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있는 건축이란 ‘관계’를 고민하는 일”
“진정성 있는 건축이란 ‘관계’를 고민하는 일”
  • 김형훈
  • 승인 2020.11.26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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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12> 건축가 박경택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가정건축의 박경택 대표이다. 그는 다양한 고향을 지녔다. 역으로 말하면 내 고향은 어디야라고 말하기가 애매하다는 뜻도 된다. 공공건축가로서 바쁜 일상을 보낸다. 그가 좋아하는 공간은 여러 고향 중 하나인 제주시 용담동이다. 소개한 책은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 등이 쓴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이다.

 

# 용담동 – 아주 오래된 기억의 땅

제주시 용담동.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아쉬운 건 단 하나이다. 위대한 건축물을 가까이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의 작품인 ‘옛 제주대 본관’이다. 지금의 구조 실력으로는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건축물이었지만, 1990년대 쓸쓸히 사라진다. 1960년대 등장한 건축물은 30년만에 허물어졌다. 프랑스의 한 건축 평론가는 옛 제주대 본관을 향해 ‘21세기의 건축물’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였다.

아쉽긴 하다. 당시 건축물의 존폐 여부는 제주대가 쥐고 있었다. 제주대는 철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대한건축학회에 용역을 의뢰한다. 1995년 1월에 나온 보고서를 보면 “바닥과 1, 2층을 보강하면 현상유지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기술적으로 어렵고, 공사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철거 후 신축’을 제시했다. 아쉽지만 사라진 걸 어찌하겠는가. 다만 생전에 그 건축물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이렇듯 용담동은 지성인의 쉼터였다. 제주대학교 이전으로 용담동의 그 터는 사대부중과 사대부고의 몫이 되었지만, 여전히 용담동은 ‘대학동’으로 불린다.

지성의 땅이던 그곳을 더 거슬러, 탐라시대로 소환할 수도 있다. 탐라의 중심지는 물론 지금의 제주시 원도심을 중심으로 했겠지만, 원도심의 서쪽에 있는 용담동 역시 중요한 축이었다. 1984년 용담동에서 철기부장묘가 발굴된다. 묘에서 나온 철제검은 손잡이를 합칠 경우 85cm의 길이였다. 그 철제장검 손잡이엔 고사리문양(‘궐수문’이라고 부름)이 장식돼 있는데, ‘궐수문’은 특수한 지위가 아니면 가질 수 없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당대 최고의 실력자가 용담동에 묻혔다는 이야기가 된다.

바닷가에서 바라본 용담동 풍경. 미디어제주
바닷가에서 바라본 용담동 풍경. ⓒ미디어제주

1992년엔 용담동 제사유적에서 금동허리띠꾸미개도 발견된다. 지금은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 그같은 유물이 발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발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유일’한 유물이었다. 그 유물은 발해와도 관련을 지닌다. 탐라시대 제주사람들이 발해와 관계를 맺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 유물은 다양한 지역과 교류를 했던 제주사람들의 역사를 알려준다. 아울러 용담동의 가치도 함께.

지금의 용담동은 어떤 모습인가. 제주공항이 있고, 거기에 땅을 뺏기기도 했다. 해안도로의 역사도 매우 빠르다. 어영마을을 관통하는 해안도로는 1980년대 개통된다. 이후 용담동의 모습은 사뭇 달라지고 있다. 한 두 개에 그치던 카페는 줄을 잇듯 해안도로를 점령하고 있다. 1990년대 용담레포츠공원이 만들어지자 여름철엔 더위도 피하고, 고기를 구워 먹으려는 인파로 가득찬 그런 기억도 지닌 땅이다. 노점상도 한때는 활개를 쳤다. 불법 포장마차가 득세를 하면서 골머리를 앓다가, 강제 철거를 감행한 기억도 용담동은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여전히 용담동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고향도 서로 다르지만 ‘용담’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새로움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해안의 모습, 제주에 왔다면 한번은 들러야 하는 그런 모습을 용담동은 꿈꾼다. 건축가 벽경택은 “부산 해운대처럼”이라고 말한다.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삶은 과거가 아닌, 현재 혹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대담] 건축가 박경택을 만나다

 

가정건축 박경택 대표는 제주도 사람인데, 그는 이주민이란다. 부모의 고향은 제주시 한림읍. 태어나자마자 서귀포로 이동, 중학교 때 제주시 용담동으로, 대학을 나와서는 서울에서. 고향을 다시 밟은 건 10년 전. 그 지역도 제주시내 최고의 도심지역은 제주시 신시가지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는 제주도내에서도 이주민으로 자처한다.

사람은 한 곳에 안착하는 정주인의 삶도 있지만,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유목민, 즉 노마드의 삶도 있다. 어느 형태 혹은, 어느 방식의 삶이 옳거나 그르거나 하진 않는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삶의 안착방식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특정한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해보는 노마드적인 삶도 재밌지 않을까.

 

- <라이베이거스의 교훈>이라는 책을 추천한 이유는 뭔가.

대학교 때 읽은 책이다. 추천도서로 나왔는데 유럽의 오랜 도시 이야기가 아니라 사막에 지은 도시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책은 내가 꼭 디자인을 잘 하지 않더라도 환경에 맞는 설계를 하면 되는구나를 느끼게 한 매력이 있다.

요즘 공공건축가로 활동하면서 공공성 지도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책에서 보듯 벤투리라는 건축가가 대학생들이랑 조사를 다 하고 거리의 특성을 남기는 게 인상적이다.

 

건축가가 도시 특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그걸 발표하는 건 의미있는 작업이다. 그런데 책에 든 내용은 우리와는 다르다.

건축적으로 배울 점보다는 이런 활동을 했다는 게 대단하다. 사실 이 책은 절판됐다가 다시 나왔다. 이 책을 찾는 수요가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다시 한번 공부를 해봐야겠다. 어떤 관점에서 라스베이스거를 바라보았는지 다시 들여다보고, 도시 연구 방법론을 제주 공공성지도 작업에도 접목시키면 좋겠다.

 

책을 보면 오리장식화된 셰드(창고)’ 개념이 나온다. ‘오리는 뭐고, ‘장식화된 셰드는 뭘까.(책 소개를 읽으면 다소 도움이 된다.)

오리는 돌하르방이다.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한다. 국제부두에 관제탑을 만들 때도 돌하르방을 형상화하라는 얘기가 나왔다. 가로등을 봐도 그렇다. 전남 영암에 가면 갈매기 가로등이, 서귀포엔 귤이 가로등의 상징이다.

대게 표준안을 만들곤 하는데 건축기본계획, 제주특별자치도 유니버설디자인계획, 경관관리계획, 도종합발전계획안 등이 있다. 이런 작업을 할 때 엔지니어링에만 맡기지 말고, 전문가와 도민이 참여했으면 한다.

 

상징성이라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서귀포는 감귤, 돌문화공원 인근에 가면 까마귀가 보인다. 그렇지만 어떤 곳은 굳이 저런 디자인을 해야하나라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건축가적 입장엔 저렇게 해야 하나라고 느끼는 곳이 있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은 그러지 않기도 한다. 도두동에 가면 말 모양의 등대 2개가 있다. 이젠 포토존이 돼 있다.

글로벌 프랜차이즈도 처음엔 그들만의 표준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지역에 맞는 디자인을 찾아가고 있다.

 

어떻게 건축이라는 곳에 발을 디뎠나.

건축설계를 해야겠다고 해서 이 세계에 온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설계를 하게 됐다. 어쩌다 건축사 면허도 빨리 땄고, 육지에서 생활을 하다가 고향 제주에 내려왔다. 제주에 온 건 10년이 됐고, 사무실을 오픈한지는 7년이다.

제주에 광풍이 불 때 내려왔다. 그때는 제주의 지역성이나 가치를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러다 건축심의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현장을 보고, 제주발전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또한 공공건축가로 참여를 하면서 공부를 해오고 있다. 제주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고 있다.

 

공공건축가는 어떻게 구성이 되고,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자문 역할이다. 건축기본법과 산업진흥법에 따라 마련됐는데, 공공건축에 대한 자문을 한다. 예전엔 그런 과정없이 필요한 사업이 확보되면 해당 과나 행정시에서 입찰을 내고 건물을 지었다. 공공건축가 제도가 생기면서 적절한 설계비는 어느 정도인지, 적절한 사업비와 해당 건축물의 적정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자문한다. 건물이 도시에 어울리는지 공간환경에 대한 자문도 한다. 그런 자문을 거쳐 설계 공모가 이뤄진다. 제주에서는 올해부터 시작됐고, 몇 년 후엔 공공건축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경북 영주시가 공공건축가 제도를 통해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꼽히는데, 그런 자료를 참고해서 제주시와 서귀포 원도심을 이야기하는 중이다. 공공성 지도도 만들어가고 있다. 공공성 지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의는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다.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공공건축가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는 건축가 박경택. 조진희
공공건축가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는 건축가 박경택. ⓒ조진희

 

공공성 지도라고 하니, 개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가로환경을 말하는지, 어떤 시설이 있음을 강조하는지, 앞으로 이런 가로엔 어떤 시설이 필요하다는 게 공공성 지도인가.

전부다 포함된다. 공공성 지도는 건축공간 디자인맵이다. 이 지도를 통해 미래의 도시공간에 대한 대안을 보게 된다. 어떤 가로에 뭘 넣으면 발전이 되고, 정주환경은 어떻게 개선할지, 지금은 기초조사 단계이다.

서울은 공공성 지도를 오픈했다. 지도뿐아니라 부동산 정보, 도시공원 정보 등 종합정보이면서 개선사항도 보여준다.

여러 사람들의 작업이 필요하다. 단순한 정보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 지도를 통해 공간환경을 어떻게 만들어갈지를 이야기하는 백과사전이라고 보면 된다.

 

공공건축가 제도는 좋은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 시민이나 도민들이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올해 8월에 큰 행사를 하려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하질 못했다. 매주 화요일 공공건축가 운영협의체가 열리고 있다. 6개 꼭지로 나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읍면 단위 활동도 한다.

 

앞서 오리를 돌하르방이라는 상징으로 표현을 했다. 그렇다면 제주에 어울리는 장식화된 셰드는 뭘까.

비닐하우스라고 할 수 있겠다. 항공사진으로 녹지를 보면 시설 작물을 지배하는 곳이 많다. 비닐하우스와 함께 제주도내 해안가에 있는 양식장도 장식화된 셰드이다. 양식장은 파사드가 특이하다. 파이프가 노출된 곳도 있다. 다들 산업으로 생긴 곳이다.

 

건축 행위는 장식적 요소도 필요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삶의 건축이라는 용어가 적절할 수도.

다양성 존중이 중요한 것 같다. 아울러 관계성도 중요하다. 도시에 어떤 건물을 끼워넣기도 하고, 허허벌판이나 해안 경승지에 건물을 놓기도 한다. 도심에 들어가는 건축물은 끼워넣기이며, 경승지에 들어가는 건축물은 얹는 행위이다. ‘얹는 행위는 자연경관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도심에 끼워넣기는 도시맥락의 관계가 중요하다. 아라리오미술관이 비판을 많이 받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싫지 않다. 어느정도 특성도 있어야 재밌는 것 아닌가.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앞서 얘기를 했지만 어쩌다 보니 건축을 하게 됐다. 고향을 말하라면 난감하다. 부모님의 고향은 제주시 한림이지만 서귀포에서 13, 제주시에서 13, 서울에서 11, 제주에 내려와서 10년이다. 중학교 때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이사를 했다. 이주민이었다. 살던 곳은 용담동이다. 레포츠공원 앞을 많이 오갔다. 바다를 보는 걸 좋아한다. 용담 해안도로는 지금은 카페 풍경인데, 당시엔 한 두 개였다. 지금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인데, 부산 해운대처럼 아예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할 시점이다. 지금도 아침엔 레포츠공원 앞에 있는 포구에서 커피를 마시고 출근을 한다. 10년을 살던 동네에 대한 기억이 있다.(그는 제주시 연동에 살고 있지만 고교생인 자녀를 데려다주려고 늘 용담동에 오간다. 앞으로 2년은 더 그래야 한다.)

일부 택지개발된 곳도 있지만 용담동 골목골목을 돌아다니곤 했다. 원도심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지역이다. 취락구조는 격자이면서도 서민형이다. 여기 사람들은 고향도 서로 다르다. 항공기 소음은 좀 있지만 대체적으로 평안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바다를 볼 때면 늘 편하다.

 

- ‘다끄네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었는데 제주공항에 편입되기도 한 곳이다. 쫓겨난 기억도 있는 마을인데.

아픔보다는 주거로서의 가능성을 보고 싶다. 서초등학교 학생수를 보면 잘 유지가 되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어디서나 이주민이다. 원래 살던 사람과의 접점이 별로 없었다. 용담지역에서 초등을 나오지 않다 보니 늘 이주민이었다. 제주도민인데 늘 이주민이다.

 

부모의 고향인 한림에 갔으면 원주민이었을텐데.

인문계를 선택하다 보니 그랬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하이라이즈식 빌딩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대도시가 좋았다. 대도시의 장점은 인프라다. 그리고 익명성도 있다. 대도시에서 영화 한 편도 편하게 본다. 제주에서는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영화를 보는 게 어렵다. 청승맞아 보인다. 고향의 지역성은 모든 게 관계로 맺어져 있다. 관계가 편할 때도 있는데 너무 오픈돼 있다. 대도시는 그렇지는 않다.

제주에 내려온 이유는 지역성 있는 건축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10년을 살면서 진정성 있는 건축을 해나가려 하고 있다.

 

진정성 있는 건축은 무엇일까.

관계성이다. 예전 서울에서 일할 땐 건축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설계를 했다. 건축주의 요구에 얼마나 센스있고 예쁘게 해주느냐, 좋은 공간을 만드는데 초점을 뒀다. 지금은 지역성도 있어야 하고 관계성도 고민한다.

 

지역성을 해석하는 건 사람마다 좀 다를텐데, 제주에 맞는 지역성은 무엇이라고 보나.

지역성을 말할 때 좋든 싫든 현재에 있는 가로환경이나 자연경관을 고민한다. 건축가나 도시계획가들이 자연지역이면 자연과의 관계, 도시지역이면 도시지역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표출하는 게 지역성이 아닐까.

예전 제주건축의 지역성을 논할 때는 지붕에 송이를 얹는 등 재료에서 표현을 하곤 했다. 이젠 도시도 확장되고, 건축가들도 많아지고 있다. 삶을 살면서, 경험을 통해, 건축주들의 요구를 다양하게 발현하는 게 쌓이면 지역성도 더 깊게 논할 수 있으리라 본다.

 

어쨌든 자신이 건축활동을 하는 지역을 해석하는 건 중요하다고 본다. 예전엔 형태적 요소가 주를 이뤘고, 일부러 지역성을 끼워맞추기도 했다. 요즘은 그런 개념을 뛰어넘었다.

최근에 30대 젊은 부부의 주택을 설계했다. 건축주의 요구사항은 아파트처럼 편리하고 애들이 뛰어놀 주택이었다. 단독주택의 매력은 좀 불편하지만 거기서 느끼는 삶이다. 그런데 젊은 부부는 아파트와 같은 평면을 원했고, 외부와도 닫혀있기를 원했다. 단독주택에서 쉽지 않은 주문이다.

젊은 부부는 제주 출신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원하는 건 전통주거가 아닌, 아파트와 같은 생활이다. 집에 살면서 사용할 사람들이 원하는 게 바뀌고 있다. 건축가의 욕심으로 지역적 해석을 가져다놓을 건 아니다. 다만 젊은 부부들이 물부엌을 원했다. 물부엌은 전통주거엔 없는 개념이다. 물부엌은 생활습관에서 생겨난 공간이다.

농가주택 사례도 들어보겠다. 두 개의 물부엌을 원했다. 밭에 갔다오자마자 씻는 공간, 거기에 작업용 옷을 바로 세탁기에 넣을 수 있는 물부엌을 해달라고 했다. 또 하나는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다. 이들 두 개의 물부엌이 전체 면적의 절반이나 된다.

농가주택은 처음엔 장남이 집에 올 것을 감안해서 설계를 했는데, 최종적으로는 부모들이 원하는 주거방식을 택할 수밖엔 없었다. 제를 지낼 때 제삿방이 될 곳도 만들었다. 결국은 이게 지역성이다.

 

어머니 세대의 지역성과 아들 세대의 지역성은 다르다.

농가주택을 짓는데 대문은 원래 있던 자리에, 건물도 원래 있던 자리에 배치를 시키라고 하더라.

젊은 부부의 단독주택과 농가주택은 건축주도 다르다. 그래서 지역성은 하나로 얘기할 수 없다. 건축주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의 건축물이 오래 지속되려면 변형도 쉬워야겠다. 농가주택은 아들과 아버지의 생각이 달라서, 나중에 아들이 들어와서 산다고 했을 경우엔 다 뜯어야 하나? 아들 세대가 왔을 때의 공간도 염두에 뒀는지.

젊은 세대는 다락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래서 마을의 다른 주택보다 지붕을 좀 과하게 높게 만들었다. 캐노피도 앞으로 빼놓았다. 나중에 변형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되진 않지만 사는 분들이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하고, 변형도 가능하게 해주려 한다.

제주에 와서 설계를 하면서 지역성을 알아가고 있다. 주택을 많이 하면 지역성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질 것 같다. 그게 쌓이면 지역성 있는 건축이 되지 않을까.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주문을 하는 게 있는지.

올해 10년이다. 선생이라는 건 쉽지 않다. 학생들에게는 자율성을 주고 있다. 내가 학생시절 설계수업을 들을 때는 강압적이었는데,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면서는 학생들의 방향성을 열어두려 하고 있다. 학생들이 설계에 대한 매력을 가지도록 한다. 잘하는 학생 위주가 아니라, 건축가의 저변을 확대시키고, 전반적으로 건축가들의 수준을 올림으로써 전체적인 도시환경도 좋아지리라 기대한다.

 

공공건축가로서 역할도 많이 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건축가들의 사회 역할은 뭐라고 보면 되겠는가.

시행자들이랑 함께해보면 최대의 사업성만 원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 사람들의 사업 욕심을 누르면서 제주에 도움이 되는 건축을 하도록 해줘야 한다. 분양하는 이들은 무조건 최대한의 용적률만 뽑으려 한다. 그러면 밀도도 커지고 높이가 높게 된다. 그걸 차분하게 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제주도의 전반적인 땅의 가치는 어떻다고 보나.

어려운 질문이다. 한마디로 한다면 풍광이 아닐까.

중소도시 중에 개인적으로 매력이 있다고 꼽는 곳은 경남 진주이다. 역사적인 진주성과 남강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얘기가 된다.

제주도는 역사문화자원은 적지만 자연경관은 너무 뛰어나다. 정책적으로 자연경관을 때묻지 않게 했으면 한다. ‘때묻지 않다는 건 때묻은 곳을 복원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젠 10년을 살다보니 동네사람이 된 느낌이다.

풍광이 너무 좋은 곳이라면, 잠글 곳은 잠가야 한다. 반면에 신제주는 다르다. 신제주를 예전의 과수원으로 다시 만들 수는 없다. 여긴 대도시처럼 하이라이즈나 리뉴얼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앞으로 20년이나, 50년 후에 리뉴얼이 된다면 노형과 연동지구의 모습은 달라진다. 이와 달리 제주시 원도심은 1990년대에서 정체돼 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의 모습이랑 똑같다. 여기는 도시적인 값어치가 있다.

새로 생겨난 삼화지구는 다르다. 여기는 도시가 완성되는 지역이다. 아쉬운 건 화북 상업지구이다. 도시를 꼭 팽창시켜야 하는지, 아쉽다.

 

개인적으로도 화북 상업지구는 아쉽다.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쪽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화북 상업지구를 가보니, 땅과 건물이 수용돼서 이주한 곳도 있더라.

하이라이즈에 맞는 도시 구조가 있다면 그런 지구는 검토해서 재정비할 필요도 있다. 그렇지 않은 곳은 나름대로 역할을 하도록 해줘야 한다.

연동은 도시로서의 기능을, 원도심은 제주의 지역성이 살아 있는 곳이다. 혼재돼 있으면 어떤가.

서울에서 제일 매력적인 풍경은 고궁과 하이라이즈 빌딩의 모습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풍경은 없다. 유럽의 런던 등의 도시는 건물 높이에 제한을 두고 있는데, 그와 달리 서울의 중첩된 경관은 매우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런 게 도시의 특색이다.

 

지역성은 제주도 전체로도 볼 수 있을테지만, 제주시 연동과 삼화지구, 애월의 지역성이 같을 수는 없다.

제주도는 지역별로 사투리도 다르다. 풍습도 다르다. 예전엔 초가에 띠를 얹는 것도 달랐다. 서귀포는 비가 많이 와서인지 1년에 한번을 하는데, 북쪽은 2년에 한번 한다고 하더라. 1970년대와 80년대 농가주택도 지역마다 달랐다.

도시가 확장됐기에 연동은 도시로 봐줬으면 한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도시라면 좋겠다. 거기에 괜찮은 외부공간을 만들어주고, 거주민들의 보행공간을 확보해주고, 활력이 넘치게 하면 좋겠다.

 

<라스베이거스의 교훈> 로버트 벤투리, 데니스 스콧 브라운, 스티븐 아이즈너 지음

 

로버트 벤투리(1925~2018)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다. 이 책의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데니스 스콧 브라운(1931~)과 로버트 벤투리는 부부 사이이다. 데니스 스콧 브라운은 남성 중심의 건축계에 여성으로서 활약한 인물로도 기억된다.

벤투리 부부는 파트너였다. 건축가이면서 도시계획가였다. 그들의 공저인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은 콜롬비아 대학원장을 지냈던 마크 위클리가 선정한 ‘건축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4권의 책’ 가운데 하나이다. 벤투리의 또 다른 저서인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도 4권의 책에 포함돼 있다. 이렇듯 벤투리는 위대한 건축 이론가이기도 했다.

책은 사막에 홀연히 등장한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를 말한다.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라는 오락 혹은 도박이 판치는 도시이다. 고운 눈으로 바라보진 않는다. 때문에 라스베이거스는 환락과 어지러움이 느껴지는 그런 도시로만 각인된다. 거기에 들어선 건축물도 마찬가지이다. 화려한 치장과 눈이 팽팽 돌아갈만한 네온사인이 사람을 유혹한다. 상업적인 모든 풍경이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에 창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책을 빌리면 벤투리 부부에겐 네온사인도 건축이 된다. 엔디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이 작품이듯이, 네온사인도 마찬가지로 건축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자동차의 나라이다. 우리와는 인식 자체가 다르다. 책에 나온 건축 이야기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대입하는 건 맞지 않지만 미국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자동차 도시는 다른 지역의 도시와 다를 수밖에 없다. 자동차의 도시를 나타내려면 그 도시에 특색화된 뭔가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책이 라스베이스거만 다룬 건 아니다. 책은 네온사인처럼 건축에 나타나는 상징성을 재평가하는 문제를 다룬다.

“건축가들은 ‘평면이 분명하다면 누구나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 없다’면서 건물에 표지판을 반대한다. 하지만 복합적인 프로그램과 환경이라면 공간 속의 구조, 형태, 빛이라는 순수 건축의 세 요소를 넘어서는 복합적인 매체의 혼합이 필요해진다. 은근한 표현보다는 뚜렷한 소통의 건축이 요구된다.”

흔히 눈에 보이는 표지판이나 간판은 거슬리게 마련이다. 간판은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데,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이런 간판이 소통의 도구이면서 건축과 풍경의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책은 중요한 키워드로 ‘오리’와 ‘장식화된 셰드(창고)’를 등장시키고 있다. ‘오리’는 조각물처럼 만든 건축물을 말하며 그 자체로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장식화된 셰드’는 요란하게 간판을 붙인 창고형 건물을 말한다. 벤투리 등은 ‘장식화된 셰드’도 당당한 건축물이라고 단언한다. ‘장식화된 셰드’는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20세기 초, 건축계에 모더니즘 운동이 일어나면서 ‘장식은 범죄다’라는 선언이 등장했는데, 벤투리는 그와는 전혀 다른 이론을 제시했던 셈이다.

“성스럽거나 세속적인 일상을 수용하는 것, 바로 이런 것이 오늘날 모던 건축에 결여되어 있다. 우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이를 배울 수 있다. 예술가들이 세속적이고 양식적인 원천에서 배워왔던 것처럼 말이다.”

통속적인 건축, 싸구려 건축. 추하게도 보이는 건축. 그러나 라스베이거스에서만큼은 건축물의 지위를 얻는다. 왜냐, 그 도시에도 질서는 있다. 자동차와 고속도로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새로운 공간적 질서이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 실상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책의 말미에 보이는 문장에 눈길이 쏠린다.

“결국 통속 문화에서 배운다고 해서 상위문화에서 건축가가 차지하는 지위가 손상되지는 않는다. 상위 문화와 그 예찬자들은 도시 재개발과 기타 위원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중이 원하는 대중의 건축은 기회를 잡기 어렵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돕는 일은 상위 다지인 건축가의 역할에서 부끄러운 부분이 아니다. 건축가는 어릿광대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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