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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일동 716-9 주택
삼도일동 716-9 주택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07.2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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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2월호] 연구위원회
김병수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 위원/빌딩워크샾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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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시행하는 건축자산 조사 연구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건물을 조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석조로 담장을 쌓은 전통가옥에서부터 수직 수평의 콘크리트 부재로 멋을 낸 60년대 경사지붕의 단층주택, 70년대 조적조의 평 슬래브가 철근콘크리트의 2층 주택으로 넘어가면서 콘크리트의 조형성을 이용한 화려한 입면의 등장, 80년대의 눈썹기와지붕 양옥까지, 어떻게 보면 장님이 손으로 더듬어 물건의 형체를 인식하듯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료, 기술, 양식의 변화들이 마음속에 어렴풋이 그려지는 듯하였다.

그 중 마음을 끄는 것은 70년대의 콘크리트 조형미가 돋보이는 주택들이었다.

몇 가지 특징을 예로 들자면 당대의 신기술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평평한 콘크리트 슬라브 지붕의 수평성을 강조하고(실제 평슬라브는 60년대 관공서, 근린생활시설에서 먼저 지어졌다)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치장이 많은 난간이나 굴뚝 형태의 기둥을 이용한 수직적 조형요소를 더하고 있다.

또 건물의 디자인 형태를 따르는 장식적인 대문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이런 건물들이 제주시에 상당한 수가 남아있는데 마치 내가 느끼기에는 과거 제주 건축의 문화적 부흥의 결과물을 보는 듯했다. 목수가 세세히 거푸집을 제작해서 만들었을 듯한 장식보와 난간들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여전히 세련되고 아름답다. 오늘은 이중 하나인

삼도동 716-9번지 주택 전경.
삼도동 716-9번지 주택 전경.

을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주택이 지어지기 전후의 상황

제주시는 1952년 수립된 제주도시계획에 근거하여 1954년부터 택지를 확보하기 위한 토지 구획 정리 사업을 시행하였다. 그 일환으로 1962~63년 제주 진성동 지구 토지 구획정리 사업을 통해 3만7000㎡의 삼도동이 만들어졌다.

삼도일동 716-9 주택이 지어질 전후의 상황을 보면 1965년 5명의 건축사가 대한 건축사협회 제주지부를 창립하였으며 이 시기를 전후하여 전문적 건축 교육을 받은 건축사가 설계를 시작했다. 도시적 측면에서는 74년 연동 신시가지 조성계획, 78년 완공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개발과 69년 제주시 중앙로 개통, 77년 8월 관덕로 확장공사 등으로 신축건물들이 들어서며 현재의 제주시 도시모습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기술적으로는 60년대 초반부터 노출콘크리트를 이용한 근대적 형태의 관공서, 근린생활시설들이 지어지고 있었으며 주택은 철근콘크리트의 도입이 늦어져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조적식 구조에 콘크리트 인방보를 사용한 평슬라브 구조와 전통 목구조를 혼용하다가 70년대가 되어서야 모던한 형태의 콘크리트 벽체와 기둥을 이용한 평슬라브 건물들이 많이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삼도일동 716-9 주택은 72년 1층 신축, 76년 2층 증축, 96년 리노베이션을 통해 현재에 이른다. 신축할 당시는 할아버지(당시 34세)와 할머니(당시 32세)가 주택은행에서 105만원을 융자받아 단층으로 시공하였다. 할아버지가 공무원이었기에 이 집을 짓기 전에는 발령받을 때마다 제주 전역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이전까지는 초가집에서 지내셨다고 하는데 할머니께 평슬라브집을 지으신 이유를 여쭈어 보았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주택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설계 세 개 중에 지으라, 너무 크게도 안되고. 스라브집 아니면 대출도 안해줘서.” 그 당시 건물이 들어가는 삼도일동 블록에는 건물이 세 채 밖에 없었고 모두 경사지붕 슬레이트집이었으나 후에는 한 두 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슬라브 집이 지어졌다고 한다.

 

집의 역사와 구조

1층은 방 세 개에 거실, 타일로 마감된 굴렁진 부엌, 욕실로 구성되어 있었고, 화장실은 외부에 별동으로 만들어져 있다.

구조는 콘크리트 기둥에 철근을 넣고 벽체는 벽돌을 쌓아 구성했다고 한다. 난방은 부엌에서 연탄을 땐 열기로 방을 데웠으며(연탄으로 물을 뜨겁게 데워 바닥을 덥히는 방식은 연탄난방 이후에 보급되었다) 그 당시의 연탄보일러에서 나오는 연기를 내보내기 위한 굴뚝이 2층 옥상까지 연결되어 있다. 부엌에서 거리가 먼 문간방은 바깥에서 연탄을 넣고 꺼낼 수 있는 아궁이가 따로 있었고 거실은 난방없이 마루만 깔려있었다. 음식은 집을 지을 당시에는 연탄으로 요리하다가 등유를 사용한 곤로, 전기밥솥 순으로 살림이 늘어났다고 한다. 욕실은 욕조만 만들어져 있었으며 뜨거운 물을 사용할 수 없어서 겨울에는 근처 공중목욕탕을 이용하였다.

76년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소상·대상을 치르려 하니 집이 너무 작아서 2층 증축을 하였다 하며 이 때도 주택은행에서 그 당시 200만원을 융자받았다고 한다. 구성은 두 개의 방, 거실, 작은 주방이며 외부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증축 후 초기에는 제주대 학생들에게 세를 주다가 3남 4녀의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2층을 사용하게 되었다.

96년도에는 목제 창틀을 모두 알루미늄 새시 창으로 교체 하였는데, 이때 방을 터서 굴렁진 주방을 높이고 늘려 현재의 구조를 만들었다. 연탄보일러를 가스보일러로 교체하고 욕실의 욕조를 없애고 양변기를 설치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외측의 증축은 물부엌과 거실 전면 외에는 없었으며 지어질 당시의 마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이들이 장성하여 출가한 이후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살고 계시며 2층은 빈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1층의 주 재료는 초록과 흰색이 섞인 사각타일과 콘크리트 위 페인트 마감이다. 주된 장식은 평슬라브의 콘크리트 난간이며 현관 옆의 수직벽이 평슬라브 난간을 가르고 수직으로 솟아있다.

2층은 4년 후에 지어진 만큼 좀 더 화려하다. 주된 재료가 백색계열 타일, 갈색계열 타일, 문양내기 바름벽, 콘크리트 위 페인트 마감이며 형태적으로는 2층 지붕 슬라브를 가르는 두 개의 수직벽 아치와 지붕 슬라브 하부의 장식 콘크리트보로 모양을 내었다.

 

마치는 글

아쉽게도 이런 ‘공을 들인’ 주택들은 70년대를 지나면서 점점 사라지고 80년대에는 품이 덜 들고, 좀 더 쉽게 지어지는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상업적인 판단과 인건비 상승이 원인일지, 다른 이유가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50년 전의 주택들을 통해 이미 그 당시에 이름 없는 건축인과 목수들의 노력으로 그 시대의 건축적 성취를 보여주는 건물들이 지어졌다는 점, 그리고 이 건물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참고문헌>
양상호, 1960년대 및 1970년대 : 새로운 건축(Modernism)의 이입, 제주건축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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