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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이 세계유산에서 사라지면 한라산도 사라져”
“성산일출봉이 세계유산에서 사라지면 한라산도 사라져”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0.20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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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창] 세계유산에 무지한 제주특별자치도

야간에 강한 불을 밝히려고 42억원 투입 계획
제대로 보호하지 않으면 유산에서 ‘삭제’되기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참으로 믿기 힘든 뉴스가 보인다. 때문에 간만에 칼럼에 손을 대게 됐다. 보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뉴스(미디어제주 2021년 10월 20일자)인데, 그걸 보고 있자니 은근히 열이 난다. 몸에 열이 오르는 게 아니라, 화가 치민다.

따끈따끈한 뉴스는 세계유산과 관련된다. 제주도는 다들 알다시피 세계유산의 섬이다. 성산일출봉도 세계유산의 일부이다. 뉴스를 보니, 야간에 성산일출봉에 강한 빛을 쏘았더니 호응이 있어 정기적으로 강한 빛을 유산을 향해 들이밀겠다고 한다. 그냥 빛이 아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강한 빛이다. 3만7000루멘의 빛이란다. 촛불 1개가 1루멘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감은 잡힌다. 성산일출봉 한쪽 암벽에 3만7000개의 촛불을 밝힌다고 생각해보라. 성산일출봉이 멀리서도, 아주 밝게 보이겠다.

성산일출봉 여명. 제주관광공사, Visitjeju.net
성산일출봉 여명. ⓒ제주관광공사, Visitjeju.net

야밤에 성산일출봉을 밝게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니라 세계유산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란다. 우선 헛웃음이 나온다. 대체 누구 발상인지 모르겠으나, 세계유산의 정의를 알고서 일을 벌이는 것인지. 아니면 세계유산을 모르는가? 무식인가, 무지인가. 그게 아니라면 로비라도 받았나?

세계유산은 등재되기도 어렵거니와, 관리는 필수 항목이다. 한번 등재되면 ‘유산’이라는 타이틀을 그대로 지닐 수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절대 그렇지 않다. 세계유산에서 박탈되기도 한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고, 보호 관리에 대한 정책 결정을 내리는 기구로 ‘세계유산위원회’를 두고 있다. 위원회는 세계유산 등재 권한도 있지만 관리가 부실한 세계유산을 없애는 결정도 내린다. 세계유산 목록에서 아예 없애버리는 ‘삭제(delete)’ 결정 권한이 세계유산위원회에 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2007년 오만의 ‘아라비아 오릭스 보호지역’을 삭제했고, 2009년엔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을 세계유산 목록에서 없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올해 7월 중국에서 열린 제44차 회의에서 영국 리버풀의 ‘해양산업도시’를 유산에서 삭제시켰다. 영국으로서는 치욕이다. ‘아라비아 오릭스 보호지역’은 오만 정부가 보호지역을 축소하면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유산 지역에 다리를 만드는 바람에, ‘해양산업도시’는 항구의 대규모 재개발로 세계유산 목록에서 빠지게 됐다.

어쩌면 다음 차례는 제주도가 될 수도 있다. ‘성산일출봉에 빛을 쏘는 게 뭐 문제냐’고 항변을 하겠지만, 강한 빛은 생태계를 교란시킨다. 빛을 쏘겠다는 의지로 활활 타오르는 제주도는 지난 6월 문화재청에 문화재 현상변경을 요구한 모양이다. 문화재청은 이를 불허했으나, 제주도는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고 한다. 문화재청이 하지 말라고 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밤의 강한 불빛은 동식물상에 변화를 주게 되고, 세계유산 보전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올해 7월 회의를 열고 영국 리버플의 '해양산업도시'를 유산 목록에서 삭제했다. 사진은 세계유산위원회 관련 회의 자료. 미디어제주
세계유산위원회는 올해 7월 회의를 열고 영국 리버플의 '해양산업도시'를 유산 목록에서 삭제했다. 사진은 세계유산위원회 관련 회의 자료. ⓒ미디어제주

제주도가 여기에 투입할 돈은 42억원을 넘는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은데, 제주도는 한가하게도 ‘세계유산을 삭제할’ 빛에만 관심이 있는가 보다.

제주도가 간과하는 게 또 있다. 성산일출봉이 자칫 잘못되면 제주도가 지닌 세계유산 전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유산위원회가 제주의 자연유산에 대해 등재 결정을 내린 때는 2007년이다. 제주도는 자연유산의 4가지 기준 가운데 2가지 기준을 충족시켰으며,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제주의 자연유산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영문명 : 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됐다. 한라산이라는 이름이나, 성산일출봉이라는 이름이 직접 들어가진 않았다. 유산 이름이 내세우는 건 크다.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을 드러내지 않고 ‘화산섬’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한 데는 제주의 자연유산이 연속 유산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연속 유산은 하나에 상처가 생기면, 다른 유산에도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만일 성산일출봉이 세계유산에서 사라진다면 한라산이라고 버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제주도 관계자는 ‘활용’을 제시하는데, ‘잘못된 활용’은 화를 부른다. 제주연구원에 타당성 정밀검토를 의뢰했다고 하는데, 그걸 돈을 주면서 연구를 할 사안인가. 만일 제주연구원이 “타당하다”고 결정을 해주면, 제주도는 정말 사업을 하겠다는 발상인가. 세계유산에서 ‘삭제되는 길’을 여는 행위이며, 자칫 자손대대로 욕먹으며 살 수도 있다. 정말 그걸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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