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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변호사 살인사건 '진실찾기' 시작... 피고인, "나는 리플리증후군?"
22년 전 변호사 살인사건 '진실찾기' 시작... 피고인, "나는 리플리증후군?"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1.11.17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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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변호사 살인사건, 살인교사 혐의 피의자 2차 공판
피의자, “살인교사 가담 안 했다” 주장, ‘리플리증후군’ 호소

사건 쟁점은? 피고인과 검찰, '엇갈리는 주장' 입증 가능 여부

22년 전 변호사 살인사건, 살인교사 혐의 기소 피의자
“살인 혐의 가담한 적 없어” 주장하며 ‘리플리증후군’ 호소

1999년 11월 5일 오전 제주시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 이승용 변호사에 대한 살인교사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A(55.사진 가운데 검은색 옷)씨가 지난 18일 제주국제공항을 나서고 있다. © 미디어제주
1999년 11월 5일 오전 제주시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 이승용 변호사에 대한 살인교사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A(55.사진 가운데 검은색 옷)씨가 지난 8월 18일 제주국제공항을 나서고 있다. ©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지난 1999년 제주에서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과 관련, 살인교사 혐의로 재판장에 선 A(55)씨가 범행을 부인하며, 스스로를 ‘리플리증후군’ 환자라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리플리증후군’이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며 스스로 지어낸 거짓말을 진실로 믿어버리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한다. A씨는 자신이 방송에서 진술한 내용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자신에게 씌워진 살인교사 혐의를 반박하려 ‘리플리증후군’ 병명을 꺼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까진 A씨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진실 여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A씨가 실제 리플리증후군을 앓는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혐의에서 벗어날 근거가 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사건의 실타래는 쉬이 풀리기 어려울 전망이다. 검-경이 A씨의 혐의 입증을 위해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A씨가 지목한 살인의 직접 관련자 2명 모두 이미 사망 상태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11월 17일 오후 3시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A씨에 대한 2차 공판을 진행했다. A씨는 1999년 이승용 변호사를 살인교사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2020년 6월 2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하며, 자신이 조직폭력배 두목의 지시를 받고 범행을 계획, 같은 조직원 B씨에게 "피해자를 손 좀 봐줘라"라는 취지로 범행을 교사했다 증언한 바 있다. 

A씨에 따르면 조직원 B씨는 피해자에게 접근, 다리에 상처만 내려고 했으나 피해자와 몸싸움하는 과정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이 일로 조직폭력배 두목은 A씨를 통해 3000만원을 당시 B씨에게 전달했단다. 다만, 이는 A씨의 주장일 뿐 당사자들이 모두 고인이 된 상황이라 사실 확인이 어려운 상태다.

문제는 방송 이후였다. 수사가 시작되고,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자 A씨는 방송에서 진술한 내용을 번복하기 시작한다. 지난 1차 공판에서는 아예 범행을 부인하기도 했다. A씨는 방송에서 진술한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리플리증후군’ 때문에 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17일 열린 2차 공판 자리에서 재판부는 A의 주장, 특히 '리플리증후군'과 관련한 주장에 대해 따져 물었다. A씨가 ‘리플리증후군’ 증상을 인지한 경위는 무엇인 지, 이에 대한 진단서가 있는 지 등 관련 질문이다.

이에 A씨는 “인터넷 검색”으로 리플리증후군을 접했으며, 해당 병명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실은 없다고 전했다. 다만, A씨는 공황장애 약을 장기간 복용한 사실은 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친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일, 당시 교제하던 여성이 하지 않아도 될 거짓말을 되풀이했던 일 등이 겹쳐 심리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리플리증후군’ 사실을 인지했고, “그 증상(리플리증후군)에 대해 전문지식은 없지만, 방송을 통해서 들었던 내용도 있고 해서 (리플리증후군 증상을) 찾아보게 됐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등 매체를 통해 얻은 정보로 스스로를 ‘리플리증후군 환자’로 진단했다는 진술이다.

이에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전문의 소견서 등)가 있다면 추후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다음 공판에서 관련 내용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 공판 시작되자 진술 번복
결국 방송 관계자 증인으로 나서

이날 공판에서는 검찰 측의 증인 신문이 장시간 진행됐다. 증인으로는 사건을 직접 취재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작진 C씨와 D씨가 직접 출석해 증언했다.

증인 C씨는 사건에 대한 최초 제보를 받았고, 피해자(이승용 변호사) 유족 측에 취재를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부정적인 답을 받아 취재를 멈췄노라 증언했다.

이어 증인 D씨는 C씨의 취재 중단 이후, 사건 내용을 추후 공유받아 취재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D씨는 피고인을 만나러 직접 캄보디아로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해 방송 송출한 직접적인 관계자다.

증인 D씨는 2019년 캄보디아 모 호텔에서 피고인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피고인에게 출연료 500달러와 교통비(택시비)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D씨에 따르면 해당 출연료는 그에 따른 영수증 작성과 세금 신고까지 완료되어 통상적으로 지급되는 범위에 해당한다. 또 당시 피고인은 경제적 상황이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날 검찰의 증인 신문은 피의자가 방송에서 진술한 내용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지, 방송 취재 과정에 강압적인 부분은 없었는 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는 인터뷰가 실제 방송에 송출되는 것은 자신의 동의 이후 이뤄지는 것으로 알았다며, 방송 사실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바 있다. 자신(A씨)의 인터뷰를 방송에 내보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날 참석한 증인 측에서는 피의자가 방송 송출에 대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거라고 진술했다. 증인 D씨 진술에 따르면, 피의자는 방송 인터뷰인 점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인터뷰 당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 또한 확인했단다.

이에 사건의 쟁점은 크게 네 가지로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이 진술을 번복한 이유

△검찰 기소 사실과 피고인 주장이 엇갈리는 바, 이에 대한 진실 공방

△피고인의 정신병(리플리증후군 등) 진단 결과

△검찰이 피고인 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지 여부

한편, A씨가 체포된 것은 피해자 사망 후 22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다. 제주 경찰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에 출연한 A씨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에 착수, 2020년 7월 1일 A씨를 입건한 뒤, 체포영장을 받아 캄보디아에 있는 A씨 검거를 위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1년 6월 23일, 캄보디아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던 A씨는 현지 경찰에 불법체류자로 검거돼 8월 5일 추방이 결정된다. 이후 A씨는 한국으로 송환되어 지난 8월 18일 인천공항에 도착, 대기하던 경찰에 검거돼 이틀 뒤(8월 20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해당 사건은 발생 15년이 넘어 제주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 했지만, A씨가 해외에 머물던 기간이 있어 혐의가 소명되면 처벌이 가능하다는 경찰 판단이 내려졌다.

해당 사건이 벌어진 1999년 11월 살인 범죄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지난 2014년 11월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다.
하지만 경찰은 A씨가 해외에 머물러 있던 기간의 경우 공소시효가 중단되며, 그 기간이 8개월 26일 이상이라면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된 개정 형사소송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혐의가 소명된다면 처벌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A씨에 대한 다음(3차) 공판은 12월 8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에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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