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19 18:08 (화)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더러움은 면역 키워 줘”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더러움은 면역 키워 줘”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3.03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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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공간] <4> 땅이 주는 의미

도심은 원초적 놀이터인 ‘땅’을 찾기 힘들어
“땅은 ‘더럽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미생물 학자들 “밖에서 놀게 하라”고 강조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우리가 대상을 바라볼 때, 그 대상물에만 초점을 두진 않는다. 대상물 주변도 함께 바라본다. 거기서 우리는 공간 감각을 느낀다. 나무를 볼 때면 주변의 또 다른 나무를 통해 주변을 느끼고, 건물을 바라볼 때는 건물과 건물 사이, 혹은 건물과 사람 사이의 공간에 주목한다.

기획을 통해서도 소개를 하긴 했는데, 일찌감치 네덜란드 건축가 알도 반 아이크는 ‘사이공간’을 눈여겨보고 거기에 놀이를 심었다. 그런데 우리가 놀이에서 빼면 안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진짜 땅’이다. 땅에 거짓이나, 참이 어디 있느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진짜 땅’은 다름 아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자연 그 자체여야 한다. 그게 모래일 수도 있고, 흙일 수도 있다. 전편에서 다룬 외도초등학교의 모랫길은 ‘사이공간’이면서 자연의 회복이다. 그렇다면 왜 땅으로 불리는 자연은 필요할까.

놀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겐 땅이 바로 원초적인 놀이터가 되는데, 도심은 그런 땅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무리 비가 많이 오는 날이라도 신발에 흙을 묻히는 일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우리가 걷는 길은 대부분 빗물을 흡수하지 않는, 불투수성 바닥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는 어린이들이 노는 도심의 놀이터에도 땅은 찾아볼 수 없다. 놀이를 원하는 이들에게 땅을 발견하면 그 자체가 ‘유레카’가 될 정도이니, 땅의 회복은 놀이의 회복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의 면역 강화를 위해서도 땅에서 노는 일이 중요하다. 사진에서 보듯 제주도내 대부분의 놀이터는 땅을 찾기 힘들다. 미디어제주
아이들의 면역 강화를 위해서도 땅에서 노는 일이 중요하다. 사진에서 보듯 제주도내 대부분의 놀이터는 땅을 찾기 힘들다. ⓒ미디어제주

땅이 존재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더럽다’는 오명에 있지 않을까. 부모들은 땅에서 놀아서 더러워진 옷을 용납하지도 않고, 땅에서 뒹굴다가 온 아이들을 바라보며 세균을 담아온 건 아닌지 걱정을 하곤 한다. 과연 그럴까.

미국 미생물학자 키란 크리스넌은 ‘너무 깨끗한’ 무균 상태를 우려한다. 그는 “미생물에 대한 노출은 인간의 필수 요소이다. 인간 면역 체계의 대부분은 미생물의 활성화를 필요로 하는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면역 체계는 그 기능을 조절하기 위해 친절한 박테리아 존재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크리스넌의 말을 되짚어보면, 너무 깨끗하게 살 경우엔 병원성 미생물과 싸우기 힘들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2015년 국제학회지인 ≪직업과 환경의학(Occupational & Environmental Medicine)≫에 발표된 자료를 보면 가정내에서 표백제의 사용이 아이들을 병원균에 더 노출하게 만들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핀란드의 6세에서 12세 어린이 9000명을 대상으로 가정내 표백제 사용 효과를 연구했다. 결과는 표백제를 사용한 가정이 그렇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보다 독감, 편도선염, 기관지염, 폐렴 등에 더 많이 감염됐다.

크리스넌의 주장이나, 국제학회지에 실린 내용을 보면 “더러워져도 좋다”는 뜻이 된다. 더 적극적인 표현을 하는 이들은 “더러워져라”라고 외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더러워지는 게 좋은가. 학자들이 주장하는 “더러워져라”는 비위생적인 환경을 말하는 건 아니다. 과도한 의미의 살균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면역을 키우는 효과적인 ‘더러워지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다름 아닌 땅을 찾아 노는 일이다.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밖에서 놀게 하라”고 강조한다.

2019년 미국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에 실린 글을 보면 “어느 좋은 오후에 우리는 아이들을 뒷마당으로 쫓아내 탐험을 한다. 어린아이들이어서 손톱 밑에 흙을 묻혀오고, 코와 입 주위는 진흙, 옷은 잡초와 야생풀로 범벅이다. 이것들은 모두 더러운 아이들을 씻어야 하는 불편함을 훨씬 능가하는 면역 강화체계이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부모들에겐 더러운 옷을 바라보는 일도 그렇고, 그걸 빨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아이들에겐 땅에 노출된 환경이 면역을 키우는 일이 된다.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더러워지게 만들어준다면 면역 체계를 키우는 일이 된다. 바로 땅을 벗 삼는 바깥놀이가 그것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과연 아이들이 뛰어놀 땅이 있는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부터는 콘크리트로 덮여 있거나, 포장된 놀이터의 바닥 재료를 걷어내고 아이들에게 땅을 주자. 그게 우리 아이를 지키는 일이다. 앞으로는 코로나19보다 더 강한 바이러스가 불어닥칠지도 모른다. 병원균과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데, 우선은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건 바로 땅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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