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22:34 (목)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4.3의 기억마저 잃게 둘 건가"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4.3의 기억마저 잃게 둘 건가"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1.08.09 16:13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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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이면을 보다] 화북 하수처리시설 공사, 여섯 번째 이면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의 흔적, 행정은 왜 자꾸 없애나
"4.3 우물터, 화북천 매립돼 옛 모습 잃어" 주민 우려

기획특집 <이면을 보다>는 제주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모든 사람에겐 이면이 있듯, 사건에도 이면이 있습니다. 여러 이면을 통해 본질을 보게 되는 여정, 어쩌면 조금 더딜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사건의 본질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는 있을 겁니다.

이번 기사는 화북중계펌프장 옆, '간이공공하수처리시설 공사'현장 인근의 여섯 번째 이면입니다.

제주 4.3 당시 불타 없어져 '잃어버린 마을'로 불리는 곤을동. 이곳은 존재 자체가 '4.3 유적지'로 불리는 곳입니다만, 행정에 의해 옛 흔적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4.3 전후 곤을동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다는 우물터는 매립되어 가짜 모형만 남아있고요. 화북천의 두 물줄기 중 하나(본류)가 매립되어 △안곤을 △가운데곤을(중곤을) △밧곤을로 불리는 곤을동 지명의 근원을 알 수 없게 됐습니다. 이번 기사에선 '우물터' 이야기를 하고요, 다음 기사에서 곤을동 지명 이야기를 설명합니다. [편집자주]

화북의 ‘곤을동, 잃어버린 마을’
옛 흔적으로 4.3 아픔 기억하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설치한 곤을동 4.3유적지 조감도. (사진=제주4.3아카이브)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화북 곤을동의 비극, 제주4.3(이하 ‘4.3’)이다.

1949년 1월 5일, 국방경비대 제2연대 1개 소대가 곤을동을 포위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주민들은 바닷가로 끌려가 학살당했고, 마을의 70여개 가구 모두가 군인들에 의해 불타 없어지게 됐다.

별도봉의 동쪽, 화북 지역의 서쪽(서부락)에 속하는 곤을동은 흔히 ‘4.3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4.3 당시의 집터, 집과 마을길을 연결해주는 작은 길(올레) 등 옛 모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에 제주도는 ‘4.3의 아픔을 웅변해주고 있다’는 의미로 곤을동을 ‘잃어버린 마을’이자 ‘제주4.3 유적지’라 지칭한다.

별도봉에 인접한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의 '안곤을' 지역.<br>이곳에는 옛 마을터의 돌담 등이 남아있어 제주4.3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꼽힌다.<br>
별도봉에 인접한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의 '안곤을' 지역.
이곳에는 옛 마을터의 돌담 등이 남아있어 제주4.3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꼽힌다.

“곤을동이 4.3 때 소화를 당했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곤을동 사람들이 나빠서 당한 줄 알아. 하지만 그게 아니야. 곤을동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피해를 본 거야. 4.3때 앞 동네 22가구, 그 옆에 16~17가구가 불타고, 죽이고 그랬어. 사태가 어지러우니까 (주민들이) 조용한 데로 피난을 갔는데 집도 전부 소각당하고 그랬지.” /A씨의 증언

화북천 인근, 금산마을에 거주하는 A(92, 남)씨와 B(88, 여)씨는 4.3을 몸소 겪은 노부부다. 제주4.3 당시 A씨의 나이는 만 19세, B씨는 15세였다.

“군인이 곤을동 마을을 포위했어. 젊은 사람들 세워놓고 이유 없이 총살시켰지. 나이 든 사람은 (이유를) 묻지도 않고 17명인가? 가둬 놓고 바닷가에 끌고 가서 죽였어. 다른 마을 사람들은 불타기도 하고. 나는 ‘밧곤을’에 살았는데, 도망쳐서 살았지.” / A씨의 증언

A씨의 말이 끝나자 B씨도 증언을 보탠다.

“남자는 다 그때 죽였어. 내가 한국 나이로 90살 됐는데, 12살에 일본에서 와서 여태 화북 살았지만, 제주도에 이런 데가 어디 있어? 옛날엔 다 죽이고, 지금은 중계펌프장 들어서면서 똥물로 냄새만 나고 말이야.” / B씨의 증언

 


 

곤을동 역사의 현주소 ‘화북천 우물터’
갑자기 사라진 이유?

1960년대 곤을동 전경. 불타 없어진 마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사진=제주4.3아카이브)

4.3은 아픔이 담긴 역사다.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눈물이 흐른다 말하는 어르신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4.3 이야기를 자꾸만 꺼낸다. 매년 4월 3일이면 제주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제주4.3 추념식' 행사일 정도다. 4.3과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을 보전하자는 목소리 또한 행정을 비롯해 도의회, 시민단체 등 입에서 꾸준히 나온다.

이유는 분명하다.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말했다.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라고.

그래서 우리는 4.3의 흔적을 지키고, 보전한다. 평화의 소중함은 평소엔 모른다. 폭력의 역사와 비교해서 봐야만, 진정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화북 곤을동 마을 터에 도착한 행사 참가자들이 손을 흔들며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2014년 9월 20일, UN 세계 평화의 날 한국조직위원회(KOCUN-IDP)는 오전 9시 관덕정 앞을 출발, 화북 곤을동 마을까지 걷는 ‘제주, 평화의 길을 걷다’ 행사를 개최했다.
사진은 300여명 참가자가 화북 곤을동 마을 터에 도착해 평화를 염원하는 모습.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4.3을 떠올릴 수 있는 유적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곤을동의 큰물, '우물터' 얘기다.

“제주 4.3 때도 물 길어 먹고 했던 우물인데, 지금은 아주 못 쓰게 됐어. 옛날엔 거기 물 받아서 밥도 해먹고 했거든. 봄마다 게도 잡으러 가고 그랬던 데야. 요즘은 갈 생각 못 하지. 물이 쫄쫄 나긴 하는데, 더러워서 뭐 잡아서 못 써. 바다가 썩어서 안 돼.” / B씨의 증언

B씨가 말하는 우물은 '용천수'를 뜻한다. 곤을동 주민을 대상으로 학살이 벌어진 1949년 전후를 포함, 예로부터 곤을동 사람들의 식수원인 곳이다.

“옛날엔 화북 앞바다 깨끗했어. 곤을 사람들 다 여기서 물 먹고 그랬지. 큰물이니까. 그런데 비가 많이 오면 하천을 못 건너니까, 안곤을 사람들은 별도봉 밑에 작은 물 길어 쓰기도 했는데... 평소엔 여기(곤을동 우물) 물이 더 좋아서 여기로 많이 왔어.” / A씨의 증언

과거 곤을 사람들이 이곳 우물터에서 물을 길어 먹은 까닭이 있다. 이곳이 ‘큰물’로, 용천수가 끊이지 않고 나오는 곳이라서다. 별도봉 아래 쪽으로도 용천수가 나왔지만, 양이 많지 않거나 접근이 어려워 화북천 끝자락, 이곳 우물터를 이용하는 주민이 많았단다.

실제로 '곤을'이라는 지명 또한 '물이 항시 고여 있는 땅'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즉, A씨와 B씨가 회상한 '곤을동 우물’은 과거와 오늘을 잇는 매개이자, 당시 숨결이 담긴 4.3 유적이었다.

화북천 매립 이후, 바닷가 또한 매립되며 옛 모습을 잃었다. 주민 증언에 의하면, 이곳에 바로 우물터가 있었단다.
사진의 왼쪽 하단에 보이는 네모난 돌들은 '우물터'를 흉내낸 조형물이다.

하지만 두 어르신이 기억하는 이 우물은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용천수가 끊임없이 나왔던 우물터는 흙과 시멘트로 뒤덮여 사라졌고, 우물 모양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조형물이 대신 자리잡았다.

우물터와 맞닿은 화북천 물줄기 하나는 1992년 중계펌프장 건설 당시 매립됐는데, 이후 이곳 바다는 썩은내가 가득하다.

“4.3때 쓰던 우물인데 지금은 시멘트로 메웠지. 언제 메웠나 정확히는 몰라. 어느날 갑자기 보니 없어졌더군. 확실한 건, (중계)펌프장 온 후에 메워진 거로 알지. 우물을 왜 메워버렸나? 그럴 만한 사유가 없었을 텐데. 주민 설명회나 사전 예고도 없었고, 이유를 모르겠어.” / A씨의 증언

국토교통부에서 제공하는 토지이음 서비스에서 발췌.<br>왼쪽에서 빨간 선으로 구분된 구획이 화북천 원형의 모습이다.<br>오른쪽 위성사진은 2021년 6월 찍힌 것으로, 사진 상 하천 오른쪽 구간이 매립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br>
국토교통부에서 제공하는 토지이음 서비스에서 발췌.<br>왼쪽에서 빨간 선으로 구분된 구획이 화북천 원형의 모습이다.
오른쪽 위성사진은 2021년 6월 찍힌 것으로, 사진 상 하천 오른쪽 구간이 매립되고, 왼쪽 구간이 확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곤을동의 우물이 언제, 어떻게, 왜 메워진 걸까. 이에 대해 B씨 또한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관련해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수소문도 해봤지만, 이곳의 우물이 없어진 이유를 아는 이는 없었다.

 


 

4.3의 역사는 화북의 역사
화북천, 우물터 모두 복원해야

이런 가운데 매립된 화북천과 우물터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민 사이에 나온다.

곤을동 주민들은 “4.3의 역사가 없다면, 화북의 역사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4.3 유적지 복원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곤을마을청정지역을만드는대책위원회 장창수 위원은 <미디어제주>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곤을동 4.3유적지인 우물터 복원은 물론, 현재 매립된 화북천을 복원해 화북과 4.3의 역사를 후세에 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지난 4일 이들 주민은 제주4.3평화기념관 내 사무실에서 제주4.3희생자유족회 오임종 회장을 비롯, 관계자를 만나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9일 오임종 회장은 <미디어제주>와의 통화에서 “화북 지역 대의원들에게 관련 내용을 모두 전달했다”면서, 구체적인 행동 등 유족회 차원에서의 의견을 모으고 있는 점을 알렸다.

화북 지역 주민들이 제주4.3평화재단 측과 만나 곤을동 우물터 및 화북천 등 4.3유적지 복원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사진의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마스크는 사진 촬영을 의식해 잠시 벗은 것.
이들의 만남은 사전 체온 측정 등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고 이뤄졌다.)

한편, 곤을동 주민 다수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독자적인 마을 자생단체(곤을마을회) 설립 준비에도 한창이다.

실제로 이들 주민은 지난 8일 오후 3시, 마을 정자 앞에서 마을회 설립의 필요성에 동의 의견을 표한 바 있다. 다만, 코로나19 시국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이지 못해 전화, 서면 등 방법으로 마을회 설립 및 단체행동 방안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관련해서 장창수 위원은 “4.3유적지 복원 뿐만 아니라, 현재 주민들이 고통받는 악취, 수해 등 화북 지역의 현안 또한 시급히 해결할 과제”라며 관련해서도 계속해 목소리를 낼 것을 알렸다.

끝으로 장 위원은 “지금 이곳(화북 곤을동)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이 단순히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이 아니”라며, “언젠가 제주 전역에 전염병처럼 퍼질 수 있는 일”임을 경고하기도 했다.

이는 ‘화북천 불법 매립 의혹’과 관련된 내용인데, 현재 검찰 고발로 제주동부서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다. 화북천을 매립한 1992년 전후, 관련한 허가 문서가 존재하지 않아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에 곤을마을청정지역을만드는대책위원회 및 (사)제주참여환경연대는 당시의 행정(김태환 전 제주시장)을 고발 조치했다.

이밖에도 이들 시민단체는 화북중계펌프장 주변지역(화북동 마을회, 화북1동 마을회 등) 지원 사업비에 대한 횡령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제주도 상하수도본부 하수운영과 J팀장 또한 고발된 상태다.

한편, <미디어제주>는 화북천 불법 매립 의혹을 포함, 화북 지역의 수해 등 다양한 현안의 발생 원인을 제주도에 질의한 바 있다. '국민신문고' 제도를 통해서다. 하지만 제주도는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답을 거부했다.

이에 <미디어제주>는 ‘수사 중인 사안’을 제외하고 재차 질의를 접수, 행정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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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사람 2021-08-09 17:05:48
주민의 고통을 무시하고 공사를 감행하는 제주도 공권력이 어이가 없고, 반드시 공사는 중단돼야 합니다.
그리고 김은애 기자의 취재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비성 2021-08-09 18:26:15
주민없는도의원
공무원은나몰나라공사강행
주민을바보취급하는도의원
다음에도 도의원나올껀가요
참존경합니다
집에 자식은없나봐요
자식한테부끄럽지않은부모되어야지

2021-08-09 18:32:41
감시 감독관이 제대로 제 할일을 안하는건지 못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 모양이죠!

제주한라산 2021-08-09 18:50:36
제주도 도정은 현실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즉시 실행하면
화북동 주민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 바랍니다

멋대로해라 2021-08-09 19:03:53
소중한 돌은 도둑 맞고, 곤을지역 바다 앞은 뻘 이 된양 오염 상태가 심각하고!!
이젠 문화역사인 4.3유적지 마저 , 이렇게 되었는데??
도의워 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사태가 이리 심각한데..
논란이 되는 월류수 처리장(간이하수처리장) 찬성 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하고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