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06 (금)
발견하는 기쁨
발견하는 기쁨
  • 정경임
  • 승인 2022.04.01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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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Happy Song] 제9화

제주에 살면서 정말 신나는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고사리 채취다. 햇볕이 쫘악 내리쬐는 들판에는 싱싱한 초록 줄기의 고사리들이 우후죽순 자라고, 억새나 찔레 덩굴 아래 그늘진 곳에는 우중충한 갈색 줄기에 머리 부분에 갈색 털을 잔뜩 묻힌 고사리들이 늘씬한 자태를 뽐내며 자란다. 특히 억새 틈에 몸을 숨기듯 자라는 고사리를 발견하는 기쁨은 진드기가 바짓가랑이에 붙는다 해도, 혹 뱀이 나타나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해도 결코 물러서지 않을 만큼 큰 용기를 준다. 고사리를 발견하는 기쁨은 느껴본 사람만이 안다고, 혼자서 고사리를 따러 다니느냐고 핀잔을 들어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즐거움이다.
 

땅을 뚫고 손 내민 어린 고사리. 정경임
땅을 뚫고 손 내민 어린 고사리. ⓒ정경임

# 고사리에 전하는 감사한 마음

해마다 고사리를 채취하지만, 사실 필자는 채취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필자가 고사리 종자를 뿌린 것도 아니고, 물이나 비료를 준 것도 아니며, 게다가 내 땅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봄철이면 내 땅에 내가 정성스레 키운 고사리를 채취하듯이 흥겹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하다. 그래서 잠깐 떠올려본 아이디어, 필자가 누리는 이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도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주에 귤 체험농장이 많듯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고사리 체험활동을 해보는 것이다. 아마도 관광객들은 고사리 채취에 흠뻑 빠져들고, 덩달아 운동도 하고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마음의 찌꺼기도 풀어놓고,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 고사리 여행으로 행복 하나 추가하시길

수확의 기쁨, 게다가 억새나 찔레 덩굴에 숨어 있는 신비한 고사리를 발견하는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적은 비용을 들여 발견하는 기쁨을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도 고사리 여행상품이 있다. 수확의 즐거움을 아는 40~60대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제주에 고사리 여행을 온다고 한다. 반나절 고사리를 꺾고 숙소에 가서 데치고 말리고 해서 짐 가방 가득 마른 고사리를 소중하게 가져간다. 저렴한 비행기를 타고 왔다면 남는 장사다. 제주 고사리가 얼마나 귀하고 비싼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게다가 자신이 채취하여 말린 고사리니 얼마나 맛있을까.
 

올해 첫 수확 후에 데친 고사리. 정경임
올해 첫 수확 후에 데친 고사리. ⓒ정경임

# 2022년 3월 18일, 올해 고사리 첫 수확

전날 제주에는 밤새 비가 내렸다. 3월 18일 오전까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힘입어 오후 반차를 냈다. 점심식사를 부리나케 하고 들판으로 달려갔다. 필자만의 보물장소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진 덕에 달래가 쑥쑥 자라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은 고사리 싹이 틔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작년 3월 14일에 고사리 첫 수확을 했는데, 올해는 나흘 늦게 들판에 나섰다. 지난해 겨울, 내내 따뜻해 제주가 이제 아열대기후로 자리 잡았나 보다 생각했더니 올 1월 중순부터 추운 날씨에 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그러니 고사리는 어떻겠는가. 싹을 틔우려다가도 지상으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양지바른 들판으로 발 빠르게 올라가보았다. 역시, 찔레 덩굴 속에, 쓰러진 억새풀 속에 갈색 고사리들이 지상에 존재를 드러냈다. 어여쁜 고사리 사진을 찍으랴, 놓치지 않고 고사리를 꺾느랴, 발견의 기쁨을 누리랴, 너무 즐거운 오후였다. 3월 18일은 올 첫 고사리를 발견했으니, 횡재한 날이다. 순하디순한 여린 고사리를 냉큼 데쳐 물에 담가놓는다. 다음날 퉁퉁 불은 고사리에서 물기를 어느 정도 걷어낸 다음 액젓과 들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 뒤 프라이팬에 살살 볶는다. 어느 정도 익으면 깨를 듬뿍 뿌린 뒤 접시에 담을 때 후춧가루를 뿌린다. 매년 이렇게 무친 첫 고사리나물은 필자가 먹는다. 왜? 정말정말 맛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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