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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서 오늘을 산 사람들..."노무현과 김군"
낮은 곳에서 오늘을 산 사람들..."노무현과 김군"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7.2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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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무현입니다>, <김군> 제작자 최낙용
'더 가진 자'로, 사회에 대한 채무의식 가져
4·3 등 역사 속 인물 다룬 영화 만들고 싶어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가만히 있으라”.

물이 새는 배 안에서, 아이들에게 한 어른들의 지시.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너무 잘 들어서, 아이들은 그렇게 별이 되었다.

이날 이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세월호 아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아픈 말이 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닌 건 아닌 거라고, 용기 있게 증언하는 이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상사에게 몹쓸 짓을 당하면서도 생계를 이유로 꾹 참아온 ‘을’들의 고백은 '미투운동'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이 기사는 이들과 같은 용기를 가진, 한 영화 제작자의 이야기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가 있는 위치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한다는 것. 쉬워 보이지만, 그 누구도 쉽게 나서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쉰 인물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전하고 싶어 영화를 만든다는 최낙용 제작자를 만나본다.

인물 ‘노무현’의 이야기로, 대한민국을 바라보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공식 포스터. (사진=네이버영화)

최낙용 제작자는 영화 <노무현입니다>와 <김군>으로 큰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제작자로 나서기 전에는 극장 운영, 외국영화 수입, 조감독 등 20여년 동안 영화 관련 다양한 일을 해왔다.

그런 그가 영화 제작자로 나서게 된 이유, 인물 ‘노무현’에 대한 호기심이 발단이 됐기 때문이다.

“늘 정치, 사회적 배경 안에 살아 숨 쉬는 인물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유독 그런 일들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제작할 때도 그랬어요. ‘대통령에게 잘 보여야지’라는 느낌보단, ‘저분의 이야기가 참 궁금하네’라는 생각이었죠.”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속, 나 자신조차 챙기기 어려운 바쁜 삶인데 ‘한 사람’에 대해 지극한 관심이 생겨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운명이 아니었을까.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깔고 있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동시에,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거대한 역사 속에서 한 명의 인생은 가시적인 이야기죠. 하지만 인물들의 가시적인 삶을 들여다보면 제각각 사연이 있거든요. 이러한 사연이 모이면 '거시적인 사건'을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거죠.”

영화 <노무현입니다>와 <김군>을 제작을 맡은 최낙용 제작자.

그가 <노무현입니다>를 기획할 당시는 2016년. 박근혜 정권 때였다. 그래서 영화를 제작하면서도, ‘과연 개봉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단다.

“영화 제작 자체를 비밀로 했어요. 주변에서 ‘요새 어떤 영화 찍느냐’ 물으면 ‘New Project’,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죠. 이를 줄여 N프로젝트라고 했는데, N은 노무현의 성씨 이니셜을 상징하기도 하는 거라고. 우리끼리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는 영화 <노무현입니다>로 주목받게 된 것이 의도하지 않은 시의성 덕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된 날은 2017년 3월 10일. <노무현입니다>의 개봉일은 5월 25일이었다.

“개봉 당시, 예상했던 규모보다 5배 정도 극장 수요가 많았어요. 예를 들면, 150개 상영관 개봉을 예상했는데 750개 상영관에서 영화 개봉을 한 셈이죠.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당시 국내에서 <노무현입니다>에 대한 인지도 수준은 ‘어벤져스 수준’이었다고. 극비리(?)에 준비한 영화인만큼 감회가 새로웠어요.”

 

5월의 광주에는 수백 명의 ‘김군’이 있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 시민들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신군부세력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이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사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보편적인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5월의 광주에서 항쟁한 시민들 상당수가 ‘북한국’이었다는, 근거 없는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전직 군인 출신 지만원씨은 5·18을 두고 ‘대한민국의 전복을 위해 북한군이 남침해 벌인 사건’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지만원의 주장은 영화 <김군>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지만원은 ‘광주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근거로 한 장의 사진을 제시한다. 1980년 5월, 광주 도심에서 찍힌 한 남자의 사진이다.

사진 속 남자는 군용 트럭 위에 올라 군모를 쓰고 있다. 눈매는 꽤 매섭다. 지만원은 그를 ‘북한특수군 제1광수’라고 명명한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누군가는 그를 한동네에 살았던 ‘김군’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만원이 북한특수군 제1광수라 칭한 한 남자의 사진. 하지만 누군가는 그를 한동네 살았던 '김군'으로 기억한다.

영화는 사진 속 ‘김군’을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린다. 김군의 정체를 알 수 있다면, 역사적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영화 <김군>을 제작하기로 한 이유는 5·18을 체감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그렇다고 결코 ‘계몽’이 영화의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고요. ‘김군’이라는 인물과 5·18이라는 사건을 영화로 풀어낸다면, ‘그날의 진실’을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영화 <김군>은 약 85분의 상영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이 85분을 위해 걸린 제작기간은 5년여 시간이었다.

“영화 <김군>을 준비하면서,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증인 분들을 여럿 만났어요. 그들 중 한 분께서 들려주신 경험담이 기억에 남아요. 이분은 학생 신분으로 1980년 5월 27일 도청에서 체포된 분인데요. 어린 학생 신분이라 남들보다 먼저 풀려났는데, 거기 잡혀있는 분께서 이런 말을 하더래요. ‘너는 돌아가면 학생이기 때문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거야.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그런 기회가 없어. 꼭 우리 이야기를 해줘’라고 말이죠.”

‘꼭 우리 이야기를 해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최낙용 제작자는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의 목소리 또한 떨리고 있었다.

 

‘더 가진 자’의 부채감으로…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고파

최낙용 제작자는 자신이 ‘일종의 부채 의식’을 갖고 산다고 말했다. 부채 의식이라니. 무슨 말일까.

“이 사회에서 전문직에 종사한다고 생각되는, 일종의 ‘잘 산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이들은 본인의 노력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만들어준 ‘운’도 따랐기 때문에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거로 생각해요. 저 역시 상대적으로 또래들보다 공부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이는 어머니와 아버지 덕이었어요. 30%정도가 제 노력이었다면, 70%는 세상이 저에게 준 ‘운’ 덕이었죠.”

그는 남들보다 더 가진 70%의 운을 세상에 어떻게 돌려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가 찾은 답은 자신보다 세상의 운을 덜 타고난 30%를 위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었다.

“어떤 위치에 서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나보다 덜 가진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기 위해서는 나부터 낮은 곳에 임해야 해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을 바라보는 것.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만의 방법은 영화 <노무현입니다>에 이어 <김군>을 탄생시켰다.

“저에겐 일종의 부채의식, 채무의식이 있어요.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고, 운 덕분에 이렇게 사는 것이지, 오롯이 제가 가진 능력 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영화를 제작해요. <노무현입니다>, <김군>과 같은 영화를 말이죠. 이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가 느낀다는 '부채의식'. 어쩌면 재일시인 김시종 선생의 '죄악감'과 같은 성격이 아닐까.

김시종 선생은 지난 6월 1일, 제주포럼 자리에서 관련 증언을 했다. 제주4·3 때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사실에 평생 '죄악감'을 품고 살았다는 것이다. 4·3 당시 죽임당한 동포들을 두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평생 죄악감을 느꼈다는 90대 노시인의 눈에는 쉴새없이 눈물이 흘렀다.

최낙용 제작자가 영화 <김군> 시사회장을 찾은 관객 앞에서 인사를 전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발언할 기회가 있는 사람들, 이분들이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봐준다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부터 그러기 위해 노력할 거고요.”

최낙용은 벌써부터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차기작 또한 한 시대를 살았던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다. 그러면서 그는 “제주4·3을 풀어낼 만한 인물과 만나게 된다면, 관련된 영화도 꼭 다뤄보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언젠가 제주4·3과 함께 여순·순천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함께 다룰 수 있는 인물이 떠오른다면 좋겠어요. 언젠가 한 번은 관련 제작에 임하게 되지 않을까요? 사실,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아요.”

예수가 그랬다. 신은 가장 낮은 곳에 임한다고.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 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그 자체만으로 이미 숭고한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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