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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 책이 밖으로 마구 튀어나와요”
“학교 도서관 책이 밖으로 마구 튀어나와요”
  • 김형훈
  • 승인 2019.08.03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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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지역문화를 가늠한다] <6> 서귀포중학교 도서관

올해초 우리나라 곳곳의 도서관을 둘러보고 글을 쓰곤 했다. 당시엔 ‘도시재생’ 관점에서 도서관을 바라봤다. 도시재생은 쇠퇴한 지역을 어떻게 바꿀지가 관건이다. 거기엔 도서관이라는 키워드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엔 가볼만한 도서관이 널려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그런 아쉬움에 다시 도서관을 둘러보게 됐다. 이번은 지역문화를 이끄는 관점으로 도서관을 바라봤다. [편집자주]

 

올해 새롭게 공간 구성하며 이전 모습 완전 탈피

양덕부 교장 도서관은 학교의 심장이어야 해요

학생과 교사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얘기하는 곳

책을 교과와 연계가방속 작은도서관도 운영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도서관은 무엇인가. 책을 꽂아놓기만 하면 될까. 답은 ‘아니다’이다. 도서관 책이 서재에 꽂혀 있듯, 장식품마냥 있다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이 제 역할을 하려면 안방에서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거실에서도, 주방에서도 마음껏 읽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집안에 있는 책이 서재에만 있다면 그 역시 책에 대한 모독이다.

도서관 탐방을 하며 줄곧 육지부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이번엔 제주에 있는 도서관 하나를 둘러보겠다. 학교 도서관이다. 가볼 곳은 서귀포중학교이다.

학교 도서관은 이상하게도 기본 틀을 지니고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대출창구가 있다. 그 뒤로 열람공간이 마련돼 있다. 왜 그런 기본틀이 만들어진지는 모르겠다. 학교 도서관은 책을 빌리고, 빌린 책을 가져다 놓는 곳은 분명 아닐텐데 말이다.

서귀포중 학교 도서관의 달라진 풍경. 아이들은 자유롭게 활동하며, 교사들도 자유롭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고 있다. 미디어제주
서귀포중 학교 도서관의 달라진 풍경. 아이들은 자유롭게 활동하며, 교사들도 자유롭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고 있다. ⓒ미디어제주

서귀포중은 그런 기본 틀을 과감하게 깨고 있다. 도서관은 하드웨어도 중요하겠지만,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한 곳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책이 학교 도서관을 뛰쳐나올 때라야 제 기능을 하게 된다. 우선 양덕부 교장의 말을 들어본다.

“도서관은 심장입니다. 사람에게 심장의 역할이 그렇듯, 도서관도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강제적으로 책을 읽게 만드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 환경을 만들어줘야겠죠.”

그는 ‘심장’을 누누이 강조했다. 도서관이 학교의 심장이라는 건, ‘가장 중요하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심장은 온몸에 피가 돌도록 펌프질을 한다. 심장은 피가 돌아가고, 다시 들어오게 만든다. 학교 도서관이 ‘심장’의 역할을 한다면, 아이들이 늘 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서귀포중학교의 학교 도서관은 올해 달라졌다. 예전 틀을 과감하게 벗어던졌다. 새로운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국내에 이름있는 도서관을 3차례에 걸쳐 탐방했다. 다른 곳의 장점과 서귀포중학교만이 지닐 수 있는 특징을 살려냈다. 예산이 많이 들지 않았지만 바꾸려는 의욕이 강했다. 도서관은 늘 오가는 곳으로 만들 필요성이 있다. 오가지도 않는데, 책을 읽으라고 하면 그때부터 책에 대한 반감만 생긴다. 그래서 생각해냈다. 인간이면 반드시 해야 하는 욕구와 결부시키는 일이었다.

서귀포중 급식실로 가는 길. 도서관의 복도 벽면을 자연스레 바라보게 구성했다. 미디어제주
서귀포중 급식실로 가는 길. 도서관의 복도 벽면을 자연스레 바라보게 구성했다. ⓒ미디어제주

인간의 욕구? 무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간은 먹어야 산다. 학생들은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로 향한다. 그 중간에 학교 도서관이 자리해 있다. 예전엔 급식실로 향하는 길은 ‘황량’ 그 자체였다. 이젠 달라졌다. 급식실로 오가며 도서관에 자연스레 눈길이 닿게 만들었다. 여기 선생님들은 바뀐 공간을 두고 “죽은 공간이 살아났다”고 말한다.

급식실로 향하는 길은 새 책을 소개하는 공간도 있고, 친구들이 써낸 글솜씨도 들여다보게 했다. 점심을 먹고 나오면 부른 배를 꺼뜨리려 도서관으로 향하게 구성됐다. 자연스레 발걸음은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엔 드러누울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책은 앉아서만 읽는 게 아니다. 서서 읽어도 되고, 누워서 읽어도 된다. 책이 읽기 싫으면 도서관 창을 통해 운동장을 바라보며 음악을 감상해도 좋다. 잡담을 해도 좋다. 누가 그랬나,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라고. 서귀포중 도서관은 마치 시장처럼 사람들이 오가며, 얘기도 나누는 사랑방이다. 그게 도서관의 진정한 역할이다.

공간이 달라지니 아이들은 책과 스스럼없이 친해졌다. 그 덕분에 어렵게만 느껴지던 ‘아침 15분’ 독서활동도 쉽게 진행된다. 활동적인 남자 중학생들에겐 가만히 앉아 15분을 버티기도 쉽지 않을텐데, 이젠 아주 익숙할 활동이 됐다.

도서관이 바뀌었다. 공간도 바뀌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게 있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앞서 얘기했다. 서귀포중학교는 그런 소프트웨어를 지녔다. 고은손 교사(연구평가부장)와 고유미 사서 교사의 역할이 컸다. 여러 교과를 책이랑 연계시키는 활동이 이뤄지는, 그야말로 ‘협업’이 등장했다.

도서관 복도 벽면에 새 책을 소개하는 공간. 서귀포중은 아울러 새 책을 홍보하는 '이동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도서관 복도 벽면에 새 책을 소개하는 공간. 서귀포중은 아울러 새 책을 홍보하는 '이동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교과와 연계된 수업은 연중 이뤄진다. 학교의 굵직굵직한 프로그램엔 늘 책이 존재한다. 교과 관련 목차를 제시하면 학생들은 관련 책을 찾아본다. 그렇게 수업은 진행된다.

책을 가까이 하게 만드는 ‘이동도서관’도 운영된다. 교과연계가 그렇듯, 책을 도서관 밖으로 꺼내는 작업이다. 이동도서관은 새로 나온 책을 홍보하는 수단이다. 새 책을 싣고 학교를 돌며 대출을 받는다.

간혹 이벤트도 열린다. 매월 한차례 진행되는 이벤트의 이름은 ‘가방속 작은도서관’이다. “난 이런 책을 읽어요”라고 가방에서 자랑스럽게 꺼내는 친구들에겐 선물이 돌아간다.

여기 학교 도서관은 학생들만 오고 가는 공간은 아니다. 교사들도 즐기는 공간이다. 지친 몸을 달래는 쉼터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공간도 된다.

더운 여름철, 방학중임에도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학생들이 바라보는 도서관의 모습이 궁금했다.

“올해 시설이 바뀌어 깨끗해요. 공간도 넓어졌어요. 온돌이 있으니 더 좋아요.”(고유환·1학년)

“분위기가 바뀌니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책이 잘 읽혀요.”(오동권·3학년)

“엄마와 아빠도 좋아해요. 도서관이 밝아지니 좋아요.”(강준원·3학년)

바꾼다는 건 쉽지 않다.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로’는 무척 위험한 발상이다. 특히 아이들을 위하는 학교라면 새로움을 얹는 작업이 중요하다. 서귀포중 학교 도서관은 “바꿔야 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남은 건 새로운 도서관에 걸맞는 이름이다. 예전 ‘키움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지녔던 학교 도서관.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를 맞으면 새 이름을 공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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