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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적 사고로 보는 서예술과 건축심미
융합적 사고로 보는 서예술과 건축심미
  • 김형훈
  • 승인 2020.12.04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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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6월호] 이슈
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칼럼니스트

예술의 완성(完成)은 영혼(靈魂)의 소멸과 궤를 같이 한다. 예술은 미완이며, 완성의 끝조차도 없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미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 작업노트 중에서 -

수천 년간 이어온 지필묵(紙筆墨)과 흑백(黑白)의 미학은 역사가 선택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서예는 의사전달 수단으로서 효용이 한계에 다다라 위축되고 있다. 서예는 한자를 알고 필묵의 특성을 알아야 감상이 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접근성이 약한 게 사실이다. 대개 실용예술이 그렇듯, 대중에게 소외되고 예술성을 담보하지 못했을 때 성장과 발전의 발판을 잃게 된다. 요즘 혹자들은 서예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서예가 ‘예술(藝術)인가 아니면 예도(禮道)인가’ 사이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서예는 서자(書者)의 정신성을 드러내는 동양의 독특한 선(線)의 예술이다.

서예가 처한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보는 서예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시대의 심미를 확충하고 예술성을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나는 전통서예와 현대서예를 동시에 작업하고 있다. 전통의 심미가 특별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전통서예는 붓의 참맛을 아는 사람끼리만 향유하여, 확장성 문제를 갖고 있다. 제주인으로서 제주에 살면서 제주 바다같이 험한 서예술세계(書藝術世界)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를 늘 고민해 왔다.

이글은 ‘예술로서의 서예적 특성’을 이해하고 어떻게 서예를 ‘현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단편적인 나의 생각들이다.

 

제주의 풍토와 예술성(藝術性)

제주는 천혜의 풍광을 자랑하는 섬이다. 하지만 과거엔 지정학적으로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내륙과 단절된 절해고도였다. 이 처절한 환경은 제주인의 성품을 투박하고 끈질기며 거칠지만 단순하게 만들었다. 제주인에게는 역경을 이겨내는 도전정신이 있다. 이 또한 제주풍토가 만들어준 선물이다.

조선왕조 약 5백년동안 제주 유배자수는 무려 260여명에 이른다. 유배객 중 특히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9년 동안 대정에 적거하면서 ‘추사체(秋史體)’와 ‘세한도(歲寒圖)’를 완성했다. 흔히 ‘추사의 예술’을 논할 때 청(淸) 금석학자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의 영향이 절대적인 것처럼 강조된다. “추사는 이들이 있었기에 추사였다”는 식의 통설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청대 금석학의 영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추사의 예술이 운명적으로 제주 풍토와 만나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삶의 고통과 불안은 실존적 추상체(抽象體)를 만든다. 처절한 제주의 삶은 유배객 추사를 추괴(醜怪; 추하고 괴이함)의 세계로 이끌었다. 제주풍광의 아름다움을 관상할 여유조차 없었을 당시를 생각해 보면, 풍토적으로 추괴 미학의 당위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제주민간에 “추사체의 글씨 형세가 꺾어질 듯 굳세고 험절한 것은 그가 즐겨 올랐던 적소(謫所) 앞 단산(簞山)의 괴벽한 모습에서 착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추사예술에 대한 제주풍토의 필연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추사의 추괴미학은 제주의 미학으로서 지금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예로 사실주의 화풍을 버리고 폭풍의 바다와 노인의 고독을 그려낸 변시지 화백이 그렇고, 파도와 바람의 격정을 먹 글씨로 표현했던 소암 현중화 선생이 그렇다. 그들은 가고 없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혼’은 제주의 풍토 속에 살아 우리에게 영속될 것이다.

 

서예를 끌어안은 서양미술

서예의 필획은 서양에서 사용되는 선(線)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예의 필선은 감성을 드러내고, 서법(書法)이 규정하는 ‘예술적 의도성’과 ‘조형적 습관’이 반영되어 인간의 내면 세계를 표출시킨다. 필선은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리듬감과 생명감으로 표현된 작가정신 그 자체다.

옛 사람들은 서예의 선을 말할 때 정신과 기운, 뼈와 살과 피가 있는 생명체로 비유했다. 서예의 선은 숙련된 작가의 운필에 의해, 그때그때 변화무쌍하게 나타난다. 선의 정감(情感)은 강함과 부드러움, 무거움과 가벼움, 빠르고 느림, 리듬감 등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서예가는 선 안에 자신의 정신을 투영시켜, 변증법적으로 더 많은 선의 변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선을 윤곽선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왔다. 면(面)과 면이 극명하게 만나는 한계로서 실제 보이지 않고 이념으로만 존재하기도 한다. 동양과 서양은 서로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미술사를 보면 세잔느와 인상파 화가들이 동양화의 평면적 표현을 흡수하고, 동방지역의 정신성이 칸딘스키의 추상 출발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러한 흐름은 20세기 서양미술의 중심에 동양의 ‘관념중심사상(觀念中心思想)’을 옮겨놓아 인간의 정신성을 중시하게 하였다. 그 과정에 유럽의 앵포르멜(Informel)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 Abstract Expressionism)가 동양의 서예를 차용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서예의 영향으로 툴루즈 로트렉과 반 고흐 등은 표현성과 자율성을 획득한 선을 구사하였고, 클레와 미로, 마티스 등은 한자의 상형문자(象形文字)를 차용한 부호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동양의 정신과 서체의 개념을 이해하여 서예적 특성을 표현한 작가는 피에르 술라주, 앙리 미쇼, 마크토비, 앙드레 마송, 조르주 마티외, 한스 아르퉁, 장 드고텍스를 비롯하여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등이다(우리나라에도 남관, 이응로, 이우환 등이 있다). 이들은 서예 필선의 역동성과 검정색의 신비감, 선사상(禪思想) 등에 경도되어 전후 현대미술사조에서 주류를 이루었다.

우리가 구태여 서양미술에 수혈된 서예의 흔적을 살펴보는 이유는, 서예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이 시점에서 역지사지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경험한 과거의 한 단면을 살펴 우리가 가고자 하는 서예의 미래를 예측해보는 것도 준비하는 자의 자세일 것이다.

 

시대심미를 찾아서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서예는 문자를 다루는 예술이므로 보는 이로 하여금 글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준다. 엄밀히 말하면 문장은 문학의 영역이지 서예의 본질이 아니다. 서예가가 지금껏 추구한 것은 필선(筆線)으로 어떻게 다양한 성정을 표현해 내느냐에 있었다. 붓을 다루고(用筆), 문자의 모양을 만들고(結構), 문장을 구성하는(布置) 개성적 조형능력은 이를 위한 필수요소였다.

피카소도 “내가 동양에 태어났다면 서예가가 되었을 것이다”고 했다. 지금 서구문화의 패권 속에 동양이 빛을 잃고 있다고는 하나 결코 열등한 것은 아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를 거치면서 제도권 밖에서 홀로 살아남아 문화를 선점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의 예술은 제도가 안정된 위치를 보장해 준다. 서예는 좋은 작가의 훌륭한 작품은 있으나 작가를 보증해 줄 시스템이 없고, 수요층을 연결해 줄 매체가 별로 없다. 시장성의 확보문제는 작가의 생존문제이며 곧바로 예술의 존립문제와도 연결된다. 어쨌거나 서예가 유구한 역사와 독특한 심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상대적으로 주변 관심이 소홀한 이유는, 과거에 안주되어 시대 심미를 갖추지 못하는데 있다고 본다.

우리는 창작 태도를 말할 때 흔히 “전통 속에 새로움이 있다”고 한다. 예술은 독창성을 포기했을 때 자기상실을 자초하게 된다. 주변을 살펴보면 지나치게 법서(法書; 고전적 표준 글씨)에 매달려 임모(臨摸)가 최선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모방은 창조가 아니다. “신(神)은 자연을 창조하고 인간은 예술을 창조했다”는 말이 있다. 창조성은 고유한 개성의 가치와 함께 항상 자주적으로 존재한다. 영향이냐, 모방이냐, 표절이냐 하는 문제는 작품의 독창성과 관련하여 치열한 쟁점이 되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면 역사의 대열에 설 수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환경 속에 놓인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를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과 정서 속에 잉태된 예술은 숙명적으로 늘 다를 수밖에 없다. 요즘은 변화의 물살이 빠르고 사람들도 다분히 즉발적이다. 유행에 민감한 그들에게 맨몸으로 전통(傳統)을 드러내 보이기가 두려워졌다. 보지 않는다면 보여줄 수밖에 없다. 과거의 서예가 갖추지 못한 이 시대의 그 무엇인가를 찾아서 보여줘야 한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미감을 찾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

오늘날 세계화의 물결은 민족과 지역을 초월하여 통용되는 정보와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 일체화를 이루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문화 배경에서 성장한 예술은 사상과 감정, 표현과 전달 방식이 서로 달라 다양성을 가지고 다원화되었다. 서예가 여타 예술과 심미적 특성을 달리하고 차별화된 미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지금껏 지켜온 정체성과 고유성으로 시대와 긴밀하게 결합하여야 한다. 진화되는 예술의 역사가 낡은 것은 버리고 새것을 받아들여 끝없이 발전해 왔듯 이 시대에 맞춰 서예도 재창조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술은 ‘부정(否定)을 통한 새로움’을 구축해왔다. 사실적 그림이 사진에 굴복하면서 추상을 태동시켰다.

근대 추상미술도 감상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급기야 대중문화의 보편성을 끌어들였다. 모든 예술은 대중과 호흡하며 변화된다. 서예라고 해서 상황인식이 다를 수 없다. 서예사를 통틀어 지금처럼 서예의 현대화를 갈망한 적이 없을 것이다. 이미 서예도 ‘고와야 아름답다’는 관념을 버렸다. 자유분방한 붓질이 만든 파필획(破筆劃)도 허용되고 있다. 시대를 읽는 작가라면 실험적으로 지필묵(紙筆墨)의 제한을 넘어 장르의 경계를 허물 수 있어야 한다. 미감의 확장을 위해 전통의 가치를 뛰어넘고, ‘옛날과 지금’, ‘동양과 서양’ 사이를 배회하며 새로움을 구하는 일에 두려움 없어야 할 것이다.

문자의 근원을 탐색하고, 직관을 키우며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글씨는 그림의 뜻으로 표현하고, 그림은 글씨의 뜻으로 수용된다”는 명제는 감상의 수월성에 근거한 말이다. 서예의 본질이 필선(筆線)에 있으므로, ‘글씨로 그린 그림’도 서예고, ‘그림으로 쓴 글씨’도 서예다. 서양이 경험했던 서예와 우리가 경험할 예술의 목표는 동일한 것이다. 다만 그들은 선행했고 우리는 준비 중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문자의 나열로 인한 반복된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보는 서예’로의 탈바꿈은 우리 시대의 요구다.

 

서예술에 담은 건축과 나의 작품세계

융합서예술(融合書藝術)은 서예를 바탕으로 여러 분야의 미적 요소들을 결합해서 만든 예술이다. 예술은 서로간에 유사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 개념’에 유추해 본다면, “시(詩)는 문자적인 면에서 서예이고, 서예는 선율적이어서 음악이며, 회화이며, 조각이며, 건축인 것이다.” 서예는 조형을 다룬다는 점에서 건축과 유사성을 갖는다. 건축과 서예에 대한 관심 속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공통적 조형 요소를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건물의 곡선을 서예의 곡선으로 보게 되고, 건축물의 뼈대를 글씨의 짜임으로 보게 된다.

건축의 공간구성을 보면서 서예문 자의 형태와 배치를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예의 점과 필획이 공간을 구성하여 문자의 형태를 만드는 방식이 극히 건축적이기 때문이다. 점이 모여 선을 만들고, 선은 공간을 품어 형태를 만든다. 선이 갖는 운동성은 언제나 상상(想像)의 궁극점에서 멈추어, 우주적(宇宙的) 공간성을 구성한다. 건축이 그렇고 서예도 그렇다.

사람들은 아는 것만큼 행동하고, 보고 싶은대로 본다. 몇 년 전 건축투어 중에 프랭크 게리의 ‘월트디즈니콘서트홀’을 본 적이 있다. 석양빛을 받아 자유롭게 율동하는 건물의 선(線)들과 빛의 각도에 따라 출몰하는 면(面)들이 마치 필획의 움직임과 문자의 변형처럼 보였다.

야외정원에서 게리가 월트 디즈니 미망인을 위해 도자기 파편들을 붙여 만든 ‘장미분수대’를 보면서도, 동양의 은은한 연꽃이 떠올렸다(사실 물 속에는 장미가 아니라 연이 산다).

프랭크 게리는 동시대의 여러 분야 예술가들과 만나면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건축을 하는 것은 직관적 행위이며, 여러분은 직관을 믿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는 그의 말에서, 나는 감상의 지평을 열어 동양의 성찰과 예술관을 느꼈다.

건축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예술에 대한 나의 시각을 넓혀, 소중한 ‘건축적 서예 작업’을 가능하게 해줬다. 건축으로 밥을 얻고 예술로 정신을 해갈시켰던 지난 생활이 돌이켜 보면 다행스럽다. 나는 작품의 재료로 돌가루, 석고, 섬유, 쇠, 목재, 시멘트, 공업 물감 등 건축재료를 선택한다.

화선지는 먹물을 수용하지만, 건축재료를 쓴 물성(物性) 있는 바탕은 순순히 필묵을 받아 주지 않으려 저항한다. 저항은 항시 극단적 한계점에 이르러야 극복된다. 나는 긴장된 붓끝으로 느끼는 저항의 시간을 즐긴다. 이는 여실히 제주의 풍토 속에 제주인으로 사는 방식과 같다.

서예와 건축, 회화 등등이 융합되는 무지의 공통 언어를 작품에서 구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 ‘직유와 은유’가 대립되고 모순적으로 조화를 꾀하는 과정을 즐긴다.

작품을 제작하다 보면, 직관이 우연하게 다양성을 만들어 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 노장(老莊; 노자와 장자)의 무위(無爲)와 무의식이 만든 이러한 서예적 변형들은 ‘필묵의 정신과 맥박’을 담아낸 새로운 미감이라 생각한다.

 

마치면서

오랜 세월동안 서예의 개혁은 완만하게 이루어져 왔다. 서예의 형식과 심미가 서양예술과 달라 서구 문화의 영향도 별로 받은 바가 없다. 이러한 상황이 서예의 전통적 가치관을 유지시켜 왔으나, 오히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현대성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서예의 현대성은 서예 필선의 변화와 작용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소통과 융합의 시대에 접어들어 예술은 장르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표현의 한계가 사라졌다. 전통을 견지하고 분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심미를 찾아 거듭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가는 작품으로 예술성을 증명한다. 진정한 작가는 시대에 대응하고 미래를 예측하여 준비한다. 현대서예의 발전은 이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탐색하고, 모순점을 극복하며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느냐는데 있다.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예술관이 만나고 조합을 이루어 시대심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두려움이 없는 자가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말을 되새긴다. 무외(無畏)한 나의 작은 움직임이 우리 시대의 예술로서 서예가 중흥되고,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작은 보탬이 되기를 소망한다.

참고문헌

송민 저, 곽노봉 역, 중국서예미학, 동문선 1996
강유위 저, 최장윤 역 , 광예주쌍집(光藝舟雙集), 운림당
김혜주 저 , 동서미술비교론, 눈빛, 2000
마이클 설리반 저, 백승길 역 , 중국 예술의 세계, 열화당, 1977
장문호 저 , 동양 미술사, 박영사, 1974
바버라 아이젠버그 저 , 이상근 역, 프랭크 게리와의 대화, 위즈덤피플, 2011
장미우산(張尾雨山) , 정충락 저 , 중국서화사, 미술문화원, 1984
양상철 전시평문, ‘서예의 시대정신과 현대성 찾기’, 미술세계, 2018
양상철 문화 칼럼, ‘목요담론’, 한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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