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치열한 공방전
치열한 공방전
  • 홍기확
  • 승인 2019.10.26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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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20>

축구를 싫어한다. 축구를 하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게(!) 모두 싫다.

싫어하는 이유의 첫 번째. 너무 많은 사람이 동시에 운동을 해서 정신사납다.

축구는 11명이 하는데, 상대팀도 11명이니 총 22명이 북적댄다. 스포츠 중에 단연 최대 인원으로 팀을 이룬다. 익숙한 스포츠를 비교하자면 야구는 한 팀이 9명, 농구는 5명뿐이다. 가위바위보를 2명이 하는 것에 비하면, 축구는 무려 11배의 사람이 필요하다.

두 번째. 감정노동이 심하다.

1명이 공을 잡으면 나머지 팀원 10명이 자기한테 공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골키퍼를 제외한 상대팀 10명은 1명이 공을 잡자마자 그걸 뺏으려고 난리다. 얼마나 지치는 스포츠인가? 이만한 감정노동을 돈을 받고 하기 때문이라면 진정한 프로정신이지만, 우리나라만 해도 조기축구 등 아마추어 ‘축구가족’이 100만 명이나 된다. 한국이 피로사회라고 하는데 어쩌면 축구가 일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 모든 게 소모적이다.

체력이 소모된다. 45분을 뛰고 10분을 쉰 다음 45분을 뛰어야 한다. 수비수는 수비하다가 쉬면, 욕을 먹는다.(주로 중계방송에서) 공격수는 공격하다가 공이 안 온다고 서있으면 역시 욕을 먹는다. 즉, 할 일이 없어도 대충 뛰어다녀야 한다. 이 뿐이랴? 공을 남한테 뺏기면 욕먹는다. 그래서 뺏기기 전에 동료한테 패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 역시 밑져야 본전이다. 공이 제대로 가면 좋지만, 실수하면 동료에게 책임전가를 한다느니, 발이 세모나게 생겨서 똥볼을 차느니 하며 신체에 대한 망발을 늘어놓는다. 참 기운이 빠지는 일이다.

반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유도 있다. 음, 분명 있을 것이다.

갑자기 축구 얘기를 꺼낸 건 TV와 관련된 대화를 직장동료와 끝마치고 나서 든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동료가 점심식사 중 물었다. ‘00프로그램 보세요? 예능프로그램인데 완전 재미있어요.’ 나는 대답했다. ‘TV는 2000년부터 약 20년간 보지 않아서요. 다만 신문에서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게다가 특히 예능은 자기네들끼리 소리 지르면서 놀아서 별로에요. 남들 노는 거 보는 것도 시간이 아까워서요.’

그러자 직장동료가 무엇 때문에 빈정이 상했는지 닦달하듯이 말했다.

“왜 안보세요? 그거 보면 얼마나 스트레스 풀리는데요? 직장생활하면서 그런 거 안 보면 무슨 낙으로 살아요? 인생에 재미가 있어요?”

나는 차분히 농담 삼아 대답했다.

“제가 TV 안 본다고 76억 지구인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안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스트레스는 별로 안 받습니다. 그리고 낙(樂)으로는 책도 읽고, 드럼도 치고, 아내랑 틈날 때 데이트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TV 볼 시간에 다른 거 하는 거니 너무 노여워 마세요.”

하지만 식당에 앉자마자 꾸준히 휴대폰만 보고 있던 다른 직원이(가장 혐오하는 부류의 지구인이다.)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했는지 분위기 없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연예인 00가 자살했데요. 물론 누군지 모르시겠지만!’ 나는 성실하게 대답했다.(항상 대답은 성실하게 꼬박꼬박 한다.) ‘00는 저도 알고 있어요. 신문에 자주 나오던데요. 좀 독특한 사람.’ 그러자 직원도 말한다. ‘왜 화려한 연예계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나는 대답했다. ‘글쎄요.’ 사실 말하면 말할수록 손해인 까칠한 나라서 말을 아꼈지만, 내 머릿속은 어느새 복잡해진다.

OECD의 최근 통계(2016년)로 한국은 10만 명당 28.3명이 자살을 한다. 물론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사람이 2분당 한 명이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20~40대의 사망원인의 1위는 단연코 자살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2016년 한 해 동안 80만 명이 자살을 했다니 이것 참. 세계에서 살인, 전쟁, 말라리아, 유방암으로 죽는 사람보다 많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0만 명당 10명 이상이 같은 질병을 앓게 되면 이를 전염병으로 전 세계에 선포한다. 우리나라는 10만 명당 28명 이상이니 이는 분명 전염병이다. 다시 말해, 한국은 지금 매우 심각한 전염병이 돌고 있다. 전염병은 물리적으로는 신체접촉으로 이루어지고, 심리적으로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금기(禁忌)해야 한다. 전염된다.

뭐, 이런 대답을 직원에게 해주고 싶었다.

정리하자면,

첫째, 내가 축구를 싫어하더라도 전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없다.

둘째, 내가 TV를 안 보더라도 전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없다.

셋째, 무엇인가 싫거나 안하더라도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된다.

넷째, 조언과 충고는 다른 이들이 원할 때만 해 주면 된다.

다섯째, 세상에 옳고 그름을 명확히 가를 수 있는 것은 몇 개 없다.

지구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 하지만 여타 지구인들과의 치열한 공방전은 은근히 끊이지 않는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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