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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된 건축보다 좋은 건축을 하고 싶다”
“잘된 건축보다 좋은 건축을 하고 싶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12.24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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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13> 건축가 강경훈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네모건축의 강경훈 대표이다. 건축사사무소 이름에서 그가 추구하는 건축관이 읽힌다. 한림읍 명월리 출신으로, 고향의 땅을 닮은 을 무척 좋아한다. 소개한 책은 서현 교수가 쓴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이다.

 

 

# 명월리 – 역사성을 지닌 땅

명월리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학교이며, 다른 하나는 명월성이다. 다들 1990년대에 만들어진 기억이다. 명월초등학교는 1993년에 문을 닫았다. 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바뀌기 이전이니, 명월국민학교가 맞겠다. 폐교될 때까지 명월국민학교 총동창회는 꾸려지지 않았는데, 폐교 이후에야 동문들이 모여서 총동창회를 꾸렸다. 화젯거리였기에 직접 취재를 한 기억이 있다. 다른 하나인 명월성. 한창 명월성터를 복원하려고 발굴작업이 이뤄질 때였는데, 명월성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는 눈썹돌(미석)이 발견되었다고 하길래, 현장으로 달려가 취재를 했던 기억을 지녔다. 두 취재 모두 요즘 기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표기하는 ‘단독’이다.

1990년대와 2020년. 간극이 꽤 된다. 그 사이에 바뀐 게 있고, 바뀌지 않은 게 있다. 바뀐 건 명월리의 마을 중심을 관통하는 도로폭이 예전과 다르고, 카페도 곳곳에 눈에 띈다. 바뀌지 않은 건 옹기종기 모여앉은 건물의 모습이다. 옹기종기 모여앉은 건축물 사이사이로 명월리의 시선에 맞지 않는 높이는 있지만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아직까지는 옛 기억이 오롯이 간직되고 있는 마을이다.

명월리 팽나무 군락과 명월대. 미디어제주
명월리 팽나무 군락과 명월대. ⓒ미디어제주

제주도 사람들은 ‘도시’와 ‘시골’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대신 ‘시내’와 ‘촌’이라는 말을 더 입에 오르내린다. “저 애는 초네따이(촌 아이)여, 저 애는 시에따이(시내에 사는 아이)여.” 그 입말이 우리 입에 찰싹 달라붙는다. 시내와 촌. 우리는 무얼 가지고 그런 구분을 하곤 할까. 여러 개가 있겠다. 대중교통이 얼마나 자주 오가는지, 높고 낮은 건축물이 주는 느낌, 학교 주변의 다양한 먹을거리와 놀거리의 유무. 참 유치한 구분이긴 하겠지만, 어릴 때의 시내와 촌의 구분은 그랬다. 이젠 그런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시내와 촌이라는 입말을 쓰는 이들도 많지 않다. 시간은 늘 흐르고, 시간의 흐름에 모든 건 변하기 때문이다.

명월. 거긴 역사의 땅이다. 나무 나이가 600년은 되는 팽나무도 있다. 팽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자생했는지 심었는지는 모르겠다.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자생하는 팽나무인데, 나무 덕에 마을이 살아있다고 한다. 그걸 뒤집어 이야기하면 마을 사람들이 팽나무를 잘 살피고, 보호를 했다는 의미가 된다. 수백 년 묵은 고목이 하나도 아니고, 수십 그루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명월리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 나무 덕을 본 이들 중에는 선비들이 포함되어 있다. 유생으로도 불리는 그들은 명월대에 앉아 풍류도 읊곤 했다는데, 그 또한 팽나무 덕이다.

사람은 덕이 있어야 산다. 그 덕은 스스로가 만들기도 할테지만, 남이 주기도 한다. 계속 읊는데, 명월리는 팽나무 덕을 받은 마을이다. 나지막한 높이의 스카이라인은 명월리의 팽나무를 해치지 않는다. 과거를 살던 사람이나, 지금을 사는 명월리 사람 모두 그 사실을 알기나 할까. 자연이 주는 덕을 입고 있음을.

 

[대담] 건축가 강경훈을 만나다

만족하며 사는 삶. 모두가 꿈꾸는 삶이다. 그게 가능할 때는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이 높아야 한다. 건축가 강경훈은 그가 하는 건축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그는 재밌다는 표현을 잘 쓴다. 그가 꿈꾸는 건축은 좋은 건축도 있지만, 그보다는 잘된 건축이다. ‘잘된 건축은 건축가 입장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강한 건축이다. 건축가 스스로 만족을 담는 건축물이며, 아무래도 작품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건 사무실 이름에 담긴 네모에서 읽을 수 있다. 네모는 눈에 보이는 흔한 사각형이지만 그 사각형을 제대로 조합시켜 하나의 건축물을 만드는 작업. 그래서 건축이 재미있는가 보다.

 

추천한 책 이야기부터 하자. 서현 교수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추천한 이유는 뭔가.

무엇보다 쉽게 쓰여 있다. 처음 들어온 직원들에게도 거의 강제적으로 읽으라고 한다. 건축 입문서적이어서인지 몰라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인문학이 본격적으로 뜨기 전에 나온 책 아닌가.

그렇다. 인문학은 유행처럼 시작됐는데, 이 책은 그전에 나왔다. 책의 맺음말 쪽에 저 건물은 멋있는 건물입니까라는 질문을 하는데, 그에 대한 대답과 생각이 적혀 있다.

대학졸업 후에 김석윤 소장의 김건축을 다녔다. 3년 반 지나니 김석윤 소장이 공부를 더 해보라고 하더라. 대학원을 선택했다. 잘된 건물을 내 스스로 생각해보는, 그런 지식을 쌓아볼까 해서였다.

건축 여행을 가더라도 잘된 건축물을 찾아가는데, 잘된 건물을 찾으러 가는 와중에 그 길에도 잘된 건축물이 있을 수 있다. 그걸 못 보고 지나친다. 우린 그저 목표한 여행 목적지에 있는 잘된 건물을 향해, 유명한 건물을 찾아가는 식이다. 그 와중에 묻혀 있는 잘된 건물이나, 우리가 조사하지 못한 잘된 건물을 지나치고 있지는 않을까.

 

건축은 예술작품을 보는 것이랑 비슷한 것 같다. 예술작품을 볼 때도 사람마다 선호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풍경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에 꽂히곤 한다. 건축도 그것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우린 건축으로 사회와 대화를 하고 있다. 말로써 건축으로써, 근데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 투박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부드럽게 하는 사람도 있고, 어쨌든 그걸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건축은 사회랑 떨어져 있는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성이 있는, 실생활이랑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와중에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이나 제주도 같은 경우에 잘된 건축을 얘기하면 분야가 너무 포괄적이다. 세밀화되지 않고, “누구는 이런 건축을 하고 있네라는 얘기가 없고, 전부다 건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좋은 건축을 강조하는 네모건축 강경훈 대표. 미디어제주
좋은 건축을 강조하는 네모건축 강경훈 대표. ⓒ미디어제주

삶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보는 시각도 제각각이긴 하지만 잘된 건축이란 행복함을 느끼는 집이 아닐까.

학교 강의를 나갈 때 학생들에게 얘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잘된 건축좋은 건축을 구분하라고 한다.

아파트 같은 경우에 좋은 건축이라고 얘기한다.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에 맞게 모여 살 수 있고, 금융거래나 부동산 거래 잘 되고,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도 많고, 보편적인 집으로서 좋은 건축이지만 잘된 건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잘된 것에 대한 생각은 각자 정의 내리기 나름인데 건축을 하면서 좋은 건축을 할지, 잘된 건축을 할지 두 가지 방향이다. 특히 단독주택처럼, 촌에 지어지는, 어른들이 사는 작은 집을 할 때는 될 수 있으면 좋은 건축을 하려고 애쓴다.

 

제주형 집은 예전엔 낮고 어두웠다. 제주자연을 이기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제주 자연을 이겨서인지 환해진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옛날 사는 집도 기억나지만 지금 사는 집과 비교를 하면 지금이 훨씬 만족하며 산다. 옛날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옛날 집보다 커졌고, 빛을 많이 받게 설계된다. 밝은 데서 사니까 마음도 밝아진다. 그렇지 않고 예전 살던 방식을 고집하면 제대로 재밌게 살 수 있을까? 그런 고민도 든다.

설계를 하면서 지역 건축을 일부러 집어넣으려는 입장은 아니다. 이젠 기술이 자연을 버틸 정도는 됐으니 건물 층고도 높아지고 부피도 커졌다. 학생들에게 얘기할 때 꼬르뷔지에는 프랑스 지역 건축가다. 그 지역 건축가가 한 게 전 세계적이 된 것이다라고 하곤 했다. 르 꼬르뷔지에는 지역을 나타내려 한 게 아니고, 지역에서 좋은 작업을 하니까 전세계적인 추세가 돼버린 것이다. 우리도 이 시대에 맞게, 지역건축이 꼭 아니더라도 보편화된 건축을 하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리라 본다.

 

억지로 지역성을 담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은 든다. 자기가 맞는 환경에 맞춰서 사는 것이다. 주변을 잘 맞춰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건축은, 우리와 같은 건축가들이 사회랑 대화하는 방법이다. 사회의 삶 자체가 예전 지역성을 가질 때랑 너무 달라졌다. 제주의 삶이나 서울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건물도 비슷하게 나오지 않나.

 

노형(네모건축이 노형에 자리를 잡고 있다)이야 제주에서는 제주답지 않은 도시이다. 여기랑 다른 지역은 다른데. 다른 지역 건축은 어떻게 맞춰줘야 하는지, 그에 대한 생각은

계획을 잡으면 가까운 주변을 본다. 주택이나 작은 걸 할 때도 주변을 보면서 고민한다.

 

어느 지역을 할 때가 가장 고민되나.

촌에 자그마한 단독주택을 할 때이다. 한림읍 명월리가 고향이다. 동향집이 많았다. 아니, 대부분 동향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남향으로 바뀌더라. 대정읍 신도리에 작은 집을 하고 있는데, 거기는 서쪽으로 경치가 좋다. 그 집 아버지는 서향은 안된다고 하더라. 태풍이 분다면서. 그 집 남향은 앞마당이 얼마 되질 않는다. 서향은 도로와 1.5m 차이여서 바다도 다 보이고, 나중에 빌려줄 걸 감안하더라도 서향이 좋은데, 그 집 아버지가 절대 안된다고 했다.

 

신경이 덜 쓰이는 곳은

도심이다. 잘난 맛에 한다.

 

도심에 들어서는 것은 외관인가.

도심지일수록 그렇다. 도심지 설계는 상업적 건물이 많으니까 외관을 중시한다. 계획 때는 재료와 형태를 가지고 미팅을 하고, 처음엔 오케이를 하는데 나중에 내역을 뽑아주면 재료도 형태도 바뀐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다른 건물이 생겨난다. 시공비가 잘 따라주지 않아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지역이나 장소가 있다면.

촌에 집을 짓는 걸 좋아한다. 그게 좋더라. 단독주택 수주가 처음엔 없었는데, 나중에 하나 둘 하게 됐다. 작은집을 할 때가 재밌다. 제주에 내려온 이들이 촌에 집을 지을 때 특히 재밌다. 형태나 배치는 주변과 맞춰가고, 평면은 자유롭게 한다. “3개가 있어야 해이런 게 아니라 다른 형식으로 풀어가니까 재밌다.

 

촌이 어떤 특성을 지녔나. 개인적으로 촌이 왜 중요한지, 그 가치는 무엇인가.

고향인 명월은 촌이고 막힌 동네이다. 버스가 올라와서 통과하는 동네가 아니라,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곳이며 발전도 더딘 동네이다. 느낌이 좋은 곳이다. 동네 사람들도 다 안다. 애들끼리 내창에서 돌멩이 쌓아서 놀고. 친구집에서 점심과 저녁도 얻어먹고, 팽나무가 많은 동네니까 친구들끼리 팽나무에 올라가서 놀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좋은 건 다름 아니라 높지 않은 데 있다.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풍경을 이루고 있다는 게 좋다. 도로도 넓지 않고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다.

 

건축사사무실 얘기를 해보자. ‘네모라고 정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사무실 이름 지을 때 여러가지 이름을 생각해봤는데 다 있더라. 설계를 할 때 사각형을 좋아하기에 네모로 했다. 사각형은 합리적이다. 네모로 짓다 보니 동그라미와 세모도 연상되어 나온다.

 

네모라면 설계할 때도 재밌을 것 같다. 규브를 연결지으면서 구상을 하는 경우도 있겠다.

설계는 크게 해서 나누는 것도 있고 작은 걸 조합하는 방법도 있다. 둘 중에 외곽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편이다. 될 수 있으면 네모를 만들어준다. 네모는 기본이다. 기본을 만들고 거기서 변형할 때는 그걸 기준으로 삼아서 변형을 준다.

 

건축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게 네모니까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겠는데, 동그라미나 그런 표현은 솔직히 힘들지 않나.

지금 세모난 카페를 하고 있다. 네모에서 멀어진 것은 처음이다. 하다 보면 시공이 받혀주지 않기도 한다.

 

시공이 잘 받혀주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작업을 덜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것 같다. 힘든 설계를 안 하게 되고, 그걸 하지 않다 보니 나중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게 된다.

명월초 옆에 다가구주택을 할 때였다. 벽체에서 계단이 하나씩 뻗어나오는 걸 설계했다. 김중업 선생도 그런 걸 엄청 많이 했는데, 목수가 못하겠다고 하더라. 해보라고 했다.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또 있다. 시공비다. 결국 만들어냈다. 그렇게 하나씩 실험을 하고 있다. 그걸 해봐야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생기고, 점점 더 그런 걸 만들 수 있게 된다. 제주도는 진짜 허가도면으로만 집을 다 지을 수 있는 건물을 많이 하고 있다. 기술자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쉽게만 만들려고 하니까 그런 것 같다. 1960년대 김중업 선생의 곡선(옛 제주대 본관)을 어떻게 표현하나. 지금 하라면 아무도 못할 것 같다. 요즘은 오히려 도면을 보면서 이걸 빼자고 하는데.

제주시 중앙로만 가더라도 1970년대와 80년대 건물은 노동력이 보인다. 요철을 보면, 어떻게 만들었는지 눈에 보일 정도이다. 잘된 건물은 노동력이 많이 들어간 건물이다. 그런 건물은 그 시대는 아니지만, 나중에 눈에 많이 들어온다.

 

어찌 보면 옛날 목수들은 장인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마을에 목수들이 있는데, 자기 작품을 마을에 남겨두려고 뭔가를 하고, 심지어는 벽에 흔적을 남기는 이들이었다. 미장을 하면서 꽃을 그린다든가, 담벼락에 굳이 하트를 만들었을까. 우린 귀찮아서도 못할 것 같은데.

그런 게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노동력이나 약간의 비용을 더 들이면 잘 만들 수 있는데 거의 없어졌다.

 

장인정신이 사라진 건 무슨 이유일까.

경제성 때문인데, 그게 나쁘다기보다는 사회가 그런 쪽으로 변했다. 그렇더라도 설계를 하며 하나씩 실험할 때는 노동력이 더 들어가는 쪽으로 해보고 있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시공하시는 분이나 건축주들을 설득해서 그렇게 하자고 한다.

 

건축계에 발을 디딘 계기는.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2학년 때였다. 양건 소장(가우건축)이 수업을 가르쳤다. 땅에 자기 생각을 펼치는 프로젝트를 했는데, 그게 재밌더라.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게 아니었고, 시험문제 풀 듯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내 것이 답이 될 수 있고, 왜 내가 생각하는 게 답인지에 대한 생각을 풀어나가는 방식이었다.

 

제주를 떠나서도 경험을 했는데.

대학원 올라가면서 8년 정도 경험했다. 김석윤 소장이 내게 말한 게 있다. 앞으로 설계만 하면 안된다면서 시공을 배우라고 했다. 대학원 졸업 후에 현상설계하는 사무실도 다녔고, 인테리어 회사이지만 시공을 주로 하는 회사도 다녔다. 프로제트마다 재미있었다.

 

김석윤 소장이 시공도 배우라고 했는데, 시공을 배우니 어떤 게 도움 되나.

현장을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설계하면 현장에서 어떻게 되고, 트러블은 어떻게 생길 걸 미리 생각하게 된다.

 

행정과 건축과의 관계도 얘기를 해보자.

행정과는 서로 부딪히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부딪히는지 모르겠다. 인허가를 예로 들면 인허가가 잘못 나면 건축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부산에서도 한번 설계를 해봤는데, 거기는 제주도와 다르다. 제주도는 내부 지침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부산은 법대로 서류를 준비하라고 하더라. 처음엔 황당했다.

 

법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는 자유롭게 건축행위가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바뀌는 과정에 있다. 법규를 따져서 문제가 없으면 처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건축활동을 하면서 영향을 끼친 건축가를 들라면

김석윤 소장이다.

 

김석윤 소장은 어떤 걸 많이 강조를 하던가.

어떤 이슈가 있으면 그에 대한 생각을 펼친다. 건축을 이렇게 해야 한다면 그 방향으로 간다. 그러면서 도면을 꼼꼼하게 체크를 해준다. 지금 생각하면 쉽지 않은 건데, 지금 나 자신도 그렇게 도면체크를 못하고 있다.

 

김건축 있을 때 작품은 뭐가 있나.

한라도서관, 제주현대미술관, 웰컴센터 등이다. 큰 프로젝트를 많이 했다.

 

건축가들이 사회적 역할을 많이 해야 하는데, 김석윤 소장을 보면 그걸 몸소 실천하는 분이다. 건축가들은 어떤 식으로 사회에 역할을 해야 할까.

건축가들이 사회를 향해 가장 잘 해야 하는 것은 자신들의 작품을 잘 만드는 일이다. 나서서 사회활동가로 일하는 분도 있지만, 내 경우엔 작품을 열심히 만드는데 중점을 둔다. 내 작품을 잘 만드는 게 사회공헌이다.

 

김영갑의 작품을 좋아하나.(네모건축 사무실에 김영갑의 작품이 걸려 있다.)

여백이 좋다.

 

그 여백은 설계와도 연계되나.

앞서 고향 명월을 얘기했는데, 명월은 동네가 낮고 빽빽하지 않다. 그런 이미지를 찾고, 설계도 될 수 있으면 그런 쪽으로 하려 한다.

 

책을 다시 펼쳐보겠다. 225쪽을 보면 건축가들이 건축 설계사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기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건물을 만드는 작업이 단순한 기능적인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고 나온다. 이것에 공감을 하나.

건축가나 건축사에 대해 너무 정의를 내리지 말았으면 한다. 뭔들 어떠하리. 누가 불러도 스스로 건축가로 생각하면 된다. 남들에게 꼭 건축가로 불리길 원하는데, 건축사와 건축가에 대해서는 의미를 많이 두진 않는다.

살아가면서 하는 게 건축이지, 건축을 하려고 세상을 살지는 않는다.

 

- 1999년에 건축 이야기를 기사로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 그대 건축 설계사로 쓰니까 설계사 아니라 건축가라고 누가 그랬다. 그래서 건축가로 고쳐 쓰긴 했다.

예전 건축사사무소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허가방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허가방은 인허가를 내서 인허가 비용으로 사무실을 운영하고 돈을 버는 걸 말한다. 그런 식으로 본다면 지금도 다 허가방이다. 설계하는 자체가 그렇다. 설계를 퀄리티로 따지고 돈을 받기보다는 평당 단가가 얼마니까 얼마로 해서 설계비를 받거나, 아니면 얼마 미만으로, 허가를 빨리 내는 조건으로 사무실을 운영하곤 한다. 그게 허가방이다. 점점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다.

 

소설 <파운틴헤드>를 보면 미국 건축가들은 설계비를 어마어마하게 받더라. (그의 사무실에 소설 <파운틴헤드>가 꽂혀 있다.) 소설엔 건축물의 중심은 건축가더라. 우리는 건축을 허가방 수준으로 보는데,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까. 건물을 하나 짓는다면 건축가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아닌가?

작품을 잘 만들면 그게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작품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앞에 줄서서 설계하듯이, 잘 하는 사람들이 올라와서 사회전반적으로 퍼져야 한다. 때문에 평당 단가가 아닌 프리미엄 설계를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지음

 

다들 인문학을 내건다. 마치 무슨 마법이나 된 듯, 인문학을 떠든다. 인문학이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을 대하는 그런 뉘앙스다. 그러다 보니 질 떨어진 인문학이 등장하곤 한다. 누구나 다 하는 인문학처럼 떠들기에, 수준 낮은 인문학을 만나곤 한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는 우리 사회에 인문학이라는 광풍이 본격적으로 휘감기 이전에 나왔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인문적 건축 이야기’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글쓴이는 마치 인문학이 뜰 것을 예상한 듯 ‘인문적 건축 이야기’라는 부제를 집어넣었다.

인문학은 우리의 삶이다. 늘 접하는 미술이나 음악, 각종 책을 통해 접하는 정보 그 자체가 인문학이며, 세상 모든 이야기의 근원이다. 역사나 철학 등 전통적인 인문학만 인문학으로 보지 않는다. 자연과학도 인문학이다. 인문학을 기반으로 해야만 자연과학은 더 탄탄해진다. 과거를 회상한다면 그리스의 학자,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가, 조선의 선비들이 다들 과학과 전통 인문학을 겸비한 인문학자였음을 우린 알고 있다. 지금 고교과정에서 사라졌지만 예전엔 ‘인문반’과 ‘자연반’을 구분했다. 배우는 과정에 선을 그으면서 교육이 틀어진 측면이 없지 않다. 이젠 통합교과가 생기면서 그런 구분이 무의미한 시대가 왔다. 예전엔 그런 구분이 없었기에 학문의 통섭이 가능했는데, 왜 현대교육은 구분을 지으려 했을까. 때문에 자연과학 분야에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기초가 자라지 못했다. 그게 배고팠기에 인문학을 집어넣고 있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는 건축을 말하고 있다. 건축은 자연과학처럼 읽히지만, 사실은 인문학 소양이 없어서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학문이다. 건축은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는 학문이다. 서현 교수가 쓴 이 책은 ‘인문’이라는 이름을 달았듯이 쉽게 읽힌다. 저자가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라고 부르듯이 건축은 늘 보고 듣는 음악이나 미술처럼 가깝다.

책은 건축을 보는 자세를 일깨운다. 늘 접하면서도 스치듯 지나가는 게 건축이지만 제대로 알려고 들지 않는다. 늘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볼 수 있게 안내한다. 문장 하나를 보자.

“절에 가서 대웅전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높다란 계단을 오르고 또 신발도 벗어야 한다. 발부리를 잡는 것들이 많다. 대웅전의 섬돌은 크기도 작아서 신발도 조심조심 벗어 놓아야 한다. 허위허위 올라왔던 우리의 발걸음은 이때쯤이면 산조(散調)의 진양조 정도로 늦춰져 있다. 대웅전 안팎은 비록 물리적으로는 창호지 한 장의 간격이지만 실제로는 극락과 사바 사이의 아스라한 거리를 갖고 있다. 창호지 한 장 두께는 참배자가 시간을 갖고 마음을 고르는 사이에 그 먼 거리로 바뀌는 것이다.”

절에 가본 사람이라면, 대웅전 섬돌에 올라본 사람들이라면 위의 문단이 주는 느낌을 알테다. 그러나 이런 건축적 의미가 있었는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건축은 우리들의 삶이기에, 찬찬히 돌아보면 그 의도가 읽힌다.

책의 맺음말로 가보자. “저 건물은 멋있는 겁니까?”라는 물음이 있다. 저자는 질문에 대한 답도 하고 있다. 저자는 그런 물음 자체가 잘못됐고, 위험하다고 한다. 어떤 대상, 그러니까 건물에 대한 감상과 판단은 누가 답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판단에 대한 기준을 주기 위해 저자는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건축의 화두 역시 예쁜 건물을 만드는 데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다음은 책의 마지막 문단이다.

“건축의 가치는 멋있다고 표현될 수 있는 것 너머에 있다. 건축은 우리의 가치관을, 우리의 사고 구조를 우리가 사는 방법을 통하여 보여 주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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