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감정소비자
감정소비자
  • 홍기확
  • 승인 2019.05.08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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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11>

가족 중의 가장. 회사의 사장, 시청의 시장. 주방의 주방장. 이들의 공통점은 ‘장(長)’이다. 우두머리,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이들은 어깨가 무겁다. 어깨가 무거우면서도 일을 하고 책임도 져야한다.

그렇다고 나머지 일반적인 지구인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무거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해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휘청대고, 중심을 잡고 있으려 해도 이미 지구는 자전 및 공전을 하는지라 흔들린다.

반전은 있다. 상기시키지 말라. 그러면 느끼지 않게 된다. 자전과 공전에 어지러운 지구인이 있으면 오른손 들면서 왼발 네 번째 발가락만 꼼지락 거려보라.

현대인은 스트레스, 분노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느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굳이 내 것이 아니었던 우울, 분노까지 열심히 모아서 받을 필요는 없다. 원래 제 감정이 아니라 남의 감정인데도 그걸 어깨에 걸치고 등짝에 붙이고 산다.

원래 인생이 멋지다는 보장은 없었다. 행복하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가 내가 태어날 때 내게(그때는 엄밀히 말하면 정자[精子]였음) 탄생과 소멸 중 선택권을 주지도 않았다. 태어남을 당했을 뿐이다. 자, 그런데 어차피 태어난 인생, 뭘 그리 거칠고 힘들게 사는지.

물론 나도 집에서는 가장, 회사에서는 팀장, 지구에서는 영장류(靈長類)로써 영장, 문학단체와 노동조합의 사무국장, 밴드의 회장 등 여러 ‘장(長)’으로써 책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장장 6개의 장을 하면서도 비교적 평온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스트레스를 꺼억 소화할 수 있는 나름의 비결이 있기 때문이다.

미리 공지하지만 항상 나의 비결은 자기계발서처럼 산뜻하고 자극적이지만, 실행이 불가능한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지만 돈 안 들고, 머리는 안 쓰지만 정신건강에는 좋은 방법이다.

개봉박두. 감정을 사용하는 꿀 팁.

내 주위에는 감정노동자가 많다. 궁금할 때 전화하면 옥구슬 같은 목소리로 답변하는 콜센터 직원, 반대로 궁금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데 무언가를 작정한 듯이 내게 전화하는 자신감 넘치는 텔레마케터, 내가 혼자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면 테이블을 차지함에 반갑지는 않지만 억지웃음을 짓는 식당 종업원. 감정노동자는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소비하는 감정 노동을 통해, 다른 이들의 감정을 채운다.

그런데 과연 감정노동자는 감정이라는 노동력을 소비하고 결국에는 탕진하고 마는가? 콜센터 직원은 자신의 친절한 감정을 직장에서 모두 소비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짜증만 내야할까? 아닌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노동자라는 단어는 분명 100% 옳은 정의는 아니다.

생각을 조금 바꿔 본다. 나는 이들을 감정노동자가 아닌 ‘감정소비자’라 부르고 싶다.

많은 심리학 연구와 실험들은 감정은 전염되고 증폭되는 것을 증명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사랑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는 오래된 격언은 틀렸다. 격언은 권위가 있을 뿐, 책임은 없다. 현대적으로 격언을 바꾸면, ‘사랑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세배가 된다.’가 되겠다.

내 인생을 바꾼 책 중 하나인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제임스 파울러의 『행복은 전염된다 – 부제 : 하버드대가 의학과 과학으로 증명해낸 인간관계의 비밀』은 인간 네트워크에서 즐거움, 행복, 슬픔, 고독이 어떻게 전염병처럼 전파되는지를 밝혔다. 이 책은 출간당시 이례적으로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LA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신문의 1면을 장식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 책에 의하면 행복은 전염된다. 1971년부터 2003년까지 1만2천명에 대한 연구결과 내가 행복하면 친구들도 15%만큼 행복해지고, 친구의 친구는 10%만큼 행복도가 올라간다고 한다. 심지어 친구의 친구의 친구조차 6%만큼 행복도가 올라갔다. 다시 말해, 주변 사람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실례로 선교단체가 운영하는 여자기숙학교에 갑자기 웃음병이 차례로 퍼져나가 결국 1,000명 이상이 ‘감염’됐다. 파급효과로 최대 16일까지 증상이 나타난 사람도 있었단다. 즉 행복 바이러스, 사랑 바이러스는 존재한다.

한편 슬픔, 고독, 우울도 마찬가지다. 고독한 사람의 친구는 52%가, 친구의 친구는 25%가, 친구의 친구의 친구는 15%의 고독할 확률이 상승했다.

사실 이는 마케팅의 법칙과 유사하다. 물건을 구입한 사람의 구전(口傳), 즉 입소문은 좋은 제품의 경험은 4~5명에게, 나쁜 제품의 경험은 10명에게 전파한다는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다른 이들처럼 감정소비자다. 다만 굳이 분류하자면 ‘똑똑한 감정소비자’다.

그러면 어떻게 감정을 구매하고 사용할까?

먼저, 우울한 사람과 만나지 않는다.

우울한 얘기만 하니까 안 만난다. 식당에서 나는 맛있네 하고 나왔는데, 꼬치꼬치 맛과 친절 등을 불만스럽게 얘기하는 사람과는 밥을 먹지 않는다. 세상의 불행을 오롯이 혼자 짊어 진듯한 사람들과 술도 안 마신다. 술 맛 떨어진다. 식당에 대한 불만과 정치, 경제, 사회 불만을 들어줄 넉넉함은 내게 없다.

그럼 누구랑 만나고, 밥 먹고, 술 먹느냐고? 세상에 절반 정도는 즐거운 얘기를 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만날 사람 널리고 널렸다. 우울한 사람 얘기를 들어주며 거짓 위로와 공감을 하고, 불만토로에 동참하며 냉철한 지식인 행세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굳이 내가 들어주지 않아도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행 바이러스를 전파할 것이며,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 것이다. 나는 이들을 만족시키고 싶지 않다.

퓰리처상 수상가인 허버트 스워프의 말, ‘성공의 공식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실패의 공식을 알려줄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 하는 것이다.’

또한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의 말, ‘당신이 어떤 존재이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내친 김에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의 말, ‘당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미움을 받는 것이, 당신답지 않은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보다 낫다.’까지.

다음으로 TV를 보지 않는다.

올 해는 TV를 안 본지 꼬박 20년 되는 해이다. 텔레비전의 뉴스는 가관이다. 광고를 수주하기 위해 자극적인 정치싸움, 투쟁적인 경제경쟁, 흑백논리의 노사 갈등, 희귀한 비리, 살인, 방화, 마약 등 사건사고만을 보도하며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TV 앞에 위치시킨다.

이런 뉴스를 한 번만 봐도 사회에 대한 불만, 우울한 현실의 단면을 증폭시킬 것인데 매일 이런 뉴스를 본다면! 나는 대신 책을 읽는다. 책은 TV와는 달리 생각할 시간을 준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생각의 흐름 방향을 통제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슬픈 영화, 공포 영화, 잔인한 영화를 보지 않는다.

이건 아내에게 배운 것이다. 눈물나는 신파극, 평온한 세포들을 억지로 일깨우는 공포영화, 사람을 썰고 베고 씹는 잔인한 빨간 영화. 굳이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인간의 어둡고 슬픈 측면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아이와 아내는 긍정적이고 코믹한 영화, 가족애나 연애 등 사랑 영화,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액션영화만을 본다. 웃으면 복이 온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정의는 승리한다. 즐겁지 아니한가?

마지막으로 조금 손해 보는 듯이 산다.

이건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다. ‘손해 보는 듯이 인생을 살라.’고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치밀, 치열, 계획, 논리, 전략, 투쟁적인 나의 성향을 잘 파악하신 탓이다. 뇌리에 박힌 어릴 적 가정교육은 뇌 인생에 평생 남는다.

그래서 나는 비록 흔들릴 때는 있지만, 선행을 열 가지 베풀면 돌아오는 게 한 가지이거나 심지어 없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착한 일은 내가 기쁜 거다. 받는 이가 기쁘면 운이 좋은 것이고, 받는 이가 보답하면 로또다.

반대로 남에게 해를 가하면 어떨까? 자기가 기분 나쁘고, 남도 기분 나쁘고, 자주 보복이 들어온다. 적보다는 친구가 좋다. 심지어 적이 될 수 있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도 좋다. 나중에 그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보다 더 경제적이고 영리한 일이다.

정신적 지주인 아내의 좌우명도 ‘예쁘게 살자.’다. 나는 책 세 권을 쓸 정도로 수도 없이 다양한 다짐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아내는 그냥 단순히 예쁘게 살고 있다. 어느 것이 나은 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

똑똑한 감정소비자. 똑독한 소비자는 좋은 감정만을 구매하고, 좋은 감정만을 사용한다.

물론 나 역시 다양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한 감정노동자로써 감정 탕진을 경험한 후 집으로 돌아와 짜증만 내기도 한다. 급기야 우울할 때도 있다. 인간이니까. 하지만 의지는 가장 단기적인 처방이고, 습관과 시스템은 가장 장기적인 처방이다. 그래서 나는 똑똑하게 내 감정을 소비하기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습관적인 노력을 추구한다.

명언제조기,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끝으로 좋은 감정을 얻으며 마친다.

“헌법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행복의 추구만을 보장한다. 나머지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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