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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땅, 이젠 ‘광주폴리’가 사람들을 부른다
민주화의 땅, 이젠 ‘광주폴리’가 사람들을 부른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2.04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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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지역을 말하다] <5> 광주와 건축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은 건축이라는 틀에서 이뤄진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건축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시대를 만들어낸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건축은 그 시대의 결정(結晶)이다고 외친 건 건축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한다. 시대의 결정을 탐구하려고 그동안 숱한 건축 기획을 하며, 건축가들을 만나곤 했다. 기억 나는 건축가들과의 만남을 들라면 <나는 제주건축가다>를 꼽겠다.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의 젊은 건축인들이 이야기하는 제주를 담았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제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의 목소리를 담았으나, 다른 지역 건축가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점이다. 마침 기회가 왔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한국예총 제주도연합회(회장 김선영)와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회장 문석준)가 공동 주관하는 ‘2021 6대 광역시+제주 건축교류전1211일부터 16까지 제주에서 열린다. 제주도가 아닌, 6대 광역시의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지역의 특성을 살펴보고, 각 지역의 건축가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편집자 주]

 

옛 전남도청 주변 살려내 ‘항쟁의 기억’ 보존

광주폴리는 4차례 건축가들이 참여해 만들어

철도 사라진 부지를 녹지공간으로 조성하기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1989년이었는지 1990년이었는지 확실치 않다. 전대협 신임 의장 출범식이 열리는 전남대를 찾은 것만은 확실하다. 광주 분위기는 긴장감 자체였다. 1987년 이후였지만 그때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살벌함’이다.

광주의 살벌함을 말하라면 5·18민주항쟁이 일어난 그때를 기억해야 한다. 1980년 봄, 학살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제주4·3을 겪었던 이들이라면 그 학살의 분위기를 안다. 동생이 죽고, 아버지가 죽고, 형과 누나들이 죽어간 그 기억들을.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주인공 동호와 정대가 살던 광주 중흥동의 마룻바닥을 기억한다.

기억을 잊지 않고 살리는 작업은 <소년이 온다>처럼 글이라는 소설을 통해서도 나타나지만, 눈으로 보이는 건축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나타난다.

광주는 기억을 눈으로 보게 만든다. 민주항쟁이 있던 옛 전남도청과 주변은 기억의 장소로 환생했다. 총탄 현장은 당시의 기억을 부르고, 건축물도 온전하게 그 기억을 지닌다. 그걸 보면 제주도는 왜 관덕정 주변의 4·3 현장을 없앴는지 모르겠다. 건축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문자로 남긴다고 하더라도, 건축물이 지닌 기억을 모두 담아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땅, 광주는 예향의 도시라고 불리지만 무엇보다 오가는 이들의 장소이다. 전남 지역의 가장 큰 도시였기에 어찌 보면 유목민의 도시 성격을 지닌다. 유목민의 도시건축은 다소 파괴적이다. 원주민을 몰아내고 승자로 등장하곤 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옛 전남도청 주변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으로 만들어내면서 광주만의 이미지를 찾아냈다는 점이 아닐까.

광주의 키워드인 무등산 자락. 미디어제주
광주의 키워드인 무등산 자락. ⓒ미디어제주

그렇다면 건축으로 볼 때, 광주의 색깔과 키워드는 무엇일까. 대표적인 키워드는 무등산이다. 광주 동쪽에 앉은 무등산은 제주도 중심에 있는 한라산 역할을 한다. 광주에서 동쪽을 응시하면 마주하게 되는 무등산(無等山)은 이름이 말하듯 ‘등급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는 뜻을 가졌다. 그만큼 광주 사람들에겐 소중한 어머니의 산이다. 무한한 가치 영역을 지닌 무등산은 소중한 키워드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등산 조망을 가리는 일은 흔하다. 도시계획 측면에서 광주 어디서든 무등산을 바라보게 만든다면 진정한 ‘어머니의 산’이 될 수 있을텐데.

제주도의 색을 들라면 검은 현무암이 있고, 푸른 바다가 있고, 녹음의 오름이 있다. 제주의 색은 이렇게 설명이 가능한데, 광주는 어떤 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이지만 육지부 대게가 그렇듯 노란색에 갈색이 입힌 ‘황토색’도 광주의 색깔로 만들어볼 수 있다. 그 색을 구현한 건축물도 있다. 광주 광산구 영산강변에 있는 ‘첨단전천후배드민턴장’은 검은 사각형 지붕에 난 창을 따라 빛이 들어오고, 그 빛이 벽에 떨어지고, 다시 벽을 마주한 빛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노출콘크리트 마감이지만 지역에 맞는 황토의 느낌을 찾아 색을 입혔다.

광주 광산구에 있는 첨단전천후배드민턴장. 지역의 색을 잘 드러내고 있다. 미디어제주
광주 광산구에 있는 첨단전천후배드민턴장. 지역의 색을 잘 드러내고 있다. ⓒ미디어제주

특정 사례를 통해 광주를 이야기할 만한 건축물도 있지만, 광주는 뭐니 뭐니해도 ‘폴리(folly)’로 대변된다. 폴리는 조형물이지만, 단순한 조각 형태의 조형물은 아니다. 도심에 툭 튀어나온 조형물이 있는가 하면, 사람과 소통 가능한 기능성을 지닌 폴리도 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라빌레트 공원에 가면 수많은 폴리를 접하게 되는데, 폴리는 도시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요소도 된다. 옥스퍼드사전은 폴리를 “건축가에게 어리석다고 여겨지는 값비싼 구조물의 통칭”이라고 설명하지만, 폴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건 분명하다.

광주는 비엔날레 도시로 재탄생했으며, 의도적으로 폴리를 세우기 시작했다. 세계적 건축가들이 참여하며 도심 곳곳에 폴리를 구축했다. 지난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일환으로 ‘광주폴리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폴리 프로젝트가 도심에서 진행된다. 광주에 들어선 폴리는 선도 있고, 선과 면이 어우러진 폴리도 있다. 어쨌든 폴리는 민주화의 땅이라고 불리는 광주에 색다른 도시의 느낌을 선사했다. 문제는 주변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폴리도 있다는 점이다. 상징성은 있지만 도시의 부조화라는 측면에서 재고할 시점이긴 하다.

광주폴리는 지금까지 4차례 진행됐다.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가 관여를 하고 있고, 매번 프로젝트 매니저를 선정해서 폴리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프로젝트 매니저로 건축가를 지정하고, 폴리를 완공하고 있다. 광주폴리는 지난 2019년 상표로도 등록됐다. ‘광주폴리’가 이른바 고유명사로서 이름을 가지게 됐다.

광주 도심에 있는 광주폴리 중 하나. 미디어제주
광주 도심에 있는 광주폴리 중 하나. ⓒ미디어제주

민주화의 발길을 지닌 광주, 비엔날레를 여는 도시 광주, 그러면서 광주는 자연스레 5·18의 도시가 되고, ‘광주폴리’라는 상품을 지닌 도시로 알리고 있다. 광주는 여기에 덧붙여 ‘광주폴리 둘레길’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4차례에 걸쳐 설치된 광주폴리 작품을 연결하는 작업이다. 하나 둘 단편적으로 보이던 광주폴리를 엮어서 문화예술이라는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민주와 인권도시 광주를 옛 전남도청이 있던 ACC와 연계하는 작업이 바로 ‘광주폴리 둘레길’이기도 하다.

광주는 생각 외로 걷기에 좋은 도심을 지녔다. 광주엔 옛 철도가 다니던 폐선 부지를 시민들에게 돌려준 사례가 있다. 바로 경전선이다. 경전선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철도였고, 광주까지 이어진 경전선 일부 구간을 없애면서 새로운 길이 탄생했다. 경전선 폐선 부지를 녹지공간으로 만들자는 의지는 시민에게서 나왔다. 시민단체들이 녹지공간 조성 여론을 확산시켰고, 시민들도 화답했다. 광주 도심을 가로지르는 10km에 달하는, 면적 4만8000평의 선형 녹지공간이 만들어진 곳은 드물다. 지금은 ‘푸른길’이라고 불린다. 시민들은 여유 있게 걸으며 도심을 만끽한다. 푸른길에서 조금 벗어나면 광주폴리도 있고, ACC 등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광주에서 배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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