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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취소된 IBO와의 협약식, 그 전말은?
돌연 취소된 IBO와의 협약식, 그 전말은?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4.19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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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예견된 IB DP 한국어화 위한 업무협약, 전날 취소 통보
대구시교육청 예산 문제 정리되지 않아 해결할 때까지 잠정 보류
MOC의 기본인 제도적 근거 확인 안 됐나…”비판 피할 수 없어”

*기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IB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아래 기사를 참고하세요!
2019년 4월 18일자, <제주 고교에 한국어 IB 도입… “IB, 네가 궁금해!”> 기사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4월 4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문자 한 통을 받게 된다. IBO와 제주-대구교육청 간 <IB 도입 양해각서 체결식>이 17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라는 내용이다.

당시 문자에서는 이것이 ‘잠정 확정’이기 때문에 보도는 자제해달라면서도, 현장 취재를 원하는 기자는 10일까지 출장 여부를 알려달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4월 8일과 10일, 같은 내용의 문자가 다시 송부되고 이에 상당수 언론사 기자들은 서울 출장을 위한 비행기 표를 끊게 된다.

하지만 협약식 전날인 16일 오전 10시 15분, 다음날 예정된 IBO와의 협약식이 취소되었다는 문자가 도착한다. 문자에는 “대구시교육청이 MOC를 체결할 제도적 근거가 부족해 이를 보류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제주도내 기자들은 당황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비행기 표를 부랴부랴 취소하게 된다. 협약식이 열리지 않을 거라면 굳이 서울까지 갈 필요가 없다.

그런데 막상 다음날, 17일이 되자 서울에서 <국제 바칼로레아 한국어화 추진 확정 기자회견>이 열린다. 업무협약 대신 “IB 추진을 확정하겠다”라는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다.

제주에 있는 기자들 대다수는 회견장에 갈 수 없었다. 하루 새에 협약식 취소 > 기자회견 취소 > 협약식 대신 발표회 진행 > 기자회견도 진행이라는 숨 가쁜 변화(?)를 쫓아가기엔 제주와 서울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결국 당일 제주 교육 이야기를 하는 기자회견 자리에, 막상 제주 기자가 불참하는 ‘웃픈’ 상황이 벌어졌다.

IBO-제주-대구 간 MOC 체결을 알리는 제주도교육청 관계자의 문자.

IBO와의 MOC는 대한민국 교육에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제주와 대구가 첫 발을 내딛으며, 타 시도교육청이 뒤를 이어 함께한다면 대학의 서열화,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을 타개할 방안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대구시교육청의 제도적 근거’가 부족해 협약을 보류한다? 그것도 협약식 바로 전날 통보한다?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대구시교육청 관계자에게 전화를 통해 물었다. 이렇게 갑자기 협약식이 취소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예산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고등학생을 위한 과정인 IB 디플로마 프로그램은 5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데, 이에 대한 의회 승인 절차가 누락됐다는 말이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2019년 예산을 확보할 당시, 2018년 9월에는 이러한 사실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2019년 IBO와의 협약이 진행될 수 있으니 예산 확보는 해 두었지만, IB에 대한 중장기적 큰 그림을 그리고 진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2018년 9월에는 IB 한국어화에 대한 계획이 다소 불투명한 상태였다. IBO와의 협상이 진행 중이기는 했으나, 한국어화 진행 여부가 승인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인데, 미리 (승인이 될 것으로) 예측해서 5년 단위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통이 큰 사람은 없다”라며 “(예산 승인 당시에는) 공식적인 회견처럼 (IB 한국어화를) 확정한다는 절차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4월 17일, 제주도교육청과 광주시교육청, IBO가 IB 한국어화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갖고 기자회견을 열었다.<br>(왼쪽부터)강은희 대구시교육감, 아시시 트리베디 IBO 아시아태평양본부장,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4월 17일, 제주도교육청과 광주시교육청, IBO가 IB 한국어화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초 예정된 MOC는 잠정 보류됐다.
(왼쪽부터)강은희 대구시교육감, 아시시 트리베디 IBO 아시아태평양본부장,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여기서 의문이 또 든다. IB 한국어화가 공식적으로 IBO 이사회를 통과한 것은 작년 11월 말이다. 대구시교육청 또한 이 사실을 작년 11월에 이미 알았을 것이다. 11월 말부터 4월까지 약 5개월의 시간이 있었는데, 왜 사전에 예산 문제를 검토하지 못한 걸까?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IBO와의 계약이 5년 단위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2019년 2월 이후에 알았다고 털어놨다. 2월 8일경 대구와 제주도교육청 관계자가 만나 IB 한국어화 추진을 위한 논의를 했는데, 이후 사업 추진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말이다.

결국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이 직접 나서서 2017년부터 주체적으로 IB를 추진한 것과는 달리, 대구는 그 절실함이 다소 약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제 대구시교육청 관계자의 말을 정리해보자. 이번 IBO와의 협약식이 돌연 취소된 이유는 대구시교육청의 예산 문제 때문이다. 5년 단위의 중장기계획으로 시의회를 거쳐 예산을 수립해야 하는데, 1년 치의 예산만 확보한 상태라 협약서 체결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주도교육청 관계자의 말은 조금 다르다.

제주도교육청 관계자에 의하면, 대구시교육청이 업무협약을 보류한 까닭은 올해 확보된 예산이 해외로 이전하는 항목으로 책정되어 있지 않아서 수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IBO와 협약을 맺게 되면, 교사 양성 등을 위한 일정 예산이 IBO측으로 송금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이전 항목’에 예산을 포함시켜야 하는데, 이 과정이 누락되어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두 교육청 관계자의 답변 내용이 다르긴 하지만, 어찌됐건 대구시교육청의 예산 문제로 업무협약이 미뤄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는 대구시교육청만의 잘못일까?

기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이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제주도교육청의 관심이 지대한 IB다. 제주는 2017년부터 초등학교 과정에 IB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노라 밝히기도 했다. 그러니 대구시교육청의 준비가 제대로 된 것인지 함께 크로스체크를 했어야 옳다.

이쯤되면 "대구시교육청의 준비가 미흡하다면, 제주도교육청이 단독으로 IBO와 MOC를 맺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묻는 이도 있을 것같다.

안타깝게도 제주만 단독으로 협약을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구가 빠지면, 그만큼 예산을 더 확보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 IBO가 내건 조언에는 IB DP 한국어 과정을 적용할 최소 학교 수가 정해져 있는데, 이를 제주도내 학교로만 채울 수가 없다. 

그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처음 하는 일’이라 실수가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MOC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예산 문제를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채, 협약식 전날 이를 파기하는 행위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IBO는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고, 그 공신력을 인정받은 교육 기관이다. IB에 대한 승인 절차는 매우 까다로운 편이라고 정평이 나 있다.

이러한 국제기구와 교육청이 맺는 협약이다. 그것도 미래 세대를 짊어질 아이들을 위한 교육 협약이다. 이를 협약 직전에 미뤘다는 건, 대구시교육청뿐만 아니라 제주도교육청의 위상과 신뢰를 엄청나게 실추시킨 행위라고 판단된다.

예로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했다. 백 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이라는 뜻이다.

우리 아이들이 올바른 교육 방식으로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추후 진행될 IBO와의 MOC는 부디 이러한 구멍 없이 잘 진행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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