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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토록 휠체어농구를 즐기면서 살고 싶어요”
“평생토록 휠체어농구를 즐기면서 살고 싶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0.07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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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패럴림픽] ⑤휠체어농구 김호용

우여곡절을 겪으며 열린 패럴림픽.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올해 대회는 4년이 아닌, 5년을 기다려야 했다. 1년을 더 기다리며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선수들은 지난 8월 18일부터 9월 6일까지 20일간 치러진 열전을 아직도 몸에서, 마음에서 기억한다. <미디어제주>는 ‘나와 패럴림픽’을 주제로 올해 패럴림픽에 참가한 제주 출신 선수들의 도전기를 싣는다. [편집자 주]

 

2000년 시드니에 이어 도쿄 무대 오른 ‘베테랑’

25년간 태극마크 “이젠 후배들에게 넘겨줄 때”

“비장애인과 장애인 어울리며 스포츠를 즐기길”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베테랑은 아무에게나 붙여주지 않는다. 베테랑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는 수식어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에 ‘오랜 경험’이 녹아들어야 베테랑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올해로 나이 쉰이 된 휠체어농구 김호용(제주특별자치도휠체어농구단) 선수에겐 ‘베테랑’이라는 단어가 제격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20대부터 지천명의 나이가 되기까지 휠체어농구와 그는 한 몸이어서다.

“국가대표로는 올해 패럴림픽이 마지막이었어요. 이젠 국가대표도 동생들에게 물려줄 때가 되었죠. 국가대표로 죽기 살기로 했는데, 이젠 즐기면서 운동을 하고 싶어요. 그동안 집에도 미안하고요.”

그는 농부의 아들이다. 경남 창녕이 그의 고향이다. 부모님은 양파와 고추, 마늘 농사를 지으며 그를 키웠다. ‘농부의 아들’에서 세계적 대회에 출전을 하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출세했다”며 거들기도 한다. 그러나 ‘출세’는 노력의 대가일 뿐이다.

김호용 선수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휠체어농구를 접했다. 휠체어농구를 하던 생활체육인과 점심을 먹다가 제안을 받았다.

“저는 일반 학교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어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는데, 휠체어농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우리나라 휠체어농구의 베테랑 김호용 선수. 그는 우리나라 휠체어농구 선수로는 패럴림픽 무대에 2번 오른 유일한 선수이다. 미디어제주
우리나라 휠체어농구의 베테랑 김호용 선수. 그는 우리나라 휠체어농구 선수로는 패럴림픽 무대에 2번 오른 유일한 선수이다. ⓒ미디어제주

휠체어농구는 휠체어와 한 몸이 된다. 소아마비로 얻은 장애이지만 걸을 수는 있었기에 휠체어에 앉아서 농구를 한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휠체어농구는 휠체어 없이는 이동하지 못하는 장애인들만 하는 줄 알았다.

“선수랑 밥을 먹다가 제 손을 보더니 크다면서 해보래요. 걸을 수 있다고 했는데, 휠체어농구 선수로도 뛸 수 있다고 하더군요.”

생활체육 휠체어농구 선수의 권유를 받은 건 스물네 살 때였다. 그 전에 운동이라는 건 경험하지 못했는데, 휠체어농구는 새로운 삶을 안겼다.

“너무 좋았죠. 장애를 가졌기에 운동은 생각도 못했거든요. 학교를 다닐 때도 다른 친구들이 운동하는 걸 보기만 했죠. 휠체어농구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제가 뛰지는 못하거든요. 대신 휠체어농구는 저를 원하는 곳으로 달리게 해주고, 하고 싶은대로 하게 만들어주죠. 달리는 게 너무 좋아요.”

휠체어로 코트를 달리는 기분은 경험한 이들만 안다. 그런 열정은 그를 국가대표로 불러들였다. 1997년부터 줄곧 그의 왼쪽 가슴엔 태극마크가 달려 있다. 오랜 국가대표 경험은 패럴림픽 무대에 두 차례나 오르는 경험도 안겼다. 패럴림픽에 오르는 자체가 쉽지 않지만, 그는 2000년 시드니에 이어, 올해는 도쿄 패럴림픽을 경험한 그야말로 휠체어농구의 ‘산증인’이다. 우리나라 휠체어농구 선수 가운데 두 차례 패럴림픽 무대에 선 건 김호용 선수가 유일하다. 그러니 그에게 ‘베테랑’이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다.

“25년 내내 국가대표로 뛰었죠. 그렇게 오래 태극마크를 단 선수가 있을까요? 시드니 때는 아무 것도 모른채 경기를 치렀어요.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격차도 많았어요. 마냥 올림픽이 궁금한 그런 때였어요. 올해는 경험을 하고 오른 무대였어요. 상대와도 해볼만 했어요.”

오랜 국가대표. 이젠 반납할 시기란다. 그렇다고 휠체어농구를 접을 생각은 없다. 지금의 김호용을 만든 휠체어농구는 여전히 그에겐 매력적이다. 그는 “평생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70대의 나이에도 생활체육으로 휠체어농구를 즐기는 이들이 있기에 그는 멈추지 않는다.

“평생 할 수 있어요.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국가대표를 하는 이유는 타고난 체력같아요. 휠체어농구를 워낙 즐기고 좋아하는 것도 이유가 되겠죠.”

올해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한 제주 휠체어농구 3인방. 왼쪽부터 김호용, 황우성, 김동현 선수. 미디어제주
올해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한 제주 휠체어농구 3인방. 왼쪽부터 김호용, 황우성, 김동현 선수. ⓒ미디어제주

실제 그는 쉰이라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술과 담배도 하지 않으며, 몸 관리를 해오고 있다. ‘평생’ 휠체어농구를 즐기겠다는 그의 단기 목표는 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리그전 우승이다. 제주 휠체어농구는 전국 최강이다. 제주특별자치도휠체어농구단 부형종 단장의 부름으로 제주 소속이 된 그의 목표는 언제나 우승이다. 선수라면 당연한 목표가 아닌가.

김호용 선수가 더 어린 나이에 스포츠를 즐겼으면 어땠을까. 그건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의 여건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학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서로 즐기면서 스포츠를 하는 환경을 그는 그리고 있다.

“일본은 어릴 때부터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어울려 스포츠 활동을 하거든요. 우리도 어릴 때부터 그런 환경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장애인들도 집 밖으로 나와서 스포츠를 즐기면 더 좋겠어요.”

평생 즐기겠다는 그의 꿈. 어릴 때부터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어울리며 스포츠를 즐겼으면 하는 그의 꿈.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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