 단 하나. 무언가를 이루기는(합격, 입사) 어렵지만, 그 무언가를 버리기는(불합격, 사표) 아주 쉽다는 점이다. 사표를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손으로 제목을 달고 ‘본인의 원(願)으로 사직합니다.’라는 문장과 이름, 서명만 하면 간단하다.

어려운 것을 쉽게 생각하는 천재나, 쉬운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바보나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거나 모자란 것이나 똑같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어려운 것(취업), 쉬운 것(사표)을 대한민국의 압축성장처럼 젊은 나이에 여러 차례 겪어보니 일찍 깨달았다. 세상에 어려운 것도, 쉬운 것도 없다. 해 봐야 알고, 가 봐야 느낀다.

그리고 느낀다. 세상 모든 일의 과정과 결론에는 기쁨과 슬픔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을. 그래서 알고 있다. 슬픔이 왔을 때 버티는 것만큼이나, 기쁨이 왔을 때 슬픔을 버틸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나는 수필가로 등단하고, 책을 세 권 쓴 ‘공무원’이다.

공무원이라 한가해서 글을 쓴다는 사람의 얘기도 들어보았다. 하지만 글은 한가함과는 거리가 멀다. 치열해야만 나오는 것이 글이다. 피천득 수필가의 제자인 김정빈 수필가의 말을 들어보자.

"시의 경우 그 이미지만을 남기고 시인은 뒤로 숨을 수 있다. 소설이나 희곡 또한 주제만 남기고 작가는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수필만은 작가가 전면에 나타나야 한다. 그만큼 솔직한 문학이 수필이요, 따라서 수필은 필연적으로 쓰는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은, 심심할 때와 글을 쓰고픈 생각이 들 때뿐이다. 물론 이 순간은 기적이고 극적으로 나타난다.

매일 경제신문을 읽는다.

매주 2회 아침 전화영어를 하고, 2~3회 오름이나 달리기를 한다.

매주 평균 1권의 책을 정독하고, 10권의 책을 대강 읽는다.

매주 목요일 저녁은 아내와 데이트하는 날이다.

매월 20여 회 저녁에 반주로 소주를 1병 마신다.

분기마다 1~2번 정도 자격증, 외국어시험 따위를 치른다.

반기마다 사이버대학에서 새로운 학문을 익힌다.

매년 밴드에서 드럼을 치며 10회 이상 공연을 한다.

물론 이 외에도 가정에서 맡은 바 임무인 쓰레기 버리기, 빨래, 각종 수리, 힘쓰기 등을 하며 가족들과 주말에는 함께 놀기도 한다.

최근에는 공인노무사를 공부하느라 하루에 평균 두 시간은 오롯이 공부만 한다.

몇 년 전 이맘때까지는 공무원 노조의 사무국장과 문학단체의 사무국장을 하며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경조사를 챙겼다.

마지막으로 직장에서 일이 바쁠 때는 야근도 한다. 당연히 출근도 한다.

이렇게 해도 가끔은 심심하다. 그럴 때야 비로소 글을 쓴다.

한가해서 글이 나온다면, 우리 지구인은 모두 ‘작가’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글을 쓰는 때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이다. 글을 쓰고 싶을 때는 머리에 지식, 지혜, 생각이 가득해서 터질 것 같은 순간이다. 보통은 한 달에 하루 이런 느낌이 든다.

하지만 단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글이 나오지 않는다. 특히나 수필은 민낯을 드러내야 하며, 밑천이 떨어지면 한 줄도 쓸 수 없는 글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수필이란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라는 정의는 그야말로 사전적인 정의다. 써 봐야 안다. 본인 지식의 한계와 지혜의 얕음은 수필 한 편을 써 보면 느낄 수 있다.

술자리에서 나를 잘 모르는 동석한 한 사람이,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에 대해 말한다.

“나도 공무원처럼 한가하면 너처럼 글도 쓰고 책도 내고 할 텐데.”

나는 대답했다. 이 말 이전의 대화시간에서의 울분을 참다 참다 뱉은 말이라 좀 까칠하다.

“공무원이라 글이 나온다면, 100만 명이 넘는 공무원은 모두 작가가 될 건데요.”

공무원의 글쓰기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너무 심했나?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경영지도사(마케팅),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일상의 조각모음』, 2018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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