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02:42 (토)
4.3 특별법 개정 후 열린 첫 직권재심 "40명 피고인, 전원 무죄"
4.3 특별법 개정 후 열린 첫 직권재심 "40명 피고인, 전원 무죄"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2.03.29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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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3 희생자에 대한 첫 직권재심 재판에서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이에 유족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이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개정된 4.3특별법에 근거해 열린 첫 직권재심 재판에서 40명의 피고인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3월 29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검찰이 청구한 직권재심에 대한 첫 재판을 열고 피고인 고학남 씨 등 40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반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죄인’의 오명을 지울 수 없던 4.3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된 순간이다.

40명 피고인들은 제주4.3 당시 내란죄,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누명을 쓰고 ‘죄인’이 된 이들이다. 이들의 억울함을 풀고자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고, 이는 제주4.3 관련해 열린 ‘첫 직권재심 재판’으로 이어졌다.

직권재심 재판이기에, 검찰과 변호인 측 모두 피고인들의 ‘무죄’를 주장했다.

우선 직권재심을 청구한 검찰 측은 판결에 앞서 “직권재심으로 부당한 잘못을 바로잡고,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며 “희생자 명예가 회복되고, 유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위로되길 바란다”라고 재판부에 청했다.

변호인 측 또한 “군경에 연행되어 죄를 선고받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4.3 희생자,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을 모습을 생각하면 유족은 막막할 따름”이라며 “평생 한을 품고 살아왔는데, 그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기를 간곡히 기대한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재판부는 40명 피고인 모두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번 선고가 “최초로 이뤄진 직권재심 재판의 첫 사건”인 점을 상기하며, “그 의미가 남다르다”며 유족들의 사연을 청해 들었다.

유족이 재판장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발언하는 모습.

주목할 점은, 이날 재판을 통해 가족의 ‘죄명’을 처음 알았다는 유족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유족들은 4.3 당시 끌려간 희생자의 생사는 물론, 가족이 '죄인'이 된 이유조차 70여년 세월 모르고 살았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유족 양상호 씨는 “과거 고모분이 폭도한테 잡혀간 것으로만 알았지, 불법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며 “우리 조부모께서는 항상 8월만 되면 생일상을 차려 놓고 ‘밥은 머겅 댐겸시냐, 어디 아픈덴 어시냐’ 하고 말하셨다”는 사연을 전했다. 그러면서 양 씨는 “지금이나마 직권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어 (고인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했다.

유족 허기인 씨는 “저희 아버지는 28살에 끌려갔다고 들었다”며 “오늘 와서 (아버지의 죄명이) 내란죄라고 하니까 충격을 받았다. 저의 아버지는 내란죄 할 분이 아니다. 오늘 무죄라고 하니까 모든 한이 풀리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유족 김화중 씨는 “저희 아버지는 처갓집에서 밭일을 하다가 끌려가셨다”며 “오늘에야 알았다. 그게(아버지가 끌려간 이유가) ‘내란죄’라는 것을”이라고 말했다.

또 유족 김영철 씨는 “4.3때 끌려간 기훈이 삼촌… 열 여덟 나이에 일하러 나갔다가 끌려갔다”며 “자식을 잃은 외할아버지는 밤중이라도 ‘기훈이냐’ 물어보면서 자주 외삼촌을 찾았다”는 사연을 전했다.

유족이 재판장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발언하는 모습.

이날 재판에는 4.3유족이자, 변호인 자격으로 참석한 이의 먹먹한 사연도 공유됐다.

4.3유족 당사자인 변호인은 큰아버지가 4.3 당시, “군법회의로 인해 희생자로 결정됐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큰아버지에 대한 무죄 판결문을 갖고 묘를 찾아가 술 한 잔 따라드리고 싶다”며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국선변호인으로 서게 될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그는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직권재심 수행단과 재판장님의 헌신에 감사드린다”는 인사도 덧붙였다.

앞으로 계속해 진행될 4.3 희생자들에 대한 직권재심 재판. 이를 염두한 듯 재판부는 시 구절을 인용해 이날의 ‘무죄 선고’가 가지는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아래 내용이다.

다시 봄이다.

되돌릴 수 없음을 알기에 꽃피는 봄에도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살암시민 살아진다’는 말처럼 삶이 아무리 험해도 살아있는 한 살기 마련이다.

그만큼 삶이 소중함에도 피고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 희생되었고 목숨마저 빼앗겼다.

피고인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지만...”

한편, 이날 오후 2시부터는 피고인 고태명 할아버지 등 33명에 대한 특별재심이 예정되어 있다. 특별재심은 직권재심과 달리, 4.3희생자의 유족 혹은 피해 당사자가 청구하며 이뤄지는 재심 재판이다. 기사는 특별재심 진행 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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