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5 17:37 (목)
“놀이터가 시끄럽다고 없앤다면 어떻게 될까요”
“놀이터가 시끄럽다고 없앤다면 어떻게 될까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2.03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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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공간] <1> 프롤로그

 

어린이들은 놀 권리를 지녔다. 2015년은 어린이 놀이 헌장이 제정되면서 놀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던졌다. 하지만 당장 어린이들에게 놀 권리가 주어진 건 아니다. 어린이들이 노는 데는 수많은 제약이 있다. <미디어제주>는 놀이 관련 기획물을 내놓으며,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나섰다. 그동안 놀아야 공부라는 주제를 달아서 기획물을 만들었고, 책으로도 소개되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은 어린이는 놀아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은 부족하다. 올해는 놀이라는 대상에 공간을 더해서 놀이의 필요성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위한 놀 공간을 만들어줄지 고민해본다. [편집자주]

 

 

놀이터 소음을 없애달라는 국민청원 등장하기도

‘놀 권리’ 가치와 인식 끌어올리는 분위기 마련을

놀이터 공간을 찾아주는 일은 어른들의 몫이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각종 민원이 올라오는 창구이다.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민원이 올라오기도 하고, 극히 개인적인 불만을 국민청원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그 가운데 2019년 올라온 한 민원은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아파트 층간 소음도 괴로운데 아파트 놀이터 소음까지 시달리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까?’라는 제목의 민원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20만명을 넘겨야 답을 할 기준을 갖추게 되지만, 이 제목의 청원에 동의한 이들은 단 10명이다.

놀이터 소음을 이야기 한 국민청원은 놀이에 대한 어른들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전 마음껏 놀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어른 세대들은 어렸을 때 놀잇감을 만들며 놀았고, 그 자체를 즐겼다. 그러다 도시개발로 놀 수 있는 환경은 차츰 사라졌다. 그 사이에 가족 구성원도 변했고, 교육환경도 달라지면서 놀이는 더욱 제약을 받고 있다. 놀지 못하는 환경 구성은 아이들에겐 병적인 문제도 안기고 있다. 때문에 “놀게 만들자”는 논의가 일어났고, ‘어린이 놀이헌장’을 제정하면서 어린이들을 놀게 만들고자 한 것 아닌가. 하지만 2015년 5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를 통해 선포된 ‘어린이 놀이헌장’은 법적인 구속력도 없고, 말뿐인 선언에 그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린이를 놀게 만들자는 이야기가 선언으로만 그치는 이유는 어른들의 인식에 있다. ‘어린이 놀이헌장’ 내용을 잠시 들여다보자. 헌장은 모두 5개 항목으로 이뤄졌다. ‘어린이 놀이헌장’은 놀 권리, 차별없는 놀이 지원, 놀 터와 놀 시간 확보, 다양한 놀이 경험을 담고 있다. 아울러 어린이들의 놀이를 위해 가정, 학교, 지역사회도 놀이에 대한 가치를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이처럼 되고 있을까.

‘어린이 놀이헌장’은 공간을 이야기한다. 놀이를 즐기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기에 헌장을 통해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닐 ‘놀 터’를 말했다. 놀 터는 다름아닌 놀이터이며, 놀이터가 아니더라도 놀 공간을 확보해달라는 의미가 헌장에 담겼다.

헌장은 아울러 놀이에 대한 가치를 주변에서 알아주길 호소했다. 어린이들이 제대로 놀기 위해서는 가족단위로는 불충분하다. 학교도 나서야 하고, 지역사회도 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해줘야 함은 물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사회는 행정 기능을 하는 관청만 있는 게 아니라, 거리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역사회 일원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청와대에 등장한 국민청원은 ‘어린이 놀이헌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겁박과 다름없다.

놀이터는 놀라고 만든 공간이다. 놀이터는 침묵이 강요되는 공간이 아니다. 놀이터에 소음에 없다면 그건 더 이상 놀이터 기능을 상실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왜, 이런 민원이 등장할까.

국민청원이 아니더라도 놀이터를 곱게 보지 않는 민원은 종종 등장한다. 대게는 “시끄럽다”거나 “먼지가 날린다” 등이다. 당연한 행위 자체에 대한 딴지가 아닐 수 없다. 앞서 국민청원 내용 중엔 재산권 침해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다. “내 돈을 주고 산 집에서 외부의 소음 때문에 피해를 입고 살아야 하느냐”는 내용이 그것이다. 청원인은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놀이터 철거를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게 비단 우리나라 어른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에서는 고급주택단지에 지어지는 놀이터를 어른들이 문제 삼았고, <데일리메일>을 통해 기사화되기도 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고급주택단지는 2013년 기준으로 50만 파운드였다. 영국의 주택가격이 가장 오른 2020년 12월 기준 평균 주택가격은 25만3374 파운드라고 하니, 기사에 등장하는 ‘고급 수준’이 읽힌다. 비싼 돈을 주고 입주한 영국의 어른들 때문에 피해를 본 건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를 둔 부모들은 놀이터라는 매력에 값비싼 주택을 구입했으나 이웃의 저항을 받아야 했다. 놀이에 대한 저항이 우리의 문제만 아니라는 게 씁쓸하다.

놀이터는 하나의 공간이지만, 어른들이 바라보는 놀이터는 ‘필요하지 않은 공간이다’라는데 있다. 어른들의 시각은 재산권 행사 여부에 잔뜩 쏠려 있다. 수억원, 수십억원의 돈을 주고 살고 있는데, 주변에 보이는 놀이터는 단지 재산권을 침해하는 공간일 뿐이다.

순천에 만들어진 1호 '기적의 놀이터'. 자치단체 차원에서 놀이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순천에 만들어진 1호 '기적의 놀이터'. 자치단체 차원에서 놀이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공간은 기능이 특정될 때라야 힘을 얻는다. 그건 바로 장소성이다. 죽어 있는 공간이라도 특정한 장소의 임무를 부여받으면서 살아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한다. 어쩌면 놀이라는 공간도 ‘놀이터’라는 장소의 임무를 부여받았기에 생동감을 얻는 것일 수도 있다. 단순한 공간으로서 놀이터가 아니라, 그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그런 공간이 절실하다.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을 만들어주는 일은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게 “시끄럽다”고 하지 말고, “놀아라”라고 해주면 안될까. 어른들의 인식 변환이 필요하다. 어른들은 그 다음엔 단순한 공간의 이미지를 획득한 ‘놀이터’가 아니라, “놀아야 한다”는 명제를 담은 놀 공간을 많이 찾아줘야 한다.

놀이터를 수없이 만들어낸 네덜란드 건축가 알도 반 아이크(Aldo van Eyck, 1918~1999)는 놀이터를 통해 아이들이 참여하는 공동체 생활을 자극했다. 반 아이크가 한 두 개도 아니라, 수백개의 놀이터를 만든 이유는 있다. 물론 그가 만든 놀이터 전부가 긍정적 반응을 이끈 건 아니지만, 놀이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선물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음엔 아이크가 구현한 공간을 통해 놀이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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