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시간은 똥이다
시간은 똥이다
  • 홍기확
  • 승인 2019.05.21 10: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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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13>

아이는 하루에 한 번 이상 똥을 싼다. 나는 요즘 그렇지 못하다.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하는 변비가 3주정도 지속되고 있어서다. 소화도 안 되고, 응가도 못하고 해서 나름 기도하는 심정으로 시간과 똥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왜 이런 결심을 하는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결심을 키운 건 팔 할이 육체적인 울분 때문이 아닐까 한다. 육체적인 울분. 즉 변비(便祕)는 한자 그대로 보면 퍽 낭만적이다. 똥(변 변, 便)이 숨겨져(숨길 비, 秘) 있다니. 괜찮은 표현이다.

흔히 시간과 관련된 명언이라 하면 벤저민 프랭클린의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를 떠올린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청교도로써 근면, 절약을 신봉하였으며, 막스 베버는 그를 ‘자본주의의 합리적 인간 전형’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시간은 똥이다.’라고 바꿔서 생각이 날까?

아이는 화요일 저녁에 드럼을 배운다. 화목 아침에는 학교에서 컴퓨터 코딩을 배운다. 주중에는 피아노를, 화수목금 저녁에는 수영을 배운다. 모두 아이가 선택한 것이다. 드럼은 나중에 오케스트라를 하기 위해, 컴퓨터는 공룡의 DNA를 추출하기 위해, 피아노는 좋아하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OST를 연주하기 위해, 수영은 물놀이를 좋아하니까 한다.

그럼 공부는 언제 하냐고? 공부는 원래 학교에서 하는 것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친구들과 논다. 저녁에는 한 시간 동안 게임을 한 후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잔다. 그리고 이 와중에 똥이 마려우면 후다닥 달려가 싼다.

시간은 돈이라고? 아니다. 시간은 똥이다. 내 시간은 내 똥이다. 내 똥 내가 만들고, 내가 싸는 것이다. 아이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시간도 돈이 아니라 똥이다. 시간이 돈이라면 아껴 쓰고 저축하는 알뜰한 어린이로 교육시키는 게 맞다. 하지만 시간은 똥이라서 아이가 통제한다. 똥처럼 잠시 보관하여 변기에 흘려보낼 뿐이다.

아이에게 시간마저 황금으로 만들어버리는 금권주의의 치열함을 조기교육하고 싶지 않다. 시간이 돈이라는 것은 진정 자본주의의 논리다. 열심히 일하라, 시간을 절약하라,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등 무조건 달리게 만든다.

아이와 놀 친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보인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최대 7명까지 집에 놀러오더니만, 6학년이 되니 많아봤자 3명, 보통은 1명이다. 물어보니 수학, 영어 학원, 공부방 등을 다녀야 해서 놀러 올 시간이 없단다. 허허. 나쁜 어른들. 자기들 어렸을 때는 놀았으면서, 자기 자식들은 놀지 못하게 하다니!

하지만 아이도 공부 고민이 있었다. 놀라울 따름이다. 노는 게 제일 좋다는 뽀로로 뽀통령의 인생관만 머리에 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우리 가족은 가족회의를 자주 갖는 편이다. 테이블에 앉으면 테이블의 힘이 나온다. 최근에 가족 3명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본다.

아이의 말.

“나는 국어는 천재고 과학, 사회도 어느 정도는 하는 데 수학은 너무 못해서 걱정이야. 공부방이라도 다녀야 될까봐.”

나의 제안.

“나중에 공부해. 어른 돼서는 더하기, 빼기만 필요해. 아, 가끔 곱하기, 나누기도 필요하구나. 어쨌든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되지 머. 사칙연산 뜻 알아? 계속 놀다가 중학교 때부터 공부하던지, 아니면 아빠처럼 고3때만 공부하면 돼. 하루에 10시간씩 수학만 하면 한 달쯤이면 수학 천재 될 거야. 아빠도 그랬어. 우선은 좀 놀자.”

아내의 제안.

“애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해서 자발적으로 공부방이라도 다니려고 하는 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래도 살면서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만 해도 된다는 건 인정.”

공은 아이에게로 갔다. 부모의 황당한 답변과 도움 되지 않는 정보에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 같지만 요 녀석도 비범한 부모와의 동거가 13년째.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적적으로 나름 고민하는 표정까지 지어준다.

그리고 아이의 답변을 끝으로 가족회의는 종료되었다.

“아빠 방법이 좋을 것 같은데? 좀 놀다가 한꺼번에 공부하지 머.”

시간은 똥이다. 그리고 내 똥이다.

시간이 돈인 것은 자본가들의 논리다. 주식투자로 성공한 97조원의 자본가인 워렌 버핏이 언제부터 아이들의 ‘위인전’에 등장한지 모르겠다. 자본가의 어떤 점이 위대한지. 돈 놓고 돈 먹기의 위대함?

어쨌든 내 시간에 왈가왈부 간섭 말라. 언제부터 시간까지 화폐가치로 계산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취미활동, 여유, 멍때림, 산책 등의 가치는 얼마인가? 그들은 과연 계산을 해본 적 있는가?

아이의 시간은 아이의 것이다. 어른의 관점으로 재단(裁斷)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노는 것은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지, 공부를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노는 것은 농사일이나 똥 싸는 일과 같다. 꾸준해야 하며, 벼락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부는 꾸준할 필요가 없고, 벼락치기도 가능하다. 물론 언젠가 아이도 공부의 필요성을 간절히 느끼고 공부만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때 하면 된다.

3주간 지속되던 변비는 가족회의(?) 끝에 매운 닭발에 소주를 먹고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는 방법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그리고 해결이 됐다.

아이는 옆에서 게임을 하다, ‘시끄럽게 게임을 했으니 이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야겠어. 좀 쉬어야겠네.’라며 책상에 앉아서 책을 집고는 읽어가기 시작한다.

변비는 해소되고 모든 일상의 시간은 그저 평화롭게 흘러간다.

평온의 가치와 일상의 흐름을 가치로 계산한다면, 어머니가 어릴 적 해준 김치찌개, 떡볶이, 된장국 같이 흔하지만 유일한 소울 푸드(soul food)다. 분명 가치는 있지만, 시장에서 ‘교환’될 수 없다.

아이의 시간은 흘러간다. 경험은 쌓여간다. 똥도 잘 싼다.

오로지 공부만 못 할 뿐, 백 오십 가지 장점이 있는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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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율무 2019-07-03 07:55:30
공부는 조금(그것도 수학만) 못해도 백 오십가지의 장점이 있는 아이로 잘 자라고있다니....너무 뿌듯하고 행복한 일이네요. 저도 나중에 자녀를 그렇게 키우고싶습니다! 재미난 어머니 아버지와 똑부러지고 150가지 멋진점을 가진 친구덕에 미소지으며 출근하네요. 빡빡하고 이상한 세상에 참 좋은 가족인거같아요. 부럽기도합니다! 비록 급행지하철에서 응가가 절 괴롭혀서 '응가시간'이라고 검색해 들어오긴했지만, 그 덕분에 응가마려운것도 잊고 재미있게 읽었네요! ^^ 수학학원은 보내주세요! (키읔 키읔 키읔

2019-07-03 15:44:00
시간을 사회의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압력에 떠밀려서가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하면서 살아가는 가족의 인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