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제주 돌집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제주 돌집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3.04 16: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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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16> 건축가 김학진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청수건축의 김학진 대표이다. 제주시 출신이지만 한경면 청수리에서 활동한다. 대한민국에서 제주도가 하나의 지역이라면, 제주도내에서 청수리라는 또다른 지역이다. 김학진 대표는 아주 작은 단위의 지역건축가인 셈이다. 그는 청수리라는 땅을 좋아한다. 그가 소개한 책은 박용남이 쓴 <꿈의 도시 꾸리찌바>이다.

# 곶자왈 – 여기야말로 생명이다

온갖 생명이 가득하다. 낮은 곳에서부터 아주 높은 곳까지. 낮은 곳은 땅으로 한없이 들어가고, 높은 곳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난다. 그런 생명의 움직임은 제주 곳곳에서 감지되지만 곶자왈은 더욱 왕성하다. 그래서 곶자왈엔 ‘보고(寶庫)’라는 이름이 붙는다. 새 생명이 나고, 생명을 다한 곳에서 다시 생명이 솟아난다. 그게 ‘보고’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부른다. 곶자왈에 가보면 정말 그렇다. 뭔가 이름 모를 식물들이 뒤엉켜 저마다의 삶을 구현한다. 곶자왈은 숲이면서 덤불지대도 된다. 곶자왈은 1990년대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전엔 제주도의 이름은 바다 아니면 한라산, 혹은 해녀였다. 이젠 너나 할 것 없이 걷기를 하며 숲을 찾는데, 때문에 곶자왈은 인기 있는 제주의 또다른 키워드가 되고 있다.

제주도는 개발에 몸살을 앓는 곳이 많다. 덜 개발이 되길 원하는 이들에겐 그런 개발행위에 가슴이 쓰려온다. 특히 중산간 이상의 위치에 있는 곶자왈은 개발에 더 민감하다. 곶자왈은 제주도민의 생명수나 다름없는 지하수를 만드는 원천이다. 곶자왈이 품고 있는 물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지금 우리가 마시는 생명수를 내놓고 있다. 그게 파괴된다면? 그게 오염된다면? 상상할 수 없다. 그러기에 생명수의 저장고 역할을 하는 곶자왈의 개발에 걱정이 앞선다.

곶자왈에 가면 “저렇게도 생명이 살아 가나”라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뿌리를 가득 드러낸 나무가 있고, 돌덩이 천지이다. 돌은 나무에 의지하고, 나무는 돌을 친구로 삼는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곶자왈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그렇게 만들어낸 생명이 제주도가 아니던가.

사람들은? 우리 제주 사람들도 곶자왈에 기대어 살았다. 곶자왈은 제주사람들에게 나무를 선물했다. 곶자왈을 오간 제주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삶을 꾸렸다. 장작이 되기도 하고, 혹은 농기구가 되고, 먼 항해를 위한 함선의 재목이 곶자왈에서 나왔다. 제주의 비극인 4·3의 와중엔 곶자왈에 기대어 살다가 가신 이들도 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보여주는 청수곶자왈. 이젠 반딧불이가 주인공이다. 미디어제주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보여주는 청수곶자왈. 이젠 반딧불이가 주인공이다. ⓒ미디어제주

그렇게, 이렇게 곶자왈은 제주도민과 인연을 맺었다. 청수곶자왈만 하더라도 삶의 흔적이 담겼다. 누군가가 쌓은 담이 있고, 방사탑도 보인다. 지금은 사람 대신에 반딧불이가 청수곶자왈의 주인공이다. 각각의 장소는 주인공이 있기 마련인데, 주인공은 시대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청수곶자왈은 이젠 자연에게 주인공이 되라고 인간이 물려줬다. 이제 우리는 반딧불이를 보러 곶자왈로 향한다. 반딧불이는 생태환경을 반영하는 지표 생물이다. 반딧불이가 있는 곳은 생태환경이 잘 보존된 곳이다. 반딧불이가 오간다는 건 인간의 침범이 덜 했다는 뜻이며, 보존해달라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개발에 몸이 달아 있는 제주도. 우리 인간을 향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곶자왈이 알려준다.

 

[대담] 건축가 김학진을 만나다

 

청수건축은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에 자리를 틀고 있다. 제주시 동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겐 청수는 가깝게 다가오는 곳은 아니다. 청수건축의 김학진 대표는 청수리 출신은 아니지만, 우연히 청수리에 들어오게 되었고, 청수리 지역 건축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의 사무실은 청수리를 닮은 듯 자연에 그대로 앉혀 있다.

 

청수건축이라는 이름이 매우 궁금하다.

제주시 출신이다. 15년 전 아버지께서 청수리에 터를 잡고 조경업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청수리를 몰랐다. 제주도 사람들은 청수리가 있는 한경면을 외곽으로 여긴다. 교통도 불편하지만 교류가 힘들었다. 한경면은 한림읍과 대정읍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인근 영어교육도시와 신화월드 개발로 달라졌다. 불과 10년만에.

건축사사무소 이름을 청수로 정했는데, 청수리라는 마을이 좋고, 이름도 괜찮다. 그래서 청수건축으로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청수리와 한자만 다르게 맑고 빼어난 건축을 하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서 청수(淸秀)건축이라고 지었다.

 

조용한 마을인데 요즘 이 일대는 개발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마구잡이 개발보다는 청수리처럼 조용함을 유지하는 게 좋은데, 개발을 바라보는 측면과 고전적인 제주 풍광을 간직하는 마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나.

영어교육도시 개발로 청수리를 아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대규모 개발은 대정읍과 안덕면이 많다. 한경면에서 볼 때는 씁쓸한 측면이 없지 않다.

내가 건축을 할 땐 조경이나 자연을 중요시하게 생각한다. 아버지 영향도 있고 내 건축 철학도 그렇다. 대부분 건축가들은 집을 먼저 짓고, 나머지 땅에 조경한다. 저는 거꾸로, 조경을 먼저 구상하고 나머지 땅에 건물을 지을까 생각을 하기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르고 시공하는 순서도 다르다.

그러다 보니 대규모로 밀고 개발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 도시개발을 할 때 지도를 펼쳐놓고 여기는 아파트, 여기는 단독주택, 여기는 상업시설, 이런 식으로 선형개발을 한다. 그런 개발은 지양해야 한다. 특히 청수리는 곶자왈로 유명한 곳이고, 자연을 훼손할 때는 직접적인 개발 위주의 설계보다는 자연을 더 중점적으로 고민하는 설계를 해야한다고 본다. 큰 땅이 있으면 조금씩 하는 건 어떨까. 자연을 놔두고 조금씩 개발하면서 연결하는 방식을 시도해봤으면 한다. 지금처럼 도시화를 만드는 방법과 순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청수리와 청수건축이라는 이름이 맞아 보인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설계 의뢰를 하는 이들 중에는 조경보다 건물 우선인 분들이 대다수이다.

 

사무소에 들어올 때 느낀 점을 말하자면, 자연 그대로 있는 상태에다 사무소를 얹힌 느낌이었다. 일부러 그랬나.

전부 포장을 해놓고 번듯하게 건물 짓는 게 비용 많이 들 수 있으니, 조금씩 조금씩 했다. 아스콘이나 콘크리트 포장을 하면 우수가 어디론가 흘러간다. 사무소 인근의 포장은 자갈일 수도 있고, 석분이라고 할 수도 있고, 돌을 쪼개서 깔았다. 여름엔 먼지가 나는 단점 이외엔 괜찮다. 포장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한다.

 

주변에 보이는 주택단지도 포장을 그렇게 했더라.(사무실 주변의 주택도 청수건축의 작품이다.) 주차장을 친환경적으로 만드는 게 좋긴 하더라.

주차장도 어떻게 보면 건축물의 일부로 볼 수 있다. 너무 획일적인 주차장보다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주차장이면 좋겠다. 자연과 어울리고 주변 건물과 어울리는 주차장.

 

건축은 어떻게 해서 시작을 했나.

건축과로 가겠다고 결심을 한 것은 고2 때쯤이다. 건축가 대부분이 그럴텐데, 미술을 좋아했다. 미술을 좋아하는데 미술학과보다는 공학 쪽에서 찾다 보니 건축과가 나오더라.

 

육지에서 건축활동 했던 게 훨씬 많나.

기간으로 따지면 육지가 많다. 규모가 있는 사무실에서 일을 많이 했다. 큰 프로젝트를 많이 했는데, 장점은 평소에 해보지 못할 걸 하는 것이지만 여러 명이 하는 것이어서 내 설계라는 생각이 안든다. 어떤 때는 평면만, 어떤 때는 입면만 한다. 시공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고, 내가 설계했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제주에 내려와서 개업하고 작은 건물을 하더라도 내가 설계하고 시공과정도 참여하고 직접 사람들이 거주하는 모습까지 피드백을 한다. 내가 한 것이구나 반성도 하고, 자부심도 느낀다.

 

청수 지역에서 의뢰도 오나.

의도한 건 아닌데, 건축주들이 인터넷에서 한경면 건축사사무소를 검색하면 청수건축이 뜬다. 그렇게 해서 전화도 오고, 의뢰도 하곤 한다.

 

진짜 지역건축가네.

그렇다.(웃음) 일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꾸준히 일은 들어온다.

 

이 지역 의뢰인들이 주문하는 건 주로 뭔가.

창고나 단독주택인데 최근에는 구옥을 리모델링해서 카페나 민박으로 삼으려는 분들이 많다. 대부분은 육지에서 내려온 분들이다. 그런 경우 무허가 건축물이 끼어 있다. 그걸 양성화하면서 리모델링 작업을 한다.

청수건축 김학진 대표가 제주 돌집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청수건축 김학진 대표가 제주 돌집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지금도 이 일대 돌집이 많나.

많다. 문제는 돌집을 주택으로 양성화하는 게 쉽지 않다. 돌집은 창고로는 가능하지만 주택으로 쓰려면 법상으로 내진설계를 해야 한다. 옛날 돌집은 문화재급으로 보호를 해야 할 것 같은데도 양성화가 되지 않으면 건축주는 허물어 버린다. 안타까운 상황도 몇 건 있었다.

 

서울에서 열린 건축비엔날레전에서 제주돌집이 소개되기도 했는데, 돌집은 트렌드의 문제가 아니라 제주적인, 제주가치를 가진 것이기에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 돌집 활용이 법적으로 막혀 있다는 것인가.

현행 법상으로 그렇다. 소규모 건축물은 내진설계를 완화할 수 있는데 석구조는 빠져 있다. 구조전문가들이 보기에 석구조를 약하다고 본 모양이다. 돌집을 보강을 할 수는 있겠지만 건축주 입장은 그게 쉽지 않다. 비용 문제도 있으며, 보강을 하게 되면 모양도 바뀌게 된다. 남아 있는 돌집은 50년 이상된 건물인데 조례 등으로 보호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제주도의 정취를 담고 있는 건축물이다.

 

덕분에 돌집에 대한 중요한 얘기를 듣게 됐다.

시골에 사니까 많이 본다. 돌집은 진짜 많다. 제주시에도 옛날 원도심이나 그런데 가면 있겠지만 시골 읍면 단위 지금도 돌집이 많다.

 

이젠 땅 이야기를 해보자. 관심을 지닌 땅이 있다면.

바로 청수리다. 곶자왈이 있는 이곳은 너무 좋다.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곶자왈이 있는 걸 몰랐다. 그때만 하더라도 곶자왈은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곶자왈을 많이 알고 지켜야 할 자연이고, 유산이라고 다들 알고 있다. 곶자왈에 실제 가보면 제주도의 아마존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걸 잘 보존해야 한다. 청수리는 자연은 좋은데, 최근엔 급격하게 변하는 동네인 건 확실하다.

 

어떻게 하면 덜 변하면서 본 모습을 지킬 수 있을까.

일단은 대규모 개발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어교육도시 2차 개발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개발을 하더라도 자연에 대한 고민을 했으면 한다. 자연이 변형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

 

해외의 도심지는 나무도 많고, 걸어다니는 느낌이 다르다. 영어교육도시는 싹 밀고 개발을 하다보니 건물과 도로만 보인다.

아이러니한 게 있다. 도시개발을 하면서 싹 밀고, 토목공사를 하고 건물을 짓는다. 그러고 나서 예전 나무가 있던 곳에 다시 나무를 심는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원래의 자연을 놔두면 그게 공원이고 자연인데, 그걸 밀고 다시 나무를 심는다.

 

제주시내 산지천 일대에 탐라문화광장을 만들면서도 그랬다.(탐라문화광장 조성 사업 때 큰 나무를 뽑고 난 뒤에 작은 나무를 심은 사례도 있다.) 개발을 하면서 돈과 시간에 쫓기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인식이다. 그래서 <꿈의 도시 꾸리찌바>라는 책을 추천했나.

한때 유행을 한 책인데 다시 꺼내봤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자연유산이 제일 좋은 도시이며 섬이다.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시민들, 행정, 건축사들이 고민을 해야 한다. 어떤 분들은 홍콩처럼 되기를 바라고, 어떤 분들은 하와이를 얘기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결국은 행정이다. 행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건축 뿐아니라 교통 등의 인프라, 생태도시와 친환경 요소들을 갖춰야 한다는 걸 느끼게 만든다.

 

책은 꾸리찌바 시장 역할이 중요하게 나온다. 주말에 기습적으로 차없는 거리를 만들고, 여론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어린이를 대거 투입해서 작품활동 하는 걸 보니 행정가의 중요성을 알게 만든다.

도지사나 시장의 마인드가 중요하다. 제주도는 국제자유도시니까 많은 사람이 와야 하고, 개발을 해야 한다는데, 행정가가 그런 식으로 끌고 간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쪽으로 동참해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행정가가 조금이라도 유지하고 지키려고 한다면 다른 모습이 된다.

 

꾸리찌바는 공원도 하나인가 두 개 밖엔 없었다. 하천을 쫙 밀고 공사를 하려던 것을 물길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다 보니 홍수도 조절됐다. 역시 행정의 역할이 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착각하는 건 제주도를 생태도시로 여긴다. 사실은 제주 도심에 살다 보면 그렇지 않음을 목격한다. 어디를 가도 가로수가 없는 곳이 많다. 그런 도시가 어디 있나? 도심을 바꿀 수 있는 방법으로는 뭐가 있을까.

제주도를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메가시티처럼 인구가 밀집된 도심과 너무나 한적하고 조용한 농촌, 바다가 섬 안에 응축돼 있다. 제주 도심은 서울 못지 않은 도심이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자연이 나온다. 정답은 아니겠지만 분산이 되면 어떨까 생각든다. 예를 들어서 인구도 분산되고 편의시설도 분산되면서 전체적으로 개발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한 곳만 치중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아닌가.

 

동네 주변에 공원이 많지 않다. 큰 나무가 있어서, 그 나무 밑에 앉고 싶어도 없다.

일본에서 1년 유학을 했는데, 거기는 포켓공원이 잘 돼 있다. 동 단위마다 소규모 공원들이 있다. 굉장히 큰 나무도 있고 놀이터도 있고. 우리도 그런 조그만한 자연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행정에서 가지고 있는 땅을 주민들이 쉬게 해주는 공간으로 많이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래야 도심에 살면서도 제주도는 생태도시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제주도가 서울보다 못한 점을 들라면 걷는 걸 사람들이 주저한다.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가려 한다. 어느 정도 거리는 걸어갈 수 있는, 걸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면 차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는데, 제주도는 왠지 도심에서 걷는 게 유쾌하지 않다. 이유가 뭘까. 도로체계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 서울에서 오래 생활했는데 서울은 웬만한 거리는 걸어가면 재밌다. 자전거를 타도 재밌다.

 

만일 남녀가 걸어간다고 생각해보자. 사라봉에서 원도심 쪽으로 걷는다고 상상해보자. 가로수도 없고 폭도 좁다. 둘이 걸어가는데 마주 오면 피해줘야 한다. 인도를 포함한 도로 환경이 애초에 부족하다.

사라봉 정도이면 동문시장까지 걸을 수 있어야 한다. 인도 폭도 좁아서 부딪힐 수 있다. 그래서 유쾌하지 않는 것이다.

 

건축가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제주도는 차량 위주로 만든 도시라는 결론이 든다.

우리가 주차에 대해서 굉장히 어려워한다. 고민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데, 공용주차장이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웬만하면 길에서 주차된 걸 안 볼 수 있는 상황이면 좋겠다.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에는 조경이라든지, 시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벤치 등이 있으면 좋겠다. 대신에 공용주차장은 시민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주차료도 비싸지 않게 하면서 일반 도로변은 비싸서 차를 세우지 못할 정도로 차등화를 두는 방법도.

 

공영주차장도 중요하고 인식도 중요하다. 행정은 과감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공영주차장을 두고도 생각이 다르다. 공영주차장이 가까운 사람은 좋다고 하는데, 멀리 걸어가는 사람은 그것에 또 불만을 지닌다. 인식 개선과 함께 가야 한다.

타운하우스를 만든 적이 있는데, 집 앞에 주차를 못하는 상황이 됐다. 집앞에 주차를 못하게 하느냐며 마찰이 생긴 적이 있다. 큰 불편은 없을 것으로 봤는데 사람들 생각은 다르다. 내 집 앞에 주차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더라.

 

그 때문에 아이들 놀이환경이 안된다. 차 때문에 아이들 놀 환경이 뺏기고 있다.

요즘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확실히 보차 분리를 한다. 주차는 지하로, 지상은 보행만 하도록 한다. 하지만 다세대나 단독주택, 타운하우스 등은 차량과 사람들 간의 마찰을 없애는 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읽어 보면 건축가의 몫이 중요하다. 시장도 건축가 출신이고, 건축인들이 바라보는 도심은 역시 다르구나 느낀다. 도심 변화엔 건축가의 역할이 크다.

건축가가 행정가나 정치가로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도시를 만드는데 있어서 건축가가 바라보는 시점은 일반인이 바라보는 것이랑 다를 수밖에 없는데, 역설적으로 건축가가 정치를 해야 하느냐, 행정을 해야 하느냐. 그건 다른 문제이다.

 

행정의 역할은 건축가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건축가들이 행정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도 설계 공모라든지 여러 장치로 건축가의 생각이 들어가는 기회가 있지만 좀 더 다양하게 시도가 됐으면 한다. 걷고 싶은 거리, 유쾌한 거리도 건축가들이 참여를 해서 의견을 내면 좋겠다.

 

사회에서 인식하는 건축가, 행정에서 인식하는 건축가는 어떻다고 보나.

2004년 유럽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건축전공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들어갔는데 건축전공 출신이라고 하니까 표정이 달라지고 그냥 무료입장이더라.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설계사로 본다. 행정에서 바라보는 건 인허가 절차를 대행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건축사로 보는 것 같다. 시민들이 보는 눈은 다양한데 건축가로 역할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많지 않다.

 

어떻게 하면 건축가에 대한 인식을 높여서 가치 있는 직업으로 바라보게 할까.

사회에 공헌하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면 좋겠다.

 

그 역할을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

공공건축이라든지 아니면 도시, 거리, 이런 부분에 있어서 건축가가 할 수 있는 많은 지식들을 공유하고, 얘기를 나눌 장이 많이 형성되면 좋겠다.

 

청수 지역에서 활동을 하니까 제주도의 가치를 더 느끼고 있을텐데, 제주도라는 땅 자체가 가지는 중요성은 뭐라고 생각하나.

제주도는 도심과 농어촌이 복합된 도시이다. 제주도만큼 사람들이 살기 좋고 다이나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도시는 많지 않다. 도심에서는 도심 생활을 즐길 수 있고 조금만 벗어나면 여유로운 전원생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도심도 느끼면서 자연도 느낀다.

자연을 최대한 지키고,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주도에서 나오는 모든 재료들, 나무와 돌 등을 잘 활용하고, 건축에 잘 녹아들었으면 좋겠다. 특히 제주의 자연환경은 다른 지역이랑 다르다. 그걸 잘 고민해야 좋은 건축물이 나올 수 있다.

 

풍토랑 연관이 될까.

그렇다. 건축물은 지속성이 중요하다. 육지 건축가들이 제주에서 활동하면서 금속 재질을 많이 쓰는데, 3~4년 지나면 녹슬어서 흉물이 되곤 한다. 노출콘크리트를 잘 쓰는 건축가가 작품을 했는데, 얼마 전에 가보니 까많게 때가 탔더라. 당시에도 제주엔 노출콘크리트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는데, 청소를 하면 된다고 하더라. 사실상 그건 쉽지 않다. 타 지역 건축가가 제주에서 설계하려면 제주에 오래 있던 건축사랑 협업해야 그나마 부작용을 덜 것이라고 본다.

 

존경하는 건축가는 누구인가?

안도 다다오를 좋아했다. 안도의 초기 건축 스타일은 깔끔하고 간결하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걸 좋아한다. 장식적이고 의장적인 것보다는 미스 반 데 로에가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라고 했듯이 어떤 형태의 간결함이 의장적인 것이 된다. 그걸 좋아한다. 재료도 다양한 것보다는 핵심 재료만 쓴다. 하지만 그게 쉽진 않더라. 미니멀니즘은 자칫 식상하고 재미없음이 되기도 한다. 굉장히 어렵더라. 간결하면서도 뭔가를 찾는 건 쉽지 않다.

 

<꿈의 도시 꾸리찌바>, 박용남 지음

생태도시. 그건 마치 꿈과 같다. ‘생태도시’라는 네 글자만 생각하면 환상적으로 들린다. 그 단어는 ‘모범’을 생각하게 만들고, ‘미래’를 표현한다. 세계 여느 도시마다 그 단어를 꿈꾸며, 그 단어가 주는 도시가 되려 한다. 그런데 책의 제목에 달린 도시인 브라질의 꾸리찌바만큼 그 단어를 많이 떠올리게 만드는 도시가 있을까 싶다. 꾸리찌바는 우리나라의 웬만한 지방지치단체라면 들르는 견학코스였고, 꾸리찌바를 통해 뭔가를 배우려 했다.

사실 이 책은 ‘재미와 장난이 만든 생태도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도시를 만드는데 ‘재미’와 ‘장난’이라니. 꾸리찌바를 만드는 과정에 책의 부제처럼 ‘재미’와 ‘장난’은 없다. 저자의 표현은 그만큼 열정이 있었음을 표현한 것이면서, 꾸리찌바 행정을 이끄는 이들의 자세를 ‘재미’와 ‘장난’으로 표현했다. 행정가들, 즉 공무원이라면 그들의 의지로 도시를 바꾸어야 하며, 도전적인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재미’와 ‘장난’이라는 단어에 내포돼 있다.

꾸리찌바에서 개발돼 브라질의 다른 도시로 확산된 예로는 버스전용차선, 보행자 가로, 토지이용 법률의 점진적인 발달, 여러 폐기물 관리 프로그램과 통합교통망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는 우리나라에도 적용돼 쓰이는 시스템도 있다.

꾸리찌바는 지하철이 아닌, 버스로 교통문제를 해결한 대표적인 도시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울러 100km나 되는 자전거 도로망도 갖추고 있다. ‘꽃의 거리’로 불리는 보행자 전용공간은 무려 1km나 된다. 자동차가 아닌, 사람이 주인공인 도시이다. ‘11월 15일의 거리’로 불리는 공간은 꾸리찌바 공무원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주말인 금요일 오후 6시에 소형 착암기를 동원해 포장을 걷어내고, 48시간만에 보행자 광장을 조성한 사례였다. 상상도 못할 일이다. 차량 위주인 도시라면 자동차를 가진 시민들의 반발 때문에 생각조차도 못했을 테지만, 꾸리찌바 공무원들은 실행으로 옮겼다. 꾸리찌바는 육교나 지하도도 거의 없는 도시이다. 일반 시민은 물론, 장애인과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 등 교통 약자를 우선하는 정책 덕분이다.

생태도시라고 부르고 싶으면 도심에 녹지가 풍부한 건 기본이어야 한다. 1971년 꾸리찌바 주민 1인당 녹지는 0.5㎡였다. 그러다 1996년 기준으로 27개 공립공원을 가진 도심으로, 1인당 녹지는 55㎡로 100배 이상 증가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있다. 중심지역 바깥에 있는 모든 건물은 간선도로로부터 5m씩 후퇴해서 식재공간을 확보하고, 주거지 면적의 50%에만 건물을 짓도록 했다. 꾸리찌바 총면적의 3분의 1은 저밀도 건물지구로 구성했고, 전체 도로망의 절반에 20만 그루의 가로수와 엄청난 양의 수목을 심었다. 이는 책에 나온 내용으로, 책이 발간된지 20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더 많은 녹지를 지닌 도심이 됐을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누가 이걸 가능하게 만들었나. 우린 거기에 주목을 해야 한다. 책도 그걸 강조하고 있다. 자이메 레르네르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꾸리찌바 시장을 지내면서 도시개발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는 1960년대 개혁적인 청년 계획가였고 건축가였다. 고가도로와 육교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하다가 행정가로 뛰어들었다. 브라질의 모든 도시들이 자동차를 위한 도시계획을 추진할 때 그걸 반대하고, 사람 위주로 바꾸어낸 인물이 레르네르였다. 그는 건축가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봤다. 교통 전문가의 시선으로 도시를 봤더라면 지금의 꾸리찌바는 존재하지 못했을테다. 교통 전문가는 교통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교통문제를 도시문제와 연결시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책을 보면 레르네르는 “교통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을 전문가에게 맡겨둘 수 없다. 많은 도시들은 교통공학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고 피력할 정도이다. 대신 그는, 건축가들을 신뢰했다. 레르네르는 다음처럼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생존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자기가 사는 도시를 사랑해야 하고, 소속감과 함께 정체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여러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사랑하려면 공존이 가능해야 한다. 공존은 돈 많은 자 따로, 없는 자 따로가 아닌, 빈부와 계층을 뛰어넘어야 한다. 책은 그 점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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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유기 2021-03-04 23:09:56
자연을 보존하며 건축을 하는 모습, 너무 멋있어요 !

푸른연못 2021-03-04 22:46:00
멋져요. 청수건축 더 큰 발전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