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소리내어 읽기 전략의 놀라운 힘
소리내어 읽기 전략의 놀라운 힘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08.25 10:48
  •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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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아의 독서 칼럼] <4>

 

# 독서 능력에도 발달의 밑바탕은 소리내어 읽기

한여름 밤 동네 운동장에는 무더위와 싸우며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헉헉대면서도 일정한 속도를 내며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현듯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가 들려준 달리기 이야기는 완주의 기쁨보다 완주를 하는 과정에서의 몰입과 성찰에 주목한다. 신체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무더위를 참고 숨을 고르는 이들 또한 완주를 위한 자기 극복의 과정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문자를 터득하고 책을 읽어내는 과정도 시기마다 챙겨줘야 할 독서 능력 발달 과업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강조한 달리는 과정에서의 시행착오와 과업의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독서능력 발달 이론가 찰(Chalk)에 따르면 초등1, 2학년 시기는 기호의 음성화 단계로서 문자해독 지식과 언어의 세부적인 부분들을 배우게 된다. 이 시기에 특히 음독, 소리내어 읽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서교육 전문가 천경록은 독서 능력 발달 단계에서 초등학교 1, 2학년 시기 아이들의 소리내어 읽기를 통한 유창성 획득을 강조했다. 그리고 기초기능기 3, 4학년 단계는 음독(낭독을 포함한 개념)에서 묵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이므로 유창성 훈련과 의미 중심의 글 읽기 묵독 훈련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독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소리내어 읽기의 경험이 비단 1, 2학년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소리내어 읽는 활동은 저학년만이 아니라 고학년 이후 성인기에도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 읽기 유창성 획득하기

독서 지도 현장에서는 나름 책을 많이 읽었다는 아이들이 독서 수준 진단에서 낮은 지표로 측정되는 경우가 있다. 유아기에 글자를 일찍 터득한 아이들이 그림책 듣기 단계에서 소리내어 읽기 훈련을 생략한채 바로 묵독의 단계로 들어선 공통점이 목격된다. 실제로 고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끊어 읽기가 잘 안되고, 조사를 생략하거나 어휘를 바꾸어 읽는 등 유창성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독서 수업의 단계를 낮추어 지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부자연스러운 음독의 고착화 현상으로 어휘력, 독해력, 이해력 등 학교생활에서 학습 자존감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경우 소리내어 읽는 경험을 많이 만들어 유창성을 키워줘야 한다. 읽기 유창성이란, 글을 읽을 때 리듬을 타면서 의미 단위에 따라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하며 빠르게 읽는 능력을 말한다. 이를 키우기 위한 일차적인 관문이 바로 소리내어 읽기의 자동화이다.

자동화란 별도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소리내어 읽는 훈련이 자동화가 안 된 아이들은 글의 의미를 이해하기에 앞서, 글자 하나하나 떠듬떠듬 소리 내는 것에 집중하게 되므로 글의 내용을 추론하거나 의미 중심의 독해로 나아가기 어렵다. 따라서 초등 시기에 소리 내서 읽는 연습을 통해 읽기 유창성을 획득하고 책 읽기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 두뇌 활성화하기

뇌 전문가들은 소리내어 읽는 훈련을 많이 경험하면 광범위한 영역의 뇌가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자기가 내뱉은 소리를 들으며 재표현하는 내용은 기억하기도 쉽다고 한다. 하나의 감각을 쓰는 것보다 여러 개의 감각을 동시에 쓰기 때문에 뇌를 더 많이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책을 소리 내어 읽은 내용을 더 오랫동안 기억하는 효과도 있지만 읽기 부분에 집중하기 때문에 집중력도 커진다.

일본 도호쿠대학교 가와시마 류타 교수는 어떤 행동이 뇌 활성화에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다 소리 내어 읽기의 중요성을 발견했다. 소리내어 읽기를 할 때는 생각하기, 글쓰기, 읽기를 할 때보다 월등히 많은 뇌 신경 세포가 반응했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전체 뇌 신경 세포의 70% 이상이 반응했는데, 이는 묵독이나 그저 외우기 등을 했을 때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따라서 기초 읽기의 방법을 학습 중인 초등 저학년 학생에게 글을 소리내어 읽는 훈련은 뇌의 영역별 활성화와 함께 집중력 향상, 문자와 소리의 연계를 통한 음가를 익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정확하고 빠르게 혀를 놀리면서 다음에 읽을 것을 미리 보고 준비하는 과정 등은 뇌의 활성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정독 습관 만들기

정독은 한 권을 읽더라도 꼼꼼히 읽어서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며 읽는 습관을 말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는 올바른 독서습관을 만드는 절정기이므로 아이들에게 책을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정독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정독 습관 만들기 전략을 보면 소리 내어 읽기, 인상 깊은 문장 옮겨쓰기, 질문 놀이해보기, 책 대화 나누며 교감하기 등 다양한 전략이 있다.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독 전략이다.

소리 내어 읽기는 이 시기 아이들의 독서 발달 과정에서 눈과 입, 귀를 모두 사용해 읽는 방법으로 눈으로만 읽는 것보다 천천히 읽게 되고 책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의미 중심으로 끊어 읽기와 바르게 읽기가 가능해진다.

독서에 관심을 가진 일부 가정들의 사례를 보면 책을 정독하기보다 빠르게 많이 읽기를 유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유아기 이후 문자를 익히고 나서 눈으로만 읽기를 권하거나 방치하는 가정의 아이들은 이후 의미 중심의 책 읽기가 잘 안되는 사례가 많다. 저학년 시기를 지나 고학년인 경우에도 소리내어 읽기 훈련을 권장하는 이유이다.

 

# 발표력 키우기

발표는 대중 또는 소그룹에서 타인을 의식하며 말하는 행위이다. 생리적, 정서적 요인으로 발표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발표의 상황에서 당황하게 되고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또 목소리가 긴장되거나 다소 떨리는 음성이 나오기도 한다. 중고등부 독서 수업을 오래 하다 보니 아이마다 떨림의 원인이 상황적,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다르며 다양한 경험과 훈련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발표력을 기르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소리내어 읽는 경험이다.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중고등부 수업에서도 목소리 톤의 안정화나 자신감을 얻기 위해 문장을 소리 내어 의미 중심으로 끊어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발표는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는 독서력과 함께 꾸준한 연습과 훈련으로 실력을 키울 수 있다. 그 기저에는 소리내어 읽는 연습이 있어야 한다.

 

# 문학, 비문학 독해력 기르기

지난 칼럼에서 수능 국어나, 구술, 논술, 토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독해력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독해력은 단순 개념을 해석하는 단계를 넘어서 다채로운 분야의 문학 혹은 비문학 지문을 이해하고 추론하는 고차원적인 과정이다. 독해력을 기르는 뼈대는 초등 1, 2학년 낭독 독해기의 소리 내어 읽는 훈련이다. 낭독 독해기는 낭독하면서 읽었을 때 독해가 가장 잘 되는 시기이다.

낭독 독해 훈련을 위해서는 우선 문학과 비문학의 다양한 책을 골고루 선택한다. 긴 내용의 책보다는 짧은 옛이야기나, 정보 그림책 등을 선택하여 소리내어 읽는 시간을 마련한다. 이 시기에는 혼자 읽기보다는 부모가 같이 돌아가면서 한쪽씩 윤독을 하며 흥미 유발을 시켜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경험을 많이 할수록 떠듬떠듬 읽기가 자연스러워지고 서서히 읽기 유창성이 만들어진다.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문장을 접하고 문자와 소리의 연계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면서 독해력 또한 길러진다.

 

# 동시집으로 감수성 키우기

어린 시절 좋은 동시를 접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의 심성이나 감정, 상상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은 동시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동시집을 활용해서 낭독 전략을 펴는 것도 독서의 흥미를 이끄는 방법의 하나다. 글이 짧고 리듬감이 있으므로 아이들이 낭독하기에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먼저 집에 있는 동시집을 준비하고, 시집이 없다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동시 몇 편을 준비한다. 시와 친해지는 방법은 일단 아무 곳이나 펼쳐서 소리 내어 읽어보게 한다. 읽다 보면 또 읽고 싶은 동시가 생겨날 것이고 특히 아이의 눈길이 멈추는 3편 정도의 시를 골라 리듬을 살려 제대로 낭송하게 해 보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동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때 떠오르는 장면이나 느낌에 관해 얘기를 나누며 감성을 키울수 있다.

 

# 소리내어 읽기로 뒤늦게 획득한 읽기 유창성

인지발달학자 피아제는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서 시기마다 이루어야 할 과업이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초쯤 나는 아버지가 선물해준 툇마루 책과 언니의 읽기 감수성이 동기가 되어 어렵게 책을 읽어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읽기 부진아였고 학습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가서 문자 거부증이 있었다. 아버지가 선물해 준 책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책 저책을 기웃거리다가 읽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플란더스의 개》를 읽으며 사흘 동안 울고웃는 모습을 보고 책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플라더스의 개》 역시 처음에는 몇 쪽 읽다가 돌아가고, 또 앞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5학년 초의 시기였지만 저학년의 읽기 유창성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눈으로 글 밥 많은 책을 읽어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떠듬떠듬 읽다 보니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기를 반복하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짚으면서 중얼중얼 소리 내어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결국, 소리 내어 읽기를 반복하면서 어렵게 한 권을 완독했다. 며칠에 걸친 시름에서 얻은 나름의 소중한 성취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사나 부모의 도움 없이 학생 주도의 자립적 읽기 훈련을 하고 음독을 터득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어렵게 완독한 한 권을 바탕으로 자신감이 붙은 나는 이후 몇 권의 책들에도 그런 방식으로 도전했다. 독서 발달 단계에서 강조하는 2, 3학년 정도의 읽기 훈련 과업을 5학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수행한 것이다. 책을 읽고 싶은 욕구는 있으나 자유롭게 묵독할 수 없었던 답답함을 극복한 후에야 지금의 ‘나’가 있게 되었다. 그때 만약 내 인생의 책, 《플란더스의 개》가 없었다면 그 과정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 발달 시기에 맞는 수행

음독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책의 내용을 꼼꼼히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면서 지은이 특유의 문장 호흡과 리듬을 파악할 수 있어 마치 주인공이 된 듯 감정이입이 잘 된다. 특히 동시나 짧은 글이라면 어느새 외워지기도 한다. 학창 시절에 김영랑, 박인환의 시들을 친구들에게 낭송해주며 즐거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수업하는 아이들과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목표 지점까지 달려 도착한 결과보다 과정 중심의 전략과 땀방울이 주는 철학이 중요하다. 과정 중심의 독서 전략, 소리 내어 읽기의 과정을 강조하고 싶은 이유이다. 독서 능력 발달 시기의 다양한 경험치는 아이들의 인생 로드맵에 든든한 뿌리가 되어 줄 것이다.

 

송미아 .....         

한우리 제주지부장
독서지도사양성과정 전문강사
독서지도사, 부모교육 강사
온라인설화문화연구소 활동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논문
“소그룹과 가정에서의 독서지도를 통한 독서습관의 형성 방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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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2021-09-03 10:24:01
이 기사 자체를 소리내어 읽고있습니다 ^^

예원 2021-09-01 18:55:28
소리내서 읽는게 이렇게 중요한 거였군요~~~좋은정보 잘 앍고 갑니다^^

화수분 2021-08-31 15:41:56
글을 읽다보니 아이들 어릴 때 책읽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네요 ㅎ
잘 키왕 소뭇 서울대 보내보젠 용을 써신디. ㅋㅋ 제주우유도 안받고 서울우유 멕이멍 ㅋㅋ
뭐니뭐니해도 부모와 돌아가면서 한 쪽씩 윤독하고 의미중심으로 끊어읽기를 했을 때 아이들이 잘 기억하고 데멩이에도 쏙쏙 잘 들어오는 것 같았어요 ㅎ

초록향기 2021-08-26 23:48:07
소리내어 읽기는 정말 중요한것 같아요. 어린친구들에게 영어를 지도하는 저도 아이들에거 소리내어 큰 소리로 읽으라고 매 번 말하게되요.
<<플란더스의 개>>를 통한 작가의 독서 성장기가 참 인상적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은은 2021-08-26 22:16:29
정독으로 공감능력이 길러질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해요. 한 권을 읽더라도 소리내어 꼼꼼히 읽어서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습관이 필요하겠어요. 좋은 글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