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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근, 현대 주거건축의 공간사 시론 - ‘근대성 주거공간-2'
제주 근, 현대 주거건축의 공간사 시론 - ‘근대성 주거공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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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1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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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1년 1월호] 스페셜 시리즈
김석윤(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제17대 회장/건축사사무소 김건축)
건축가 김석윤

안방

안방은 기능에 따라 붙여진 명칭이 아니라 위치 명칭이다. 우리 전통공간의 방의 명칭은 안방, 건너방, 문간방처럼 위치에 따라 붙여졌지 용도별 명칭이 아니다. 근대화 과정에서도 안방은 한동안 가족이 모이는 공간 또는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의 역할이거나 여성의 교류의 장으로 쓰이는 등 가족제도의 변화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져 왔다.

근대형 주거양식의 영향으로 남성들 공간인 사랑방의 기능이 안방으로 이동하여 주거 내에서 그 위상이 격상되지만 잠자리를 펴면 침실이 되는 것이 우리들 좌식 주거관습이다.

서구식 주거가 정착되면서 안방은 교류, 접객의 복합성은 차차 사라지고 부부침실로 바뀌는데 이런 전통적 안방의 쓰임새와 주침실의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과도기적인 흐름이 잠시 동안 유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안방의 쓰임새와 내밀한 주침실의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욕구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계층의 주거에서 선택했던 현상이다. 이 경우에는 거실과 인접한 안방은 접대나 주부들의 교류공간으로 전통적 좌식거실이 되고 이곳을 지나서 출입하는 또 하나의 내실은 전용 취침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침실로 성격이 강화된 안방은 차차 부부만의 내밀한 영역이 되어 결국에는 전용의 파우더실과 욕실, 화장실이 부속된 전용침실로 내밀성이 더욱 강화된 모습으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침실

침실은 가족중심 사회로의 변화에 따라서 주인의 과시적 성격이 사라지고 타인의 시선이 닿지 못하도록 사적인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확고해진다. 침실에는 단 하나의 출입문만 설치하고 방주인 외에 어느 누구도 쉽게 들어가서는 안되도록 저지선이 생성되어 갔다. 한 가족이라도 각자의 방은 독립적이어야 하고 개인 전용의 방이 없다면 적어도 개인적인 침대 정도는 가지는 것이 필수 조건이 된다. 개인공간은 이제 자신의 인격과 대등한 가치로 인식되고 개인공간은 곧 자아의 세계인 것으로 이해되기에 이른다.

아동실

근대에 들어서는 자녀에 대한 관념 또한 크게 바뀜에 따라 자녀들의 양육방식이 달라지고, 가족 안에서 아이들의 위상과 가족과 자녀와의 관계도 크게 달라졌다. 이전에는 어른과 동일하게 일하는 존재로, 혹은 부모에 종속된 노동력으로 가치에 불과했던 자녀관이 이제 애정의 대상으로 정서적 가치가 우선하게 바뀐 것이다.

따라서 자녀들이 스스로 자아를 지킬 수 있는 교육이 현실적인 방책으로 간주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학교가 급속히 발전하기에 이르렀고 자녀를 위한 사랑과 교육은 이제 부모들의 중대한 의무가 된다.

아이들의 양육과 건전한 교육이 근대 가정생활에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이와 더불어서 가정안에서 아동에 대한 가족적 관심사와 관리하는 임무는 밖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이고 직업적인 활동과는 분리되어 어머니에게 부여되기에 이른다. 이제 어머니들의 사회적 활동은 포기 내지 축소시키고 아이들을 직접 건강하고 건전하게 양육시키는 것을 임무로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인식변화에 따라 당연히 아동실이 별도의 고려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들의 신체적이고 도덕적인 발달에 적합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되기에 아동실은 다른 공간과 외부로부터 접근이 제어되고 어머니의 접근은 확대되도록 고려한다.

부엌

1960년대 까지도 재래식 부엌이 일반적이었던 가운데 부엌 개량방안은 개화기 이래 꾸준히 제기되어온 사회적 과제였다. 주로 서양식 입식부엌이 주부의 노동량을 줄이고 효율적이라면서 작업동작에 알맞도록 과학적으로 조리시설을 개량할 것을 역설하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주장에 따른 초기 부엌개량은 작업대를 입식으로 하고 시멘트제품에 세라믹 타일을 붙인 개수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엌공간의 근대화는 연료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한 일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스테인리스 싱크가 제품화되어 시판되기 시작한다. 스테인리스 싱크는 때가 끼지 않아 청결유지가 가능하고 수명도 반영구적이었기 때문에 부엌용품으로 알맞는 재료이지만 국내 철강기술이 품질과 양산에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널리 보급 되기가 쉽지 않았다. 부엌 공간을 일신시킨 것은 이 스테인리스라는 신재료가 국산화되고 나서 가능했던 일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부엌가구 업체들이 한 차원 높은 부엌가구인 시스템키친을 선보이게 되면서 부엌가구가 질적으로 도약하는 시대로 접어들었고, 부엌공간이 새로워졌다. 능률적인 가사 노동과 실내디자인 효과를 표방하며 등장한 시스템키친은 준비대 - 개수대- 조리대 - 가열대 등의 작업과정에 맞춰 일체화하고 이를 하나의 상판으로 연결하여 조립식 붙박이형으로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이후 시스템키친은 모든 부엌 설비들을 더욱 세련된 빌트 인 시스템으로 부엌을 진화시켜 갔다.

또한 1990년대 등장한 다양한 가전제품은 이전과는 또 다른 부엌의 모습을 만들어 갔다. 전자레인지의 사용이 확대되었고 식기세척기와 건조기 및 빨래건조기 등 가사노동을 절감해 주는 기계들이 속속 보급되면서 부엌 구조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빌트 인 가전제품은 주로 냉장고, 드럼세탁기,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 인덕션 등 가전제품들을 통합, 구성시켜서 주방공간을 단순히 가사 노동의 공간이 아니라, 즐기고 독서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전환시켜간다. 주방 공간은 더 넓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고 조리가 일상의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면서 아일랜드형의 주방이 신 트랜드로 등장하게 된다. 이제 거실과 식당과 주방은 경계가 없어지고 주거공간에서 최후로 남은 노동공간인 주방은 이제 노동의 공간이 아니라 놀이의 공간으로 변신하려 한다.

화장실

제주의 돗통시는 남방계 원문화의 일면이다. 이는 오키나와의 돈변소 ‘부루’와 동질문화로 구로시오 문화의 전파경로를 증거하는 주생활 풍습으로 유독 제주도에 오랫동안 남아 있어서 도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1970년대 늦게까지도 제주시의 변두리 지역에는 돗통시가 일반적이었다. 개화기와 군사정권 하에 재건국민운동과 새마을 운동에서 생활환경 개선운동의 불처럼 일어 변소개량을 독려해도 이 풍습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원인은 돗통시가 배변 만을 위한 생리의 해결공간이기보다는 제주의 농사에 필수불가결한 퇴비 생산장치였기 때문이다. 제주의 농업에서는 인분을 직접 거름으로 쓰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화산회토의 척박한 농토에서 소출을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농법은 오직 양질의 퇴비를 늘려 생산하는 것이라는 실효와 인분을 바로 비료로 쓰는 것보다 야초와 함께 부패, 양생시켜서 비료로 쓰는 농법이 훨씬 고급한 문명이었음을 자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명화는 그 바탕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간의 변소개량 정책처럼 무모한 것일 수가 있다. 일본식 주택의 영향을 받은 근대형 주택들은 변소가 주택 내부에 두었는데, 이때 분뇨처리와 변소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분뇨처리장이 아닌 분뇨저장소가 도시 변두리 여기저기 산재해 있고 하천이 온통 오물로 악취를 풍기고 있던 풍경이 사라진 것은 채 십수년이 안 된 일이었고, 집집마다 정화조를 설치하여 처리과정을 거치도록 했지만 이 또한 개개 정화조의 성능을 관리하는 일이 용이한 것이 못 되었다. 화장실의 근대화는 하수관로의 보급과 오폐수처리시설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가능한 도시적 과제였던 것이다.

이제 내밀성이 근대적 주거공간의 중심개념이 되어 방들을 조직화하는 기준으로 작동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주택과 공중의 것을 막론하고 화장실이 크게 달라지게 된 것은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일본과 공동 유치하면서 일어난 아름다운 화장실 시민운동이 계기가 되었다.

이제 주택에서는 세대 단위 마다 화장실을 둘 이상 두게 되었고 상가나 공공화장실도 청결도가 가정집과 다름이 없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화장실은 이미 악취를 풍기는 옛 시대의 변소가 아니고 옷 매무새를 살피거나 생각을 다시 다듬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욕실도 틀에 짜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욕조와 세면대, 양변기 등을 규칙적으로 배치하던 것과 달리 비데나 샤워 부스, 버블욕조를 넉넉하게 배열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욕실은 단순히 몸을 씻는 위생설비가 아니라 여유와 휴식의 공간이고 건강을 관리하는 장소로 진화하고 있다.

이상 각 방들의 변화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통시대의 과시적이고 공적이면서 사회적인 방식으로 활용되던 주거 형식에서 가족 중심으로 전환된 모습이 근대성 주거공간이다.

즉 가족의 외연이 축소되어 핵가족화되고 결혼제도가 가문간의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교환이었던 데에서부터 배우자 간의 애정에 바탕을 둔 결연으로 변화함에 따라 자녀들에 대한 관념이 바뀌고 모성애가 부상하였다. 주거공간의 이용 방식은 이 가족제도의 변화가 가져온 새로운 관념에 따라 달라져 왔고 분화된 공간과 그것들의 관계를 가족생활을 기준으로 해서 일치시키고 대응시키려 한다. 이때 적용 기준을 ‘내밀성’이라 밝히고 있다. 내밀성은 외부세계로부터 가족의 영역을 보호함은 물론 자신을 외부세계에 드러내지 않을 권리로 그리고 다시 자기행동에 대한 내면적인 신념의 권리로 변환되기에 이른다.

이제 내밀성이 근대적 주거공간의 중심개념이 되어 방들을 조직화하는 기준으로 작동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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