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5:54 (금)
“자연을 할퀴는 게 축제라고 생각을 하시나요”
“자연을 할퀴는 게 축제라고 생각을 하시나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9.03.12 16:16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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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매년 자연에 생채기만 남기는 들불축제

인구 10만명 목표였던 북제주군 시절 만들어낸 축제
20년 전 시작할 때 의도와 현재 시점은 완전 달라져
‘해오던 대로’ 아닌 ‘들불’ 의미 전달시키는 게 중요
매년 들불축제가 열리고 있는 새별오름. 미디어제주
매년 들불축제가 열리고 있는 새별오름.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20년이 넘었다. 때는 1997년이다. 그해 연말엔 대한민국이 구제금융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누가 그리될 줄 알았을까. IMF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1997년을 꺼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당시는 행정체제가 지금과 달랐다. 현재는 제주특별자치도라는 단일 행정체제로 꾸려져 있다. 제주도 밑에 행정시 2곳을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허수아비에 다름 아니다. 1997년은 2개의 시(市), 2개의 군(郡)이 존재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북제주군과 남제주군 등 4개였다. 제주도는 행정구역으로만 따지자면 군이 먼저였고, 시는 나중에 생겼다. 요즘을 사는 젊은이들에겐 ‘시청’은 익숙할테지만 ‘군청’이라는 건 듣도 보도 못한 그런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군청이 존재했을 때, 군청 소속 공무원들의 목표는 단 한가지였다. ‘10만명 지키기’였다. 말이 쉽지 10만명의 인구를 확보하는 건 ‘사활’ 그 자체였다. 특히 북제주군 공무원들에겐 밥벌이로서, 승진 수단으로서도 10만명 달성은 필수였다. 오죽했으면 북제주군이 내건 슬로건이 ‘1등’이었을까.

북제주군은 제주시와 인접한 이유 때문에 제주시로 전입하려는 이들을 잡아야만 했다. 그러려면 사람이 많이 들어와서 북제주군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줘야 하는데, 그때 아이디어 하나가 등장한다. 매년 정월대보름에 볼 수 있는 ‘들불축제’이다.

북제주군이 들불축제를 내걸 당시 취지는 ‘북제주군민의 안녕’에 있었지만 그건 겉모양이었고, 속내는 앞서 설명했듯이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있다. 처음엔 새별오름을 태우진 않았다. 다른 지역에서 불놓기를 했고, 그러다 아예 오름을 태우는데 의견집결을 하게 된다.

처음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목축을 위해 불놓기를 하는 일은 비일비재했고, 토질의 지력 상승을 위해서도 밭에 불을 피우는 일은 당시에도 종종 해왔다. 당시엔 불놓기를 ‘화입(火入)’이라는 한자를 빌려 쓰곤 했다. 그러다 불놓기가 차츰 사라지자 그걸 축제로 승화시켜, 관광객을 끌어들이자는 아이디어로 발전시킨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제주민중들이 해오던 ‘화입’을 ‘축제’로 만들어서 관광객을 유입시키고, 북제주군민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의도였으니. 그러다 차츰 달집태우기 등 하나 둘 변천을 해왔다.

요즘은 들에 불을 놓을 일이 없다. 들에 불을 놓아 농사를 짓는 화전민도 없고, 그렇게 해서 말과 소에 먹일 부드러운 풀을 양산하는 농민들도 없다. 과거의 역사이다. 그 역사를 다시 보여준다는 의미로서의 축제는 괜찮다.

첫 의도는 좋았지만 지금 축제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쪽으로 가고 있다. 매년 욕을 먹는 축제가 되고 있다. 불을 놓는답시고 석유를 마구 쏟아붓는다. 욕을 먹자 올해는 화약을 사용해서 불을 질렀다고 한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축제도 변하기 마련이다. 축제가 세상을 끌어가는 게 아니라, 세상의 변화에 맞추는 게 축제여야 한다. 카니발이라는 축제를 보자. 원래는 희생을 해야 하는 행사였으나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카니발은 그런 의미만 둘 뿐이다.

20년 된 들불축제도 바뀔 때가 됐다. 북제주군 시절은 10만명을 채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명제가 있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들불’이라는 수단을 사용했다. 억지로라도 관광객을 끌어와야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루에만도 4만명의 관광객이 제주를 찾는다. 요즘 관광객들은 그런 보여주기식 행사장엔 잘 가질 않는다.

왜 우린 불놓기를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 자연에 생채기를 주면서까지 들불을 억지로 놓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자. 이젠 목표가 달라졌다. 10만명 인구 채우기 목표는 20년 전의 일이다. 들불축제를 하는 이유는 뭘까. 가만 보면 목표도 없고, 목적도 없는 축제가 아닌가 싶다. 그냥 해오던 일이기에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연은 마구 상처를 줘도 된다는 개발주의 방식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의문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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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민 2019-03-20 15:11:54
20년 된 들불축제도 바뀔 때가 됐다. 북제주군 시절은 10만명을 채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명제가 있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들불’이라는 수단을 사용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루에만도 4만명의 관광객이 제주를 찾는다. 요즘 관광객들은 그런 보여주기식 행사장엔 잘 가질 않는다.
왜 우린 불놓기를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 자연에 생채기를 주면서까지 들불을 억지로 놓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자. 이젠 목표가 달라졌다. 10만명 인구 채우기 목표는 20년 전의 일이다. 들불축제를 하는 이유는 뭘까. 가만 보면 목표도 없고, 목적도 없는 축제가 아닌가 싶다. 그냥 해오던 일이기에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동감입니다.

팡야 2019-03-18 23:56:21
불태운다고 10만명 모아지는것도아니고 들불축제보러 관광객들 많이오던데요!? 상도많이 받았던행산데 왜이렇게 삐딱하게 보시는지??

바람돌 2019-03-14 08:47:34
좋은글 감사해요

김현경 2019-03-13 19:04:47
문제의식 일깨워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