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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는 제주도의회, ‘민의의 전당’ 역할 포기했나
갈팡질팡하는 제주도의회, ‘민의의 전당’ 역할 포기했나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2.03.30 1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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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窓] 지방선거 두 달 앞두고 지역 갈등 현안에 책임 회피 급급
혐오표현 방지 조례안 심사보류, 자연체험파크 환경평가동의안 통과 등
제11대 제주도의회가 지방선거를 두 달 여 앞두고 지역사회의 갈등 현안에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30일 오후 열린 제403회 임시회 본회의장 전경. /사진=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제11대 제주도의회가 지방선거를 두 달 여 앞두고 지역사회의 갈등 현안에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30일 오후 열린 제403회 임시회 본회의장 전경. /사진=제주특별자치도의회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403회 제주도의회 임시회가 30일 오후 제2차 본회의를 끝으로 9일간의 회기 일정이 마무리됐다.

지난 3월 9일 끝난 대통령선거에 이어 오는 6월 1일 치러지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열린 임시회였다.

하지만 정작 이번 임시회는 스스로 도민들의 민의를 받들겠다고 다짐했던 도의회의 모습이 맞는지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먼저 지난 29일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심사가 보류된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보자.

고현수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대표발의한 이 조례안은 민주당 소속 의원 12명을 포함해 13명 의원들 공동발의로 제출된 조례안이었다.

소관 상임위인 행정자치위 이상봉 위원장은 “아직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사회적 합의 속에서 조례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어 심사를 보류하게 됐다”고 보류 사유를 밝혔다.

상임위 회의가 열린 당일 도의회 앞에서 반대 단체의 삭발 시위로 충돌이 빚어진 상황 등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정의 행복과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독소조항이 가득하다”는 반대 단체의 황당한 주장 때문에 조례안이 통과되지 못했다는 상황은 납득하기 힘들다.

조례안의 목적이 명시된 제1조 내용을 보자.

‘제주도민 및 제주도에 거주하거나 머무르는 모든 개인이나 집단에게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주거나 개인 또는 집단간 갈등을 유발하여 사회적 해악을 야기하고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혐오 포현을 지양하고, 혐오 표현으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헌법상의 평등권을 실현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이같은 조례안의 취지에 따라 조례에서 금지하도록 한 ‘혐오 포현’에는 우선 ‘개인 또는 집단의 특성을 차별하거나 분리‧구별‧제한‧배제하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해당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한 차별, 폭력, 또는 증오를 선동‧고취하는 행위’가 적시됐다.

또 △개인 또는 집단이 갖고 있는 특성을 이유로 해당 개인 또는 집단을 공개적으로 멸시‧모욕‧위협하는 행위, △개인 또는 집단의 특성을 차별하거나 제한‧배제하는 내용을 유인물, 이미지 등의 형태로 공개적으로 보급하거나 인터넷, 미디어, 통신기기 등을 이용해 게시‧배포하는 행위, △개인 또는 집단이 갖고 있는 특성을 이유로 해당 개인 또는 집단에게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 등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등이 ‘혐오 표현’의 범주에 포함된 내용이다.

백번 양보해서 찬반 갈등에 휩쓸리지 않고 갈등을 조정하고자 하는 것이 도의회 역할이라고 하더라도, 조례안의 어디에서도 반대 단체가 주장하는 ‘가정의 행복과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독소조항’은 찾을 수 없다.

반대 단체의 억지 주장에 가로막혀 도의회가 조례안 심사를 보류한 것이 책임 방기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 제주자연체험파크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서 동의안이 원안 가결된 부분도 마찬가지다.

애초 마을 총회에서 결정된 ‘반대’ 입장이 사업자의 10억원 로비에 ‘찬성’ 입장으로 바뀐 점을 보더라도 해당 사업의 비정상적인 진행 상황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안이야말로 마을 주민들간 찬반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마을 주민들의 뜻을 모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책임을 저버린 것이다.

제주도의회 위원회 및 교섭단체 구성과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표결 결과. /사진=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제주도의회 위원회 및 교섭단체 구성과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표결 결과. /사진=제주특별자치도의회

여기에다 임시회 마지막날인 30일 오후 2차 본회의에서는 도의회 내부적으로 상임위별 소관 업무를 조정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제주도의회 위원회 및 교섭단체 구성과 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안이 안건 처리 순서가 바뀌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진 끝에 결국 부결되기에 이르렀다.

불합리한 상임위 소관 업무를 조정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개편안이 의원들간 의견이 모아지지 않은 채 상정됐다가 안건 처리가 불발된 것이다.

지난 3월 9일 치러진 대선이 끝나자마자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의원들의 다급한 상황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의원들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걸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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