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세 번째 직권재심 20명 '무죄' "이제는 편히 지내길"
제주4.3 세 번째 직권재심 20명 '무죄' "이제는 편히 지내길"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2.04.19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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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죄 저질렀다는 증거 없어 ... 무죄 선고"
유족 "이제 곧 돌아올 것 같다던 아버지, 74년 기다렸다"
"이제 기쁜마음으로 아버지 맞이할 수 있을 것"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이 마이크를 잡았다. 법정은 조용했고 노인이 입을 떼길 기다렸다. 노인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전했다. 그의 아버지는 제주에 4.3의 광풍이 몰아치던 1949년 경찰에 끌려간 후 다시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다. 당시 임시 수용소였던 주정공장에서 아버지 면회를 했다. 그 당시에도 아버지는 지병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가 말하길 ‘나는 별 죄가 없다고 하니 며칠만 있으면 집에 갈 것 같다’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그 말을 기쁜마음으로 어머니에게 전했다”

이제는 그 때의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 들어버린 백발의 노인 양상순씨(87)는 그렇게 그 때를 회상했다.

양씨는 “그렇게 곧 돌아올 것 같다던 아버지를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렇게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흐르다보니 어느 덧 7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젠 제가 아흔이라는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버지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끌려갔다. 양씨의 아버지처럼 농사를 짓다가, 관공서에서 땔깜을 해오라는 말을 듣고 나갔다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어떤 이는 4.3 당시 소개령에 따라 아내와 딸을 피난시키고 그 뒤를 따라가기 전 집안을 정리하다 끌려갔다. 또 어떤 이 피난을 가던 도중 끌려가기도 했다.

74년 전 군법회의는 이렇게 끌려온 이들에 대해 남로당 제주도당 관계자들과 공모해 무력을 행사했거나 혹은 남로당 제주도당 관계자를 보호하고 그 외에 간첩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게 그들 모두는 내란죄 혹은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형무소로 이송됐다. 

그렇게 유죄판결을 받은 양씨의 아버지와 같이 경찰에 끌려가서 유죄판결을 받고 돌아오진 못한 이들 20명에 대한 재심이 19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열렸다.

지난해 4.3특별법 개정 후 군사재판 희생자에 대한 직권재심에 따른 세 번째 재판이었다.

이날 재심을 받게 된 이들 20명은 강성협, 강희옥, 강우제, 이문팽, 고상수, 고창두, 오형운, 송재수, 문종길, 문순조, 홍순표, 정만종, 김형남, 송창대, 김형수, 양성찬, 양달천, 김윤식, 오기하, 전병부씨다. 이들은 모두 고인이다. 

이들 중 14명은 내란죄, 6명은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다. 

제주지방법원.
제주지방법원.

이날 재판은 세 번째 직권재심의 공판 첫 날이었었다. 하지만 검찰이 구형에 더해 재판부의 판결까지 이뤄졌다. 재판부는 이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선고에 앞서 검찰 측 역시 “피고인 측이 죄를 지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며 재판부에 무죄판결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검찰 측은 이날 법정에서 “74년 전 제주에서 3만명이 희생되고 300여 마을이 소실됐다”며 “이런 엄청난 비극이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됐다. 유족들은 부모와 형제자매, 자식들을 잃고도 희생자를 가슴에 묻고 통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재심으로 국가공권력의 잘못을 바로잡고 유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피고인들은 아무런 죄도 없음에도 군법회의에서 처벌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죄를 지었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따라서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말했다.

피고인의 변호인 역시 “이들은 불법적인 재판을 통해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됐었다”며 “74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정상적인 재판을 받게됐다. 이들은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변호인은 피고인들의 무죄를 호소하며 수시로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 제주지법 재판부는 이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들의 죄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취지에 따른 판결이었다.

양상순씨는 이날 무죄판결을 받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오늘(19일) 무죄라는 판결을 받을 수 있어, 돌아가신 아버지도 기쁜마음으로 집으로 찾아와 아들을 부를 것만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은 방에서 맨발로 튀어나와 아버지를 마중나갈 것만 같다”며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난다. 판사님과 4.3에 관련된 어르신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한다.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는 판결 후 74년 전 제주에서 양씨의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일을 잊지 말고, 4.3과 관련해 어떤 일들이 제주에서 있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후 “봄은 우리나라에서 제주에 가장 먼저 찾아온다”며 “제주는 풍광도 아름답지만 봄에 온갖 꽃들이 더해지면서 아름다움이 더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 아름다움 속에 참혹함이 있다"며 "아름다움이 현재라면 참혹함은 역사다. 우리는 제주의 현재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이 제주섬에서 최소한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고 살아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을 이었다.

재판부는 이어 4.3수형희생자의 유족들을 향해 “이제는 편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누명이 벗겨진 것을 위로로 삼고 편안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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