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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에서 발생하고 있는 작은 변화
원도심에서 발생하고 있는 작은 변화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06.0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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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12월호] COMMITTEE

원도심 재생

‘원도심 재생’은 제주 건축계의 큰 화두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를 비롯하여 건축·사회·문화분야 전문가들이 노력해 오고 있으며 아케이드 구조물, 전통시장의 활성화, 산지천 복원, 경관개선 같은 성과물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개인이 아닌 공공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낸 변화였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느껴진다.

원도심의 변화

서울에서는 2000년대 이후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을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길이 생겨났고, 최근에는 성수동, 연남동까지 퍼져 있다. 문화적, 예술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기존 공간을 고치면서 문화소비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주에서는 개인 또는 기업들이 각자가 기획자로서 역할을 하며, 자신들의 해석과 취향이 반영된 공간으로 원도심을 바꿔가고 있다. 이들의 시선으로 원도심을 바라보고자,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주는 곳인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순아커피’, ‘다랑쉬카페’를 답사지로 선정했다.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탑동 아라리오 뮤지엄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D’라고 새겨진 타이포그래피가 있는 벽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인증샷을 찍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현재 원도심 내의 가장 핫플레이스인 디앤디파트먼트의 외벽이다. 줄을 서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소비성향을 생각해 보게 된다. 단순히 타이포그래피가 아닌 어떤 요소가 이곳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디앤디파트먼트 제주를 만들어낸 김지완 대표는 기획가로서, 제주시 구도심지의 개발이 멈춘 한적한 지역에 집중한 그는 “문화예술과 함께 지역의 삶을 담아내어 지역을 부흥시키고, 진정한 제주의 모습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게 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아리리오 뮤지엄과 인접한 3개의 건물을 연계하고, 디앤디파트먼트 스토어, 프라이탁 등의 지역성과 재생을 나타내는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접근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를 구현한 건축가 나가사카 조는 미니멀하고 기존의 기억들을 활용한 디자인을 통해 주변 환경과 부합되는 리노베이션을 보여준다. 기존의 구조물을 남기고, 절단면을 드러냈으며, 재료가 가볍게 보이는 디테일, 옛 버거킹 매장의 바닥마감과 입면창을 남긴 것이나 건물들의 틈새를 활용한 식물의 배치, 가로에서부터 건축물까지 열어주는 보이드와 각 건축물들의 외부를 거쳐 내부까지 이어지는 동선은 인상적이다.

디앤디파트먼트 제주는 “예전 건축가들은 ‘신축의 시대’를 보냈지만 나는 ‘개조의 시대’를 사는 건축가다”라고 인터뷰한 기사를 떠오르게 하고 이후에 나타날 시너지효과도 기대하게 한다.

순아커피

제주목관아지 주변을 둘러보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봄직한 오래된 적산가옥이 눈에 들어온다. 과거의 외관을 유지한 이 건축물은 ‘순아커피’이며 탐라지예의 권정우 건축사가 리노베이션한 결과물이다. 예전에는 숙림상회라는 이름의 잡화를 파는 ‘점방’이었고 1층에서 잡화를 팔고, 2층은 주택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100년의 시간이 흘러 허물려고 하자 건축사가 건축주를 설득하여 옛 건축물의 기억을 살리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시켰다. 건축물의 외형은 유지하며, 새로운 프로그램인 카페를 넣었고 가족의 이름을 따 ‘순아커피’라 이름 지었다

내부에 들어가면 1층 공간의 기존 목구조 부재와 되살린 부재들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 사이를 통해 옛 타일, 신문으로 된 벽지, 문살들도 눈에 들어온다. 2층으로 올라가는 목재 사다리는 건축물의 나이를 보여주며, 지금과 다른 당시의 스케일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좁고, 가파르다.

사다리를 오르면 2층의 단정한 복도마루, 미서기문과 다다미방, 도코노마(일본의 건축에서, 방에서 어떤 공간을 마련해 인형이나 꽃꽂이로 장식하고, 붓글씨를 걸어 놓는 곳으로 벽 쪽으로 움푹 패 있으며, 바닥이 방바닥보다 위로 올라가 있는 것이 특징)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래층과 대비되는 짙은 갈색의 공간은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건축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라도 2층 공간에 서면 마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들 것이다. 흡사 ‘이웃집 토토로’에서 동생 메이가 좁은 통로를 지나 만나게 되는 새로운 공간과 풍경에 놀라던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순아커피를 둘러보다 보면 곳곳의 디테일과 복원의 흔적들이 보인다. 100년이 넘은 집을 존중하면서,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건축사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곳은 원도심 사람들에게는 옛 기억이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신선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옛 공간을 지키고 기억하는 방법이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다랑쉬카페

탑동을 지나 제주목관아지를 거쳐 용문로터리에 다다르면 다랑쉬카페를 만나게 된다. 규모는 작지만 눈에 띌 정도로 존재감이 느껴지는 건축물이며 육중한 지붕 슬래브를 얇은 유리가 받쳐있는 듯 디자인된 외관은 건축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랑쉬카페 재생 과정.
다랑쉬카페 재생 과정.

‘다랑쉬카페’는 현승훈 건축사가 어릴 때부터 살던 집으로 1945년에 지어졌고, 최근까지 3대가 생활한 곳이었다. 건축물은 2개 동으로 ‘할머니집’과 ‘우리집’으로 이뤄져 있고, 2019년 ‘할머니집’은 카페로 ‘우리집’은 사무실과 전시공간으로 리노베이션하여 재탄생되었다.

‘할머니집’은 기둥과 서까래만 남겨놓고, 기존 건축물을 품에 안고 둘러싸는 형태로 외벽을 확장했고, 외벽을 따라 전면에 프레임이 없는 긴 창을 둘렀으며 그 위에 거칠고 두꺼운 평지붕을 올렸다. 쑥대낭피를 활용한 (삼나무) 문양 노출로 마감되어 있는 지붕 슬래브의 질감은 멋스럽다.

‘할머니집’과 마주보는 ‘우리집’은 지붕 마감재를 털어내 전체를 천창으로 만들었다. 시간에 따라 트러스를 거친 빛 그림자의 변화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두 동 사이의 공간은 중간적 성격으로 마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사는 즉흥적인 작업이 많았다고 회상한다. 쑥대낭피를 덧대서 사용한 거푸집, 카페 가구로 재사용되는 문틀, 벽체를 구성하던 대나무의 활용, 콘크리트기와로 만든 벤치, 콘크리트 깨진 틈 사이의 조경들이 그런 작업의 결과물이다. 기존의 부재를 다시금 재료로 고쳐 쓰는 제주 집의 축성 원리가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집을 허물지 않고 고쳐 쓰며 오늘날의 부동산 논리, 상업공간으로의 접근방식과는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가족의 시간을 기억하려 한 노력이 돋보이고, 개인적인 기억이 타인에게도 공감이 된다는 것을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이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글을 마치며

원도심의 변화를 보여주는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순아커피’, ‘다랑쉬카페’를 답사하며, 공공이 아닌 개인들이 만들어 내는 재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곳들이 활성화된 것은 훌륭한 기획의도, 건축가의 의지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디자인이 경험과 공유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기존 공공의 방식과 다른, 개인이 주체가 되는 원도심 재생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원도심 곳곳에 이러한 움직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글=오정헌/건축사사무소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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