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청개구리와 송곳, 첫 번째 이야기
청개구리와 송곳, 첫 번째 이야기
  • 미디어제주
  • 승인 2022.04.04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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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37>

살면서 다섯 번째 대학의 졸업을 앞두고 있다. 대학원까지 포함하면 여섯 번째 고등교육 졸업장이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학사학위로 공부할 학문을 사회복지학과로 선택했었다. 과거 사회문제를 다루던 사회학과는 어느새 슬그머니 ‘사회복지’라는 예쁘고 둥글둥글한 이름으로 바꾸었다. 사람들의 인식도 안경 쓴 비판적인 논객(論客)의 사회학과 교수이미지를 잊고, 어려운 사람을 위하는 착한 학생들이 가는 사회 ‘복지’ 학과로 생각한다.

또한 사회운동을 하던 사회학과 출신의 사람들은, 이제 일반적으로 요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복지시설 종사자로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어찌나 남발했는지, 운전면허 다음으로 활용이 되지 않는 장롱 자격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대학을 다니며 이런 인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사회복지학과로 이름만 바뀌었지, 사회의 문제를 배우는 건 여전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싸구려면 어떤가? 활용을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사회복지학과를 다니고, 사회복지 현장실습을 진행하며 나는 어찌 보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처럼 느낀다.

역사, 정치를 어릴 적부터 배웠지만 현실사회의 모순과 어두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간서치(看書痴), 책만 읽는 바보였다. 당연히 사회의 흐름에 좇아 대학원에서 금융학 석사를 취득하고, 경영컨설턴트 자격증을 취득하며 자본주의를 수긍했다.

하지만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자본주의의 모순과 그에 밀려난 사람들, 그리고 모순과 밀려남의 악순환을 배웠다. 그리고 점차 나는 자본주의의 잘못을 시정하고 나아가 부술 수 있는 논리를 개발 중이다. 결국 나는 사회복지학과에서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나쁜 것만 배웠다.

어찌 보면 나는 청개구리다. 말을 듣지 않는다.

베트남어를 전공했지만 중국어를 좋아한다. 1+1같은 상술(商術)을 싫어하나 경영지도사, 그것도 마케팅 분야로 컨설턴트 자격증을 취득했다. 조용히 책 읽는 것을 좋아하나 몇 년간 밴드에서 드럼을 치고 있다. 주식과 미국 월가의 탐욕을 혐오하지만 금융관련 자격증도 10개 가까이 된다.

좋게 말하면 입체적인 인물이나, 부정적으로 보면 다중인격에 사차원 성격파탄자다. 배우면 배울수록, 익히면 익힐수록 나는 양극단의 첨단(尖端)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이러한 자기모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다 결국 깨달은 바가 있다. 비록 현실의 나는 청개구리지만, 동화의 청개구리와 같이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지 말자, 후회할 인생을 살지 말자고 말이다.

동화에는 교훈이 있다. 후회하지 말자는 것은 이미 초등학교 때 청개구리 동화에서 배운 것 아닌가?

영국의 작가 키플링은 ‘세상엔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결국 지나가게 되어 있는 곳들이 있다.’고 말한다. 유명한 역이나 공항, 거리가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이나 홍대거리 정도일 테다.

인생으로 치면, 결국 지나가게 되는 유명한 장소인 ‘그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사람들이 가기를 희망하는 높은 지위, 되기를 바라는 부자나 엘리트 같은 곳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곳이 아닌 곳’은 어디일까? 아마 남들이 하기 싫고 힘든, 또한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이타적(利他的)인 직업과 노력 등이 될 것이다.

나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그 곳’과 사람이 가지 않는 ‘그 곳이 아닌 곳’을 극단적으로 배우고 경험한 후에야 알았다.

나는 청개구리다.

전문자격증을 따고 여러 개의 학위와 다양한 스펙이 있음에도, 그렇게 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내 능력을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그리고 다른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활용하려는 것이다.

나를 사회화(社會化)시키려는 국가의 피나는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순한 양이 아닌 울 줄 아는 청개구리가 되고야 말았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경영지도사(마케팅),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일상의 조각모음』, 2018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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