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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시대를 이끌어가고, 방향성을 제시해야”
“건축가는 시대를 이끌어가고, 방향성을 제시해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1.28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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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14> 건축가 부희철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비앤케이건축사사무소 부희철 소장이다.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고향 제주에서 자신의 건축철학을 심고 있다. 그는 삼성혈이라는 땅을 좋아한다. 소개한 책은 지오 폰티가 쓴 <건축예찬>이다.

눈 쌓인 삼성혈. 주변보다 낮고,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이다. 미디어제주
눈 쌓인 삼성혈. 주변보다 낮고,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이다. ⓒ미디어제주

# 삼성혈 – 제주의 원형

포근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안식처로서의 기억이다. 안식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쉼’이 아니다. 일상적인 휴식과는 다른 개념이다. 쉬면서도 포근함을 느끼고, 편안함이 있어야 안식이 된다. 어릴 때의 기억을 소환한다면 그건 품이다. 바로 어머니의 가슴과 같은 품이다.

섬, 제주도. 온갖 재해와의 투쟁을 벌여왔다. 강한 비바람은 늘상이다. 비바람은 생채기를 남기지만 비바람을 안고 살아야 했다. 비바람은 생명을 살찌우기에 거부해서는 안 되는 선물이기도 했다. 때문에 비바람을 잘 품어내는 일이 필요했다. 그 품의 원형은 삼성혈에 있다.

삼성혈은 옴팡져 있다. 주위의 땅보다 살짝 내려앉았다. 500년 이상 묵은 나무가 삼성혈을 온전히 감싸고 있다. 거기엔 세 개의 구멍이 있다. 그래서 ‘삼성혈’인데, 제주사람의 원형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된다. 이상하게도 거대한 나무의 가지들은 세 개의 구멍을 향해 절을 한다. 고·양·부, 혹은 양·고·부로 불리는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의 흔적을 보란 듯 구멍을 향해 손길을 내밀고 있다.

삼성혈 이야기는 한반도에 존재하는 여느 건국신화와 다르다. 한반도에서는 유일하게 땅에서 솟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슷한 이야기는 제주신화로도 등장한다. 송당본풀이에 등장하는 소천국도 땅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어쩌면 제주도 사람들은 땅과 떼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풀이를 한 것은 아닌지.

‘옴팡지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다 보니 그리스어의 ‘옴파로스’가 겹쳐진다. 같은 뜻은 아닐진데, 옴팡진 삼성혈이 제주의 원형이기에, ‘세상의 배꼽’을 뜻하는 옴파로스가 마냥 단순한 단어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삼성혈엔 알지 못할 기운이 있다. 옴파로스를 닮은 그 기운은 비바람을 잠재울 따뜻한 품을 지녔고, 세 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열기는 수없이 쌓이는 눈더미도 녹여내지 않았던가.

그렇다, 포근함이다. 땅에서 솟아난 제주사람들은 삼성혈처럼 옴팡진 기운을 그들의 주거에도 표현했다. 강한 비바람을 이기는 하나는 비책으로, 자신이 사는 집을 낮게 만들었다. 집 자체도 낮았지만, 집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는 마당 역시 낮았다. 집을 세운 땅은 주변 땅보다 낮게 만듦으로써 비바람에 응했다. 비바람을 거부하지 않고, 순응하는 건축이 바로 제주의 집이다.

삼성혈의 원형은 지금의 건축에서는 찾기는 힘들다. 이젠 순응하기보다는 맞서려 한다. 자연에 맞서면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순응’이 아닌, ‘대응’을 택하는 게 지금의 건축이다. 맞긴 할까. 제주의 비바람은 이기는 상대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친구임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삼성혈이 알고 있다.

 

 

[대담] 건축가 부희철을 만나다

비앤케이건축의 부희철 소장은 미국의 건축도 접했다. 미국의 서부 개척을 떠올리게 만드는 콜로라도 덴버에서 유학했다. 건축은 둘러싸는 개념으로 위요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위요감이 있는 지역으로 미국의 수많은 캐년 가운데 자이언캐년을 꼽기도 했다. 물론 그가 꼽은 땅으로서 삼성혈 역시 위요감을 가진 곳이다. 그는 학교공간혁신사업 촉진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 건축가 지오 폰티가 쓴 <건축예찬>이라는 책을 추천한 특별한 이유는

미국 콜로라도주립대에 유학을 갔을 때 그분이 설계했던 덴버 아트 뮤지엄을 만났다. 그 뮤지엄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한창 뜰 때 기존 뮤지엄과 새로 지어진 덴버 아트 뮤지엄을 브릿지로 연결한 게 당시엔 이슈였다. 뮤지엄 안에 가보면 크고 작은 창이 많은데, 콜로라도 덴버가 가진 자연환경을 잘 담아 낸 액자로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그런 디자인 요소가 좋았다. 최근 제가 생각하는 건축방향과도 잘 맞는 것 같아서 추천했다. 아울러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글을 쓴 건축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 책을 보면 저자가 건축을 대하는 게 일반인들이랑은 다른 것 같다. 에펠탑 같은 경우는 이 책 속에서는 건축이 아닌 느낌으로 평가를 하기도 하는데.

이때가 모더니즘이 한창 대두될 때이다. 모더니즘은 장식을 배제하는 것에서 나왔는데, 그러다 보니 건물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두고 갈등을 한 거고,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에펠탑은 우리 삶과 크게 상관이 없으니 건축은 아니지만 예술품이다는 그런 시각을 가졌다.

다양성이 중요해지는데 유튜브가 발달하면서 개인 스토리도 각광받기 시작하고, 다양성이 한 시대의 낭만성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시대로 접어들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한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건축은 항상 시대의 무언가를 선두하는 자리에 있어야 된다고 얘기하는 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건축가도 시대의 흐름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시대를 이끌어가는,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건축가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비앤케이건축 부희철 소장. 조진희
건축가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비앤케이건축 부희철 소장. ⓒ조진희

- 지오 폰티가 얘기한 걸 보면 유일한 걸 만들어야 건축으로서의 예술작품으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흔한 아파트는 똑같은 걸 찍어내기에 우리의 삶이지만 예술은 아니라고 봐야 할까.

유일한 건 창조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스토리를 담아내면 유일한 게 되는 것이다. 똑같이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모든 환경이 다르고 선택이 다르기 때문에 삶 자체도 달라지는데 그걸 건축물에 담아내면 유일한 게 된다. 그게 다양성의 한 요소가 되며, 다양성이 존중받을 때 건축이 낭만적인 게 된다.

 

- 우리의 아파트 문화는 다 만들어진 상태에서 사람들이 들어가서 산다. 칠레의 어느 도시였지? 절반만 만들고, 나머지는 거기에 들어간 사람들이 만든다. 오히려 그게 유일하게 보인다. (칠레의 어느 도시는 이키케를 말한다.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저소득층 주택공급 프로그램인 킨타 몬로이를 구현했다.)

우리도 그런 시도를 몇 번 하긴 했다. 아파트에 대한 문제점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속 선 분양하고 나중에 시공하는 것은 경제적인 논리에 익숙해져서 그런 건 아닐까.

 

- 앞으로는 그런 공동주택도 바뀌어야 할 것 아닌가. 코로나19를 맞으면서 우리의 삶이 바뀌고 공간도 자유롭게 구성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입주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구성하게 해주어야 주택문제, 경제적 문제, 여러 문제를 해소할 수 있지 않나.

최근 미디어를 보면 집 관련 프로그램이 많은데 삶의 소득이 올라오면서 집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본인의 개성을 넣게 된다. 하지만 건축가 생각과 건축주 생각은 다르다. 여전히 아파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운데 거실이 있고, 방이 달라붙은 형태, 편리한 형태를 선호하다 보니 단독주택을 지어도 아파트와 같은 평면이 많다. 그걸 잘 지었다고 평가를 해버리니 건축가들은 거기에 끌려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돌아왔을 때 그런 혼란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건축가들이 고민하고, 본인만의 노하우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나.

 

- 미국에서 배운 건축과 제주에서 실현해본 건축은 어떤 차이가 있나.

제일 큰 차이점은 만드는 방식이다. 미국 시스템은 만들어진 걸 조합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현장에서 콘크리트로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한다. 현장마다 다르기에 그런 점에서 차이가 난다.

 

- 건축 단가도 제주도가 훨씬 세겠는데.

우리는 연봉대비 집값이 너무 높다. 그러다 보니 다른 데 소비를 하지 못한다. 자기 집을 갖기 점점 어려워진다. 미국은 디벨로퍼라는 부동산업자가 단독주택을 몇백 채 지어놓고 판다. 우리 아파트 팔 듯이. 하지만 집 내부를 잘 바꿀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미국은 관련 마켓도 잘 돼 있다. 주말에 취미로 집을 고치는 경우도 많다. 똑같은 평면도 집주인이 집을 스스로 고치면서 본인의 개성을 담는다. 그런 집은 돈을 더 많이 받고 팔린다.

우리는 콘크리트여서 바꾸기가 어렵다. 콘크리트는 1970년대 이후 많아졌는데, 거기에 맞는 생활을 하다 보니 목조로 지은 집은 불안하다고 한다. 몇천 년간 그렇게 살았는데 50년간 행해진 콘크리트에 익숙해졌다. 변화에 대한 시도도 어려워지고 천편일률적인 삶의 방식에 스스로 맞춰가고 있다.

 

- 아파트와 같은 삶은 편하고 따뜻하고 시원하고 외풍도 차단해줘서 일텐데, 그래서 단독을 짓더라도 그런 삶을 원한다.

그러다 보니 삶의 방식은 단독주택이라도 똑같아진다. 단독이 주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건축가들이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건축가들도 그 방향을 잘 모르고 있다. 우리들이 공부를 하면서 방향을 세워서 제시를 해줘야 한다.

 

- 요즘 드라마로 펜트하우스가 뜨더라. 펜트하우스는 게이티드 커뮤니티개념이다. 코로나19 시대에 그렇게 혼자 살 수 있을까.

요즘에 좀비가 나와서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사람과 단절돼서 고립되는 영화를 보곤 한다. 고립되면 인간의 본성이 나오는데, 우리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면서 영화를 본다. 지금은 갈림길이다. 차단하면서 살지, 그래도 소통하며 살아야 할지, 선택의 갈림길에 있다.

 

-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아니면 어떤 지역에서 작품을 하고 싶다거나 그런 지역이 있다면.

땅이 센 곳에 가면 무섭더라. 애착이 가는 땅을 꼽으라면 삼성혈이다. (부희철 소장이 부씨여서 삼성혈에 더욱 애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삼성혈은 약간 굴렁지고 둘러싼, 위요감이 있다. 산굼부리도 그렇다. 그런 곳이 제주 태초의 공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제주도는 바람의 영향도 있지만 집이 많이 내려간 형태였다. 굉장히 우리와 잘 맞는 스케일의 공간이다. 그런 땅을 좋아한다.

어릴 때는 제주시내에 살았다. 오현단이랑 제주성 부근을 많이 돌아다녀서 골목에 대한 애착도 많다. 건축자산 연구를 하면서 돌아다닌 기억도 좋다. 건축가는 예전 흔적들을 발굴해서 잘 보존시켜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땅은 스토리를 지녔다. 다양성을 얘기할 때 땅 이야기를 뺄 수 없다. 개개인 스토리도 있겠지만 땅이 가진 스토리가 있다. 몇미터 도로가 끼면 땅은 어떻게 되고, 주변 건물과의 도시 컨텍스트, 그런 부분들이 땅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이걸 잘 반영하면 더 매력 있는, 스토리가 있는 건축물이 되리라 본다.

 

- ‘예전에 여기에 누가 살았는데그런 이야기까지 꺼낼 수 있는?

그렇다. 기억들도 공유할 수 있으면 더 좋은 스토리가 나올 수 있다. 그런 것들이 하나 둘 모이면 다른 땅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이 만들어진다. 그런 걸 잘 담아내는 건축가가 됐으면 한다.

 

- 어떻게 건축을 접하게 됐고, 이 자리에 오게 됐나.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에 63빌딩이 지어졌는데, 담임 선생님이 아시아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했다. 그때 반항심리랄까. 왜 최고가 아니면 안되냐, 작지만 좋은 건축물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설계기사와 건축기사를 장래 희망으로 썼다.

 

- 건축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겠지만 매력이 있을 것 같아. 어떤 부분이 가장 매력적인지.

대학교 때 들은 얘기가 있다. 일반인보다 세 발짝 앞서 나가는 위대한 예술가와, 덜 위대하지만 반 발자국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면 일반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런 질문을 받았다. 세 발짝 앞서가는 예술가를 택했는데 의외로 반 발자국 앞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반 발자국 앞선 사람은 일반 사람들이 따라올 수 있을 만큼 나간다. 결국은 세 발을 따라가겠지만 지금 필요한 건 일반 사람들이 반 발자국 다가오게 하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한다는데 자부심을 느끼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 건축가를 만날 때마다 늘 던지는 질문인데 지역성이란.

제주건축가회에서 추진하는 제주다운건축상을 작년부터 제가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제주다운건축상을 선정할 때 과연 제주다움이 뭘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게 지역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주다운건축상을 선정할 때 추가시킨 게 있는데, ‘제주건축의 변용이다. 어떤 문화에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게 변용이다. 지금 제주건축은 그런 과정이라고 본다.

옛 건축물들이 카페나 숙박시설로 변용되고 있다. 용도가 바뀌는 것인데, 그걸 뭐라고 할 수 없다. 부수지 않고 남기니까 긍정적 면으로 볼 수 있지만 상업적 가치로 전락하는 게 안타깝다. 가능하면 덜 그렇게 된 걸 선정하려 하지만 변용하면서 유지하라면 수익이 생기는 걸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것까지 뭐랄 순 없으며, 여기에 우리가 같이 공유하는 개념이 추가되면 좋겠다.

지역성의 가치는 변용되고 있다. 땅의 스토리가 더 추가되는 것도 지역성이 될 수 있고, 건축주의 삶이 담겨서 하나의 지역성이 될 수도 있고. 이젠 지역성이 뭐다고 정의를 내리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다양성이 부각되고 그걸 존중하게 되면 지역성은 굉장히 다양해진다. 그래서 제주다운건축상은 매년 다른 주제를 선정해서 주제에 맞게 선정하려고 하고 있다.

 

- 옛 걸 고스란히 간직한 게 아니라, 변용이라는 건 살짝 바꾸는 것일 텐데.

그걸 포함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을 하는 것이다. 문화재 쪽에서 쓰는 용어들이 몇가지 있는데, 복원이 있고 복구가 있고, 그런 개념들이 있다. 옛날 걸 그대로 만드는 게 있고, 일부만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 복원 얘기가 나와서인데, 개인적으로는 복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복원은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2년 전 제주건축대전 심사를 하면서 일본 건축가인 히라타 아키히사랑 함께했다. 시민회관 리모델링이 대상이었다. 인상 깊었던 게 있다. 히라타는 옛것의 기준이 30년인가, 50년인가, 500년인가? 우리가 정의할 수 없다라고 했다. 그 말이 너무 와닿았다.

우리가 옛것을 복원한다는데 조선시대만 옛것인가? 자꾸 옛것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한정시킨다. 옛날보다는 지금이 더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변용이 필요하다.

 

- 설계를 할 때 행정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작품이 잘 나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태클이 많이 걸려 예상보다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행정과 관계를 어떤 식으로 가면 좋을지.

행정은 행정 방식이 있고, 우리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방식이 있다. 기획을 행정에서 하고, 실행은 우리가 하다 보니 차이점을 서로 이해하지 못하곤 한다. 최근엔 공공건축가 제도가 생겨서 그런 부분 많이 해소됐다.

공공건축가 제도는 처음 시행됐다. 이제 1년이다. 노하우가 필요하고, 서로 이해를 하고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

 

- 현재 교육청 쪽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학교공간혁신사업 촉진자로 활동하고 있다.

 

- 도청 공공건축가와 교육청 촉진자의 차이점이라면.

교육청은 학교 건물 위주다. 도청 공공건축가는 도청에서 발주하는 공공건축물을 대상으로 한다. 촉진자는 공간혁신 사업을 하는데,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방식으로 세미나를 하고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아울러 수업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학교 공간에 리모델링 하도록 진행한다.

청소년건축학교나 어린이건축학교는 미래의 건축 인력을 위한 교육이라고 하지만, 미래의 건축주를 위한 교육이기도 하다. 이런 교육이 많아져야 한다. 어릴 때부터 건축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커서 건축주 됐을 때 우리랑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이런 기회가 많아야 하고, 공간혁신사업도 학교로 더 파고들어서 진행됐으면 한다. 쉽지는 않다. 학교는 입시를 치러야 한다. 더구나 코로나 시국이 겹치면서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 학교공간은 전통적인 일제식 시스템이다. 복도를 중심으로 칸으로 나눠 배치돼 있다. 중간에 현관이 있고, 현관을 중심으로 두 날개로 확장된 게 기본이다.

문제는 형태보다는 모든 학교가 똑같은 데 있다. 개성이 없다. 다양성도 없다. 서귀포산업과학고에서도 촉진자로 활동을 했다. 거기에서 중점을 둔 것은 학교만의 아이덴티티, 학교만의 특성을 알려주고 싶었다. 서귀포산과고는 굉장히 좋은 숲을 건물과 건물 사이에 가지고 있다. 학교 숲 가꾸기 사업을 하면서 나무도 잘 자라 있다. 학교내 숲에 정자만 달랑 있었다. 나무는 많은데 정자만 있어서 어두웠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다 쳐다보는 구조여서 정자엔 잘 앉지 않으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거기에 뭔가를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 학교 1층에 장애우 교육공간이 있는데, 베이커리랑 카페였다. 1층 숲과 면해 있어서 창문을 열면 테이크아웃 할 수 있었다. 그걸 해달라고 하길래, 매개공간이 될 수 있는 박공형태의 틀을 만들었다. 카페도 되고, 수업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안했다. 건물과 숲 사이에 스테인리스스틸 거울을 써서 자연의 이미지를 반사시키는 매개공간을 만들고, 자연을 투영시키고 벤치에 앉아서 사방의 숲이 보이게끔 했다.

공간혁신사업을 하면서 학교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가도록, 개성을 지닌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학교만의 스토리를 잡아내면 좋겠다. ‘이 학교는 이게 특징이야라는 게 있으면 졸업해서라도 그 공간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가지게 된다.

 

- 예산이 문제인데, 교육청에서 주는 돈이 적은데, 어떻게 현실화시킬까.

공간혁신할 학교는 많고 예산은 적다 보니까, 예산을 쪼개서 쓴다. 학교를 바꾸려면 전체를 바꿔야 하는데, 공간단위 위주여서 효과는 아직 크지 않다. 예산은 적지만 촉진자로 활동하는 건축가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하고 있다.

 

- 건축가들이 열심히 하도록 예산 지원이 현실화됐으면 좋겠다.

어렵다. 선생님이라는 조직이 건축을 잘 이해하고 받아주면 좋겠다.

 

- 현대건축물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지금 지어지는 건축물이 오래 가지 못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변용이 힘들어서일까.

콘크리트 건물이라도 라멘조랑 벽식조는 가변성 범위가 다르다. 라멘조로 하면 변용시킬 수 있는데 벽식구조는 하나하나가 구조체여서 변용하기가 힘들다. 아시다시피 층고를 낮추려고 벽식구조가 나왔다. 사회적 측면에서 봤을 때는 벽식구조보다 라멘조로 가야 추후 이용할 수 있다.

 

- 경제적 문제 때문인가.

그렇다.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건설사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만일 변용이 가능하게 만든다면 건설사는 그 비용을 소비자에게 넘길 거고. 그런 비용의 문제 때문에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지 않을까.

 

- 건축가들은 사회적으로 해야 할 역할도 많을 텐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지오 폰티의 <건축예찬>을 보면 건축가는 모든 걸 다해야 한다고 나온다. 건축가는 다른 분야에 비해서 뭔가 하나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노력이 정말 많다. 하나하나 돈으로 따지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그에 비해 받는 보수는 한정적이다. 나중에 남아 있는 건축물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 직업이다.

그래도 남는 건 건축이다. 그 과정 중에 내가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문제가 있었지만 결국 남는 건축이다. 남겨지고 기록되고 보여주는 건 건축이기 때문에 건축물이 잘 나오도록 잘 나오는 방향으로 노력하려 한다.

건축가들은 사회적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았고, 그런 역량도 지녔다. 건축가는 다방면에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건축가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본인의 역량을 계속 키우는 건축가가 됐으면 한다. 공부를 해야 하고 스스로 지적인 욕구를 채워가고 싶다.
 

<건축예찬>, 지오 폰티 지음
 

인간이란 존재에게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살고 죽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거기에 담긴다.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태어난 공간이 있다. 요즘은 다들 병원에서 태어나기에 병원을 거쳐 산후조리원을 지나서 주택에 당도한다. 죽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태어날 때 대부분은 산부인과라는 공간을 선택받듯이, 죽어서도 우리는 선택된 공간에 갇힌다. 죽는 이들의 공간은 봉분일 수도 있고, 요즘은 그보다는 납골당이라는 틀이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다. 우리는 그런 공간을 향해 ‘건축’이라고 말한다.

<건축예찬>의 저자 지오 폰티는 가장 이탈리아적인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건축가이면서 인문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건축예찬>을 드러내고 논쟁하라고 썼다. 그는 이 책을 향해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 아니라, ‘건축을 위한 책’이라고 과감하게 말한다. 이쯤 되면 건축은 존귀한 대접을 받는 위대한 인물로 읽힌다. 우리 말로 ‘예찬’이라는 이름을 달기는 했으나 사실 이 책은 건축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한껏 담은 책이다. 본문의 시작부터가 그러하다.

“건축을 사랑하라.”

그가 건축에 건네는 말이 ‘사랑’이다. 다만 우리말로 번역을 하며 ‘사랑’ 대신에 ‘예찬’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건축예찬보다는 “건축을 사랑하라”는 표현이 이 책에 더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허물어지는 건축물, 새로 등장하는 건축물. 지구 곳곳에서 허물거나 짓는 행위는 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다. 건축물은 건축주 소유인 건 분명하지만, 건축주가 소유한 건축물이라도 ‘사회’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지오 폰티가 내세우는 점은 개인 소유의 건축물일지라도 아름답다면 모든 사람의 것이라고 말한다.

아름답다? 과연 아름다운 건 무엇일까. 여기서 논쟁이 발생하게 된다. ‘기술’과 ‘예술’의 구분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기술은 사라지지만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술은 발달하기에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어 있고, 예술은 그와 달리 영속성을 지닌다. 건축이 예술이라는 타이틀을 얻는 순간 영속성을 지니게 된다는 뜻이다. 그는 세상에 널리지 않는 것, 유한성을 지녔느냐의 여부에 따라 작품이 될 수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지오 폰티는 한 줄로 늘어선 동일한 형태의 주택은 예술로서의 건축작품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똑같은 모양의 건물이 수도 없이 늘어선 모양을 보면 그가 말하는 건축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똑같은 모양이 늘어선 건물은 예술이 아닌 ‘구조체’이며, ‘유한성’을 지닐 때라야 하나의 건축작품이 된다고 지오 폰티는 강조했다. 때문에 시카고에 있는 미스 반 데 로에의 작품은 예술로서의 건축이 아닌, 단순한 공학으로 그는 치부한다. 그렇게 된다면 현대건축의 상당수는 건축예술이 아니라, 건축공학이 될 뿐이다. 어쨌든 이는 지오 폰티의 주장이며, 충분한 논쟁거리가 된다. 그는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피라미드도 혹평했다. 건축가가 없어도 되는 게 피라미드라면서. 피라미드는 “거대한 정밀성의 판타지”일 뿐이며, 한 사람의 파라오와 얼마간의 노예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건축에 논쟁이라는 씨앗을 마구 뿌리는 지오 폰티는 그가 건축가여서인지, 건축가를 네 가지 최고 직업(성직자, 의사, 교육자도 포함)의 하나라고 했다. 건축가는 인간이 살고 행동에 나갈 인간 미래의 문명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갈 존재로서 귀한 직업으로 여겼다. 때문에 건축가를 향해 사명의식을 가질 것도 주문했다.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축가. 그것을 문화적 양태로 해석할 수 없고, 문명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없는 건축가. 자신의 미적 감정만 도입시키려는 건축가는 그저 진열대나 전시관에 불과한 집을 지을 뿐이다.”<‘건축예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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