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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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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기확
  • 승인 2020.12.17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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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33>

요즘. 젊은이들을 위한 힐링, 위로가 판을 친다. 평소 신조는 ‘조언은 부탁받았을 때만 한다.’지만, 신조를 잠시 어기고 쓴소리를 하려 한다. 하지만 쓴소리에 더해 진심 어리지만 냉혹하고 현실적인 위로도 덧붙인다. 내 아이도 곧 ‘젊은이’가 될 것이기에.

# 쓴소리1: 자신의 시간만큼 타인의 시간도 중요하다

요즘 젊은이. 인터넷, 게임기, 학원, 인터넷 강의, 부모 맞벌이 등 대체로 혼자 놀고 자라온 세대다. 자라고 나니 제대로 된 선배, 고민을 나눌 형제, 의지할 어른이 없거나 떨어져 있다. 소통을 하려 하니 사회는 1인 가구, 개인화, 혼밥, 혼술이 대세다. 흠. 어쨌든 혼돈의 시기에 취업을 했다.

선배에게 위로를 받아 볼까? 이런! 직장 선배와 후배는 갑을관계, 꼰대문화, 성별대결, 미투(#Me, too)로 치닫고 있다. 게다가 언론은 추가로 신조어들을 만들며 갈등을 부추긴다. 도제(徒弟)관계, 사수와 부사수 관계는 옛말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신입 사원들은 직장 안에 있으면서도 ‘업무매뉴얼’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다른 이들과 말 섞기 싫거나 불편하다는 말이다. 휴대폰, 프로그램을 구입한 후 금세 손가락 몇 번만 돌리면 되는 간단한 매뉴얼에 익숙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보면 다 알 수 있을까?

매뉴얼은 차고 넘친다. 사람이 매뉴얼이다. 회사 업무는 학교의 교과서처럼 1단원, 3단원같이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또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향후 큰 문제가 생기거나, 방향과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흔들의자처럼 열심히 일을 해봤자 제자리에 있게 된다.

하지만 뒷꽁무니로는 선배가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데 뭘 알려주겠는가? 먼저 다가가면 잔소리, 성희롱, 꼰대, 꼴불견, 오지랖으로 역공을 가할 거면서?

그래서 불쌍하다. 그런데 위로해주고 싶어도 싫다. ‘저녁이 있는 삶’을 외치는 그들에게 주고 싶은 게 없다. 나 역시 그들에게 내 저녁이 있는 삶을 바치고 싶지 않다. 그들이 나와 저녁을 같이 하자는 건, 오히려 나에게 갑질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스펙을 자랑한다는 그들을 선배라는 명목하에 가르치며 왜 내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지? 집에는 짐승 같은 자식과, 여신 같은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한가하지 않다.

당신이 한가하지 않은 것보다 더 선배들은 한가롭지 않다.

무작정 선배에게 들이대는 것은 좋지 않다.

다만, 선배를 기다리는 것은 더 좋지 않다.

# 쓴소리2: 위로는 엄마에게 받고, 아프면 병원에 가라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이른바 ‘멘토’들을 TV와 책에서 비대면으로 찾는다. 우울하지도 않은데 소통전문가, 심리학자, 정신학과 의사들에게 TV에서 위로받고, 아프건 안 아프건 아파야 청춘이다라 외치는 분께 위로받고, 숨가쁘지 않은데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고, 모기가 얼마나 많은지도 모르고 숲 속 생활의 즐거움을 상상하며 《월든》을 읽는다. 이 모든 걸 언택트, 비대면으로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예를 들자면 그는 어찌 보면 직장에서 휴직을 내고 숲에서 산 것 뿐이다. 그것도 비대면이 아니었다. 엄마가 바로 옆에서 살았고, 소로는 매일 엄마를 찾아갔다. 하기야 28살짜리 청년이 혼자 숲에서 사는 게 보통 힘들고 외로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소로가 살던 숲은 미국의 갑부 강연자이자 초월주의, 혹은 신비주의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땅이었고, 그가 공짜로 빌려준 것이었다. 에머슨은 하버드대를 나온 수재인 소로의 후견인이었기 때문이다.

정리해본다. ‘월든’과 같은 삶을 살려면, 대기업 회장을 후원자로 두고 S대나 하버드대를 나온 후, 숲으로 가서(숲은 대기업 회장이 공짜로 빌려줘야 함), 엄마와 같이 살면서 자기계발서를 쓰면 된다. 제목은 ‘무소유(無所有)와 풀소유(Full所有) 사이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정도?

자, 세간의 위로가 진정한 위로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는지? 보통 자기계발서는 성공한 사람, 가진 자가 쓴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 이렇게 살면 본인처럼 된다고 한다. 하지만 출발점과 조건이 다르지 않나? 오히려 작금의 위로 메들리들은 역으로 당신을 공격하며 없는 병도 만드는 바이러스다. 너는 나처럼 하지 않으니깐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위로를 받으려면 엄마에게 가고, 아프면 병원을 가라.

# 쓴소리3: 가족과 회사를 분리하고 차별하라

직장의 시간은 양이다. 가족의 삶은 질이다.

직장에서 가장 오랜 시간 있는다고? 그래서 중요하다고?

직장에서 10시간과 가족과의 2시간을 선택하라고 하면, 이건 문제 같지 않은 문제다. 직장에서 10년과 가족과의 1분도 안 바꿀 자신 있다.

가족 같은 회사라고? 웃기는 소리. 거짓말. 어떻게 가족과 회사가 같나?

가족 같은 직장은 없다. 가족 같은 직장이 있다면 그건 모조가족, 인조가족, 짝퉁가족이다. 언어는 사회와 문화, 시대적 가치를 반영한다. 가족은 함께 밥을 같이 먹는 식구(食口)와 동일어다. 식구가 없으면 가족이 아니라, 가구라고 한다. 1인 가구를 생각해보라.

직장 동료들과 함께 먹는 것은 식사(먹는 일)와 같이 의례에 불과하다. 반면 가족과 먹는 것은 밥(따뜻한 온기)이라 한다. 직장에서 돈 버는 것을 밥벌이(가족과 함께 먹기 위한 밥을 버는 것)라고 하니 ‘밥’이 얼마나 중요하고, 식사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언어가 말해 준다. 다시 말해 우리는 밥을 먹기 위해 혹은 밥벌이를 위해 직장을 다니는 것일 뿐, 과거 S전자의 기업이미지 광고처럼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것이 아니다.

회사는 은퇴가 있지만, 가족은 은퇴가 없다. 무엇이 중헌디?

분리하고, 차별하라.

# 쓴소리4: 일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라.

우리 회사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친화기업이라서 좋다고? 어디가 좋은지 정확히 얘기하지 않으면 거짓말이다.

이처럼 떠벌리는 것은 일하는 것에 비해 돈을 많이 준다거나, 받는 돈에 비해 일이 널널하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그래도 회사가 좋다는 믿음이 든다면, 솔직히 말해 당신은 회사가 버린 카드거나, 회사가 망해가고 있다는 방증(傍證)이다. 회사의 이윤은 당신에게서 나오는데, 당신이 워라밸이 가능하다니까 하는 말이다.

워라밸은 없다. 자꾸 다른 것, 즉 일과 삶을 비교하려 들지 말라. 비교될 수 없는 용어다. 기업의 논리에 빠져들지 말라. 기업은 어차피 일과 삶의 균형이 안 될 걸 알기 때문에 워라밸을 하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일을 할 때니 일을 더 하지만, 나중엔 좋을 거라고 부추기는 기업의 논리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

삶과 일을 분리해야 한다. 삶은 살고, 일은 하면 그뿐이다.

오뚝이를 흔들어보라. 쉽게 가운데로 오지 않고 흔들린다. 스트레스다. 마찬가지다. 워라밸은 불가능하다. 회사는 당신을 흔든다. 워라밸을 위해서 자기계발을 하라 한다. 능력을 키우고 일을 빨리 끝낸 후 삶으로 가서 ‘균형’을 찾으라 한다. 하지만 균형을 찾기 전에 회사는 당신의 능력이 ‘아까워’ 일을 더 던진다. 당신은 제자리로 가려 하지만 흔들리는 오뚝이는 흔들흔들 여기저기로 간다. 결국 일을 더 하게 된다. 중심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흔들리지 말라. 휘둘리지 말라.

회사에서 받는 만큼 주면 그뿐이다.

이쯤에서 쓴소리를 마무리하고 위로를 한다.

# 위로1: 위로 메뉴얼 없음. 당신이 아픈 곳 진단 못함(의사 아님)

# 위로2: 쓴소리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길. 가슴이 저미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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