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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예술인을 위한 ‘아트플랫폼’이 아니면 그냥 접어라”
“생활예술인을 위한 ‘아트플랫폼’이 아니면 그냥 접어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3.22 12: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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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여전히 논란인 제주아트플랫폼 단상

[미디어제주=김형훈 기자] 플랫폼. 기차를 타 본 사람은 플랫폼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 사람들이 서성대며 나를 목적지로 이동시켜줄 기차를 기다리던 그 기억이다. 플랫폼은 기차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이들을 위한 준비 장치이다. 플랫폼으로 향하려면 역사(驛舍)에서 표를 사고, 검표를 받고(요즘은 IT 기술 발달에 따라 표를 사는 행위도 없고, 검표를 하지 않는 곳도 있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어떤 플랫폼은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자판기를 둔 곳도 있지만, 플랫폼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가올 기차만 상상한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자신을 이동시킬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옮겨간다. 플랫폼은 시작점이지만, 기차에서 내리는 이들에겐 목적달성이 되는 종착점이기도 하다. 한참 오래전 기차를 탄 이들에겐 목적지가 아닌, 중간쯤에 내려 가락국수를 후루룩 마시는 그런 아찔한 자극을 주던 곳도 플랫폼이었다.

요즘은 그런 플랫폼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대입시킨다. 예술에도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곧잘 쓴다. 예술에서 쓰는 플랫폼은 뭘까. 기차를 기다리는 그 플랫폼을 상상한다면 예술에 쓰는 플랫폼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아트플랫폼.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추진하려는 ‘제주아트플랫폼’이 있다. 그렇다면 아트플랫폼은 뭘까. 아트플랫폼은 플랫폼에 예술을 입힌 곳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해보자. 앞서 ‘문명의 이기’라고 표현한 기차가 ‘문화생활’이라고 했을 때,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은 뭐여야 하나. 기차가 ‘사진’이라면 플랫폼에 있는 이들은 사진을 들여다보려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기차가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이라면 플랫폼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행위를 할까. ‘별이 빛나는 밤에’을 보려고 애타게 기다리며 고흐의 작품에 대한 감흥을 상상한다. 고흐도 모르고,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작품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작품을 들여다보는 일은 없다. 고흐나 ‘별이 빛나는 밤’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는 알고 기차에 달려든다. 플랫폼은 그런 곳이다. 기차를 타려는 이들이 목적지도 없이 플랫폼에 서 있을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아트플랫폼은 예술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예술활동을 잘 즐기도록 준비도 하고, 이해도 하는 장소이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부산으로 가려는 이들이 있고, 대전, 광주 등 종착점이 다르다. 기차가 ‘문화생활’이더라도 플랫폼에서 기다리다가 즐기는 문화생활의 종착점은 이처럼 다르다. 기차에 탄 사람들이 저마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플랫폼에 있는 이들은 특정 계층이 절대 될 수 없다. 기차를 전세 내지 않는 이상은, 플랫폼에서 서성대는 이들은 우리 곁에서 흔히 만나는 어르신일 수도 있고, 어린이일 수도 있고, 젊은 여성도 되고, 우리나라에 온지 오래지 않은 이주노동자일 수도 있다.

사진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사들여서 제주아트플랫폼을 만들려고 하는 곳이다. 미디어제주
사진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사들여서 제주아트플랫폼을 만들려고 하는 곳이다. ⓒ미디어제주

제주아트플랫폼은 어떤 곳이어야 할까.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이들이어야 한다. 제주시 삼도동에 사는 어린이일 수도 있고, 구좌읍 동복리의 해녀일 수도 있다. 서귀포 동홍동의 젊은 주부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제주아트플랫폼은 이들을 위한 플랫폼이긴 할까?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제주아트플랫폼을 한다면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을 해줄 줄 알아야 한다. 아트플랫폼은 도민 개개인이 주인이 되는 곳이지, “일부 예술인의 터가 되어서는 아니된다”는 말씀이다. 만일 특정 예술인을 위한 플랫폼이라면,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예술인회관’이라고 그냥 이름 지으면 된다.

특히 제주아트플랫폼 사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건물 매입에 따른 잡음이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은 플랫폼으로 만들 부동산을 사려고 계약금 2원, 계약파기에 따른 위약금 20억원이라는 계약을 했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테지만, 제주도민 아무나 잡고 물어보라. 계약금 2원에 대해, 계약을 파기하면 20억원을 물어야 하는 조건에 대해 “잘했다”고 할 사람은 없다. 그건 상식이 아니어서 그렇다.

더 우려는, 세금을 쓰려는 이들의 자세에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부동산을 매입하려고 특별회계를 편성해서 돈을 끌어들이려 했다. 재단은 특별회계로 편성이 되었으니, 쉽게 부동산 매입이 이뤄질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어떤가. 문제가 불거지면서 특별회계는 없던 일로 끝났다. 그 돈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재단이 제주아트플랫폼으로 만들려는 부동산을 사려면 다시 회계를 짜야 한다. 그건 뭘 말할까. 플랫폼이 뭔지도 모르고 떠들고, 예산만 만들면 되겠지라는 안일함이 부른 결과였다. 그런 재단에 돈을 맡긴다? 어불성설이다. 특별회계로 편성됐던 그 돈은 도민의 세금이고, 내 돈이다. 돈을 이처럼 함부로 쓰고, 계약도 멋대로 하는 이들에게 돈을 맡길 수 있을까. 때문에 제주아트플랫폼이 만들어진다면 플랫폼의 주인공이 특정 예술인만 되는 건 아닌지 더 우려가 된다.

아트플랫폼을 내거는 이들은 플랫폼을 다시 생각해보라. 누구를 위한 아트플랫폼인지. 거듭 설명하지만 만일 특정 예술인만을 위한 아트플랫폼이라면 접는 게 낫다. 지금 글을 쓰는 기자도 생활예술인이다. 제주엔 70만명을 넘는 생활예술인이 있다. 그들은 ‘문화생활’이라는 기차를 많이 접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들에겐 플랫폼에 대한 기억이 덜하다. 아트플랫폼은 그런 이들을 위한 플랫폼이어야 한다. 그런 플랫폼이 안된다면 접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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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 2021-03-22 16:37:16
매우 중요한 내용이네요. 생활예술인을 위한 아트플랫폼, 일상에서 누리는 문화생활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당연히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