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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중학생 살해 피의자 2명 신상공개 과정, "제도의 허점을 보다"
제주 중학생 살해 피의자 2명 신상공개 과정, "제도의 허점을 보다"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1.07.26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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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중학생 살해 피의자 2명, 신상공개 결정
경찰, 당초 결정 뒤집고 신상위 개최 "이유는?"
법의 자의적 해석 여지 있어 "제도 보완 필요"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제주 경찰, 청소년 살해 혐의 피의자 2명 신상공개 결정

제주에서 10대 청소년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40대 남성 2명의 신상공개가 결정됐다.

제주특별자치도경찰청에 따르면, 7월 26일 오전 11시부터 신상공개심의위원회(이하 ‘신상위’)를 개최한 결과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공개된 정보는 얼굴, 이름, 나이다. 아래와 같다.

제주 10대 청소년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2명의 피의자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왼쪽부터) 백광석, 만 48세 / 김시남 만 46세

이와 관련, 이들 피의자는 지난 18일 중학생인 피해자(16) 자택 뒷문을 통해 침입, 피해자를 질식하게 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CCTV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범행 시점은 오후 3시 16분경으로 추정된다.

피의자 신상공개 여부를 심의하기 위해 열린 신상위자리에는 총 7명의 위원(제주경찰청 소속 경찰관으로 내부위원 3명, 변호사·의사·종교인 등 외부위원 4명)이 참석해 신상공개 가부를 논의했다.

대한민국에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피의자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단, 아래 요건을 모두 갖춘 특정강력범죄사건의 경우에만 피의자 얼굴, 성명, 나이 등 신상 정보 공개가 가능하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8조의2 – 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

1.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2.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3.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4.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이에 제주경찰청은 △피의자들이 사전에 범행을 모의하고 범행 도구를 구입하는 등 계획적인 범행임이 확인된 점 △성인 2명이 합동해 중학생인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점 △범죄의 결과가 중대할 뿐만 아니라, 피의자들이 범행을 자백하는 등 증거가 충분한 점 △국민의 알권리 존중 및 재범방지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 판단되는 점 등을 들어 “신상공개의 모든 요건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신상공개 제도의 허점 드러나다

제주 경찰이 이들 피의자 2명에 대한 신상공개를 결정했지만,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신상공개 제도’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피의자 신상공개가 결정되더라도, “피의자 인권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 어떤 흉악 범죄자라 하더라도, ‘인권’을 무시한 채 법을 집행할 순 없는 노릇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죄 없이 고문을 당한 민간인이 있었던 이유는 국가가 ‘인권’을 무시한 채 법을 사사로이 남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의 명확한 규정은 도리어 국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단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피의자 신상공개를 결정짓는 심의 과정에 허점이 있어 문제가 제기된다. 피의자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 얼마나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한 문제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신상공개 제도 자체 허점이 있어,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7명의 심의위원이 논의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이때 7명 위원 중 3명은 내부 위원(경찰 측), 4명은 시민단체 혹은 관련 전문가 등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다. 

바로 이점이 구멍이 될 수 있다. 외부 위원이 전체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양한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 의견을 취합하기 위한 장치라는 면은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이들의 주관적인 판단이 신상공개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같은 심의에 대한 자의적 해석 문제는 과거부터 꾸준히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이렇다 할 뾰족한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는 실정이다.

신상위 개최 여부에 명확한 원칙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사건에 대한 언론의 집중도 혹은 도민 사회의 관심도가 신상위 개최 여부를 좌우하는 모양새다. 이번 경우가 그렇다.

이번 사건에서 제주 경찰은 당초 이들 피의자 2명에 대해 “신상정보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신상위를 개최하지 않겠다”라고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전국에서 관심을 갖는 사안으로 떠오르자 경찰은 돌연 “신상위를 통해 신상공개 여부를 심의하겠다”라고 말을 바꾼다.

관련해서 경찰은 당시(신상위를 개최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가결한) 내부회의 때 제외됐던 "잔인성 및 공공의 이익 등에 부합할 만한 범죄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인지됐다" 밝힌 바 있다. “신상위 개최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경찰이 이번 피의자 신상공개 결정의 근거로 제시한 요건들은 모두 수사 초반부터 언론 측에 공개한 내용이었다. 계획된 범죄인 점, 피의자(주범)가 범행을 자백한 점, CCTV 등을 통해 피해자 자택에 침입하는 과정이 촬영된 점 등은 모두 '신상위를 개최하지 않겠다'라는 경찰 결정이 내려지기 전, 언론을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그나마 수사를 통해 새롭게 밝혀졌으리라 예상되는 부분은 '범죄의 잔인성'인데, 피의자의 범행 수법 또한 초반 언론 브리핑을 통해 경찰이 직접 밝힌 바 있다. <미디어제주>는 피해자 유족이 입을 상처 및 유사범죄 등을 우려해 자세한 범행 방식을 싣지는 않았지만, 범행 수법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의문 하나를 남긴다. '신상위 개최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자의적인 해석이 너무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다. 이는 신상위 제도의 허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경찰은 7월 26일 오후 이번 피의자 2명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 결정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해당 사안(피의자 신상정보와 관련된) 언론의 인터뷰를 받지 않겠다고 전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보도자료에 설명이 이뤄졌고, 그간 경찰청에서 언론 인터뷰를 한 사례가 없다는 점을 들며 일부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범죄의 재발 방지 및 국민의 알 권리 vs 피의자의 인권. 둘 중 어느 것을 우선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오랜 시간 계속되어 왔다. 오랜 고민이 2010년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으로 제정됐고, ‘신상위’라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

하지만 모든 강력범죄에서 ‘신상위’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제주지방법원에서 매일 열리는 공판만 봐도 그렇다. 미성년자 성폭력과 같은 입에 담기 거북할 정도의 범죄가 존재함에도, 도민 사회에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언론에서 모든 사건을 다 다룰 수 없기에, 자연스레 묻히는 것이다. 이런 사건의 경우 신상위 또한 열리지 않는다.

이처럼 현재 대한민국에선 경찰의 자의적인 해석, 혹은 언론이나 여론의 관심도가 피의자 신상공개 결정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신상위’라는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보다 객관적이고 명확한 법리적 판단방식이 요구된다.

법에 허점이 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언젠가 특정인의 의도대로 허점이 악용될 여지가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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