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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통해 나를 알고, 당신을 이해하게 됐어요"
"연극을 통해 나를 알고, 당신을 이해하게 됐어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12.02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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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꽃은 학교에서] <8> 표선고 연극 동아리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선진국을 가늠하는 지표입니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은 뭐가 다를까. 먹는 것, 입는 것, 여러 가지가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 중에서도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문화예술은 특정한 사람들이 누리는 산물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즐기는 보편타당한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선진국입니다. 특히 문화예술은 어릴 때부터 심어줘야 합니다. <미디어제주>는 제주도내 각급 학교의 동아리를 들여다보면서 문화예술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심어지고 있는지 살피는 기획을 싣습니다. 이 기획은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주]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요망진 아이들’. ‘야무지고 똑 부러진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표선고등학교 연극동아리 ‘요망진 아이들’이 그렇다. 어쩌면 모두 하나같이 '요망진' 아이들이다.

'요망진 아이들'은 2015년 생겨 올해 4년차에 접어들었다. 

4년이란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닐 터인데, 관련 수상 실적은 이미 수 차례. 실력과 열정 만큼은 오랜 전통의 동아리 못지 않다.

표선고 연극동아리 '요망진아이들'은 2015년 생겨난 신생 극단인데, 각종 연극대회에서 상을 꽤 많이 수상했다.

“저는 미술에 관심이 많아요. 대학도 관련 전공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연극동아리에 들었어요. 연극은 나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예술이잖아요. 미술도 그렇거든요. 미술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연극을 하는 거예요.” / 표선고 1학년 서영우

올해 '요망진 아이들'에 가입했다는 1학년 영우는 그림을 그린다.

친구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냥 그리는 수준이 아닌, 엄청나게 잘’ 그린단다.

그런 영우가 미술동아리가 아닌, 연극동아리에 든 이유. 미술을 더 잘하고 싶어서,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다.

표선고 1학년 서영우 학생.

“자신감을 키우고 싶었어요. 용기 내서 동아리에 들었죠. 잘한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연기해보니 이젠 평상시에도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됐거든요. '나'에게 자신감이 생겼어요.” / 서영우

영우의 말을 듣던 2학년 예지는 자신도 비슷한 이유로 연극동아리에 가입했다고 말한다.

“저는 발레리나가 꿈인데요, 춤을 추면서 느낀 게 하나 있어요. 영혼이 없는 춤은 아무리 잘 춰도 멋있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연극동아리에 들었어요. 춤에 영혼을 싣는 법을 배우려고.” / 표선고 2학년 김예지

극동아리에서 연기를 배우며, ‘발레리나’라는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간 것 같다는 예지. 그는 올해 제주청소년연극제에서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언젠가 국립발레단에 들어가서 활약하고 싶어요. 춤 실력을 더 쌓은 뒤엔 개인 발레단을 만들 거예요. 전 세계를 누비며 제 이야기를 발레로 보여줄 거예요.” / 김예지

‘꿈이 너무 큰 것 같은데, 그래도 꿈은 클 수록 좋은 거니까’라고 말하는 예지.

그는 '마음을 울리는 무용수'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연기'를 할 테다.

(왼쪽부터) 표선고 2학년 김예지, 1학년 김성삼 학생.

예지의 '커다란 꿈' 이야기. 이를 듣던 동급생 소이는 "나도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 꿈을 고백했다. 그런데 그 꿈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저는 한국 민속촌에서 배우로 일해보고 싶어요. 유튜브에서 봤는데, ‘구미호’ 역할에 푹 빠졌거든요.” / 표선고 2학년 오소이

한국 민속촌에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퍼포먼스를 하는 배우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못된 관리가 관람객에게 장난을 걸거나, 거지가 구걸을 하는 식이다.

이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연기 활동'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소이에게는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나보다.

“저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거든요. 배우도 하고 싶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하고 싶은데 '한국 민속촌' 직원이 딱인 것 같아요!"

특정 기간 근무 후에는 '정직원' 채용으로 전환도 가능하다는, 꿈 만큼이나 구체적인 채용 계획까지 꿰고 있는 소이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 주목받는 것을 즐긴다. 어쩌면 배우에 딱 맞는 성격이다. 그런 소이가 연극동아리에 들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국어예요. 그중에서도 희곡을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 1학년 때부터 연극동아리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 오소이

소이는 무대 위에서 연기할 때, 관객의 호응을 받을 때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럴 땐 애드립이 절로 나온다고.

이처럼 연기를 사랑하는 소이지만, 그에게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스스로의 연기 실력을 완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아니야, 너 연기 잘해. 진짜야. 자신을 가져!”

소이의 옆에 앉아있던 세린이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세린의 위로(?)를 듣자 소이는 "정말? 고마워!"라며 금세 밝게 웃는다.

표선고 연극동아리 '요망진 아이들'이 공연을 올릴 때 사용한 소품들. 

다정한 성격의 세린은 ‘요망진 아이들’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극단으로 치면 '단장'인 셈이다.

“저는 작년 1학년 때,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를 왔어요. 그래서 친구 사귀는 것에 걱정이 많았어요. 사실 연극동아리도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가입한 거예요.” / 표선고 2학년 최세린

단순히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어 연극동아리에 들었다는 세린. 그런데 막상 세린은 단원 중 유일하게 어릴 적부터 연기 경험을 해온, 나름 ‘연기 선배’다.

“어릴 적, 연기를 배운 적이 있거든요. 서울에서요. 사실 ‘어릴 적부터 연기했다’라고 하면, 활발하고 장난기 많은 성격을 떠올리기 쉬운데요, 저는 조용한 편이었어요. '요망진 아이들'에 가입한 뒤 많이 변했죠.” / 최세린

‘요망진 아이들’에 가입한 뒤, 여러 무대에 오르며 활발한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세린은 “소이 빼고 여기 있는 친구들 모두”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라고 말했다. 원체 활발한 성격의 소이를 제외하고, 영우, 승규, 예지, 성삼이 모두가 연극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런 소이의 말에 승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경험을 터놓는다.

“저는 스스로가 남들 앞에서 잘 안 떠는 줄 성격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연극 무대에 서보니 많이 떨리더라고요. ‘자신감’ 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떠는 내 모습을 보니 ‘자신감을 더 가져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표선고 1학년 이승규

'연극이란 무엇긴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적고 있는 이승규 학생.

1학년 승규는 동아리 추가모집을 통해 합류한 늦깎이 부원이다. 연극동아리에 가입하려면, 오디션을 거쳐야 하는데 이것이 부담스러워 망설였단다.

“이제는 처음만큼 떨진 않아요. 연기하는 게 재미있거든요. 그리고 연극동아리 활동을 하며 배운 게 있는데요.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웠어요. 제가 원래 남을 위해서 뭘 하는 성격이 아닌데… 연극부 와서는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요. 서로 배려해야 제대로 된 극을 올릴 수 있거든요.” / 이승규

무엇보다 ‘팀워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연극의 특성 덕에 ‘서로 돕는 법’을 배웠다는 승규. 승규의 말에 같은 1학년인 성삼이 말을 이었다.

“저는 형이 ‘요망진 아이들’ 연극동아리 활동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가입했어요. 배우를 해보며 가장 좋은 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체험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어떤 생각으로 이런 대사를 하는 걸까. 이런걸 고민하다 보면 그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게 되거든요.” / 표선고 1학년 김성삼

성삼이 말한 ‘캐릭터에 대한 이해’는 연극에서 가장 강조하는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와 이어진다. 메소드 연기란, 배우 자신이 마치 배역 그 자체가 된 것처럼, 생각과 감정을 완전히 몰입하는 영역의 연기 기법이다.

“연극은 ‘관객과 노는 느낌’이라 영화와 다른 매력이 있어요. 제 꿈이 사실 전기자동차 엔지니어, 혹은 과학교사인데요. 연극과 전혀 관계없는 분야지만 연극을 하는 이유는. 과학자라고 과학만 하고 살면 너무 팍팍하잖아요. 예술을 일상 속에 담을 줄 안다면 삶이 좀 더 재미있어지는 것 같아요.” / 김성삼

표선고 연극동아리 '요망진 아이들'. 

이들의 꿈은 모두 다르지만, ‘무대 위에서 느끼는 행복’만큼은 같다. 연극을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은 모두 같기에, 바쁜 일상에서도 동아리 활동만큼은 열심인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해본다.

“당신에게, 연극이란 무엇인가요?”

(왼쪽부터) 표선고 2학년 김예지, 오소이 학생.

“저에게 연극이란, ‘배움’이에요. 연극을 하면서 욱하는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어요. 희곡에는 화내는 연기도 있고, 참는 연기도 있잖아요. 여러 연기를 하다 보니 감정 조정하는 법이 절로 느는 것 같아요.” / 예지

’자유’예요. 평소에 감정을 다 드러내고 산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겠죠. 하지만 연기할 때는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요. 내 끼를 미친듯이 방출할 수 있는 점도 좋아요.” / 소이

(왼쪽부터) 표선고 1학년 김성삼, 2학년 최세린 학생.

’다른 인격’이에요. 연기란 곧, ‘다른 인물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과 같잖아요. 인물에 대해 알아가며 ‘이 인물은 슬펐겠구나, 화가 났겠구나’ 이해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연기하는 것도 좋았고요.” / 성삼

’발걸음’이요. 연극을 하며 부원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요. 얻는 것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아요. 뭔가 더 나은 나를 위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것 같아요.” / 세린

표선고 1학년 이승규 학생.

’일탈’이요. 수업시간에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가만히 있는’ 것이 일상인 학교인데, 연극동아리에 오면 좋아하는 연기도 할 수 있고,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아요.” / 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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