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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집 짓기,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로
생각의 집 짓기,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로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07.20 09:20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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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아의 독서 칼럼] <3>

# 생각의 집 - 책으로 짓는 삶의 공간

온종일 빠듯한 일정에 녹초가 되어 돌아오니 유리컵에 꽂아둔 연분홍 글라디올러스가 활짝 웃는다. 희끄무레 빛바래가지만 푹신한 소파에 덜썩 앉으면 종일 지쳤던 시름을 녹여준다. 마주 보며 미소짓는 행복 나무와 탁자 위 널브러진 겹겹이 쌓인 읽다 만 책들도 정겹게 나를 반긴다. 아, 내 집이구나.

삶을 품어주는 실재한 집만큼이나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생각의 집’이다. 사람은 애당초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나기 때문에 평생 학습을 통해 이를 채워나가야 한다. 결핍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통용되는 매체는 바로 ‘책’이다. 책을 통해 아이들은 다양한 언어를 배우고, 호기심을 키우며, 상상하는 힘을 얻는다. 또 여러 사람의 생각을 만나며, 다양한 세상과 만난다. 이렇듯 아이들은 책과의 만남을 통해 정서적·인지적 사고능력을 확장하고 자신만의 꿈과 철학을 길러나간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책이 좋아요’라는 감정이 스며드는 것은 ‘생각의 집 짓기’의 출발점이다. 그 여정에서 아이들에게는 유의미한 작은 ‘계기’들이 필요하다. 부끄럽지만 나의 유년 시절 우리 집에서 어떻게 책을 만나고 좋아하게 되었는지 끄집어내 보기로 한다.

 

# 툇마루 책 사건이 책의 세계를 열어주다

우리 오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툇마루 책 사건’ 덕분이다. 당시 나는 5학년이었고 6학년 언니와 3학년 남동생, 밑으로 유아기 동생 둘이 있었다. 특용작물을 재배하던 아버지는 당신이 못다 이룬 공부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인지 매일 영어며 한자, 일본어를 공부하셨다.

방구석에 떨어진 아버지의 영농일기에는 어려운 시절, 하루하루의 시름과 어머니가 옆집에서 빌려온 종잣돈의 슬픈 사연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렇게 쪼들리던 우리 집에 책 사건이 벌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세계 명작동화 시리즈’ 50여 권과 ‘한국문학 전집’ 20여 권이 툇마루에 던져져 있었다. “우리 집에 책이?” “진짜 우리 거야?” “내가 이거 가져도 되지?”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믿기지 않는 표정들이었다.

공부 욕심 많으시던 아버지가 지나가던 외판 상의 집요한 설득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어머니 허락도 없이 어렵게 마련한 종잣돈을 푸신 거다. 그날 밤 우리 집 안방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싸움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어머니가 그렇게 화를 내셨을까?’

우리는 책이라는 신기한 물체에 몰려들어 이책 저책 구경하기에 바빴다. 어머니의 슬픔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책 선물에 마냥 들떴던 다섯 오누이, 희비가 교차하는 그날의 순간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와르르 툇마루에 놓인 책들은 가히 충격이었다. 처음 만난 책들의 표지들, 제목들, 우리 집 책이라는 설레는 감정들, 무려 70여 권이나 되다니…. 딱딱한 양장본에 세로줄 글밥이 빼곡한 한국문학에는 아무도 손이 안 갔다. 아마도 중학교쯤 되어서야 그들의 존재를 알아챘던 것 같다.

아직 글자를 모르는 두 동생은 책을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렸고, 나를 비롯한 세 오누이는 읽고 싶은 책을 하나씩 고르기에 바빴다. 그날 동화책이란 걸 처음 손에 쥐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책을 소유하는 기쁨을 만난 것이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그 책들은 입에 풀칠할 여유도 없으면서 아버지가 지나가던 외판 상의 상술에 귀가 얇아져 내지른 할부책이었다.

하지만 책 선물의 기쁨도 잠시였다. 나는 그때 5학년 1학기 초쯤이었고 둘째 콤플렉스로 열등감에 빠져 학습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그때의 나는 소리 내어 읽기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뒤처진 소녀였다. 그토록 부진했던 내가 어떻게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다음 편 칼럼에 연재) 결과적으로 우리 다섯 오누이는 그날의 책 사건 덕분에 책 읽기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 책 소유의 기쁨을 통해 호기심을 키우다

아이가 단행본을 소유하는 마음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책을 소유하면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새 책의 표지에 눈길이 간다. 또한 내 소유의 책이므로 돌려줄 걱정이 없다. 그래서 천천히 곱씹을 수 있다. 한 번 읽고 또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반복해서 읽을 수 있어 마음이 편안하다.

마음에 다가오는 책이라도 만날라치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밑줄을 긋고 표시하면서 마음껏 나만의 소유를 만끽할 수 있다. 각각의 다른 디자인과 색채의 단행본들을 만나다 보면 새 책에 대한 기다림이 생길 것이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그 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예전 독서 강연회에서 만난 한 동화작가는 “초등학생 때 학원 한 달 회비만큼만 책을 단행본으로 사서, 책 소유의 기쁨을 안겨 주십시오. 그 아이는 정말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될 겁니다.”라고 했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책, 동화 작가의 말을 빌려 ‘책 소유의 기쁨’을 맛본 것이다. 어쩌면 나의 아버지는 자신이 열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미망으로 씨앗을 살 종잣돈을 털어 자식들에게 나름의 헌납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린 마음으로 처음 책의 세계에 눈뜬 나를 소환해본다.

 

# 독서 습관은 유의미한 계기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그 뒤 우리 집 툇마루는 작은 도서관이 되었고, 친구들과 동네 오빠까지 책을 빌리러 오는 공동체의 공간이 되었다. 책은 나의 소유 그리고 오누이의 소유를 넘어 모두의 소유로 거듭나며 기쁨을 주었다. 기쁨이 커지는 동안 내게는 자연스럽게 책 읽는 습관이 형성되었고 사춘기 때는 옆집 고모네 방의 책들로 호기심이 옮겨갔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책벌레 고모의 방은 정말 작았다. 이부자리 하나 펴고. 나머지 공간에는 사방으로 책이 겹겹이 쌓여 있어서 그 사이를 비집고 드나들었던 생각이 난다. 그때 유난히 색감이 이뻐서 꺼내 읽었던 붉은 양장본 『퍼스트 레이디들』 덕분에 나는 다양한 나라들의 문화를 알게 되었다.

빼곡한 글 밥의 명작 소설들 속에서 세상 밖 친구를 만나고, 주인공이 되어 울고 웃었던 그때의 깨알 같은 언어들, 그때의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언니와 나는 고모 방에서 만난 책들과 함께 사춘기를 보냈다.

그때 어려서 툇마루 책의 영향을 받지 못한 동생들은 언니 오빠가 꽂아둔 책들을 하나둘씩 꺼내 읽으며 독서를 시작했다고 한다. 여동생은 성인이 된 뒤에도 언니가 사 온 책들을 모두 읽으며 책과 친해졌고, 특히 어떤 소설책을 사 올지 기대감을 갖고 기다리기도 했다.

물질적 풍요와 독서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충분한 요즘 굳이 툇마루 사건을 꺼내 든 것이 의아한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계기’라는 연결고리를 강조하고 싶다. 오누이를 책의 세계로 이끌었던 아버지의 용기, 동네 작은 책방이 되어 북적였던 툇마루의 온기. 이러한 계기들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있었을까 자문해 본다.

도서관에도 책이 귀했고 각 가정에서 책을 구비 한다는 것이 힘들었던 시대에 만난 책은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동화전집을 구매해 책장벽을 꾸미는 오늘날 아이들에게는 어떤 계기를 만들어줄 것인가. 단지 물리적 공간의 구성만으로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기란 불가능한 시대다.

아이들은 넘쳐나는 자극과 빼곡한 학습 일정으로 마음 놓고 책을 펴들 시간이 없다. 디지털 환경은 아이들을 즉각적이고 반응적인 세계에 익숙하게 하고 탐구와 통찰을 수반하는 독서는 더더욱 힘든 과제가 되었다.

나는 여기서 다시 한번 가정문식성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싶다.

가정에서 책 읽는 환경이 어떻게 조성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책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다. 책 읽기에 대한 호기심과 긍정적 태도가 발현되기 위해서는 온가족이 함께하는 과정 중심의 독서 전략이 필요하다. 부모님의 일방적 강요나 명령이 아닌 가족 독서 회의를 통해 함께 계획하고 참여하는 ‘온가족 맛있는 책읽기’에 대해 알아보자.

 

# 아동기 독서 습관,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가 필요하다

유아 초등시기의 아이들에게는 책에 대한 좋은 감정을 스며들게 하는 것이 먼저다. 온가족이 함께 하는 독서를 통해 아이는 독서의 영역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위안과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독서 습관에 대해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가정문식성 환경을 강조하는 이유다.

독서습관에 대한 연구 논문을 썼던 필자 대부분은 ‘독서 지도에 대한 모형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가정에서의 읽기 습관에 대한 협조가 없으면 그 모형은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독서습관은 부모-학생-교사 3자가 같이 상호협력 속에서 길러진다’라고 말하며, 독서 지도의 뿌리는 책 읽기 습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오늘날 부모들은 독서의 중요성은 알지만, 독서 습관을 형성할 수 있는 실천적 요소들을 간과하고 독서 습관 형성기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독서력 없이 독해력이 형성되기 어렵고 학습 자존감 또한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난 후 후회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지난 칼럼에서도 강조했던 바와 같이 최근 팬데믹 상황으로 화두가 되는 아이들의 학습격차 역시 독해력 즉 독서능력의 차이에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아이들 스스로 주도하여 학습할 수 있는 뿌리는 ‘독서습관’이라는 것이다.

고민 끝에 독서 서명 운동만이 아닌 온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 마련의 필요성을 느꼈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 비대면 만남이다.

참여가정을 통해 독서 생활화 붐 조성을 목표로, 그 에너지를 타고 너도나도 참여하게 되는 것을 꿈꾸게 된 것이다. 한우리 제주지역센터는 사단법인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가 30여 년 진행해 온 「자녀와 함께 30분 책 읽기」 운동을 모태로 제주 인터넷신문인 미디어제주와 함께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를 시작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독서습관은 가정 문식성환경이 중요하다. 하여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 비대면 행사 시작에 앞서, 그 중요성과 실천지침을 안내하는 부모교육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난 3월에 도내 학부모님을 대상으로 3회에 걸쳐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에 대한 강의로 그 중요성을 부각했다. 그 뒤 제주도내 60여 가정을 대상으로 지난 4월 비대면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 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 참여를 통해 책 읽는 가정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 행사를 진행하면서 한두 가정의 실천 사례를 공식 밴드에 올리기 시작했다. 기적의 책 읽기 시간 10분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모습이다. 서로 마주 앉아 그림책을 보는 어린아이, 아빠와 엄마가 책을 읽어 주는 가정도 있고 고학년 아이들은 스스로 몰입 독서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호기심에 그 시간을 더욱 기다리기도 한다.

4월 한 달은 매주 금요일 비대면 30분 만남, 5월부터는 매월 4주 차 금요일 비대면에서 참여가정들을 만난다. 유아기 아이들과 참여한 가정, 부모가 바빠서 초등학생들만 참여하는 가정, 50대 부부가 참여한 가정, 엄마 아빠와 온가족이 참여하는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만날 수 있다.

4월 이후에도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 행사에 소문을 듣고 참여하는 가정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가정의 변화사례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50대 남편을 그림책의 세계를 끌어들여 가정의 웃음꽃을 피우고 78세 어머니에게 그림책의 재미를 안겨준 가정, 다섯 살 꼬마와 아빠가 부지런히 참여하면서 아빠의 목소리로 그림책을 읽어 주는 가정도 있다.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를 읽고 온가족이 텃밭 가꾸기 체험을 하는 가정이 있고 환경 분야 책을 읽고 환경 보호 실천을 고민하면서 환경 뮤지컬 등으로 장르를 확장해 토의하는 가정도 있다.

이외에도 독서 회의를 진행하는 가정, 책 발자국을 남기는 가정 그리고 주말마다 도서관을 다니는 가정 등 다양한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크고 작은 실천들이 모인다면 “책이 좋아요” “다른 가정의 모습을 보며 같이 읽고 싶어져요” “책 덕분에 가족과 대화를 많이 해요”라는 반응들이 곳곳에서 생겨나지 않을까.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참여가정을 늘려나가면서 가족이 건강하게 함께 책 읽는 계기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아이들이 책의 세계와 만나고 생각의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책은 가족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것이다.

한우리제주지역센터와 미디어제주는 함께 지혜를 모으고 있다. 이 행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책 읽는 가정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면서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있다.

 

온가족 맛있는 책읽기참여는?
한우리제주지역센터, 인근 한우리독서지도사를 통해 신청하면 됩니다

 

송미아 .....         

한우리 제주지부장
독서지도사양성과정 전문강사
독서지도사, 부모교육 강사
온라인설화문화연구소 활동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논문
“소그룹과 가정에서의 독서지도를 통한 독서습관의 형성 방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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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2 09:26:18
어려운 살림살이이지만 자식에게 희망을 꿈 꾸게 한 아버지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풍요시대에 즐거운 책 읽기 운동이 되길 희망하고 응원 합니다

강생이 2021-07-22 09:04:03
부족함이 무엇이든 간절하게 만드네요.
책의 맛, 궁금하면 보게 되고 보면 읽게 되고 읽으면 알게 되고 알면 따라가게 되고 따라가다 되돌아보면 나의 길이 만들어져 있을 것 같아요.

하늘 2021-07-22 06:45:04
독서를 할 수 있는 계기를 주고, 독서계기로 인해 인생이 달라진 내용 공감합니다. 내아이가 6학년이 되어버렸는데 지금이라도 도전해봐야겠어요. 앞으로 도 좋은글 부탁드려요. 송미아 선생님의 독자가 되겠습니다.

사색의 힘 독서 2021-07-21 23:29:35
툇마루 도서관, 따듯하고 정겨워요.
가정을 맛있는 도서관으로 변화시키는 선생님의 발걸음에 응원을 보냅니다.

초록향기 2021-07-21 22:59:34
책이 많이 고팠던 어린시절를 소환하는 글이네요. 그 시절 '세계 명작동화 시리즈'와 ' 한국문학 전집'...부럽기만 합니다.
'온 가족 맛있는 책 읽기'가 두루두루 많이 활성화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