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9:15 (목)
뜻하지 않은 제주 여행 잔소리
뜻하지 않은 제주 여행 잔소리
  • 황병욱
  • 승인 2020.01.16 11: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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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저, 별빛 제주 버스 여행일기]<2>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알게 되어 이곳으로(제주) 한 달 살기를 하러 지리산 산청에서 온 여사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어색함이 감도는 공간에서 재미난 이야기는 줄줄이 꽃피었고 그러는 사이 1,915m 지리산 아래에서 엄마가 아들을 위해 구수한 된장찌개를 해 먹이는 따뜻한 온기가 몸으로 전해왔다. 장작을 지펴 뜨거워진 온돌방의 아랫목을 안고 있는 듯 뜨겁게 수다는 계속해서 더욱 끓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얼굴을 드러냈던 하늘은 밤새 무엇이 그토록 불만에 싸였는지 뽀로통해진 얼굴에는 까만 연탄재를 가득 묻혔다. 하룻밤 새 360도 달라진 모습에 성격마저 괴팍해져 있다. 더욱더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운 채 부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몸을 실었다. 날씨 탓일까. 오늘은 왠지 뭔가 사건 하나가, 일정이 순조롭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피부를 스윽~ 핥고 갔다.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무엇이 이렇게 목을 죄어 오는 걸까. 손은 차고 머리는 띵~ 하게 두통이 오려 한다.

자주 가던 장소이지만 버스에서 자가용으로 바뀌고 나니 아는 길도 처음 와 본 것처럼 낯설다. 3년 동안 제주에 살면서 이제 제주는 내 손바닥이라며 떵떵 되던 자부심이 있었는데 길 찾기 하나로 점점 어깨가 움츠러든다.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그에 대한 위안으로 삼는다면 버스는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어 상세하게 길을 외울 필요도 알 필요는 없다는 정도이다.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본 주변 모습. 황병욱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본 주변 모습. ⓒ황병욱

목적지는 제주 여행의 필수 코스로 지정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제주에서 빠져서는 안 될 곳으로 김영갑이 사랑했다던 제주 동쪽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 핫한 “용눈이오름”이다. 여느 오름에 비해 오르기 힘들지 않고 나무는 자라지 않고 억새 무리가 모여 한들한들 춤을 추는 찾는 이들의 마음을 홀랑 벗겨놓는다. 용눈이오름을 본 그 누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완만한 능선이 소가 누운 모습이라지만 풍만한 가슴이 떠오르는 난 비정상적인 걸까. 곡선이 너무 아름답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마음속 작은 심장들이 콩닥콩닥 뜀뛰기를 시작했다.

어찌하여 오름 정상으로 가는 길목이 이러할까. 이게 아닌데! 원래 길이 어디였는지 모를 만큼 새롭게 만들어진 길은 오래된 느낌을 준다. 새롭게 단장되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의 왕래로 낙후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잘 조성된 길을 따라 한숨 반 미소 반을 얼굴에 담은 채 길을 걸었다. 옆 동료는 이곳이 처음이라 한껏 들떠있는 모양이다. 아기가 처음으로 나온 밖의 모습을 보고 놀란 듯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용눈이오름의 새로운 탐방로. 황병욱.
용눈이오름의 새로운 탐방로. ⓒ황병욱

단숨에 올랐다. 이 오름은 오르면서 봐왔던 장소를 빙빙 돌며 오르도록 구성돼 있다. 파여진 오름의 속살을 보는 순간 눈살은 못 볼 것을 본 듯 찌그러졌다. 망가져 가는 길의 복원을 위해 우회하며 만들어진 새로운 길에 오름은 더 아파 보였다. 그곳을 지나고 나서야 늘 걸었던 길 위에 설 수 있었다. 마음이, 마음이 요상했다. 여기까지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 되면 야생화와 수풀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꽃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겨울인 지금의 오름은 노란 억새가 바람에 흐늘거리며 용눈이오름의 원래 주인인 말의 들러리가 될 뿐이었다. 함께 춤을 춰보자고 억새의 들썩이는 어깨는 행복해 보였지만 “나 아파!”란 작은 외침이 바람에 흐늘흐늘 울려 퍼져갔다. 푸른 하늘마저 단숨에 검게 물들인 까만 먹물 자국 지금 하늘나라는 밤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그렇게 바람에 부대끼며, 억새는 슬플까?

원인 없는 외침은 없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하는 많은 시위자도 못마땅한 무엇이 있기에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싸워나가듯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하늘하지만 무엇인가를 얘기하려는 몸부림은 그들과 똑같다.

앗~ 그럼 그렇지. 이럴 줄 알았다. 바람에 실려 온 억새의 몸부림은 이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풀과 잔디로 덥혀 있어야 할 오름은 부끄러운 듯 빨간 속살을 드러내었고 여기저기 아픔의 상처투성이다. 연고도, 빨간약도 소용없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두 갈래 길, 왼쪽 길을 택했다. 가슴이 미어져 온다. 푹푹~ 파여진 길옆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깔아놓은 야자수 매트는 훼손되어 한 쪽에서 나뒹굴었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아픈 아이에게 약을 못 발라줄망정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에 더 분노가 끓고 미안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생채기에 아파하는 용눈이 오름. 황병욱
생채기에 아파하는 용눈이 오름. ⓒ황병욱
생채기에 아파하는 용눈이 오름. 황병욱
생채기에 아파하는 용눈이 오름. ⓒ황병욱
생채기에 아파하는 용눈이 오름. 황병욱
생채기에 아파하는 용눈이 오름. ⓒ황병욱

새롭게 조성된 길은 보호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며 스스로 타일렀지만, 한계까지 도달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그런 용눈이오름은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잠자던 부정이란 글자를 다시 슬금슬금 나의 입으로 옮겨왔다. 忍, 忍(참을  인)으로부터 부처의 미소를 떠올렸지만, 극도로 열 받은 나의 심장은 1,000℃로 끓었고 상처를 입은 용눈이 오름을 밟으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해 눈을 째렸다. 사진을 찍으며 쉬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고 노는데 정신이 없는 모습은 당연히 지금의 상황을 몰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편 현재 나의 이런 모습이 정상이라며 머릿속을 안정시켰지만 용눈이오름은 과거에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용눈이 오름은 코딱지만큼의 잘못도 없다. 그저 사람의 욕심이 만들어낸 아픔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심결에 나도 모르게 뱉어버리는 부정적인 단어들은 동행한 지리산 여사님에게까지 미쳤다. 즐거워야 할 여행을 망쳐버린 것 같아 죄송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이해해주었다. 세 개의 분화구를 가진 용눈이 오름은 오래전부터 인기에 힘입어 힘들어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계속된 여행자들의 방문으로 인해 지금은 헐벗기까지 하여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 당장 좋은 것을 보고 싶어, 나 하나는 괜찮다며 찾아오겠지만 어느 순간 오름은 자기의 본 모습을 잃은 채 서서히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잊혀가고 부서져 가는 개똥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억새가 손짓하고 노래를 불러도 못 들은 척 1년, 2년 정도는 오름이 휴식을 가지길 바랐다. 용눈이오름, 소가 누운 형상을 띠고 있다지만 이런 고난이 계속된다면 먼 미래에는 죽어버린 시체가 될 수도 있다. 지금부터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용눈이 오름을 지켰으면 좋겠다.

여행자여! 당신의 즐거움에 또 하나의 자연이 죽는 것입니다. 자연을 사랑해 주세요. 모든 이들이 이 메시지를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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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연 2020-01-20 08:26:09
용눈이 오름이 아름답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많이 훼손 된 모습이 참 안타깝네요. 제주 여행시 생각해 볼 문제이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