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53 (금)
다, 내 탓이오
다, 내 탓이오
  • 문영찬
  • 승인 2019.10.26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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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찬의 무술 이야기] <55>

나는 합기도(아이키도)를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도 거의 매월 빠지지 않고 강습회에 참가하고 있다.
강습회는 거의 서울에서 개최되는데 제주에서 매월 상경하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매월 가서 매월 똑같은(?) 것을 배우는데, 왜 이해가 안되고 가르쳐 주는대로 되지 않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할복!

예전 배우 김태희씨에게 과외받던 사람이 올렸던 일화를 소개하자면..

김태희씨가 과외하다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왜? 이해 안돼?” 하고 있으면 수업내용을 이해 못하는 자신의 죄를 할복자살로 갚아야 할 것 같다고 인터넷에 올려 참 많이 웃었는데 합기도(아이키도) 수업이 그랬다.

합기도(아이키도)는 참 쉬운 무술이다. 기술의 가짓수나 하는 방법만 보면 그렇다. 몇가지 되지도 않고 움직임도 그리 복잡하지도 않다. 그래서 참 쉬운 무술이다.

이 쉬운걸 몇 번이라도 가르쳐 주시는 선생 앞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너무 바보 같았다.

김태희씨에게 과외받던 사람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러나, 합기도(아이키도)는 참 어려운 무술이다.
몇 개 되지도 않는 기술과 그 단순한 움직임이 상대의 저항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런데도 가르치는 선생들은 너무 너무 쉽게 움직이고 제압한다,
나만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참 어려운 무술이다.

오해

지금도 한창 배움을 청하고 열심히 훈련하고 있지만 지금보다 한참 어릴 때는 선생님께 배우러 가면 선배들의 싸한 반응이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본인들도 배우러 왔는데 나같은 초보가 왔으니 그리고 그 초보랑 훈련해야 하니 아마도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부탁해도 은근 피하는 눈치를 줬고, 한번 그 느낌을 받으면 괜히 주눅이 들고 자존심 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서로 기술을 이해하는 사람들끼리는 기술 연습이 훨씬 쉽다는 걸 알게 됐다.

초보자는 기술을 정확하게 모르니 선배들이 뭘 어떡하자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물끄러미 서있을 때가 많았고 합기도(아이키도)의 기술 특성상 상대를 아프게 하면 안되니 선배들은 초심자의 팔을 힘껏 비틀고 싶지만 그리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초보자가 자신에게 부탁하면 얼마나 난처했을까.

아프게라도 해서 제압하면 서로 불편해지고 안아프게 하려니 본인의 실력이 낮아 뭘 할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러니 초심자였던 내가 오면 자연스레 피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런 모습이 초심자에겐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버리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순환. 그러나 3단을 허락받고 나서 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하였다.

초심자에게도 아프지 않게 기술이 들어가기 시작하였고, 조금씩 초심자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실력이 부족하면 아무도 오지 않는거구나..
팔을 비틀지 못해서가 아니고, 상대를 제압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은 다 내 탓이었다.

성장

그 모든 오해가 풀리고 나니 선배들에게 다시 다가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선배들이 나를 좀 아프게 하더라도 그게 그 사람의 본심이 아닌 걸 알고 나서는 더 적극적으로 변하는 나의 모습에 더 열심히 훈련에 임하기 시작했다.

오해를 하는 것도 내가 더 크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었고 더 뜨겁게 타오르기 위한 하나의 연료였다.

아마 우리 제주오승도장의 초심자와 선배들 간에도 위와 같은 거리감이 있을 것으로 본다. 누구에게나 다 거쳐간 상처이기에.
그러나 이 글을 읽고 아무것도 아닌 사춘기 같은 과정임을 이해하고 한단계 더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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