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뼈, 돌
어머니의 뼈, 돌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11.0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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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Happy Song] 제4화

이윤기 작가의 <그리스로마신화>에는 ‘대홍수’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인간의 오만이 극에 치닫자 제우스는 인간세상을 그야말로 물바다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대홍수 가운데 ‘의롭고 믿음이 깊은’ 데우칼리온과 ‘죄 지은 일이 없는’ 그의 아내 퓌라가 살아남는다. 이 부부는 더할 나위 없이 현명하고 이치에 밝은 여신인 ‘테미스’에게 “어찌하면 인류가 절멸한 이 땅의 재난을 수습할 수 있을는지요.…환란을 당한 저희들을 도와주소서.” 하고 빌었다. 테미스 여신은 “…크신 어머니의 뼈를 어깨 너머로 던지거라.” 여신의 뜻을 바로 알아채지 못한 부부는 잠시 망설이지만, 이윽고 “여신의 뜻이 이르시는 어머니는 곧 대지일 것이요, 어머니의 뼈는 곧 돌이 아닐는지…. 여신께서는 어깨 너머로 돌을 던지라고 하신 것일 게야.”라고 알아듣는다. 이윽고 데우칼리온과 퓌라가 어깨 너머로 돌을 던지자 각각 남자와 여자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이윤기 작가는 “우리 인간들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해내는 강인한 족속인 까닭”을 이 신화에서 찾고 있다.

제주에서 쉽게 만나는 돌담. 정경임
제주에서 쉽게 만나는 돌담. ⓒ정경임

# 정겨운 제주의 돌담

제주에는 돌로 쌓은 돌담이 무지하게 많다. 밭에 놓인 돌담은 밭담, 산이나 들에 묘를 쓰고 묘지 둘레에 쌓은 돌담은 산담이라고 한다. 관광지에도 돌담과 동자석, 돌하르방, 방사탑 등 돌로 만든 갖가지 구경거리가 풍성하다. 심지어 일반음식점 벽에도 ‘돌담 너머 동백꽃을 피운’ 포인트 벽지를 붙일 정도이다. 제주의 돌담은 골목길마다 그득하다. 관광객이 많이 오가다 보니 제주에는 큰길이 뻥뻥 뚫려 있지만, 큰길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돌담이 줄지어 있다. 어떤 집은 돌담 사이사이에 다육이를 심어 키우고, 어떤 집은 능소화를 늘어뜨려놓고, 또 어떤 집은 담쟁이넝쿨로 멋들어지게 돌담을 꾸며놓는다. 관광지인 일출랜드 미천굴 입구의 돌담에는 실화백이 자리 잡고 있다.

# 산담과 밭담, 올렛담 등으로 지칭되는 돌담

밭담은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 흙과 씨앗이 날아서 흩어지는 것을 막고, 소유지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제주의 밭담 길이가 10만 리, 약 4만 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역시 ‘돌 부자’ 제주다. 반면에 산담은 점점 그 자리를 잃고 있다.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밭에 떡하니 놓인 무덤과 산도 아닌 들판의 낮은 돌담 안에 놓인 무덤을 보고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사실 산담의 뜻을 몰랐을 때는 산에 돌담을 쌓은 이유가 궁금했다. ‘산짐승들이 인가로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돌담 너머로 인가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산신령의 활동공간을 돌담 너머로 제한하려는 걸까?’ 하며 제주 사람들의 현실성과 공간감각을 상상해 보았다. 김형훈 작가의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를 보면 나의 상상력은 완벽하게 오답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무덤을 만드는 제주인들은 무덤을 단순한 봉분으로 여기지 않았다. 무덤을 만들며 ‘산을 쓴다’고 표현할 정도로 죽음은 큰 사건이었다. 그 무덤을 두른 돌담은 그래서 ‘산담’이라 부른다.”

제주의 돌은 어머니의 뼈나 다름없다. 정경임
제주의 돌은 어머니의 뼈나 다름없다. ⓒ정경임

# 제주의 그 많은 돌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이곳저곳 제주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궁금해질 것이다. 어쩌면 필자만 궁금했을 수도 있겠다. 집담과 밭담, 산담은 물론 바닥돌까지, 미술관이든 민가든 돌담은 흔하디흔하다. 그런 것을 보면 이제는 돌도 귀해지지 않았을까 의문도 든다. 도대체 그 많은 돌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그래서 한때 알고 지냈던 조경하는 분께 여쭤봤다. “돌을 어디에서 구해 담장까지 만들 수 있나요?” 말하거나 생각할 거리도 못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들판에 가면 수두룩합니다. 흙만 파내면 돌밭이거든요.”

세상에나 만상에나, 땅속에 돌이 파묻혀 있단다. 물론 밭을 일구려면 돌을 파내는 수고로움이 엄청 들겠지만, 돌 덕분에 삼다수가 가장 맛있는 물이 되었고, 돌 덕분에 멋들어진 담장을 쌓고, 돌 덕분에 덜 화려한 식물들이 생명력을 더하며 눈길을 끄는 것 같다. 어머니의 뼈인 돌이 여전히 제주의 땅속에 묻혀 있다. 제주의 돌들이 ‘순하고 정의로운’ 인간으로 탄생한다면 ‘유토피아 제주’가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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