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멕시코의 열정을 제주의 열정으로
멕시코의 열정을 제주의 열정으로
  • 미디어제주
  • 승인 2019.12.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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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19년 4월호] 건축 이슈
고성천 /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시유재

멕시코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열정이다. 멕시코를 열정의 나라라고 한다. 보편적으로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씨와 멕시코의 국민성과 역사성 등을 두고 언급하는 말일 것이다. 지난 2월에 8일간 멕시코 건축답사를 하였다. 그때 멕시코의 열정을 건축을 통해서 보고 느꼈다.

건축가에게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내게는 다른 곳에서는 없는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멕시코는 찬란했던 테오티우아칸 문명, 아즈텍 문명, 스페인 식민 문화, 인디오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 나라이다. 거듭된 문명의 폐허 위에 고대와 중세, 근현대의 다양한 문화 형성은 예술 전반에 걸쳐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낳았다. 국민 영웅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와 그의 부인이자 세계적 화가 프리다 칼로, 건축계의 거장 루이스 바라간과 같은 예술가들을 배출하였다. 이와 같이 다양한 문화적 바탕에 형성된 멕시코는 바로크양식의 성당을 비롯해 각 도시마다 소깔로 광장과 주변의 역사 지구 등 미술관과 도서관이 많아 답사거리가 넘치는 매력적인 곳이다. 멕시코시티와 그 인근 푸에블라, 푸에르나바카를 8일간 답사를 했다.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은 답사 첫날에 본 건축으로 처음부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멕시코 건축의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사전 답사준비를 2개월 이상하면서 여러 자료와 사진을 통해서 접하기는 했으나, 그때는 열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역시 “건축은 공간이고, 그것은 현장 체험을 통해야만 느낄 수 있다.”라는 명제 같은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도서관의 이름은 멕시코 교육 혁명의 상징인 호세 바스콘 셀로스(Jose Vasconcelos, 1882~1959년)에서 따왔다.

국립도서관장과 문화교육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전국에 학교 2000곳, 도서관 1000곳을 지은 그를 기리기 위해 2006년에 이 도서관을 설립했다.

이 도서관은 멕시코 건축가 알베르토 칼라치(Alberto Kalach, 1960~)가 설계했다. 지하층과 일부분 층별 구분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11,600m 가 되는 공간이 하나의 공간이다. 이 공간구성을 위해서 서가 책꽂이의 측면 플레이트 철판이 구조재로 상부에서 붙드는 hanging구조로 되어 있고, 이것은 전체 구조를 지탱하는 노출콘크리트 super structure로 연결되어 대단한 구조미와 공간감을 보여준다.

수년 전에 상영된 SF영화 ‘인터스텔라’가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아빠가 미래에서 과거의 딸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장면에 나오는 기하학적으로 연속되는 4차원 공간이 관객에게 묘한 느낌과 무서움, 호기심 등을 유발하였다. 이 도서관의 공간감이 그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도서관의 별명이 ‘인터스텔라 도서관’이다. 바닥 역시 반투명 유리로 마감되어 있어서 조심스레 걷게 된다. 이는 공중에 떠있는 책장과 더불어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서가에서의 보행이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움직이게 된다. 도서관의 기능을 공간감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해결한 아이디어가 훌륭하다.

4차원 공간 같은 현실의 3차원 공간! 멕시코 건축의 열정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 열정을 실현하기 위해 칼라치는 자신의 이 작품을 ‘책을 실은 방주’라고 표현했다.

사실 서가를 허공에 띄우는 것은 구조적으로 매우 비합리적인 방식이다. 당연히 바닥에 두는 것이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다. 하지만 공간을 통해서, 상식을 뒤엎음으로써 세상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 건축의 의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방주에 실린 책들이 자유롭게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머리를 풍요롭게 해주길 바라는 바람을 칼라치가 건축적으로 구현했다. 인ㄴ 멕시코의 열정을 건축화시킨 것이라 생각되며, 이 어려운 설계와 시공을 지지한 수많은 멕시코인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건축이었을 것이다.

멕시코시티 한복판에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처럼 거대한 공원이 있는데, 차풀테펙 공원이 그것이다. 이 공원에는 많은 공공건축과 문화시설들이 있다. 그 중에 건축적 의미가 큰 작품으로 국립 인류학 박물관과 타마요 미술관이 있다.

국립 인류학 박물관은 멕시코의 국민 건축가 페드로 라미레즈 바스케스(1919~2013)가 설계했다. 이 박물관은 멕시코에서 거주했던 사람들에 의해 찬란한 꽃을 피웠던 고대, 중세 문명들의 정수들을 전시해 놓은 멕시코 문명 박물관이다. 세계 10대 박물관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피라미드 문명인 테오티우와칸, 마야, 아즈텍, 사뽀떽 등 주요 멕시코 고대 문명의 유적들을 한 곳에서 관람할 수 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을 겨냥해서 멕시코를 세계에 소개하고, 멕시코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줄 시설이 필요해서 이 박물관이 1964년에 건립되었다.

이 박물관의 가장 큰 건축적 특징은 중앙 파티오의 84m×54m의 대형 캐노피이다. 이 캐노피를 받히고 있는 분수 기둥은 압권이다. 빨렌께 유적에 있는 생명의 나무를 토대로 만든 분수 기둥은 조각가 Jose Chavez Morado가 디자인한 청동 조각으로 덮여있다. 그 위를 캐노피 상부에서 바닥까지 약 20m 높이에서 물이 떨어지는데 건축적 흥미를 넘어서서 멕시코인들의 장엄함까지 느껴지는 건축적 장치이자 조형 작품이다. ㄷ자 형태의 평면에서 메인 로비인 건물의 중앙부는 완전히 유리로 된 입구와 함께 열려있는 45m의 공간으로 두 개의 축의 전시 공간으로 연결된다.

국가를 대표할 만한 국민 건축가에게 대통령이 직접 설계의뢰를 하여 건축된 이 박물관은 멕시코 국민들의 자부심이 된지 오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대통령과 건축가가 있었던 멕시코가 부럽게 느껴진다.

이번 답사에서 큰 소득의 하나는 ‘테오도로 곤잘레스 드레온(1926~2016)’이란 건축가를 알게 된 점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건축가 김수근 같은 멕시코 근·현대 건축의 대표 건축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중에 차풀테펙 공원 내에 국립인류학 박물관 인근에 위치한 타마요 미술관, 국립 오디토리움, 쿠아우테모크 지방청사, 멕시코국립대학교 현대 미술관 4개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타마요 미술관은 브루탈리즘적 형식의 재료와 공간구성이 우리를 감탄케 하였다. 형태는 멕시코의 거장 화가인 타마요가 추구하는 멕시코 전통의 정신세계와 연결된 테오티우아칸 피라미드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느낌이다. 굵게 깬 자갈이 노출돼 쪼아낸 콘크리트 외벽과 동일한 마감으로 된 인테리어와 공간이 육중하고 거친 질감과 정교하게 떨어지는 빛과 그림자가 현대적인 정갈한 느낌으로 공간을 압도한다. 원초적 자연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으로 관람객에게 다가온다. 이것이 멕시코의 자연과 환경을 품은 ‘버네큘러 모더니티(Vernacular Modernity)’라고 부를 수 있는 멕시코 건축의 열정이 아닐까. 테오도로 곤잘레스 드레온은 르 코르뷔제의 제자로서 인도 챤디가르 프로젝트와 마르세이유 유니테 타비타시용을 설계했다고 한다. 르 코르뷔제로부터 이어지는 모더니티를 멕시코의 지역성을 잘 반영한, ‘버네큘러 모더니티’의 멕시코 근·현대 건축을 선도한 건축가라 할 것이다.

10여 년 전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유명한 대사관 거리를 밟았는데, 그 때 멕시코 대사관도 있었다. 다른 국가 대사관들과는 달리 거칠면서도 모던한 분위기가 ‘지역성과 국가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상상을 했는데, 이번에 이 건축가의 작품임을 알고 나의 상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더더욱 멕시코의 열정과 지역성에 매료되었다. 우리나라의 재외 공관 중에서 ‘한국을 상징하는 건축이 있는가’ 하는 자문을 하여 본다.

루이스 바라간! 듣기만 하여도 설레는 이름이다. 사무소 신입사원 시절에 알게 된 루이스 바라간(1902~1988)과 그의 건축은 지역주의 건축가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고, 언젠가는 멕시코에 가야한다는 의무감마저 들게 했다. 이번에 그 작은 소망을 이루었다. 그가 설계한 바라간 하우스와 스튜디오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 건축물은 3개월 전에 예약해야 답사가 가능해서 이번에 내부를 보지 못하고 외관만 보고 온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길라르디 주택, 카푸친 수도원, 쿠아드라 산 크리스토발 주거단지 등을 답사한 것은 바라간과 그의 작품을 알고 멕시코의 ‘버네큘러 모더니티’ 건축의 진면목을 보며 멕시코 건축의 열정을 느끼기에는 충분하였다.

루이스 바라간 건축은 단순한 선과 기하학적 형태, 강렬한 색채와 그것을 통한 빛의 유입 등 그만의 건축언어와 멕시코의 자연을 융합, 멕시코 건축의 지역주의를 가장 잘 반영하여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거장 건축가가 된 것이다.

길라르디 주택은 바라간 건축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보라, 노랑, 청색, 적색의 강렬한 색채는 밝고 경쾌한 느낌으로 멕시코 특유의 자연인 강렬한 태양과 티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대변하듯이 이 주택을 감싸고 있다. 스페인 지배 영향으로 멕시칸 스타일이 된 파티오형 건축은 이 주택의 공간으로 들어와 이 집의 중정과 실내 수영장을 형성하고 있다.

수영장으로 떨어지는 한 줄기 빛은 바라간에 의해 조각처럼 디자인되어 건축화된 자연이다. 수영장으로 진입하는 복도 공간은 중정에서 들어오는 빛을 노란 유리로 필터링하며 역시 건축가에 의해 디자인된 자연으로 보행자에게 감동을 넘어 숙연한 마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건축적 언어와 장치들을 통하여 멕시코 전통의 개념을 모더니즘으로 재해석하여 전통과 현대의 맥을 잇는 바라간 건축의 진술을 보여준다.

쿠아드라 산 크리스토발 주거단지에는 주택의 부속 승마장으로 기수와 말을 위한 공간으로, 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분홍색 월과 마구간, 진갈색 폭포 월로 둘러싸인 공간 중앙에 수목 군집과 말을 위한 수공간! 이것은 말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성찰을 하도록 하는 관념적 공간이면서 건축적 질서를 잘 조직한 바라간의 수작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관리인이 말을 한 마리를 풀어서 다니게 했는데, 말은 아무 생각없이 뛰놀지만 말은 안중에 없고 이 공간속에 빠져들어 내 자신을 성찰하는 내 모습만 느껴졌다. 그렇다! 이것이 바라간이 원했던 ‘건축과 공간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제주와 불편한 인연이 있었던 리카르토 레고레타의 설계로 알려진 카미노 레알 폴란코 호텔에 투숙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그 호텔도 루이스 바라간과 다른 건축가와 공동작업이었다는 것이다. 레고레타가 바라간의 제자는 아니지만 후배로서 바라간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틀림없다. 또한 잘 알려진 일화로 그 유명한 루이스 칸의 솔크 연구소도 바라간의 조언에 따라 중앙 마당을 한 줄기 물이 흐르는 관념적 공간으로 디자인한 것도 쿠아드라 산 크리스토발에서 느낀 관념적 공간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

이외에도 루이스 바라간의 카푸친 수도원, 페르난도 로메로가 설계한 소우마야 뮤지움, 멕시코 국립대학교의 도서관(유네스코 문화유산)과 뮤지움, 프리다 칼로 뮤지움,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작품, 푸에블라의 산토 도밍고 성당의 로사리오 예배당의 그 화려함은 유럽의 그 수 많은 성당들과도 비교가 안된다. 국제 설계경기로 당선된 이토 도요의 바로크 뮤지움, 중세의 중정형 병원과 학교를 리모델링 증축한 TEN Architects의 암파로 뮤지움, 쿠에르나바카의 아즈펙문명 유적지에 건축된 Isaac Broid의 테오판솔코 문화센터 등 소개하지 못한 많은 건축들을 통하여 멕시칸들의 열정을 보았고, 그것이 건축과 예술을 통하여 거장을 만들고 그들의 국격을 높였던 현장을 목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작게는 우리 제주는 그럴 수 없을까? 그들에게 있는 열정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일까? 멕시코처럼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제주의 열정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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