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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광장의 공공성 <1>
제주 광장의 공공성 <1>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03.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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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19년 8월호] 건축연구
김종찬 /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 위원·제이투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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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제주에서 광장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현재 몇몇 프로젝트에서 실제로 광장에 대한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아무쪼록 제주도민들에게 사랑받는 광장의 모습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번 연구의 주제를 광장으로 잡게되었다.

광장이라는 주제는 사실 쉽지 않은 주제이고, 많은 사람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으며 또한, 나름의 요구가 많은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다루어야 할 내용도 많고 하여, 앞으로 연구위원회의 공공공간팀에서 광장으로 3개의 주제를 이어서 발표할 예정이다.
 

광장의 공공성

첫 번째 꼭지는 ‘광장의 공공성’에 대한 연구이다. 광장이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 방식의 토론 장소인 Agora(아고라)라는 공간에 대한 용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고라는 자유 시민들이 토론을 위한 장소로, 다양한 논점에 대한 치열한 토론 장소이자, 대규모 국가적 행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아고라는 로마시대에는 포럼이라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서구적 개념의 광장은 대단히 정치적이며, 철학적인 개념을 내포하고 있고, 도시의 열린 공간으로 공공의 장소를 의미한다.

중세 유럽은 하나의 블록에 사적 영역인 중정을 중심에 두고 높은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공용 가로의 폭이 대단히 좁다. 그로 인해 도시의 열린 공간인 광장이 블록의 사적 영역과 반대되는 공공의 공간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또한, 자연스럽게 도시의 주요 공공기관이 들어선 건물들이 광장 주변에 위치하여 정치적인 공간으로, 때로는 시장의 역할과 더불어 주민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위한 공간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장소가 되었다.

광장은 이처럼 사적 영역과 대비되는 공적 영역으로 공공성이 시작되는 장소이다. 하버마스가 이야기했던 공론장의 공간이 바로 광장이다. 공공성은 다수의 공동선을 위한 개념으로 정치, 사회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의 가치를 위한 규범이다. 광장은 공공성의 기초가 되는 장소로서 개방과 소통의 공간이며, 모두에게 열린 장소이다. 공공성의 가치를 위해 사적 점유가 아닌, 다양성을 인정하고 누구나가 광장을 편안하고 가치있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다녀온 이탈리아 중부 시에나라는 도시에 있는 깜포 광장은 부채 모양의 형태로 일반적인 서구권의 광장과 같이 사각형의 모양과는 다르게, 중심에 있는 만지아의 탑과 함께 있는 푸블리코 궁정을 중심으로 방사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깜포 광장은 특이하게도 중심을 향하여 완만한 경사가 이루어지고 그 중앙에 푸블리코 궁전이 있다. 또한, 다른 이탈리아의 광장과 같이 좁은 골목길로 이루어진 가로들은 광장을 중심으로 뻗어 나가 있고, 큰 규모의 열린 공간은 팔리오라고 불리는 말경주 대회가 이루어지는 등 지역 주민들의 행사 장소로 활용되고 도시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 깜포 광장은 다른 중세시대 광장들과 같이 권력의 상징으로,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정치적인 공간으로, 대단히 상징적인 장소이다.

그러나, 광장 주변으로는 주거와 회랑에 접하여 다양한 상점들이 있어 지역민들의 일상적인 관계를 위한 장소, 공론의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단지 상징적인 공간은 기획된 행사를 통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서 효과적인지만, 일상적인 모임과 소통의 장소로 새로운 가능성과 공동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9~20세기 예술가들의 작업실이자, 인문학자들이 치열하게 토론을 벌였던 커피하우스와 같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사색하고, 편안하게 식사하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장소가 같이 마련되어야 한다.

깜포 광장과 인접하여 문화시설, 상점 및 카페들이 모여 있어 지역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광장 주변에 모여 공공의 관심사를 주제로 토론하는 공론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곳 시에나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모든 공공의 기억은 깜포 광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광화문광장은 조선 시대 광화문 앞 육조 관청들이 모여 있던 육조거리가 현재의 광화문광장으로 변화한 것이다. 근대 산업화 시기 속도 위주의 공간인 자동차 중심의 도로에서 보행자 중심 공간으로의 변화와 함께, 광화문 앞 육조거리로서, 국가상징 가로의 역사성 회복이라는 목적으로 광화문광장이 조성되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 활용이 되고 있다.

그러나, 대단히 정치적이고, 일부 시민들의 사적 점유가 심해지는 장소가 되어, 공공성이 침해되고 있다. 상징성만으로는 공공성을 충분히 갖춘 광장을 만들 수 없다.

제주 관덕정 광장 또한, 많은 중요한 사건과 행사들로 인해 높은 심상성1)을 지닌 공간으로 메타포를 통해 그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상징은 계속해서 관덕정 광장 조성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공동선의 장소로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심상성만으로는부족하다. 19~20세기 커피하우스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토론하고 문화적 중흥기를 이끌 듯이 누구나가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다양한 모습들이 같이 어울리는 열린 공간과 내용이 있어야 한다. 단지 비어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끝내기

최근 제주시청 앞에 새로운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새로운 광장은 단지 제주시청 앞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상징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공간이 시민들이 사랑하는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토론하고 일상적으로 찾을 수 있는 시설과 내용이 함께 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어울리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단지 상징을 위한 장소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1) 에드워드 렐프,장소와 장소상실, 논형출판사 p88. ‘심상성이라는 말은 한 개인이 어떤 장소를 접할 때, 머릿속에 그 장소의 모습을 읽어들이고 떠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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