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02:42 (토)
네가 하면 '불법', 내가 하면 '합법'?
원칙은 먼저 어기면서, 너만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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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7.11.01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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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제주시 '현수막과의 전쟁'의 '일구이언'

"행정기관에서 설치한 도심지 도로변 현수막도 모두 철거하겠다."

지난 8월 일명 '도로변 현수막과의 전쟁'을 선포한 제주시 당국이 공식 발표한 내용 중 하나다. 당시 제주시는 도심지 도로변에 무질서하게 설치된 현수막에 대한 단속 및 정비활동을 벌이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사진과 함께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

이 내용은 당시 고경실 부시장이 일본 도시디자인에 대해 시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해 설정된 급조된 행정시책이다. 일본의 경우 길거리에 현수막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반면, 제주시내 거리에는 각 건물마다 현수막이 즐비해 도시환경 차원에서 이를 정비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제주시는 품격 높은 도시경관 위해 지정게시대 이외의 장소에는 행정광고물 게시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행정기관에서도 도로변 건물 등에 현수막을 게재하지 않을테니, 일반 상가나 학원 등에서도 절대 현수막을 내걸어서는 안된다는 엄포였다.

제주시는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듯, 길거리에 내걸렸던 행정기관의 현수막 60장을 수거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는 각 학원건물 등을 상대로 현수막을 바로 철거할 것을 종용하고 현수막 368장을 불법 현수막으로 규정해 강제 수거했다.

현수막이 내걸리는 학원을 찾아다니며 엄포를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앞으로는 행정기관의 현수막도 절대 내걸지 않을테니 너희들도 현수막을 내걸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주시 당국의 논리였다.

이 조치를 통해 행정기관이 솔선수범해 행정 광고물을 자진 정비함으로써 불법 광고물 정비를 위한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올해말까지 건물의 벽면에 부착된 불법 현수막을 포함하여 불법 광고물을 완전정비해 불법 현수막 제로(Zero)화 거리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런데, 최근 제주시내 주요 건물에는 이러한 제주시 당국의 '당당한 포부'를 무색케하는 현수막들이 잇따라 내걸렸다. 사실 이 현수막은 UCLG 제주총회와 관련한 현수막이다. UCLG 제주총회가 갖는 의미나 행사의 중요성을 깍아내리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당연히 홍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현수막의 부착은 제주시 당국이 말한 '현수막과의 전쟁'에 있어 어떻게 설명될지가 무척 궁금하다. UCLG 제주총회 현수막을 왜 하필 일반 대형건물에 내걸었는지, 지정게시대 사용 또는 다른 방법의 게재도 얼마든지 가능했는데 왜 하루아침에 방침을 바꾸었는지, 어떠한 해명이나 설명도 없다.

UCLG 제주총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에 대해서는 정말 기쁘게 생각되지만, 행정당국의 '일구이언'은 신뢰성에 의문을 준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지정게시대 외에는 행정기관의 현수막도 게재하지 않겠다는 제주시당국의 외침이 불과 3개월도 되지 않아 꼬리를 내린 것이다.

이러한 현수막은 제주시청 인근 대형건물과 신제주 등에 내걸렸다.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은 '합법적' 또는 '불가피했다'고 설명할 것인가?

사실 현수막 무질서를 초래한 것은 일반 시민들의 책임도 있지만, 사실 행정기관의 잘못도 크다. 그동안 길거리에 이런저런 현수막을 내걸었던 것도 행정기관이 가장 많았다. 일반 시민의 현수막은 행정당국의 압력으로 며칠 지나지 못해 강제철거되곤 했다.

행정기관과, 행정기관에 우호적인 단체에서 내건 '도정 협조 현수막'인 경우 대부분 묵인해왔다. 잘못은 행정기관부터 해놓고, 어느날 느닷없이 '불법 현수막'이라는 적반하장식 논리를 펴는 제주시 당국의 행태는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다.

더욱이 '현수막과의 전쟁'을 발표하기 앞서, 제주시 해당부서에서는 해군기지 관련 도정을 비판하는 현수막을 제작한 업체에까지 전화를 걸어 그런 표현이 들어있는 현수막을 제작해주면 의뢰자와 함께 처벌받을 줄 알라는 식의 협박까지 했던 사실이 드러나 그 순수성에 의문을 주고 있다.

첫 출발이 선진도시디자인 차원인지, 아니면 도정을 비판하는 현수막 게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인지 그 취지조차 헷갈리게 하고 있다. 행정기관의 현수막은 절대 게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최근의 국제행사와 관련된 현수막이 곳곳에 부착되고, '감귤'과 관련한 캠페인성 현수막이 일부 건물에 부착돼 있는 것은 또 뭔가.

제주시 당국이 지난 8월 스스로 행정기관의 현수막도 절대 길거리에 내걸지 않겠다고 발언을 했으면서 그 약속을 먼저 어기는 것은 또 무슨 이치인가. 행정당국이 '일구이언'하면서, 어떻게 '현수막과의 전쟁'을 외칠 수 있는가. 앞으로 제주시당국의 현수막 철거활동을 하면서 일반 상가나 학원가에는 어떻게 설명할지가 궁금하다.

<윤철수 대표기자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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