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8:27 (화)
도서관 유감
도서관 유감
  • 홍기확
  • 승인 2020.05.13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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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29>

갈 데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갈 만한 데가 없다.

코로나19로 세상이 정지해 있다. 그 중 극적인 사건은 도서관이 두 달이 넘도록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도서관이 그립다. 아르헨티나 소설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처럼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도서관과 같은 모습일 것.’이다. 강원도의 작가, 김도연 작가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소설을 쓰고 책을 있었다. 매일 도서관을 찾은 이유가 긴장감이 유지돼서라고 했다. 고향을 떠난 후에도 그는 ‘바다 한가운데 있던 작은 섬’과 같던 도서관을 종종 그리워했다. 나도 그립다.

나에게 도서관은 ‘비밀창고’다. 내가 무엇을 하던, 어떤 생각을 하던 도서관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책을 읽다 슬며시 웃음이 나와도, 작가의 필력이 부러워서 이놈은 어떤 놈이지 하며 욕해도, 감동의 순간에 눈시울이 달아올라도 그냥저냥 괜찮다.

어릴 적 아버지가 주워온 책과 지인들에게 얻은 책. 친구들과 바꿔 읽거나 헌책방에서 산 책. 추억 돋는 일주일에 한번 오던 새마을이동도서관에서 차 앞에서 순발력 있게 골라 읽던 책. 세월이 조금 지나 책대여점에서 돈을 내고 빌려 읽었던 책. 그 땐 왜 그리 책이 귀했을까?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도서관이란 게 있었다. 수많은 책들이 모두 공짜! 나는 도둑질하듯 창고를 뒤졌다. 대학을 다니던 4년 동안 수업 시간과 술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도서관에 붙어살았다. 수많은 서가의 모든 책들의 머리말을 읽었다. 그 중에 마음에 드는 책을 읽었다. 대학도서관에서 가장 섭섭한 순간은, 군대 제대 후 서가의 위치가 모두 바뀐 것이다. 길을 잃었다. 그때 그 책의 느낌은 그 자리로 기억나야하는데 섭섭했다.

며칠 전 어느 도서관의 총괄팀장과 점심을 먹고 나오며 볼멘소리를 했다. ‘요즘 사는 재미가 없어요. 도서관에서 책도 못 빌려 읽고.’ 그러자 팀장은 ‘집에 있는 책 읽으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이 형님, 감이 좀 떨어졌다. 사서라는 양반이. 그래서 자극을 해줬다.

“이 책 저 책을 뒤적이고, 가끔씩 먼지도 먹으며 고르는 그 재미가 있잖아요?”

그러자 이 형님, 드디어 낭만세계로 복귀한다.

“그렇지. 그 재미가 있지.”

형님은 뜬금없이 하늘을 본다. 나는 그런 형님을 쳐다본다. 함께 도서관에 유감(有感)을 느낀다.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공공도서관이 다시 문을 연다는 문자가 오는 ‘창고개방’을 기다린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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