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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논란 재점화, "책임은 정부와 제주도에 있다"
영리병원 논란 재점화, "책임은 정부와 제주도에 있다"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1.08.18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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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개설허가 취소 관련, 제주도-녹지그룹 행정소송
2020년 10월 '녹지 측 청구 기각'... "제주도 승"
2021년 8월 '취소 처분 취소하라'... "녹지그룹 승"

영리병원 논란, 행정력·혈세 낭비... "피해는 도민의 몫"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취소는 부당"
항소심 재판부, 녹지그룹 손 들어주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국내 1호 영리병원 탄생이 점쳐지며 논란을 낳은 제주 녹지국제병원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관련된 소송에서 제주도와 투자자(중국 녹지그룹) 측이 각각 1승1패의 결과를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제주지방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김현룡)는 2020년 10월 20일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이하 녹지그룹 측)가 제주특별자치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처분 취소(이하 A)' 소송에서 원고(녹지그룹 측)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제주도의 승리였다.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는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인 녹지그룹이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을 위해 설립한 법인이다.

이후 녹지그룹 측이 불복하며 항소했고, 2021년 8월 18일,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행정부(재판장 왕정옥 부장판사)의 항소심 선고가 이뤄졌다. 이번엔 녹지그룹 측의 승소였다.

A소송 결과로 '영리병원 논란'의 재점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해결해야 할 소송이 하나 더 있다.

이 역시 녹지그룹 측이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건인데, A 소송보다 앞서 제기됐다. 바로 2019년 2월 14일 녹지그룹이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허가 조건 취소 청구(이하 B)' 소송이다.

B 소송은 제주도가 녹지그룹 측에 외국의료기관(영리병원) 허가를 내주며 내건 조건과 관련이 있다. 제주도는 '내국인 진료 제한'을 조건부로 녹지그룹 측에 '외국의료기관 설립 허가'를 내줬는데, 녹지그룹 측은 이 조건이 위법하다 주장한다.

현재 B 소송에 대한 법원 판단은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2020년 10월 20일 당시 재판부는 A 소송이 마무리되면 다룰 예정임을 밝힌 바 있다.

이에 A소송과 함께 B소송에 대한 귀추에도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제1호 영리병원, 제주에 개설되면?
반대 측, "의료보험체계 붕괴 우려"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 전경. ⓒ미디어제주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 전경. ⓒ미디어제주

그렇다면 제주에 '영리병원'이 개설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우선 앞서 밝혔듯 제주도가 녹지그룹 측에 허가한 영리병원엔 '이용객을 외국인에 한정한다'는 조건부가 붙어 있다. 이에 내국인 이용이 원칙적으론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국인 이용 금지'가 지켜질 수 있느냐는 또다른 문제다.  대한민국 내 의료기관은 특별한 사유 없이 진료거부를 할 수 없다는 법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각 의료기관은 △새로운 환자를 받을 수 없다거나 △병원 내 의료장비로 진료가 불가능할 경우, 환자에게 전원(타 의료기관으로의 이동)을 요청할 수 있다. 

반면, 이처럼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곤 의료법 제15조에 따라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외국인 한정 영리병원이라도 현실적으론 내국인 진료가 가능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치료가 시급한 환자'라는 이유로 한사람, 두사람 내국인 진료 사례가 늘게 된다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완전한 영리병원 허가' 즉, 의료 민영화의 길로 들어설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 3일 제주특별자치도 청사 앞에서 열린 ‘제주도 영리병원 철회 및 원희룡 도지사 퇴진 촉구 결의대회’. © 미디어제주
지난 2019년 1월 3일 제주특별자치도 청사 앞에서 열린 ‘제주도 영리병원 철회 및 원희룡 도지사 퇴진 촉구 결의대회’. © 미디어제주

궁극적으로 영리병원 반대 측 시민단체는 '의료보험체계의 붕괴'를 우려한다.

영리병원은 말 그대로 '영업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병원'이다. 투자자의 자본으로 설립되는 병원이기에, 투자자의 목적은 당연히 '투자금보다 높은 배당금 회수'에 있다.

이에 '더 많은 영업 이익'을 원하는 병원에서라면, '부익부 빈익빈'의 시장경제 논리로 의료 서비스가 제공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영리병원이 대한민국 의료시장에서 차지하는 범위가 커질 수록 '복지 사각지대'가 커지는 결과는 가히 필연적이다. '돈이 없어 간단한 수술조차 못 받게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국인 한정이라도 애당초 영리병원을 허가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제주를 시작으로 한국에 제2호, 3호 영리병원이 늘어나 의료보험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는 2006년 제주특별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리병원 논란, 언제부터, 왜 시작됐을까?
책임은 '정부와 제주도'에 있었다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 설립을 반대하는 제주대학교 교수일동은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의 내국인 영리병원 허용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미디어제주>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 설립을 반대하는 제주대학교 교수일동이 2008년 7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의 내국인 영리병원 허용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모습.<미디어제주>

그렇다면 제주 영리병원 문제는 어쩌다 생긴 걸까?

제주 영리병원 논란의 역사는 2006년 12월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안다. 제주헬스케어타운 조성사업이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 신규 핵심 프로젝트로 지정되며, 녹지국제병원 사업이 포함됐던 시점이다.

2006년 만들어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르면, 제주도지사 허가만 득하면, 제주에 외국의료기관 설립이 가능하다. 여기서 '외국의료기관'이란,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 소유의 의료기관을 뜻한다. 현재 녹지그룹이 추진 중인 제주녹지국제병원이 이런 경우다.

2008년 김태환 당시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제주에 영리병원을 유치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이렇다 할 투자처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또 도민과 국민 반발이 크다는 문제도 있었다.

영리병원 사업에 추진력이 생긴 시점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2014년 2월, 박근혜 정부는 영리병원 규제 완화를 포함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을 발표한다.

박근혜 정부는 담화문을 통해 "경제자유구역 내 투자개방형 병원 규제를 합리화하고,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 활성화를 위한 종합적인 서비스 제공과 함께 원격 의료도 활성화하겠다"라고 밝히고 있다. 사실상 영리병원 개설의 물꼬가 열린 시점이다.

당시는 '메르스 재난'으로 국내외가 혼란스럽던 때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영리병원 사업을 재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단체는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는 등 반발하기 시작했다. 

메르스 재난 와중에 제주 녹지국제영리병원을 다시 추진중인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9일 오후 2시 청와대 앞에서 열렸다.
메르스 재난 와중에 제주 녹지국제영리병원을 다시 추진중인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2015년 7월 9일 오후 2시 청와대 앞에서 열렸다.

국민의 반대 목소리에도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는 녹지그룹의 제주헬스케어타운 건립 사업 계획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2016년 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녹지국제병원 건축 공사가 시작된다.

정부가 승인하고, 제주도는 방관한 제주헬스케어타운과 영리병원(녹지국제병원) 건립 사업.

'외국의료기관 설립'에 대한 제주도의 허가만을 앞두고 있었지만, 시민들의 반발은 더욱 커졌다. 이에 제주도는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를 운영하게 된다. 그리고 위원회는 "녹지국제병원을 비영리 의료기관으로 규정해서 헬스케어타운에 고용된 인력의 실직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주문을 내린다.

하지만 원희룡 당시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이를 무시한 채 '영리병원' 개설을 허가한다. 2018년 12월, '내국인 진료 제한'이 있는 조건부로 허가한 것이다. 이에 의료법에 따라 녹지그룹은 3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9년 초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당시 공론조사위원회가 내린 결론을 무시한 결정을 내리며, 원 지사는 △투자자(녹지그룹 측)가 '비영리 의료기관' 설립을 받아들일수 없다 밝힌 점 △비영리병원이나 관련 시설로 사용할 경우 이를 맡을 재정이나 운영 능력이 제주도에 없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원 지사는 "숙의형 민주주의를 위한 공론조사위원회 첫 결정사항을 수용하지 못해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면서 "어떤 비난도 달게 받을 것이며, 정치적 책임도 지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원희룡 지사가 5일 도청 기자실에서 녹지국제병원 조건부 설립허가 방침을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원희룡 지사가 2018년 12월 5일 도청 기자실에서 녹지국제병원 조건부 설립허가 방침을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원 지사의 '조건부 허가'가 내려지고 2개월이 지난 2019년 2월 14일, 녹지그룹 측은 제주도를 상대로 첫 소송을 제기한다. 앞서 서술한 B 소송(내국인 진료 금지 조건을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이다.

그러자 원 지사는 돌연 말을 바꾸는데, 2019년 4월 17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설허가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며 4개월 전 스스로 내린 결정을 번복한다.

당시 원 지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녹지병원 측이 현행 의료법에서 정한 3개월 기한을 넘겨 개원하지 않은 점 △개원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소송은 A소송(원 지사의 조건부 개설허가 취소 결정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소송)으로까지 확대되고, 이후 진행상황은 기사 서두에서 서술한 내용과 같다.

결국 원 지사의 녹지국제병원 '조건부 허가'와 '조건부 허가 취소' 결정 모두 고스란히 녹지그룹 측과의 소송으로 이어진 상황이다. 애당초 영리병원 허가 자체를 내어주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됐을 불필요한 소모전을 겪게 된 것이다.

 

원희룡 지사가 15일 오전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송악선언 실천 조치 5번째로 헬스케어타운을 국내 공공보건의료를 선도하는 의료복합단지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원희룡 지사가 2020년 12월 15일 오전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송악선언 실천 조치 5번째로 헬스케어타운을 국내 공공보건의료를 선도하는 의료복합단지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2015년 정부가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 계획을 승인한 때부터 현재까지, 약 7년여 시간 동안 지속된 '영리병원' 개설 논란. 제주특별법이 제정된 2006년을 기준으로 하면, 15년여 기간이다.

영리병원 개설 자체에 대한 논란과 함께 '행정소송'에 소요되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생각하면, 혈세 낭비 등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과 국민이 겪어야 할 몫이다. 혹여 추후 제주도가 승소하더라도 심리적 피로도와 행정력 낭비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누군가 책임을 지기는 할까.

영리병원 논란과 함께 이를 야기한 행정의 책임론 또한 쉬이 사라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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