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9:15 (목)
“고쳐준 이 집에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해요”
“고쳐준 이 집에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10.26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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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와 도시재생] <2>

수년째 지속되는 육지부 사람들의 제주바라기. 마냥 제주가 좋아서 내려오고 집을 짓거나, 기존에 있는 주택을 고쳐서 쓰곤 한다. 하나의 흐름이기도 했다. 제주돌집을 부흥시킨 측면도 제주사람들이 아닌, 제주에 이주를 해온 이들이었다.

이런 현상이 나쁘진 않지만, 제주바라기는 주택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등장하곤 한다. 바로 부동산투기이다. 직접 살기 위해서 집을 짓거나, 제주주택을 사는 이들이 아닌 경우이다. 바닷가의 좋은 땅이나, 읍면지역의 소위 ‘뜰 만한’ 땅을 점찍는 행위는 빈번하다.

제주의 주택을 부동산 가치로 여기는 이들에겐 ‘빈집’으로 놔두더라고 가치가 있을 때 움직이려 든다. 사람이 살아야 집도 생동감이 넘치지만, 그렇지 않으면 집은 죽은 목숨과 같다. 한 마을에 그런 집이 곳곳에 자리를 하게 되면 그 마을은 더더욱 생동감이 떨어진다.

제주시 조천리의 골목도 그런 집이 자주 눈에 띈다. 집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겐 그런 집도 아쉬운데, 이미 팔려나간 집 투성이다.

수눌엉멩글엉이 2년째 조천리에서 추진하는 도시재생 사업. 팔려나간 뒤에 생기를 얻지 못한 집이 아쉽기만 하다. 특히 ‘없는 자’들에겐 ‘남의 집’이 더 그리워진다.

지난해 조천북1길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대부분 자신의 집이 아닌, 이웃의 집을 빌려 산다. 남의 집이기에 고쳐서 쓰는 일도 힘들다. 애초에 돈을 많이 주고 집을 빌린 상황이 아니라,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집을 빌렸기에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들면 바람구멍을 찾아야 한다.

이순주씨(가명)가 사는 초가. 미디어제주
이순주씨(가명)가 사는 초가. ⓒ미디어제주

수눌엉멩글엉이 올해 추진하는 사업 역시 대상은 자신의 집이 아닌, 대다수가 남의 집에 의탁해서 사는 이들이다. 이순주씨(가명)도 그런 경우이다. 그가 조천리에 둥지를 튼 건 15년을 넘는다고 했다. 현재 사는 집에 머문 시간은 3년 정도이다.

이순주씨는 다행히 집을 빌릴 수 있었다. 제주의 전통 초가를 빌려 쓴 그는 임대료를 적게 내는 대신 고쳐서 쓰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주의 자연과 싸우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가 사는 집은 4칸집이다. 상방을 중심에 두고 ‘구들/고팡, 상방, 구들/챗방, 정지’로 이뤄진 집이다. 밖거리는 문간방을 겸한 집이다. 현재는 밖거리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제주 전통초가의 형태를 갖추기는 했으나, 집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덧문이 달려 있었는데, 새시로 교체를 해서 살았죠. 그러나 비가 계속 들어오고 힘들었어요.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장막을 쳐서 비를 막았어요. 혹시 바람에 장막이 날아갈까봐 나무로 고정시키고, 꽁꽁 싸매곤 했어요.”

제주도의 거친 비바람은 누구나 안다. 이순주씨는 늘 그렇게 비바람과 싸워야 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전기도 제대로 쓰질 못했다. 3년 전 자신이 빌려 쓰는 집에 들어올 때 손을 보긴 했으나, 그 이후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어려움을 해소할 길이 열렸다.

이순주씨는 은빛마을노인복지센터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센터와 업무협약을 맺은 곳이 있었다. 바로 수눌엉멩글엉팀이었다. 수눌엉멩글엉팀은 지난해 은빛마을노인복지센터와 서로 돕기로 약속을 한 터였다. 은빛마을노인복지센터 담당자가 수눌엉멩글엉팀에 이순주씨 사정을 알렸다.

비가 올 때마다 장막을 치는 전쟁을 했으나, 새로 새시를 달고 난간도 고쳤다. 미디어제주
비가 올 때마다 장막을 치는 전쟁을 했으나, 새로 새시를 달고 난간도 고쳤다. ⓒ미디어제주

늘 비가 들어와서 장막을 쳤던 난간은 새롭게 바뀌었다. 새시도 새 걸 달았다. 전기도 제대로 쓰질 못했는데, 배전판도 교체를 했다.

“에어컨도 달아줬어요.”

이순주씨는 이웃이 쓰라며 준 에어컨을 그동안 고이 모셔두기만 했다. 전기에 손을 대지 못하니, 에어컨은 무용지물이었다. 다행히도 올해 8월 수눌엉멩글엉팀이 무더위와 싸운 덕분에 전기 문제도 사라지고, 에어컨도 가동할 수 있게 됐다.

“전엔 겁나서 전기를 쓰지도 못했어요. 이것저것 잔잔한 것도 다 손 봐줬어요. 부엌 문앞에 물 떨어지는 것도 잡아줬어요.”

수눌엉멩글엉이 도와준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많다. 눈에 확 띄게 바뀐 부분도 있지만, 이순주씨가 고민하던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더 많다.

덕분에 올해 태풍은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이순주씨는 비록 남의 집에 살지만, 수눌엉멩글엉이 도와준 집에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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