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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골의 상상
연자골의 상상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01.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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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9월호] COMMITTEE
양성필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 위원장/건축사사무소 아키제주

시작하며

술자리에서 여러 재미있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이야기를 하면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배부른 이야기라는 것은 배고픈 사람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푸념이다. 당장 먹고살기가 어려운데 인생이니 삶이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끝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지금 우리 건축계의 현실은 어쩌면 이런 배를 채워줄 고민을 먼저 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우려 속에서 건축공간과 건축론에 대한 이야기들이 비현실적인 공론(空論)으로 여겨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종종 필자는 사물 혹은 행위라는 구체적인 현실과 생각이라는 아직은 구체화 되지 않은 비현실의 관계를 생각할 때가 있다. 특히 건축설계를 할 때 그런 의문은 더 자주 일어난다. 처음에는 집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도면을 그리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것을 그리다 보면 새로운 생각들이 수없이 발생하게 된다. 행동하는 과정에 새로이 생겨나는 생각이 그 행동과 무관하게 드러날 수도 있었던 것일까?
 

실체와 무관한 상상

로지에의 원시 오두막 상상도.
로지에의 원시 오두막 상상도.

필자는 건축사에서 로지에의 원시 오두막을 보고는 참으로 별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소위 합리주의 건축 그리고 모더니즘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는 로지에의 원시 오두막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집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는 벽체가 아닌 기둥과 지붕이라는 거짓말이었다. 원시 오두막에 대한 그의 상상은 실재와는 전혀 관계없는 몽상에 불과하였으나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근대의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생각이 실체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미적 판단에 관해서는 그러한 착상이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실체에 부여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개념화되어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적 판단은 경험된 지식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경험된 지식과는 다른 미적인 문제는 그래서 소위 배부른 이야기의 대표적인 소재이다. 최근에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디자인을 잘 해야 임대도 잘되고 사람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게 미를 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일 수는 없다. 아름다움만으로 설득되지 않는 현대인을 위한 변명일 뿐이다. 그러면 건축의 근원에 대한 로지에의 질문과 접근법은 정당한 것일까? 아니라면 로지에식의 합리적 추론이 아닌 경험과 자료를 통해서얻을 수도 있었던 것일까?

 

르 코르뷔제의 기행

르 코르뷔제가 쓴 <건축을 향하여>1)라는 책을 보면 근대건축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한 과정으로 유럽의 고건축답사를 많이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위대한 건축으로 거론한 것은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이었다. 그는 건축의 기본적인 요소를 로지에처럼 상상만으로 도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현장을 통해서 발견하려고 하였다. 건축론의 근거를 과거의 막연한 부정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모범적인 과거의 선례 속에서 찾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상상만으로 건축이론을 세우려 했던 로지에와는 매우 다른 태도이다.

르 코르뷔제 책에 실린 파르테논신전.
르 코르뷔제 책에 실린 파르테논신전.

하지만 역시 그가 건축의 전형으로 삼으려 했던 파르테논 역시 건축의 문제를 이야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신전(神殿)이었지 사람이 살기 위한 건축물은 아니었다. 위대한 건축가 르 코르뷔제가 건축의 영감을 집이 아닌 신전이나 자동차와 배와 같은 기계에서 얻었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볼 때 무척 불행한 일이다. ‘건축은 삶을 담은 그릇’이라는 그의 선언은 건축을 정의하는 명언으로 회자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통해서 건축을 바라보려는 시도는 그리 다양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건축을 공학으로 치부하는 이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은 건축공간과 삶의 관계를 연결시키고자 하는 시도마저도 어색하다.

 

연자골

연자골에 남아있는 집터.
연자골에 남아있는 집터.

연자골에 가면 건축사에게 전해주는 과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제까지 건축물의 답사라는 것은 형태가 온전한 곳을 찾아가서 옛 선인의 지혜를 탐닉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연자골이라는 곳에는 남아있는 건축물이 없다. 그냥 숲이 우거진 중산간 깊숙한 곳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만 있을 뿐이다.

이제 실체와 생각의 관계를 연자골에서 곱씹어볼 순서이다. 연자골에는 집은 형체도 없고 돌담만 남아 예전에 4~6가구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짐작만 될 뿐 알려진 자료가 없다. 건축을 이야기하는데 건축물이라는 형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사람이라는 대상은 또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그 두 가지의 요소가 남아있지 않는 흔적만을 통해서도 우리는 건축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런 잡다한 요소가 배제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였다.

서홍동 산39번지 인근의 마을 이름을 연자골이라고 붙인 것은 서홍동주민센터에서 논의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곳에 연자방아가 남아있는 게 인상적이어서 붙인 이름인 듯하다. 연자골에는 4~6가구 정도가 살았고 사냥과 간단한 농사를 같이 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서홍동 관계자에게서 들은 말로는 연자골 마을 사람들이 터전을 버리고 아랫마을로 내려오게 된 것은 4·3사건으로 인한 소개령이 원인이 되어서 내려왔다가 다시는 올라가지 않게 되어 마을이 사라지게 되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하였다.

연자골로 찾아가는 길은 가파르진 않아도 등반로와 같은 느낌이었다. 중산간의 산록도로에서 삼십 분 정도를 걸어 올라갔으니, 서홍동 마을에서 걸었다면 족히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마을과 동떨어진 곳에서 서너 가구만 모여서 살았다는 것부터 참으로 흥미로웠다.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그 삼십 분의 연자골을 찾아가는 길에는 낮지 않은 돌담이 계속 이어져 있는 것이다. 중간에 ‘잣성’에 대한 설명 표지판을 세워놓아서 그 돌담이 목마장 사이에 쌓았던 잣성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연자골에는 층지어 밭을 만들었던 흔적과 집자리로 하나, 통시자리로 하나, 그리고 연자돌과 집터를 이루는 울타리 담이 하나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남아있는 집터를 보면서 추측되는 원래의 공간을 상상해 보았다. 온돌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구들이 한쪽에 있고, 마루는 없었을 것으로 보였다. 고팡을 따로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구들이 있는 뒤쪽으로 공간이 남아있어서 고팡이거나 혹은 굴묵이 아니었을까 상상을 해 보았다. 특이한 것은 입구 쪽에 마치 봉덕처럼 불을 지폈던 것으로 보이는 구덩이가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이 정확하지는 않다.

 

질문

연자골을 찾아갈 때는 사실관계를 따지거나 분석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단서만으로 건축이야기를 끌어가고 싶었다. 건축물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로지에처럼 건축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접근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보았다. 그런데 한 연구위원이 핸드폰으로 1967년 항공사진을 검색해서 보여준다. 우리가 있는 마을 부근이 1967년만 하여도 경작지로 보인다는 것이다. 갑자기 특이한 사람들이 외딴곳에 뚝 떨어져서 사는 것으로 생각했던 연자골이 평범해지는 순간이었다. 1948년과 1967년 항공사진을 찾아보았다.2) 지금은 숲으로 무성한 연자골이 있는 일대는 그물처럼 경작지로 쪼개져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1967년까지도 그 일대는 경작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면 연자골과 같은 작은 마을이 더 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1995년 항공사진을 보면 농경지가 많이 사라지고 대부분 숲으로 변해가고 있을 것을 볼 수 있다. 연자골 사람들이 내려왔다기보다는 농경지가 사라졌다는 것이 맞아 보인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올라가면서 보았던 돌담 역시 목마장과 관련된 잣성이 아니라 그냥 농경지 경계를 이루는 돌담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자골 부근 항공사진.
연자골 부근 항공사진.

갑자기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3) 이라는 단편이 떠오른다. 홉스봄은 스코틀랜드 축제를 사례를 들면서 사람들이 전통이라고 믿는 많은 것들이 어떤 기획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의 논의에 의하면 대개의 전통이라고 말하는 견고한 믿음 역시 기획되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뽕짝이라고 하는 트로트를 전통가요라고 믿는 경우에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획된 부분이 없지는 않다. 한옥이나 초가라는 전통가옥도 문화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지 완전히 독자적인 것은 아닌 건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다. 로지에처럼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상상만을 근거로 해서 스토리와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자칫 허구를 사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이 마을의 이름을 ‘사냥꾼의 마을’이라고 하지 않고 ‘연자골’이라고 한 것은 다행이다.

 

마치며

부끄럽지만 누군가 내게 집이 뭐냐고 묻는다면 딱히 내놓을만한 답을 알고 있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궁금증을 상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하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그래서 우리의 집을 조금이라도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연자골을 찾아가는 것이 재미는 있지만 황량한 집터는 결국 거의 아무것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박제화된 문화재들도 그런 면에서는 아쉽기 마련이다. 연자골은 단순해 보이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조차도 제주의 집과 마을에 대한 더 많은 경험과 기초 데이터의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을 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1) Le Corbusier,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 장성주 외1 , 태림문화사, 1993. 117.

2) 과거 항공사진은 국토정보맵 사이트에서 검색할 수 있다. http://map.ngii.go.kr/ms/map/NlipMap.do 참조.

3) Elic Hobsbawm, <만들어진 전통>, 박지향 외1 , 휴머니스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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