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3:21 (금)
武名, 無名?
武名, 無名?
  • 문영찬
  • 승인 2019.03.07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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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찬의 무술 이야기] <46>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을 나타내는 품사를 명사라고 한다.
설날.
이 명사의 뜻을 찾아보면 한 해의 시작인 음력 정월 초하루라고 되어있다.
한때 우리는 설날을 구정이라 불렀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 ‘달에 기준을 두면서, 태양의 위치에 따른 계절 변화를 참작하여 윤달을 둔 태음태양력’을 사용해 오다 조선이 망해가던 1895년, 을미개혁에서 양력이 최초로 사용되었고 이듬해인 1896년 1월 1일, 고종(조선 제 26대왕)의 명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태양력(양력)이 사용되었다.

양력설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좀 더 체계적으로 도입된 것은 일제에 의해서였는데, 일제는 자신들의 시간 체계에 맞는 양력설을 새롭고 진취적이라는 의미에서 신정으로 부르고, 피식민지인인 한국인들이 쇠는 음력설을 오래되어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구정으로 불렀다.

일제가 전통 설을 지칭한 구정이라는 명칭은 일제의 양력설 정책을 답습한 해방 후 한국 정부에 의해서도 사용되었고, 그 사용이 장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민속과 풍습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기에 국민들 사이에선 음력설(구정)을 설날로 생각하며 세배를 하고 차례를 지냈다.

우리의 설날이 구정이 아닌 ‘설날’로 다시 불리게 된 것은 이름을 잃어버린지 약 90년 만인 1989년에 이르러서다.

이로써 전통 설은 구정이라는 낙후된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고 구정이라는 단어는 이제 일상적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한 번 잃어버린 이름을 다시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름의 소중함을 알고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무술은 合氣道다.
그러나 많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국내의 합기도와는 다르다.
국제 명칭은 AIKIDO이고, 우리는 아이키도라 부른다.
AIKIDO의 한국어 표기는 ‘합기도’지만 국내 합기도와의 구별을 위해 지금까지는 아이키도라 불렀다.

柔道의 국제 명칭 JUDO이고 유도라 부른다.
劍道의 국제 명칭 KENDO이고 검도라 부른다.
空手道의 국제 명칭은 KARATEDO 이고 공수도라 부른다.
合氣道의 국제 명칭은 AIKIDO이고 합기도라 불러야겠지만 그러지 못하였다.

合氣道의 무명(武名)을 합기도라 부르지 못하고 아이키도라 부르고 있다.
올해 합기도계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개최된다.
2019년 8월 30일부터 9월 6일까지 6일간 개최되는 ‘2019년 충주 세계무예마스터십’이다.
그동안 ‘충주무술축제’라는 이름으로 열리던 대회가 올해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의 공식후원을 받게 되면서 국제행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 GAISF는 IOC와 업무협약관계이며 스포츠 종목의 국제연맹과 유니버시아드, 장애인올림픽게임 등의 각종 종합대회 주체단체 등 109개의 회원으로 구성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스포츠연맹연합체이다.)

이번 대회 참가종목은 총 22개로 GAISF 회원종목 11개, 비GAISF 종목 11개로 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합기도’의 명칭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GAISF에서는 연맹이 주관하는 合気道 종목을 한국어의 한자 발음인 ‘합기도’로 표기하도록 공식적으로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정통합기도(合氣道, AIKIDO)는 ‘아이키도’가 아닌 ‘합기도’란 이름으로 참가하게 되었고, 한일 양국간의 역사적인 이유로 정확하게 보급되지 못하고 이름만 차용한 국내 합기도는 ‘한국형 합기도(Korean Hapkido)'로 표기하여 참가하게 되었다. ‘합기도’라는 정확한 이름을 내걸고 참가하는 첫 행사인 것이다.

이름이 정확하지 못하면 그 무술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가치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렵다.
한번 잘못 사용되기 시작하면 다시 그 이름을 찾아오는 데에 많은 어려움과 제약이 뒤따른다.

합기도 역시 지금까지 잘못 사용된 이름 때문에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태권도 유사무술, 종합격투기 등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합기도는 나를 공격하는 적까지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만유애호(萬有愛護)의 철학과 가치를 바탕으로 비폭력을 추구하는 무도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합기도가 유독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데에는 국내 합기도에서 도용한 무명(武名)과 반일 감정에 의한 폄하가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합기도’의 정확한 이름을 찾기 위한 행보가 시작되었다.
국내대회가 국제대회로 격상·개최되면서 정확한 무명(武名)의 합기도가 채택되었다.
이제는 합기도라는 정확한 이름의 정확한 무도가 전파되길 기대해본다.

 

문영찬의 무술 이야기

문영찬 칼럼니스트

(사)대한합기도회 제주도지부장
제주오승도장 도장장
아이키도 국제 4단
고류 검술 교사 면허 소지 (천진정전 향취신도류_텐신쇼덴 가토리신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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