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우리가 재현한 4·3 다랑쉬굴, 아픔 공감해요”
“우리가 재현한 4·3 다랑쉬굴, 아픔 공감해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4.12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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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중학교, 학생과 교사가 재현한 다랑쉬굴 모형
다랑쉬굴 안에서 4·3 수업, “평화의 소중함 공감해”
세화중학교 운동장 한편에 재현된 다랑쉬굴 모형.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제주4·3 희생자의 유해 11구가 발견된 다랑쉬굴. 토벌대가 굴의 입구 쪽에서 불을 피운 뒤, 나오는 길을 막아 숨은 사람들이 질식사한 역사의 현장이다 .

얼마나 무서웠을까, 연기를 마시며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얼마나 괴로웠을까. 우리는 이곳에서의 비극을 귀로만 듣고, 유추할 뿐이다.

그러나 여기, 다랑쉬굴의 비극을 몸소 느끼고 공감하고자 나선 아이들이 있다. 세화중학교 학생들이다.

다랑쉬굴에서 약 7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세화중학교는 올해 특별한 기획을 마련했다. 세화중 운동장 한편에 재현된 다랑쉬굴,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현장을 찾았다.

세화중학교에 재현된 다랑쉬굴 내부 모습. 아이들이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

“세화중학교에서는 올해 ‘제주인의 정체성 찾기’라는 이념을 갖고 교과통합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1학년은 신화를 주제로, 2학년은 해녀 항일운동을 주제로, 3학년 학생은 4·3 및 평화와 인권을 주제로 한 특색있는 교육을 해나가고 있죠.” -세화중학교 송시태 교장

송시태 교장은 “다랑쉬굴의 실제 크기를 참고해 만든 모형”이라면서 현장을 소개했다.

다랑쉬굴의 실제 크기를 본따 만든 모형이라니. 학생들이 이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상상이 잘 가지 않지만, 실내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굴 내부를 살피면, 플라스틱 막대를 엮은 모양이 보인다. 꽤 정교한 모습이다.

“수학과 과학 시간에 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만든 모형이에요. 모형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지 수학·과학 선생님과 교장·교감 선생님께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죠. 튼튼하게, 실제 크기처럼 만들려다 보니 약 2주가 소요됐는데요, 아이들과 선생님께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세화중학교 김순열 역사 교사

세화중학교에서 역사 과목을 담당하는 김순열 선생.

김순열 선생은 세화중에서 3년 째 역사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본래 4·3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세화중에서의 이러한 기획이 참으로 뜻 깊고 행복하단다.

“제주4·3 당시, 제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였습니다. 죄없이 죽임 당한 사람은 물론, 군인 혹은 그 가족 중에서도 피해자가 많이 있어요. 4·3을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그때의 현실을 가감없이 진실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이처럼 가르치려 합니다.” -세화중학교 김순열 역사 교사

세화중의 4·3과 연계한 평화·인권 교육은 다른 과목에서도 이어진다. 미술 시간에는 관련 그림을 그려보고, 국어 시간에는 현기영 작가의 4·3을 주제로 한 소설 ‘순이삼촌’을 읽고 감상문을 써 본다. 각 과목의 특성을 살린 4·3 평화, 인권 교육은 1년 내내 이어진다.

“4·3 기간 때, 반짝 하고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늘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새길 수 있도록 교육하려 해요. 제주4·3을 알고, 잘못된 권력이 힘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학생들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투표권을 가진 성인이 되었을 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고, 이것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로 이어질 수 있겠죠.” -세화중학교 김순열 역사 교사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목숨을 뺏고 빼앗기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4·3의 비극, 다랑쉬굴에서 이뤄진 학살이 오늘날 슬픔을 넘어, 어떤 교훈으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세화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다랑쉬굴 앞에서 제주4·3 당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번 다랑쉬굴 모형 만들기에 참여했다는 3학년 임재은 학생은 점심시간에도 밥을 서둘러 먹고, 굴 만들기에 몰두했단다.

“저는 기초공사에 참여했는데요, 굴 모형의 기본 틀을 잡는 작업이에요.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힘든 점도 있었어요. 그런데 완성하고 들어가서 4·3 이야기를 들으니 묘한 기분이 느껴졌어요. 말로만 들었던 다랑쉬굴 사건인데, 내가 그 현장에 있다고 생각하니 현장감이 느껴져서요. 그 당시 제주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져 슬프기도 했고요.” -세화중학교 3학년 임재은 학생

재은 학생은 이미 오래 전부터 4·3에 대해 잘 알았다. 다랑쉬굴 인근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그의집안에도 4·3희생자가 있기 때문이다. 재은 학생의 큰할아버지는 4·3때 밭에서 총에 맞았고, 그렇게 하늘로 떠났다. 동네에선 흔한 죽음이고, 흔한 비극이었다.

임재은 학생이 제주4·3을 주제로 쓴 시. 다랑쉬굴 모형에 전시되어 있다.

“이제 이런 아픔이 더는 없었으면 해요.”

다랑쉬굴 모형 안에서, 4·3의 이야기를 배운 아이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다.

지난 10일, 이석문 제주특별자치도교육감은 제주-광주 평화포럼 개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1948년 제주4·3이라는 잔혹한 세월을 거친 후, 광주에서 거의 똑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생각했어요.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든 이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겠구나’ 라고.”

세화중 아이들이 만든 다랑쉬굴 모형도 이와 같다. 다시는 국가에 의해 짓밟힌 생명이 생겨나지 않도록, 깨어있기 위한 오늘의 한 걸음이다.

세화중학교 본관 입구에는 인근 4·3 역사 현장에 대한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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