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어디쯤
어디쯤
  • 홍기확
  • 승인 2019.12.02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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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25>

가끔 서울에 놀러 가면 높은 빌딩들과 그 속을 누비는 화려한 차림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어질어질하다.

과도한 부의 집중이다. 과소비, 과체중, 과대망상 등 과도한 대부분의 것들은 행위주체가 본인이다. 과도한 것은 자기가 잘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표현이 한글, 한자로도 없다. 잘못하는 게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과부(過富)는 사회학에서 접근하는 부의 양극화. 좁혀 말하면 한쪽은 풍요가 반대쪽은 빈곤이라는 한층 더 복잡한 문제를 통해 살펴보아야 한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에 대한 논점들.

첫째,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7년 가장 힘센 민간 거대 다국적 기업 500개가 제조업, 상업, 서비스업, 금융 등의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세계 총생산의 52.8퍼센트를 장악했다.

둘째, 2017년, 세계에서 가장 가진 것이 많은 85명의 억만장자들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 35억 명이 소유한 것을 모두 합친 것만큼의 부를 소유했다.

셋째,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562명의 금융 경제 권력은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 41퍼센트 증가한 반면, 제일 가난한 30억 명의 재산은 같은 기간에 44퍼센트 감소했다.

이러한 논점에 대해 장 지글러의 답변은 뭘까?

“우리가 남수단, 소말리아, 케냐 북부, 예멘 등에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로지 출생의 우연이야. 요행히 살기 좋은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점뿐이지.”

요즘은 책을 무척 많이 읽는다. 한두 권 읽는 것이 아니니, 깨닫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나. 누구는 세계를 여행으로 누비고, 누구는 살기위해 세계를 떠돈다.

둘. 1분을 쓰기 위해 10개의 플라스틱 제품을 구입하고, 100년 동안 쓰레기로 만든다.

셋. 세상을 비판하는 사회학과는 1999년 이후로 대한민국 대학에서 새로 생기지 않았고, 계속 감소하다 이제는 고작 30개 대학에만 있다. 우리나라의 2018년 기준 대학 수는 전문대 138개를 포함하여 408개나 되는 데 말이다. 반면 돈을 버는 경영학과는 무려 346개나 설립되어 있다.

넷. 법정 스님은 1971년 개발의 광기에 맞서 선구자처럼 《무소유》라는 글로, 세상에 ‘버림의 미학’이라는 화두(話頭)를 던졌다.

그야말로 대혼란이다. 어질어질하다. 세상은 왜 생각해야 할 것들이 이리도 많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이리도 많은 걸까? 수십 여일을 수많은 책을 읽고 고민하다 하나의 글귀로 처음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한 기자가 테레사 수녀에게 물었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테레사 수녀는 대답했다.

“집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십시오.”

유학에서 강조하는 자신의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인생의 종착점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중 맨 마지막 레벨인 평천하(平天下)가 아니라,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어디쯤’이다.

내 인생의 종착점은 어디쯤일까만 생각하며 나는 내 할 일을,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마트에서 처음으로 ‘싼 달걀’이 아닌, 목초지에서 뛰어 놀게 한 닭들이 낳은, 동물복지 인증마크가 있는 ‘비싼 달걀’을 샀다.

그리고 농약을 많이 써 풍성하고 많이 담긴 ‘싼 상추’가 아닌, 토양을 적게 오염시키는 말라비틀어지고 몇 장 담기지 않은 친환경 ‘비싼 상추’를 샀다.

차이점을 발견했다.

싼 것을 사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비교하게 된다. 중량, 함량, 품질, 가성비 등등. 불행은 비교에서 생겨난다던가? 힘이 든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찾다보니 종류가 별로 없다. 가격이 비싸다. 싼 것이 없으니 가격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 행복은 비교하지 않는 데서 생겨난다던가? 힘이 덜 든다.

이제야 어디쯤 온 듯하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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