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 김혜나, 「청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 김혜나, 「청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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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1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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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혹은 녹차 <17>

찾아보면 그 시간을 부르는 옛말이 문화권마다 꽤 있다. 인디언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 프랑스에서는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는 말로 황혼을 부르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황혼이나 새벽 무렵을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을 만날지도 모른다 하여 때로 ‘귀신의 시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설은 테헤란로를 지나쳐 역삼역으로 이어지는 강남대로의 한밤중을 그와 같이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낮처럼 밝고,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혈액 속의 혈구들처럼 어디론가 끊임없이 쏟아져 흘러간다. 잘 가꾸어진 길은 마치 실내 같다. 이 모든 것은 거짓말이다. 그곳은 밤이고, 밖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또한 진실이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조금 뒤에 다시 하게 될 것이다.

이름이 돌림자처럼 ‘영’으로 끝나는 동갑의 두 여성이 있다. 소설은 그 중 평범한 외모에, 국문학을 전공해서 꿈꾸던 작가로 등단했지만 헬스장 안내원으로 생계를 잇는 지영의 시점에서 풀려나간다. 그 반대편에는 황홀한 외모를 가졌지만 입버릇도 성격도 난폭하고, ‘또래’와 ‘동갑’이 다른 뜻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그리고 늘 주머니나 가방에 귤을 한 알 갖고 다니는 미영이 있다. 그들은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는 게 불가능해보일 정도로 지나온 삶이 다르다. 첫 만남은 그들의 사실상 유일한 접점인데, 둘은 남들보다 몇 년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와 (취업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국문과에서 서로를 발견한다. 둘이 서로에게서 동질감을 느낄 만한 무엇을 발견했는지에 대해서 지영은 침묵한다. 독자는 지영이 알지 못하는 미영의 이야기도, 지영이 말하지 않는 지영의 이야기도 알 수가 없다.

지영은 미영이 자신에게 들려준 그녀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지면에 옮겨준다. 그녀는 십대에 내레이터 모델이 되며 학교를 그만 두었고, 룸살롱 사장과 반동거 생활을 하다가 결혼했으며, 부모는 십대에 그를 낳았고 지영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그에게 전시회 같은 ‘고상하고 특별한’ 곳을 가자고 말해준 적이 없다. 소설의 내용은 지영의 내레이션을 통해 미영의 상처를 풀어나가는 이야기에 가깝지만, 소설에서 가차 없는 비판과 멸시의 대상이 되는 건 오히려 미영이 “너는 진짜 귤 같아”라며 동경하는 지영의 세계이다. 소설가라는 직업의 실체는 견딜 수 없이 남루할 뿐더러 상투적인 허례허식에 지나지 않다고 지영은 반복해서 강조한다. 소설과 전시회가 있는 지영의 세계가 천박하고 외설적인 미영의 세계와 한눈에도 완전히 다른 것처럼, 마치 미영의 퇴락한 현실 너머의 이상향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렇다. 때문에 지영이 초대한 전시회에서 미영이 ‘자신이 만나왔던’ 혐오스러운 남자를 마주하는 장면은 미영에게 환멸을 넘어 절망으로 다가온다. 그 직후에 미영은 자신이 원했던 건 지영의 ‘세계’가 아니라 자신을 전시회에 초대하며 그 다른 세계를 보여준 ‘지영’ 자체라는 걸 확인하기라도 하듯 그녀와 성관계를 갖는다. 미영은 청귤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세계, ‘나가요’ 여자들과 같은 육체만이 존재하는 세계의 방법으로 그 세계에 없는 지영을 끌어안으려 애쓴다. 그 불가능한 몸부림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바라보는 지영의 시점으로 묘사되고 있음에도 어쩐지 슬픈 색채를 남긴다.

청귤과 진짜 귤의 은유는 단순히 동경하는 이상과 초라한 현실이라는 타인과 자아의 관계만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미영과 지영은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끼며 각자 자신의 것을 ‘청귤’로 여긴다. 그러나 지영은 미영에게 자신은 청귤이 더 좋다고 말하며 그녀를 위로한다. 이상은 가지지 않고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것이다. 청귤은 먹을 수 없는 쓰고 시고 딱딱한 것일지라도 바라보기에 낯설고 황홀하다면 그걸로 사랑스럽다. 동경의 대상은 완전한 타자로 남아있을 때에만 이상적인 존재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영은 청귤을 지영에게 내밀고, 자신의 남편과 자줬으면 좋겠다고 지영에게 말한다. 지영은 그것에 대답하지 못하고,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미영이 돌아와야 할 정류장에 지영은 홀로 남겨진다. 사실 미영은 지영에게 남편과 자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미숙하고 난폭한 미영의 언어이고, 정확히는 육체에 속한 ‘미영의 세계’의 언어이다. 그러나 소설가인 지영이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듯이 언어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내기보다 더 많은 오해로 자신을 숨겨버린다.

언어는 낮이 아니면 밤이다. 언어를 가지지 못한 우뇌의 욕망을 좌뇌의 논리를 따르는 인간은 이해하지 못한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시간에서, 밖도 아니지만 안도 아닌 공간에서, 미영은 육체를 언어로 번역해 전하려 애쓰며 지영에게 청귤을 건넸다.

청귤은 으깨어져 피처럼 즙을 토해내며 손을 적시고, 지영은 뒤늦게야 자신이 미영의 구조요청에, 혹은 구애를 마주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지영이 놓쳐버린 미영은 돌아오지 않고, 그녀가 그려낸 모든 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게 진실이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저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저, 불온한 것들이 다가오는 어둑한 시간이 우리의 진실이라면.

팝콘 혹은 녹차

최다의 칼럼니스트

- 제주대학교 국문학 석사
- 동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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