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7:54 (수)
"할아버지의 못다 펼친 교사의 꿈, 제가 이어나갈게요"
"할아버지의 못다 펼친 교사의 꿈, 제가 이어나갈게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0.04.03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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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 유족 사연

-故 양지홍 씨의 딸 양춘자 여사의 손자 김대호 군
-29세 젊은 교사로 억울하게 죽임당한 할아버지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교사 되어 4.3을 전하고파"
4.3희생자 추념식에서 김대호 군이 4.3희생자인 그의 증조 외할아버지, 故 양지홍 씨에게 전하는 편지를 읽고 있다.

“72년 전, 아무런 죄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총구를 맞딱드렸을 때, 똑똑이 할아버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또,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그런 생각을 하니 너무나 끔찍하고 화가 났습니다.”

2020년 4월 3일 제72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서 유족 사연을 낭독한 김대호 군이 4.3희생자인 자신의 증조 외할아버지에게 전하는 편지 내용이다.

제주 아라중학교 2학년 김대호 군은 지난 1월 22일 4.3발굴 유해 신원 확인 보고회 때 신원이 확인된 故 양지홍 씨의 딸 양춘자 여사의 손자다.

故 양지홍 씨는 29세 나이로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그에게는 세 살배기 외동딸인 양춘자 씨가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0년 4월 3일.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를 잃었던 세 살 어린아이는 이제 75세 할머니가 됐다.

“저는 할아버지를 ‘똑똑이 할아버지’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똑똑이 할아버지의 외동딸인 할머니는 늘 ‘우리 아버지는 신촌국민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똑똑이었대'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김대호 군은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던 자신의 증조 외할아버지, 故 양지홍 씨와 많이 닮았다.

김 군에게 故 양지홍 씨는 ‘똑똑이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보이는 할머니가 유일하게 활짝 웃으며 하는 이야기.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똑똑이’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제72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는  故 양지홍 씨의 딸 양춘자 여사.

김 군은 똑똑이 할아버지가 공항에서 총살당해 아무렇게나 묻혔다는 이야기를 할머니로부터 들어 알고 있다. 김 군의 할머니, 양춘자 여사는 공항 근처에 갈 때마다 “내가 우리 아버지를 밟고 있구나”라며 속상해 했단다.

“똑똑이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전날 밤. 할머니는 아버지를 만난다는 생각에 밤잠도 설치셨습니다. 그렇게 긴장한 할머니 모습은 저도 처음 봤습니다.”

공항 인근에서 발견된 4.3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유족DNA를 수집한다는 소식을 접한 김 군의 가족은 곧장 DNA채취 과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1월 22일. 4.3발굴 유해 신원 확인 보고회에서 네모난 상자에 담긴 똑똑이 할아버지, 故 양지홍 씨를 만날 수 있었다.

“72년 만에 만난 똑똑이 할아버지 유골함 앞에서. 할머니는 세 살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한참을 엉엉 우셨어요.”

70여년 세월 기다림 끝에 만난 가족의 모습은 따뜻한 얼굴이 아닌, 딱딱한 네모 상자. 그래도 원망하는 이는 없었다. 이제라도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뿐이었다.

“똑똑이 할아버지. 지난 번 제사 때 제가 절하면서 한 말 기억하세요? 저도 나중에 커서 할아버지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었죠. 제 꿈이 선생님이라고 하니 할머니가 똑똑이 할아버지 얘길 하면서 좋아했었는데. 이담에 제가 똑똑이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에게 똑똑이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하신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김 군의 꿈은 선생님. 그는 똑똑이 할아버지 故 양지홍 씨가 교사로써 미처 펼치지 못했을 꿈을 이어나가고 싶다.

“할머니. 이제 70여년 그리던 아버지를 품에 안았으니 그동안 맺힌 한 내려놓으시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저의 곁에 머물러주세요 사랑합니다. 똑똑이 할아버지를 닮은 손자 김대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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