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9:15 (목)
당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이, 사건이 발생했다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8.10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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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하게 듣고, 말하다2]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전

스페이스산호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전
외면하는 시선에 담긴 ‘불편한 진실’ 찾기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오롯하게 듣고, 말하다' 기획은 제주 곳곳에서 진행되는 공연·전시 등의 문화 행사를 기자가 직접 보고, 체험한 내용으로 꾸며집니다.

이번 기사는 두 번째 체험으로, 스페이스산호에서 열리는 중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전을 소개합니다.

‘자세히 볼수록 아름답다’라는 말. 이 전시에서만은 예외다.

보면 볼수록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불편해진다. 분명, 아름다운 풍경 사진인데. 그 이면의 어두움이 느껴진다. 왜일까.

지금부터 알아보자.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전이 열리는 스페이스산호.

기사를 통해 소개할 전시는 서귀포시 강정동 이어도로594 ‘스페이스산호’에서 열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전. 오는 8월 27일까지 열리는 전시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사건과 마주하며 산다.

예를 들면, 제2공항 예정지로 향하는 방향의 비자림로를 확장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했던 일은 제주 사회의 ‘큰 사건’이라고 본다.

반면, 아침 출근길 집을 나서다 마주친 아는 얼굴에 인사를 건넨 것은 ‘작은 사건’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늘 사건의 연속선 상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담긴 이번 전시는 우리의 삶과도 분명, 연결되어 있다.

전시실 모습.

전시실에 들어서면, 수많은 '사건'들과 마주한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둘러싸인 사진들. 전시실의 규모가 소박한 덕에, 관객은 '사건 속으로' 인도받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은 전시실이지만, 곳곳에는 숨은 사진도 있다. 전봇대 사진와 나무뿌리 사진인데, 이는 전시를 방문하게 될 독자를 위해 공개하지 않겠다. 직접 방문해 찾아보시라. 참고로 기자는 나무뿌리 사진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최혜영 기획자에게 정답을 물어보아야 했다.

이번엔 전시실에 전시된 사진 한 장을 살펴보자.

권하형 작가의 작품.

수풀이 우거진 아름다운 자연에 폭, 쌓여있는 그림 같은 도로의 모습. 제주의 어느 숲길 같기도 하다.

관객은 상상한다.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상쾌한 수풀 내음을 맡으며, 나무로 둘러싸인 좁은 길을 달리는 기분 좋은 상상. 아, 평화롭다.

그런데, 이 사진은, 결코 평화로운 사진이 아니다. 사실 이 사진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작품의 제목은 <후텐마 해병대 항공기지, 오키나와>. 권하형 작가가 2016년 찍은 사진이다.

후텐마 기지는 일본 오키나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군사기지’라고 불린다. 주민들이 살아가는 주택가의 하늘에는 미군 헬기 중 가장 큰 CH-53E 슈퍼 스탤리온과 전투헬기로 유명한 코브라 헬기가 비행한다. 헬기가 뜨고 내릴 때마다, 마을은 굉음으로 뒤덮인다.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2018년 1월 기준, 총 6번의 추락 사고가 있었는데 가장 최근으로는 2016년 12월, 같은 현에 위치한 나고(名護)시 인근 해상에 수직이착륙기 한 대가 추락한 사고가 있다.

미군 헬기가 불시착해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 사고도 있었다. 2018년 1월 8일 오후 5시. 오키나와현에 위치한 한 호텔 부근에 미군 후텐마 기지 소속의 AH1 공격헬기 한 대가 불시착했다. 불시착 사유로 미군은 “기계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나타내는 계기가 점등해 착륙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전투헬기 굉음과 더불어 살며, 헬기의 추락 사고를 눈으로 목격해야 하는 주민들은 지금도 불안에 떨며 산다.

여기서 의문점 한 가지. 이처럼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는 후텐마 기지인데. 작가는 왜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전시작으로 선택한 걸까.

이러한 질문에 권하형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오키나와의 역사가 인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이 보이니까 부끄러웠다. 아름다움에 대한 마음을 들킬까 봐 움츠러들었다. 내 모습이 수치스러웠다. 이 모든 편찮음과 언짢음을 가지고, 아름다움과 함께 담긴 ‘불편한 풍경’을 찾아 기록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허란 작가의 작품 한 점을 소개한다.

허란 작가의 작품.

아름다운 노을이 바다를 비추는 모습이다. 제주에 사는 이라면, 어렵지 않게 마주할 만한 풍경이기도 하다.

‘노을’을 바라볼 때. 우리는 많은 감정을 느낀다. 누군가는 그리운 첫사랑을 떠올리는가 하면, 혹자는 돌아갈 순 없지만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한편, 아픈 과거를 생각하며, 오늘에 감사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허란 작가의 이 작품에도 ‘불편한 진실’이 담겨있다.

이 사진의 작품명은 ‘동거차도’. 2017년 1월 1일 작이다.

동거차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위치한 섬이다.

그리고, 동거차도는 세월호가 가라앉은 바다 현장을 지켜볼 수 있는 섬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우리는 이를 ‘참사’라 부른다. 참사(慘事)란, 참혹할 참慘에 일 사事자를 써서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뜻한다. 영어로는 disaster(재앙) 혹은 tragedy(비극)으로 번역할 수 있다.

그렇다. 세월호에 탄 아이들이 한순간에 별이 되었던 사건은 그야말로 ‘참사’였다.

동거차도에서 세월호 참사 현장까지 거리는 약 1.6km.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곳 동거차도의 산 중턱에 감시초소를 세우고, 현장 일지를 기록했다.

유가족들이 정부의 인양 작업을 믿지 못하고, 동거차도에서 현장을 감시한 까닭이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바닷속 세월호에 100개가 넘는 구멍을 뚫으며 선체를 훼손시켰다. 인양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수년간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에는 ‘박근혜 정부가 고의로 인양을 지연시키고 있다’라는 의혹이 수차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허란 작가의 ‘동거차도’ 사진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감시초소’로 삼았던 동거차도 이야기를 모르는 이는 작품명을 보아도 그 의미를 잘 모를 수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모습들도 그러할지 모른다. 아름다운 서귀포시 강정마을에는 ‘해군기지’로 인해 발생한 ‘불편한 진실’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세계평화의 섬’으로 정부가 지정하며 외교부와 제주도가 ‘국제평화센터’를 제주에 유치했지만, 지금 제주는 ‘세계’는 커녕 제주 스스로의 평화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27일, 스페이스산호에서는 권하형, 허란 두 작가를 초청해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왼쪽에서 세 번째 인물이 최혜영 기획자, 여섯번째과 일곱번째 인물이 각각 허란 작가와 권하형 작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최혜영 기획자는 “대중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이야기, 메시지들을 ‘전시’를 통해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작은 전시 공간에 전시된 작품 수는 총 20점. 모두 ‘사건’ 현장에서 찍은 사진이지만, 사진 자체는 그 뜻을 알기 모호한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사진 아래 작품명과 작가명을 기재하는 사진전과는 달리, 작품에는 아무런 이름도, 정보도 적혀있지 않다.

전시 공간 한켠에 마련된 한 장의 작품 설명서를 참고해야만 작품의 이름과 작가의 말을 알 수 있는 형태다.

“허란 작가는 현장 사진을 계속 찍어온 사람이에요. 그의 사진을 보았을 때, 처음 느끼는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그리고 작품명을 보면 관객은 알아차리게 돼요. ‘어라? 현장에서 조금 벗어난 사진 같은데?’ 하고 말이죠. 여기서부터, 관객은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실제 ‘현장’에서 발생한 ‘사건’ 이야기를 휴대폰을 통해 찾아보게 될지도 모르죠.” / 최혜영 기획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랫말처럼. 스스로 아프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파야 한다. 아픔을 찾아내려 노력해야 한다.

단순 사고 혹은 현상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 ‘사건’이 존재했고,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었다는 과거 사례를 항상 경계하며. 또다른 ‘불편한 진실’로 고통받는 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주민들이 9일 제주특별자치도 청사 정문 앞에서 제2공항 사업 반대를 외치고 있다. ⓒ미디어제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주민들이 지난 7월 9일 제주특별자치도 청사 정문 앞에서 제2공항 사업 반대를 외치고 있다. ⓒ미디어제주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아팠다.

그리고 당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서. 지금도 사건은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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